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섀도 캐비닛(shadow cabinet)' 나돈다
김종인 총리-이상돈 행자부장관설
사실상 박근혜당이 된 새누리당은 비박(非朴·비박근혜) 대선 주자들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경선룰과 시점을 현행 당헌당규대로 밀어붙이면서 ‘박근혜 대통령’ 만들기에 주력하고 있는 모양새다.
친박 인사들은 벌써부터 논공행상을 위한 세력 다툼에 들어갔고, 일각에서는 ‘박근혜 섀도 캐비닛(shadow cabinet·예비 내각)’이 짜졌다는 이야기까지도 들리고 있는 상황이다. 실제 캠프 내 주도권 싸움이 벌어지고 있고 친박계 의원들은 ‘의원·장관 겸직 불허’ 추진에 극렬히 반발하고 있다.
친박 인사들이 자신의 입신양명만을 위한 행보를 이어가다가는 ‘박근혜 대통령의 꿈’은 청와대 문 앞에서 물거품이 될 수도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캠프 내부 신경전
박 전 위원장의 지지율이 50%에 육박하는 등 ‘박근혜 대세론’이 더욱 견고해지면서 친박 안팎에서 벌써 집권을 전제로 한 자리경쟁이 치열하다.
특히, 권력으로 가는 지름길로 통하는 경선캠프 인선을 놓고 막판까지 치열한 신경전이 펼쳐졌다. 지난 2일 공식적으로 문을 연 박근혜 캠프(국민희망캠프)에는 전현직 의원과 외부인사 등 31명이 참여했다.
당초 실무형캠프를 기치로 원외인사가 주도한다는 방침이었지만, 실세 의원측 반발로 뒤집어졌다는 후문이다.
이후 홍사덕 김종인 최경환 권영세 등 주요인사의 참여여부와 역할을 놓고 신경전이 치열하더니 결과적으론 홍사덕-김종인 공동선대위원장에 최경환 총괄본부장, 홍문종 조직본부장, 유정복 직능본부장, 안종범 정책메시지본부장, 변추석 미디어홍보본부장, 자니윤 재외국민본부장 체제로 결정났다.
실무진들도 참여와 직책을 놓고 치열한 물밑 신경전을 벌였다. 한 캠프인사는 “캠프 참여가 곧 선대위, 인수위, 집권 이후로 이어질 것으로 봤기 때문에 신경전이 치열했던 게 사실”이라고 분위기를 전했다.
또한, 친박 경제정책의 쌍두마차인 김종인 캠프 공동선대위원장과 이한구 새누리당 원내대표가 주도권을 놓고 충돌 양상을 빚고 있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아 보인다.
캠프 사무실이 공개된 당일부터 김 선대위원장과 친박 핵심인 이 원내대표가 경제민주화를 놓고 날선 설전을 벌였다.
김 공동위원장은 “이한구 원내대표는 재벌 이해를 대변한다”고 공격했고 이 원내대표는 “김 전 위원이 말하는 경제민주화 내용이 뭔지 모르겠다. 그럼 재벌을 해체하자는 말인가. 추상적인 경제민주화 얘기만 말고 구체적인 각론을 제시하라”고 반박했다.
이에 김 공동위원장은 “경제민주화를 모르면 정치민주화는 아느냐”고 되받아치기고 했다. 경제민주화를 바라보는 관점이 다른 두 사람의 충돌은 짧게는 대선 경제공약, 길게는 집권 뒤 경제정책 주도권을 의식한 행보로 해석된다. 한발 더 나가 집권 뒤 경제라인을 어느 쪽이 맡을 것인지에 대한 전초전 성격이라는 게 정치권의 시각이다.
경제민주화는 박근혜 전 위원장이 총선 전부터 꾸준히 주장해온 사안이지만, 전당적으로 추진하는 경제민주화의 방향을 두고선 당내 의견이 엇갈린다. 김종인 위원장 등 강경파들은 경제민주화의 핵심으로 ‘재벌 개혁’을 꼽지만, 대다수 시장주의자들인 친박계 의원들은 ‘대기업의 횡포 제재’ 수준으로 이해하고 있는 것이다.
친박, 김종인-이상돈 등 외부세력 경계
내부의 격렬한 반발을 딛고 김종인 전 비대위원을 공동선대위원장으로 영입한데 이어, ‘박근혜 비대위’의 한 축을 이루던 이상돈 전 비대위원이 국민희망캠프 정치발전위원회에 합류키로 했다.
이들의 영입으로 김종인 위원장의 ‘브랜드’나 다름없는 경제민주화 정책은 더욱 속도를 내게 됐고, 이명박 대통령과의 차별화도 탄력이 붙을 것으로 보인다.
벌써부터 이상돈 전 위원은 ‘MB 차별화’의 공격수 역할을 자임하고 있다. 이 전 위원은 지난 4일 TBS라디오에 출연해 “현 정권이 지금까지 해온 많은 것들이 비판의 대상이 되고 있는데, 아무래도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있는 박근혜 전 위원장으로선 (현 정부가) 부담이 될 수 있는 것 아니냐”고 이를 시인했다.
그는 전날에도 이명박 정부의 4대강 사업, KTX·인천공항 민영화, 차기 전투기 사업 등을 줄줄이 비판하며 “새로운 일을 벌이지 말고 하던 일이나 잘 하면서 조용히 정권을 넘겨줄 준비나 하라”고 일갈하기도 했다.
이 전 위원은 김종인 위원장과 함께 당 안팎을 향해 쓴소리를 거침없이 쏟아내는 비대위의 쌍두마차로 꼽혔다. 총선 전부터 당 정강·정책의 ‘보수 용어’ 삭제 등을 놓고 의원들과 거세게 대립했고, 친이계 공천, 대통령 탈당 논란 등의 중심에도 항상 이들이 있었다.
당시 비박(非朴)은 물론 친박계조차 “외부인사가 당을 좌지우지하고 있다”며 두 위원의 사퇴를 주장했지만, 이런 논쟁을 바탕으로 총선 전 새누리당이 ‘보수색 지우기’에 어느 정도 성과를 거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언뜻 보면 단순한 ‘내부 투쟁’이지만, 총선을 앞둔 유권자들에겐 보수당에서 ‘보수’ 용어까지 삭제하는 치열한 쇄신의 과정으로 비춰졌고, 자연스럽게 여론의 관심은 야권에서 여권으로 옮겨 왔다.
김종인 총리설-이상돈 행자부장관설
이같이 파격적 행보를 보이며 총선을 승리로 이끄는데 수훈갑 역할을 해낸 이들의 캠프 참여는 박 전 위 원장을 둘러싼 친박 측근들을 긴장시키고 있다.
김종인 총리설과 이상돈 행자부장관설이 그것이다. 총선에 이어 대선까지 박근혜 전 위원장과 한배를 타기로 결정한데는 모종의 합의가 이뤄진 것이 아니냐는 추측이 나오면서 ‘박근혜 섀도 캐비닛(shadow cabinet)’까지 나돌고 있는 것이다.
국민희망캠프 한 관계자는 지난 4일 [일요서울]과 만난 자리에서 “집권 이후 입각을 희망하는 일부 인사들이 그런 문건과 말들을 흘리고 있다는 이야기는 들었다”면서도 “박 전 위원장이 출마 선언도 하지 않았고 대선 경선전이 시작되지도 않은 시점에서 섀도 캐비닛을 내놓는다는 것이 말이 되냐”고 일축했다.
공식적인 라인을 통해 이뤄진 것이 아닌 일부 친박 인사 혹은 상대측 인사들이 네거티브 공세를 위해 흘리고 있다는 것이다.
이 관계자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캠프에 참여한 외부 인사가 집권 이후 핵심 요직에 발탁될 가능성이 컸던 전 정권을 비춰볼 때 (외부 인사 캠프 영입이)측근들 입장에서 달갑지만은 않은 것이 사실”이라고 덧붙였다.
예비 내각 명단 중 가장 후보군이 많은 곳은 경제 파트 자리다. 박 위원장 씽크탱크로 알려진 국가미래연구원 소속으로 이번 캠프에도 참여한 안종범, 강석훈 의원과 김광두 국가미래연구원장 등이 경제부처 장관과 청와대 경제수석 0순위로 꼽고 있다는 말도 나오고 있다. 2007년 박 전 위원장 경선 캠프에 미래형정부기획위원장으로 참여한 바 있고 이번 캠프에도 합류한 현명관 전 전경련 부회장도 하마평에 오르내린다.
당직을 맡고 있어 캠프에 합류하지 못한 이한구 원내대표와 이혜훈 최고위원 역시 유력한 후보군으로 꼽힌다.
실제 친박 진영 일각에서 ‘섀도 캐비닛’(예비내각)을 발표하는 아이디어도 나오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야권이 9월 민주통합당 후보 선출에 이어 10∼11월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 등과 2차 단일화 이벤트로 관심을 끌 때 박 전 위원장은 국무총리와 주요 내각 수장을 미리 국민에게 선보여 국정 운영의 안정성을 보여주자는 것이다.
의원·장관 겸직 금지에 강력 반발하는 친박
한편, 친박 의원 상당수는 의원·장관 겸직금지 추진에 반발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반대 여론이 80%에 달할 정도다.
‘겸직을 금지하게 되면 국무위원을 하기 위해 국회의원직을 사퇴해야 하는데, 그럼 이에 따른 보궐선거 비용이 만만치 않다’, ‘자칫 대통령의 인재 풀에 제약을 가져올 수 있다’, ‘국회의원과 국무위원 겸직이 정부와 의회 간 소통에 가교 역할을 하는 순기능이 있는데, 왜 금지하느냐’는 등의 이유다.
하지만 당 안팎에선 “의원들이 김칫국부터 마신다”는 비아냥이 터져 나온다. 친박 의원들이 집권 뒤 행여 자신에게 장관의 행운이 돌아올 수 있다는 기대를 품고 겸직금지에 반대한다는 비판인 것이다.
“이러다 昌처럼 된다” 우려
이처럼 내부 권력 다툼이 일어나고 자기 밥그릇을 뺏기지 않으려는 움직임이 일자 ‘박근혜 대세론’과 ‘이회창 대세론’을 비교하는 이들이 늘어가고 있다.
10년 전인 2002년 16대 대선을 앞두고 절정이던 ‘창(昌) 대세론’은 대선을 코앞에 두고 크게 흔들렸다. 이회창 캠프가 마련한 대책 중 하나가 ‘개혁 내각’ 구상이었다.
국민에게 인기 높은 사회 각계의 개혁인사를 불러 모아 ‘이회창 정부의 초대 내각’을 대선 전에 발표할 생각이었다. 이와 함께 이 후보의 측근 실세들이 한꺼번에 정계 은퇴를 선언하자는 아이디어도 나왔다. 하지만 모두 현실화되지 못했다. 이 후보를 둘러싼 중진 의원들이 일제히 반대했기 때문이다. 초대 총리와 장관을 바라는 이들이 너무나 많았다.
이회창 캠프에서 일했다는 새누리당 한 당직자는 “이회창 총재 주변을 감싸고 있던 측근 그룹들이 감투를 벗어내야 하니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었다”며 “희생과 감동을 만들지 못한 창 대세론은 그렇게 무너져 내렸다”고 그 당시를 회고했다.
‘대쪽’이란 별명이 있던 이회창 총재도 결국 측근들의 반발을 넘어서지 못했던 것이다. 반면 김대중 캠프에선 동교동계란 측근들이 대선 직전 “우리는 모두 DJ가 대통령이 되도 공직을 맡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나중에 다 지켜지진 않았지만 정치권에 신선한 충격을 줬던 것은 사실이었다.
섀도 캐비닛이란 섀도 캐비닛은 집권 후 새 정권을 맡을 주요 각료의 면면을 미리 선보이는 ‘예비내각’으로 내각제하에서 야당이 주로 활용하는 선거전략이다. 그러나 미국의 경우 대통령후보가 당선되면 새 정부에서 함께 일할 사람으로 통용되고 있다. 섀도 캐비닛은 영향력 있는 인사의 영입이 어렵고 선거전열이 흐트러지는 등의 부작용이 많은 단점이 있다. 지난 14대 대선에서 이해찬 당시 국민회의 당무위부의장이 후보단일화에 머뭇거리던 자민련측에 공동집권에 대한 믿음을 심어주기 위해 꺼내든 카드이기도 하다. 이번 대선을 앞두고는 실체가 확인되지는 않았지만 민주통합당에서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의 정치 참여에 대비해 섀도 캐비닛을 준비하고 있다는 소문이 돌고 있다. 정동영 민주통합당 상임고문 역시 “모든 대선후보들이 경쟁자들을 예비내각에 포함시켜 ‘집단적 리더십’으로 박근혜 대세론을 이겨야 한다”면서 “대선주자들로 구성된 예비내각(새도우 캐비넷·shadow cabinet)”을 그 대안으로 제안하기도 했다. |
<조기성 기자> kscho@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