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병원 매점까지 ‘기웃’

탐욕의 끝은 어디인가?

2012-07-17     강길홍 기자

[일요서울|강길홍 기자] 대기업의 사업 확장이 날이 갈수록 거세지고 있다. 특히 주력사업과 관련 없는 분야까지 무분별하게 침투하면서 논란이 되고 있다. 이 때문에 정치권에서는 서민들의 밥그릇까지 빼앗는 재벌을 규제하기 위해 경제민주화가 시급하다고 외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최근 대기업들이 국공립병원의 ‘매점’ 운영권까지 탐을 내고 있다고 알려지면서 논란이 확산되고 있다. 특히 대기업의 병원 매점 진출로 기존 업체들이 거래처를 빼앗기고, 이로 인해 일자리를 잃는 직원들도 생겨나 문제가 되고 있다. 돈벌이에 대한 대기업의 탐욕은 어디까지인지 의문이 던져진다. 대기업의 병원 매점 진출 논란을 들여다봤다.

서울대 병원 매점 운영권 입찰에 롯데·신세계·CJ 등 군침
운영권 넘어간 매점 가격 인상 이어져…소비자도 피해 입어

서울대병원 본관 1층 출입구 옆에 설치된 천막이 한 달 가까이 이어지고 있다. 이들은 서울대병원의 편의시설 운영권을 가지고 있는 ‘서울대병원 새마을금고’의 노동조합인 서울일반노동조합 새마을금고분회 조합원들이다. 이들은 병원 측의 편의시설 운영권 공개입찰 방침에 반발해 파업을 벌이다가 결국은 길거리로 나오게 됐다.

서울대병원 새마을금고는 직장 새마을금고 형태로 운영되고 있으며, 새마을금고중앙회와 독립적으로 운영된다. 현재 100여 명의 직원이 근무하고 있으며 지난 32년간 서울대병원 내 각종 편의시설 운영과 대출업무 등을 해왔다. 직원들의 출자로 설립된 만큼 주요주주는 모두 병원 직원들이고 이사와 임직원들도 대부분 서울대병원 관계자들이다.

새마을금고분회는 병원 측이 수익성만 내세워 편의시설 운영권을 대기업에 넘기는 것에 반발해 지난달 4일부터 파업을 시작했다. 이들은 대기업이 병원 내 편의시설을 운영하게 되면 새마을금고 노동자들은 일자리를 잃거나 대기업에 고용된 저임금 노동자로 전락할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또한 병원을 이용하는 환자·보호자 등의 소비자들도 가격 상승에 따른 피해를 입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서울대병원 측은 이들의 주장을 무시한 채 지난달 2차례 사업설명회와 함께 공개입찰을 진행했다. 서울대병원의 편의시설 운영에 롯데, 신세계, CJ 등의 대기업이 관심을 보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새마을금고분회는 사업설명회장을 점거하고 물리적으로 대기업의 참여를 막아냈다. 새마을금고분회 관계자는 “1차 설명회 때는 어디인지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10곳 이상에서 참여하려고 했다”고 말했다. 1차 공개입찰이 무산된 후 병원 측은 2차 사업설명회를 마련했지만 새마을금고분회의 격렬한 저항으로 이날도 참여 업체는 나타나지 않았다. 결국 병원 측은 수의계약 방식으로 새마을금고와 운영기간을 2년 연장했다. 이로써 사태가 일단락된 모습이지만 2년 뒤에 이 같은 상황을 반복될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 문제다.

이미 서울대병원 곳곳에는 대기업 계열의 각종 편의시설이 들어선 상황이다. 서울대병원은 1층 출입구 한쪽에 SPC그룹의 ‘카페 파스쿠치’가 입점한 상태고, 어린이병원 지하에는 CJ그룹에서 운영하는 분식점 ‘리틀키친’과 베이커리브랜드 ‘뚜레쥬르’가 들어서 있다. 이들이 입점한 공간은 대부분 서울대병원이 리모델링을 통해 마련한 공간이어서 새마을금고 측과의 직접적인 마찰 없이 대기업이 차지할 수 있었다. 다만 병원 측은 입찰참가자격에 제한을 두는 방법으로 새마을금고의 참여를 막았다. 새마을금고 관계자는 “새롭게 마련된 공간의 운영권을 따내려고도 했지만 입찰참가자격의 자본금 기준이 지나치게 높아 사실상 대기업만 참여할 수 있었다”며 “분식점을 운영하는데 수백억 원의 자본금이 필요한지 의문이다”라고 꼬집었다.

입찰자격 높여 중소업체 참여 제한

서울대병원뿐만이 아니다. 입찰참가자격을 높여 중소유통업체의 참여를 제한하고 대기업에 사업권을 넘기는 방법은 전국적으로 확산되고 있다. 지난달 4일 마감된 충북대병원 매점 공급업체 선정 입찰공고도 서울대병원의 경우와 비슷했다. 충북대병원 공고에 따르면 입찰참가자격은 30억 원 이상의 자본금과 5000억 원 이상의 평균매출을 올리는 유통업체로 한정된다. 이 때문에 보광훼미리마트, GS리테일, 세븐일레븐 등 대기업 계열의 편의점만 입찰에 참여할 수 있었고, 그동안 병원과 거래해온 30여 곳의 지역 자영업자들은 한순간에 거래처를 잃게 됐다.

서울대병원 운영 서울시립보라매병원은 이미 대부분의 편의시설이 대기업에 넘어간 경우다. 보라매병원은 2008년 지하 1층 지상 11층 규모의 신관을 개원하면서 카페, 식당, 편의점 등의 편의시설 운영권을 CJ그룹에 넘겼다. 보라매병원의 1층 출입구에는 커피전문점 투썸플레이스가 들어섰고, 2층에는 뚜레쥬르의 모습이 보인다. 새마을금고에서 운영하던 편의점은 비교적 고객의 발길이 닿지 않는 2층으로 밀려났다.

문제는 CJ에서 운영하는 편의점과 새마을금고에서 운영하는 편의점이 가격 차이 때문에 병원을 찾는 소비자들이 피해를 보고 있다는 사실이다. 새마을금고분회에 따르면 2리터 생수 한병의 경우 CJ 편의점이 새마을금고편의점보다 500원이 비싸고, 음료수 한박스의 경우 최대 8000원까지 차이가 난다. 새마을금고분회 관계자는 “CJ 편의점에서 10만 원어치의 물품을 구매하면 새마을금고 편의점보다 2~3만 원 정도 비싼 셈이다”라고 말했다. 가격 논란이 확산되자 CJ 측은 대부분의 음료수 가격을 새마을금고 수준으로 낮췄다.

새마을금고분회 관계자는 “서울대병원 새마을금고는 직원 조합이기 때문에 편의시설 운영을 통해 발생한 이익은 직원에게 되돌아간다”며 “따라서 새마을금고의 편의시설 운영을 단순히 수익사업으로 바라볼 것이 아니라 직원 복지의 개념으로 봐야한다”고 밝혔다. 이어 “대기업에서 병원 내 편의시설을 운영하게 되면 대기업만 배불리는 결과가 나타나고, 소비자와 병원 직원들은 피해를 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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