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형 대표 “전두환 대통령, 측근부터 내쳐라”

장경우 전 의원이 본 정치 30년 3당 합당이 남긴것 2탄-추장들의 나라 ⑤편

2011-05-03     장경우 전 국회의원

‘이-장 사건’ 전경환, 허삼수·화평, 권정달 옷벗어
이 대표, 이·취임식서 “민정당 병영의 색깔을 지워달라” 읍소


다음날 아침 찾아뵈니 이재형 대표는 일찍부터 나갈 채비를 하고 계셨다.
“장 보좌역 오늘이 이를테면 상소가 아닌가? 내 마음이 꼭그래…!”
그러고는 다시금 말을 이어갔다.

“내가 다시 정계에 나올 때 이종찬 의원이 찾아왔고, 안되니까 노태우씨가 다시 찾아오더구만 결국은 전두환씨도 만났지. 청와대 근처 사저(안가)에서 노태우 보안사령관과 함께 삼자가 자리를 함께 했지. 그때 내가 그 사람들에게 이런말을 했지. ‘좋습니다. 그런데 정계를 떠났던 사람이 다시 정계에 나서는데 단서를 몇 개 달겠습니다’ 그래도 좋겠느냐고 그랬더니 그러라고 하더군.”

처음부터 내가 정치에 입문할 때부터 풀지 못했던 바로 그 수수께끼였다. ‘어째서 꼬장꼬장 하기로 이름을 날렸고 정계를 은퇴했던 분이 군사정권의 대부 노릇을 하시겠다’고 했는지 궁금할 수밖에….
“당내 민주화가 꼭 이루어 져야 한다. 이런 말도 물론 했지. 그런데 내가 가장 힘을 실어 했던 말은 딱 두가지야. 첫 째는 정당은 빨리 군의 냄새를 벗어내야 한다는 것 정당은 결코 군대가 아니니 빨리 민간인화 하라는 것이었지. 그리고 두 번째는 내가 언제든지 대통령에게 나의 충언을 할 수 있도록 보장해 달라 설령 가혹하게 느껴질 정도의 이야기라도 나의 충언은 용납되어야 한다는 것이었어. 그래 이제 내가 단서로 담았던 두 번째를 옮길 때가 된거야.”

“그래도 선생님, 저로서야 걱정이….”
“이 사람아 옛날에 임금에게 상소를 한번 올리려면 죽기를 결심하고 하지 않았는가? 경호실의 동생(전경환)문제, 또 허씨들 문제, 당헌 당규가 무시되는 당내 문제까지, 지금 혼란을 풀자면 당장 친인척을 척결해야 하는데 그런 문제를 늙은 내가 아니면 누가 직언 하겠나? 나는 괜찮아!”

숙연해지지 않을 수 없었다. 역시 ‘경륜이란 이런 것이고 원칙이란 이런 것이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나로선 한편으로 여간 걱정되는게 아니었다. 그런 가운데 드디어 장세동씨가 도착을 했다. 그리고 바로 이 대표는 장세동씨의 차를 타고 사직동 자택을 빠져 나갔다.

그날 전두환 전 대통령과의 극비 대좌로 나눈 이야기를 나는 한참 후에야 들을 수 있었다. 독대한 가운데 이 대표는 ‘가장 가까운 사람부터 치지않으면 민심을 돌릴수 없다’는 뜻을 분명히 전했고 이에 전 전 대통령은 참으로 진솔하게 대했다고 한다.

전 전 대통령은 “젊은 시절 육군사관학교 간 사람중 풍족한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나 또한 장인 장모의 배려가 있었기에 집안일 신경 안쓰고 바깥일에 충실할 수 있었다”며 서글픔의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그리고는 조속히 매듭짓도록 결단을 내릴 것이다.

“말씀하신 내용 비슷한 말들을 여기저기서 많이 받고 있다. 정말 고맙습니다”라는 등의 말을 했다고 한다. 과연 일주일이 못되어 일련의 조치들이 쏟아져 나왔다. 이규광씨(대통령부인 이순자씨의 삼촌)가 구속되었고, 경호실의 전경환씨(전두환 대통령 동생)가 옷을 벗었으며, 수석 비서관하던 허삼수, 허화평씨 등이 청와대를 떠나 하와이로 갔다. 그리고 당에서는 그 막강하던 권정달 사무총장이 경질되고 권익현 사무총장이 새로 임명되는 것으로 ‘이-장’ 사건은 일단락 지어 졌다.

그것이 이 대표의 직언 때문이었는지는 전 전 대통령 본인만이 알 문제다. 그럼에도 이 대표의 이날의 직언은 정치인이 보여 줘야 할 하나의 모범으로 나에게 각인 되었다. 그러나 이 대표의 이날의 직언은 결국 마지막 상소가 되고 말았다.

그런 가운데서도 당내에서 당의 실세들과 이 대표와의 갈등 관계는 고조 되어만 갔고 결국 당 대표직 2년만에 사의를 표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이·취임식날 강당은 주요 당직자는 물론이요 소속 국회의원들과 당원들로 가득 찼다. 뿐만 아니라 이 대표의 사임이 갖는 의미가 컸던 만큼 모든 언론들도 그 자리를 지켜보고 있었다. 아마 당의 실세들은 무척 불안했을 것이다. 과연 저 양반이 또 무슨 얘기를 쏟아 놓을지 말이다. 나 역시 사전에 귀띔 받은 바 없었다. 이 대표는 혼자 준비한 마지막 연설을 시작 했다.

“민정당이 출발 할 때 당은 병영의 색깔로 칠해져 있었습니다. 나는 그 병영의 색깔을 퇴색시키기 위해 지금껏 나름대로 노력을 해왔습니다. 그러나 나의 노력대로 과연 그 색깔이 바래졌는지, 아니면 아직도 병의 색깔로 남아 있는지 나는 지금 판단키 어렵습니다. 단 그 색깔을 지워버리려 노력했다는 것만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나는 이 정당이 당헌 당규와 강령 대로 국리민복을 위해 나아가는 당으로 서길 바랍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내가 채 못 지운 병영의 색깔이 있다면 그것마저 지워지길 바라며 두 번 다시 병영의 색깔로 칠해지는 일이 없기를 바랍니다.”

연설은 짧고 명료했다. 그러면서도 당시 시대 상황과 당내 상황을 모두 아우르는 명연설이 아닐 수 없었다. 어느 한 사람에게 당의 권력이 집중되는 것을 앞장서서 막으려 했고 국회의원의 권위를 찾기 위해 누구보다도 노력했던 운경 이재형 선생, 선생은 결국 그렇게 상처만 입은 채 당을 떠났다.

그러나 나는 지금도 자신할 수 있다. 이재형 선생의 모습은 정치인들에게 하나의 모범으로 남았다는 것, 그리고 정치 초년생이었던 나에겐 실로 엄청난 배움의 기회가 되었다는 것을 말이다.
[다음호에 계속]
[장경우 전 국회의원] kwa815@naver.com

●1942년 4월 12일생
●경기중·고/고려대 경영 졸
●대한축구협회부회장
●대한수영연맹 명예회장
●제 11·13·14대 국회의원
●한국캠핑캐라바닝연맹 총재(현)
●세계캠핑캐라바닝연맹 아·태 지역위원회 의장(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