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 최다 주례 기록 세운 정치인은?
2011-05-09 박세준 기자
결혼은 인륜지대사(人倫之大事)로 일컬어진다. 그만큼 부부의 인연을 확인하고 조언을 들려줄 주례를 구하는 일에도 고민이 뒤따를 수밖에 없다.
수많은 유권자들을 만나 다양한 인간관계를 맺는 것이 숙명인 정치인에게 주례는 쉽게 거절할 수 없는 어려운 부탁이다.
얼굴을 알리고 유권자들을 만나는 좋은 기회인 동시에, 한 번 수락하게 되면 쉴새 없이 몰려드는 주례 청탁이 의정활동의 걸림돌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주례만 1만1700여회…'주례왕' 노승환 前 의원
주례하면 떠오르는 정치인은 제13대 국회부의장을 지낸 노승환 전 의원이다.
주례 인심이 후하기로 소문난 노 전 의원은 하루에 12번이나 주례를 선 기록이 있을 정도로 유명한 주례 전문가였다.
노 전 의원은 1957년 1월9일부터 1995년 6월까지 38년6개월 동안 무려 1만1700여 회나 주례를 서면서 이 방면 세계 기네스북에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그는 1954년 약관 24세로 마포에서 민선 동장으로 당선된 후 동회장 2선, 시의원 2선, 국회의원 5선, 마포구청장 2선 등 11번의 선거를 치르면서 단 한 차례도 낙선한 적이 없다. 이를 두고 '주례의 힘'이라는 말까지 나왔다고 한다.
노 전 의원은 '바쁘다'는 핑계로 주변의 부탁을 쉽게 물리치지 않고, 주말까지 개인 시간을 쪼개 결혼식에 참석하는 열정과 진정성으로 유권자들을 사로 잡았다.
◇유명 정치인의 주례
'주례왕' 노 전 의원에게는 못 미치지만, 김종필 전 국무총리는 유명 연예인의 결혼식 주례 선생님으로 유명하다.
김 전 총리는 음악인 길옥윤씨와 가수 패티 김의 세기적인 결혼식에서 주례를 맡았다. 김 전 총리는 "신문 정치면이 아닌, 연예면에 이름을 올려 색다른 기분이었다"고 회고할 정도였다.
1992년 민자당 최고위원 시절에는 72세이던 원로화가 김흥수씨와 42년 연하의 제자와 결혼식에 주례를 섰고, 같은 해 가수 이선희씨의 결혼식에도 참석해 주례사를 전했다.
주례 인심이 박하기로 소문났던 김대중 전 대통령은 대선 전이었던 1997년 4월 영화 서면제의 여주인공 오정혜씨의 결혼식 주례를 맡아 화제가 됐다.
1970년대 초반 자신의 비서였던 방모씨의 결혼식에서 주례를 맡은 이후 줄곧 주례 청탁을 거절해왔던김 전 대통령은 "25년 만에 주례를 하게 되니 새삼 떨리는 마음"이라고 운을 뗀 뒤 5분 남짓의 짧은 주례문을 읽어 내려갔다.
김 전 대통령은 정계은퇴 중이던 1993년 감명깊게 봤던 영화 서편제의 출연진과 함께 한 자리에서 식사를 함께 하게 됐고, 그때 오씨가 인사치례로 "결혼하게 되면 주례를 서 달라"고 부탁했던 것이 계기가 됐다고 한다.
◇이제는 법으로 금지된 정치인 주례
과거 많은 에피소드를 남겼던 정치인 주례를 요새는 좀처럼 찾아 보기 힘들다. 15대 국회 때인 1998년 5월 정치인의 주례에 관한 규정이 엄격하게 변경됐기 때문이다.
그 해 6월에 열리기로 한 지방선거를 앞두고, 유권자들의 표를 의식한 정치인들이 무리하게 주례 약속을 하면서 사회적으로 큰 논란이 됐다.
선거운동에 쫓긴 정치인들이 '주례 약속'에 줄줄이 펑크를 내는 사고가 이어지자, 법정 선거운동 기간에만 금지되던 정치인 주례가 상시 규제조항으로 바뀌었다.
현재는 공직선거법 제113조가 "당해 선거구 안에 있는 자나 기관·단체·시설 또는 당해 선거구 밖에 있더라도 그 선거구민과 연고가 있는 자나 기관·단체·시설에 기부행위(결혼식에서의 주례행위를 포함한다)를 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