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격호-신동빈, 롯데 경영철학 부재론

불매 직격탄 맞은 롯데

2012-07-24     김나영 기자

 
- 아버지는 ‘껌 장사’에 ‘땅 놀이’, 아들은 ‘통행세’ 지시
- 돈은 많지만 경영철학 없는 롯데…재계 5위 무색

[일요서울 | 김나영 기자] 롯데그룹(회장 신동빈)이 전국 소상공인들로부터 불매운동의 표적이 된 데 이어 신동빈 회장이 직접 계열사 부당지원을 지시한 사실이 드러나 세간에 충격을 주고 있다. 롯데가 유통업계의 동반성장을 외면한 것도 모자라 계열사의 이득을 위해 ‘통행세’를 부과해 그룹을 살찌운 데 대한 비난의 화살은 신 회장을 정면으로 겨눌 전망이다. 결국 신 회장 역시 아버지 신격호 총괄회장에 이어 “롯데는 타 대기업들과 달리 경영철학이 없다”는 경영철학 부재론에 시달리는 형국이다.



롯데가 재계에서 가장 듣기 싫어하던 이야기는 “껌 팔아 돈 벌었다” 혹은 “과자 팔아 어린애 코 묻은 돈 모았다”는 것이다. 각 기업마다 성장배경이 있기 마련인데 롯데의 경우 ‘추잉껌’이 그 시초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롯데제과의 스낵이나 비스킷 등 과자 매출은 오늘날 롯데그룹을 키운 자금의 근간이 됐다.

롯데가 점점 몸집을 불리면서 이러한 ‘껌’ 이야기는 “부동산 갖고 땅놀이했다”는 이야기에 서서히 밀리기 시작했다. 롯데는 과자를 팔아 마련한 현금을 이용해 전국 각지의 땅을 하나씩 사들이기 시작했다. 보유한 땅에는 계열사 매장을 짓거나 임대했고 다시 그 수익을 이용해 또 다른 땅을 사고팔며 이익을 챙겼다. 당시 부동산업계에서는 롯데의 ‘땅놀이’를 두고 “롯데를 따라 사라”는 말이 돌 정도였다.

최근에 와서 롯데는 그룹의 뿌리부터 뒤흔들릴 비판에 다시금 직면한다. 바로 “롯데에는 경영철학이라는 것이 없다”는 ‘경영철학 부재론’이다.

아버지인 신격호 총괄회장은 그룹의 근간이 유통에 있음에도 땅장사로 돈을 벌어 눈총을 받았다. 여기에 아들인 신 회장은 대기업으로 성장한 후에도 중소상인들의 밥그릇을 뺏으려고 해 불매운동의 과녁 한가운데에 오른 상태에서 직접 계열사 부당지원을 지시한 것까지 밝혀졌다.

때문에 롯데는 재계 5위이면서도 그에 걸맞는 철학을 갖추지 못했다는 지적이다. 현재 롯데가 내세우는 핵심가치는 고객중심·창의성·협력·책임감·열정 등 5가지며, 경영방침은 핵심역량강화·현장경영·인재양성·브랜드경영 등 4가지다. 하지만 롯데 임직원들조차도 이러한 핵심가치나 경영방침에 대해 “매우 생소하며 와 닿지 않는다”는 전언이다.


소비자들, 롯데 지운다

한편 소상공인단체들의 모임인 한국소기업소상공인연합회(이하 연합회)는 지난 19일 창립총회에서 롯데를 비롯한 대형 유통사에 대한 불매운동 출정식을 열었다. 앞서 16일부터는 골목상권살리기소비자연맹과 유권자시민행동 등 시민단체들과 손잡고 롯데 계열사 및 제품에 대해 무기한 불매운동을 벌이는 중이다. 소상공인단체들이 모인 연합회는 전국 200만 명의 자영업자 모임인 소상공인단체와 직능ㆍ소상공인단체들까지 합하면 총 600만 명에 달한다.

불매운동의 대상은 롯데백화점ㆍ롯데마트ㆍ롯데슈퍼 등 계열사와 처음처럼ㆍ아사히ㆍ스카치블루ㆍ아이시스ㆍ펩시콜라ㆍ칠성사이다 등 롯데가 생산ㆍ수입한 주류 및 음료에 이르기까지 실로 다양하다. 연합회와 시민단체들은 이미 불매운동 포스터를 제작해 널리 부착하고 있으며 자영업자 회원들에게 전단과 공문을 발송해 참여를 유도하고 있다.

롯데는 유통업계 1위지만 최근 대기업의 중소업종 진출 제한을 교묘하게 피해가며 소상공인들을 울렸다는 것이 소상공인단체들의 주장이다. 특히 롯데는 대형마트의 의무휴업 예외조항을 교묘히 이용하기 위해 농수산물 매출 비중을 51%까지 끌어올리는 한편 슈퍼 가맹점을 추가로 확보하는 수법을 써서 SSM 수를 편법적으로 늘렸다. 롯데마트 등 대형마트들의 연합인 한국체인스토어협회가 대형마트 의무휴업 준수나 신용카드 수수료 체계 개편 수용을 받아들이지 않은 것도 크게 작용했다.

특히 음식점 및 유흥업소를 운영하는 자영업자들은 소비자들에게 주류 및 음료를 직접 판매하는 마지막 단계에 있다. 때문에 전국 600만 명의 자영업자들이 속한 연합회에서 ‘롯데 판매 금지’를 선언한 것은 상당히 의미심장한 사건으로 롯데가 큰 타격을 입을 것으로 예상된다.

엄태기 골목상권살리기소비자연맹 실장은 “현재 대형마트로 인해 자영업자들의 매출이 50% 이상 감소했다”면서 “가장 중심에 있는 기업인 롯데를 시작으로 불매 운동에 돌입했다”고 말했지만 롯데 측은 “현재로서는 그룹 차원에서 대응할 계획이 없다”는 입장이다.
 

공정위, 회장 겨눴다

또한 공정거래위원회(위원장 김동수)가 롯데의 계열사 부당지원이 신동빈 회장의 직접 지시에 의해 이뤄졌다는 것을 적발하고 과징금 6억4900만 원을 부과하면서 롯데에 대한 시선은 한층 더 싸늘해졌다.

공정위에 따르면 신 회장은 롯데피에스넷이 현금자동입출금기(ATM)를 직접 구매할 수 있는데도 롯데기공(현 롯데알미늄)을 거쳐 간접 구매하도록 지시했다. 롯데기공은 2008년부터 현재까지 ATM기 3534대를 666억3500만 원에 사들여 롯데피에스넷에 707억 8600만 원가량에 팔았다. 투자금을 제외하면 약 3년간 39억3400만 원의 부정수익을 남겼는데 이는 롯데가공의 동기 당기순이익의 85.2%에 이른다.

공정위는 “ATM 사업경험이 전혀 없었던 롯데기공을 거래중간에 끼워넣게 한 것은 롯데기공에 수익을 창출해주려고 했던 것”이라며 “대기업 집단이 별다른 역할이 없는 계열사가 일종의 ‘통행세’를 챙기게 해주는 방식의 부당지원 행위를 적발한 첫 사례”라고 밝혔다.

타 그룹 관계자는 “통행세는 물론이고 그룹 회장이 직접 부당지원을 지시했다는 것이 이렇게 공정위에 의해 명백히 밝혀진 것은 그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것으로 안다”면서 “기업이 당연히 가져야 할 윤리의식 등 경영철학 자체가 없는 롯데의 향방이 우려된다”고 말했다.

<김나영 기자> nykim@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