[현장취재] 4대강사업 마지막 공사지 ‘두물머리’를 가다
행정대집행 앞둔 농민들 “그래도 떠날 수 없다” 절규
지역 주민 “지역발전 위한 것” vs 농민 “남은 땅에서라도 농사짓게 해달라”
이렇게 평화롭던 두물머리가 4대강사업 마지막 공사를 앞두고 전체 11명의 농부 중 일곱 명이 떠나고 마지막 남은 네 명 농부들의 아우성이 울려 퍼지고 있다. 정부는 8월 6일 농사를 짓고 있는 농토와 비닐하우스 등에 대해 행정대집행을 공지한 상태다. 토지를 정리해 자전거도로를 건설하고 공원을 조성한다는 계획이다.
남아 있는 농가 네 가구는 지역발전을 위한 개발인 것임을 잘 알면서도 자전거도로와 공원이 들어서지 않는 농지에 농사를 지을 수 있게 해달라고 요청했지만 정부는 이를 묵살했다. 유기농으로 농사를 짓는다고 해도 강을 오염시킬 수 있다는 이유 때문이다.
이 때문에 이미 일곱 가구는 농토를 버리고 다른 지역으로 이주했다. 양수리 주민 대부분은 4대강사업을 통해 지역이 발전할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하며 남아 있는 농민들을 비난하고 있는 상황이다. [일요서울]은 농번기를 맞았지만 손을 놓고 정부와 갈등을 겪고 있는 두물머리 현장을 다녀왔다.
오랜만에 햇볕이 쨍하니 떴다. 흐린 날씨가 계속되다가 이날(24일)부터 본격적인 무더위가 시작됐다. 양수역에 내려 역을 나서자 왼편으로 ‘4대강 국토종주 남한강 자전거길’이라는 이정표가 서있었다. 4대강사업이 이뤄지고 있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었다.
두물머리로 향하는 길을 따라가다 보니 길가에 현수막 여러 개가 걸려 있었다. ‘두물머리 한강사업 안하면 자손만대 후회한다’, ‘유기농 빙자하는 외지인 유기농은 물러가라’, ‘두물머리 환경사업을 추진하여 아름다운 우리고장 만들자’ 등의 문구에서 알 수 있듯이 4대강사업을 찬성하는 내용의 현수막이었다.
현수막의 내용을 수첩에 적고 있으니 한 노인이 슬며시 옆으로 와 “이거 적어서 뭐하게? 뭐하는 사람이야?”라고 묻는다. 기자라고 신분을 밝혔지만 의심어린 눈길은 여전했다. 그동안 많은 언론에서 두물머리 기사를 내보내면서 자신들의 입장을 대변해 주지 않았다는 불만이 섞여있다는 것을 그대로 느낄 수 있었다.
“4대강사업 하면 우리 고장 발전하잖아”
4대강공사 진행 현황을 알아보기 위해 면사무소에 들러 부면장과 잠시 대화를 나눴다. 부면장은 “두물머리 인근을 잘 꾸며야 사람들이 많이 찾아온다. 그만큼 명소이다”라며 4대강사업의 필요성을 에둘러 강조했다. 또한 “지금까지 농사를 짓고 있는 이들은 평방미터당 500원 정도로 값싼 점용료를 내고 토지를 사용했는데 정부가 4대강사업을 하면서 더 이상 토지를 사용할 수 없게 됐다”고 설명했다.
두물머리 산책로 초입에 마련된 벤치에는 노인들이 삼삼오오 뜨거운 태양을 피해 자리를 잡고 앉아 있었다. 노인들에게 다가가 4대강공사에 대한 의견을 묻자 곧바로 대답이 튀어나왔다.
“4대강공사 하고 나면 이곳도 발전할 수 있다. 이 동네는 규제가 많아 발전이 어려웠었는데 자전거도로가 생기고 공원이 생기면 관광객들도 많이 올 것이니 동네 발전이 빨라질 것이다”라며 4대강공사에 대한 기대감을 나타냈다.
다른 한 노인도 “지금 농사짓는 사람들은 따지고 보면 외지 사람이다. 하천 주변 땅을 사용해서 그동안 살았지만 정부가 사업을 진행한다고 하니 이제는 땅을 내줘야 한다. 이렇게 버티는 것은 보상을 더 받기 위한 것 아니냐”며 남아 있는 네 가구를 비난했다.
기자가 지역이 발전된다고 하지만 많은 관광객들이 찾아와도 돈을 버는 사람들은 식당, 식료품점 등의 자영업과 숙박업만이 그 혜택을 볼 수 있지 않겠느냐는 질문에 “그건 뭐…”라며 말끝을 흐렸다.
결국 4대강사업으로 인해 지역이 발전할 것이라는 기대를 가지고 있었지만 구체적인 설명은 하지 못했다.
두물머리의 유명한 상징이 된 고목까지 걸어가는 약 1km의 길 오른편으로는 연(蓮)이 빽빽하게 자라고 있었다. 하지만 주인이 떠난 비닐하우스와 밭은 이미 잡초만 무성했으며 방울토마토는 며칠 전 호우로 인해 줄기에서 떨어져 흙바닥에 나뒹굴고 있었다.
고목 앞에서 쉬고 있던 한 여행객은 자전거도로 건설에 대해 “굳이 자전거도로를 만들 이유가 있는지 모르겠다. 그대로 두는 것도 좋은 방법일 텐데 인공적으로 꾸미는 것이 좋다고만 생각하는 정부가 문제 있다”고 꼬집었다.
또한 “4대강사업의 필요성도 어느 정도 인정하겠지만 최대한 지역주민들에게 피해가 가지 않도록 하는 것도 중요하다. 정부 정책 때문에 살던 곳을 떠나는 사람들이 생겨서는 안 되는 것 아닌가”라고 비판적인 시각을 내비쳤다.
“다 쓰지도 않을 땅, 농사짓게 해달라”
고목에서 조금 더 걸어 들어가자 남은 네 가구가 농사를 짓고 있는 비닐하우스가 햇빛을 반사하고 있었다. 하지만 일부 비닐하우스는 잡초만이 무성했고 주변으로 중장비가 멈춰 서 있어 공사를 벌이던 곳임을 알 수 있었다. 유기농 엽채류(주로 잎을 식용하는 채소, 배추, 시금치 등의 채소를 일컫는 말)와 방울토마토 등으로 유명했던 두물머리 농지가 4대강사업으로 인해 몇 년 사이에 점점 폐허의 땅으로 바뀌었다.
때마침 천주교 인천교구에서 미사를 위해 사제와 신도들이 비닐하우스에 마련된 임시 예배당을 찾았다. 이들은 무더위 속에서도 먼 걸음으로 생명이 숨 쉬고 있는 두물머리를 찾은 것이다. 이들은 이미 800회가 넘는 미사를 두물머리 현장에서 가졌다.
미사를 집전한 신부는 “오늘 대통령이 여섯 번째 사과를 했다”며 “하지만 조만간 사과할 일이 더 생길 것이다. 바로 4대강사업 때문이다. 아니 엄밀히 말하면 자전거도로 때문”이라며 대통령을 비판했다. 또한 “농민들이 남아있지 않았다면 미사가 계속됐을 수 있었을까? 우리는 악과 싸우는 것이 아니라 선을 지키고 있는 것”이라며 미사를 두물머리에서 갖는 의의를 설명했다.
미사에는 남은 네 농부 중 한 명인 최요왕씨가 참여했다. 미사 중간에 상황을 설명하기 위해 나온 최씨는 “대화로 풀 리기는 점점 어려워지는 듯하다. 국회의원들도 만나봤지만 이 문제가 자신들을 알리는데 큰 도움이 되지 않는지 별 움직임이 없다. 대선에도 큰 영향을 못 미치는 것 같다”며 안타까워 했다.
최씨는 “처음에는 농사지을 땅을 지키기 위해 맞섰지만 지금은 농지로도 쓰이지 못하고 그냥 잡초만 무성해지는 땅을 볼 수 없어 이렇게 싸우고 있다. 자전거도로가 생기고 공원도 들어서지만 면적은 얼마 되지 않는다. 농지가 남음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농사를 짓지 말라고 한다. 하천부지는 농사짓기에 정말 좋은 땅이다. 조금이라도 남겨 농사를 지을 수 있으면 좋겠다”고 간절히 말했다.
미사 후 인터뷰를 가진 최씨는 “다른 주민들이 우리가 보상을 더 받기 위해 남아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그렇게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절대 그런 것은 아니다 이렇게 비옥한 땅에 특별한 이유도 없이 농사를 못 짓게 하는 것을 참을 수 없는 것이다”라고 해명했다.
최씨는 “국토부와 서울국토관리청에 공사 후 남은 땅에 농사를 지을 수 없느냐고 수없이 물었다. 하지만 농사를 지을 수 없다는 대답만 하지 납득할만한 이유를 설명하지 못했다. 지역구 의원인 정병국 의원한테는 아예 가보지도 않았다. 일전에 정 의원이 한마디 했는데 ‘4대강사업을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며 “좋은 땅에 잡초가 무성히 자라게 놔두는 것이 잘하는 것인지 잘 모르겠다. 나중에 다른 사업을 위해 일부러 땅을 놔두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든다”며 아쉬움을 토로했다.
특히 최씨는 “애들이 이런 문제에 대해 예전에는 잘 몰랐는데 최근에 신문과 텔레비전에 이곳 얘기가 나오면서 눈치를 챈 것 같다. 하지만 아이들보다 아내에게 제일 미안하다”며 고개를 떨궜다.
최씨를 비롯한 김병인, 서규섭, 임인환씨 등 네 명의 농부는 정부가 행정대집행을 하고 난 후 어디로 옮겨야 할지 또한 무엇을 해서 먹고살지 정하지 않았다. 이들은 우선 농지에 대한 행정대집행을 막기 위해 최선을 다하자고 다짐했다고 한다.
행정대집행 끝나면 빈털터리로 전락
농민 네 가구가 사용하고 있는 토지는 이미 점용 기간이 만료된 상태다. 정부가 4대강사업을 앞두고 더 이상 점용을 허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최씨는 “원래 3~5년 기간으로 점용 기간 연장을 했다. 그런데 갑자기 점용 허가를 불허했다. 결국 우리가 소송에 이긴다고 하더라도 올해 말까지밖에 토지를 사용할 수 없다”고 답답한 심정을 토로했다.
정부는 행정대집행 비용으로 3억 원을 부과한 상태다. 이 때문에 행정대집행이 진행되고 나면 남아 있는 농민들은 행정대집행 비용을 물어할 판이다. 이뿐만 아니라 그동안 제기했던 소송도 대법원에서마저 패소하게 된다면 그 비용을 모두 자신들이 내야하기 때문에 농민 네 사람의 속은 검은 숯검댕이 되었다.
팔당대책공대위 관계자는 “농민들이 이곳을 떠난다고 해도 보상받을 수 있는 돈은 뻔하다. 하지만 행정대집행 비용과 소송비용을 내고 나면 다시 농사짓기가 쉽지 않을 것 같다”며 “이전에 이전했던 분들은 시설자금의 80%까지 보조해줬지만 이분들한테는 정부가 보조를 해줄지 모르겠다”고 걱정했다.
이 관계자는 “행정대집행을 예고한 8월 6일은 대규모 미사가 예정돼 있다. 이미 이를 통지한 상태인데 굳이 그날 행정대집행을 한다는 것은 너무한 처사”라고 정부를 비판했다.
팔당대책공대위는 지난 25일 정부의 행정대집행이 부당하다며 소송을 제기했다. 평균 10일 정도 소요되는 이 소송에서 만약 법원이 농민들의 손을 들어준다면 상황은 급변할 수 있다. 농민들도 이 소송에 실낱같은 희망을 걸고 있다.
지역 발전을 위해 농민들에게 떠나라고 요구하는 주민들과 비옥한 땅에 임대료를 내고서라도 농사를 짓게 해달라고 요구하며 지역민 간의 갈등은 깊어가고 있는 상황이다.
인터뷰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목에 흑염소 한 마리가 뙤약볕 아래 평화롭게 풀을 뜯고 있었다. 하지만 앞으로 두물머리를 찾는 이들은 이런 모습을 볼 수 없다고 생각하니 괜히 입맛이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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