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특집 잠룡과 여성 정치인들

“큰 일하는 그의 뒤엔 그녀가 있다”

2011-04-12     홍준철 기자

정치는 더 이상 남성의 전유물이 아니다. 여성 정치인들이 대거 국회에 입성하면서 남성 정치인 못지않게 활약중이다. 뛰어난 언변과 외모 그리고 해박한 전문 지식을 갖춘 여성이 늘고 있는 사회 현실과 무관치 않다. 국회 회기때마다 치고 싸우는 한국 정치에 대한 냉소주의 만연에 딱딱하고 재미없다는 부정적 이미지를 불식시키는 데 여성 정치인들이 앞장서고 있다. 무엇보다 ‘대망론’을 노리는 여야 거물급 인사들 주변엔 늘 여성 정치인이 지근거리에서 활약하고 있다. ‘큰 꿈’을 꾸는 잠룡들로서 ‘여성적인 부드러운 리더십’이 요구되기 때문이다. 아울러 총선이나 대선에서 여성 유권자의 파워가 무시못할 정도로 막강하다는 점도 한몫하고 있다. 잠룡군으로 분류되는 남성 정치 거물 옆에 어느 여성 정치인이 정치적 ‘보완재’로 활약하고 있는 지 알아봤다.

‘왕의 남자’로 불리는 이재오 특임장관과 진수희 보건복지부 장관의 관계가 가장 눈에 띈다. 이 장관의 ‘개인적인 공보’ 역할을 해온 당사자가 바로 진 장관이다. 한나라당내 국회의원들조차 이명박 정권의 ‘넘버 2’이자 차기 당권·대권 도전설이 나오는 이 장관의 최측근 인사라는 점에서 무시하지 못하고 있다. 두 인사의 인연은 2006년 이 장관이 원내대표로 있을 당시 원내공보부대표로 있으면서 시작됐다. 이 장관이 주도해 만든 모임인 친이계 국가발전전략연구회에서 함께 활동하면서 인연을 이어갔다. 분수령은 2007년 대선 때다. 이 장관이 이명박 후보 캠프에서 좌장 역할을 하면서 진 장관 역시 당내외 입지가 확고해졌다.


뛰어난 언변, 스마트한 여성 정치인 ‘선호’

3선급 이상 공천 대학살에 친이 친박간 공천 싸움이 한창이던 18대 총선에서 비례대표 의원이던 진 장관이 잡음 없이 서울 지역구 의원으로 공천을 받은 것 역시 이 장관의 입김이 작용했다. 진 장관 역시 ‘공천 후폭풍’으로 18대 총선에서 낙방해 미국으로 떠난 이 장관을 대신해 현안이 생길 때마다 수시로 미국을 방문, 이 장관의 대변인 역할을 자청했다.

여의도연구소장으로 있을 때에도 전략기획안이나 주요 보고서를 별도로 이 장관에게 보고했다는 것은 공공연한 사실이었다. 또한 이 장관의 지역구였던 은평구 민원까지 이 장관을 대신해 해결할 정도였다. 때문에 이 장관이 작년 재보선으로 국회에 복귀하면서 진 의원이 장관으로 임명되는 데 보이지 않는 힘을 발휘했다는 후문이다.

최근 4·27재보선으로 주목받는 강재섭 전 대표와 나경원 최고위원의 관계도 주목받고 있다. 분당을 후보로 정운찬 동반성장위원장이냐 강재섭 전 대표냐를 두고 저울질이 한창일 당시 나 최고위원은 당 지도부 회의에서 강 전 대표를 강력히 천거함으로써 공천을 받는 데 일조했다. 오죽하면 홍준표 최고위원이 ‘친강재섭계’로 낙인을 찍는 발언까지 공식적으로 할 정도였다.

서울대 법대 선후배 사이인 두 인사의 본격적인 연은 강재섭 원내 대표 시절 원내부대표, 대표시절에는 당 대변인으로 활동하면서 빼어난 미모와 신인 정치인으로 두각을 보이면서다. 또한 강 전 대표가 국회의원으로 있을 당시 ‘국민생각’ 모임을 함께 했고 이후에는 ‘동행’이라는 강재섭계 연구모임에 참여하면서 강 전 대표와 친분을 이어가고 있다.

차기 대권 도전이 유력한 정몽준 전 대표와 전여옥 의원의 관계도 주목된다. 2002년 국민생각21 후보로 대선에 나갈 당시 친박에서 친정몽준계로 말을 갈아타면서 정 전 대표와 연을 맺었다. 2008년 총선에선 정 전 대표가 동작을에 출마하자 자신의 지역구인 영등포갑을 뒤로하고 도와줬고 정 전 대표 역시 마찬가지였다. 2009년도 전 의원은 정몽준 의원이 한나라당 대표 시절 그의 지지를 등에 업고 권영세 정보위원장에 맞서 서울시당 위원장 경선에 나갔지만 고배를 마시기도 했다. 전 의원은 현재 정 전 대표의 싱크탱크격인 ‘해밀을 찾는 소망’ 자문그룹에 참석하면서 ‘정몽준 대망론’에 일조하고 있다.

대권에 도전하는 손학규 당 대표와 전현희 대변인도 각별하다. 손 대표가 통합민주당 당 대표로 있던 2008년 18대 총선에서 전 대변인은 비례대표로 국회에 입성했다. 손 대표의 ‘몫’으로 비례대표로 들어왔다는 게 정설이다. 이후 전 대변인은 작년 8월 원외 인사이자 여성인 차영 대변인과 함께 당 공동 대변인으로 임명됐다. 전 대변인은 치과의사와 변호사 자격증을 동시에 갖고 있을 정도로 당내외에서 실력을 인정받고 있다. 손 대표가 분당을 차출론에 휩싸일 당시엔 전 대변인은 손 대표를 대신해 출마 의사를 피력하기도 했다.

지난 대선에서 패배한 정동영 의원과 박영선 의원도 남들 못지않은 깊은 인연을 갖고 있다. 두 사람은 MBC 앵커 출신 인사로 정 최고는 본인이 열린우리당 의장으로 있던 2004년 박 의원을 비례대표 공천을 통해 영입했다. 박 의원은 MBC 경제부장, 앵커, LA 특파원으로 정 최고와 비슷한 길을 걸었고 이후 당 의장 시절 대변인과 비서실장을 거쳐 2007년 대선 때에는 정동영 대선후보 비서실장을 지냈다.

박 의원은 대선이 본격화되자 정동영 캠프의 ‘BBK 저격수’로 나섰다. 당시 국회 정무위에서 ‘방어’에 나선 인사가 친이재오계였던 진수희 장관이여서 비견되기도 했다. 박 의원은 자신의 보좌진이 교체될 때마다 정 최고에게 소개할 정도로 평소 가족처럼 지내고 있다.


박지원-박선숙 가장 오래 ‘정치적 인연’

박지원 원내대표와 박선숙 의원의 정치적 인연은 국민의 정부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박 원내대표는 1995년 새정치국민회의 대변인 시절 박 의원을 부대변인으로 임명하면서 인연을 맺기 시작했다. 1997년 김대중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되면서 대변인 역할을 한 박 원내대표와 함께 승승장구를 하게 된다. 특히 박 원내대표가 청와대 공보수석비서관이 됐을 때 박 의원은 공보수석실 일반 공보비서관을 거쳐 공보기획비서관에, 급기야 DJ임기말에는 박 원내대표가 있던 공보수석비서관에 오르게 됐다.

박 원내대표가 18대 국회의원으로 입성하면서 다시 국회에서 만난 것이다. 박 원내대표의 ‘정보’ 능력으로 지난 국정감사 당시에는 박영선 의원과 함께 국정감사 스타로 부상했다. 특히 박 원내대표가 당권 도전에 나설 경우 당선이 유력해 박 의원의 역할은 더욱 커질 것이라는 게 일반적인 관측이다.


오세훈 시장, ‘조윤선’→‘조은희’ 여성 ‘대세’

이밖에도 오세훈 서울시장의 경우 광역단체장 최초로 여성인 조은희 정무부시장을 발탁해 눈길을 모았다. 당초 지난 지방선거 때 대변인 역할을 한 조윤선 의원을 영입할려고 했다가 본인의 고사로 무산되면서 조 부시장이 임명됐다. 조 부시장은 야당 및 시민단체를 오가며 ‘소통의 전도사’로 활약중이다. 또한 당권 도전이 유력시되는 김무성 원내대표와 정옥임 원내 대변인 관계 역시 막역하다. 김 원내대표실에서는 국제학 박사출신에 방송진행자 경험으로서 뛰어난 언변과 똑똑함을 높게 평가하고 있다.

또한 자유선진당 이회창 대표와 박선영 정책위의장의 관계도 주목받고 있다. 박 정책위의장은 MBC 기자 출신으로 2008년 이 대표가 영입해 국회의원이 되면서 이 대표와 연을 맺었다. 특히 2008년 4월부터 2011년 3월까지 무려 4년 가까이 이 대표의 ‘입’ 역할을 할 정도로 전폭적인 신뢰를 받았다. 여성 대변인으로서 최장수 기록을 갖게 된 비결이다. 대변인 이후에도 여성 정책위의장을 맡아 이 대표의 ‘정책 브레인’으로 재차 최측근 인사라는 점을 각인시켰다.

한편 유력 남성 정치인들이 여성 정치인을 곁에 두는 것에 대해 정치전문가들은 ‘여성 정치인의 부드러운 이미지’ 차용을 꼽았다. 정치 속성상 여야로 나뉘어 다툼을 벌일 수밖에 없는데 여성 정치인이 그 자리를 대신함으로써 폭력 정치인, 막장 정치인이라는 이미지를 누그러뜨릴 수 있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또한 여성 유권자들의 호감을 얻는 데에도 똑똑하고 스마트한 여성 정치인이 도움이 돼 대권, 당권을 노리는 거물급 인사들이 선호한다고 분석했다.

[홍준철 기자] mariocap@dailypo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