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의 남자’에서 ‘정권 말 측근 비리 당사자’ 전락
‘MB정권의 뇌관’ 최시중
[일요서울|최은서 기자] MB 정권 탄생 주역으로 나는 새도 떨어뜨렸다던 최시중 전 방송통신위원장 마저 ‘정권말 측근 비리’의 당사자로 전락했다. 2008년 현 정권 출범과 함께 약 4년간 방통위 수장을 맡아 언론장악·종합편성채널 특혜 등을 논란을 빚어왔던 ‘방통대군’ 최 전 위원장이 지난달 18일 서울 서초구 양재동 복합물류센터 파이시티 인허가 청탁과 관련해 8억 원의 뇌물을 받은 혐의로 구속기소된 것. 서울구치소에 수감 중인 최 전 위원장은 지난달 23일 구속집행정지 신청을 해놓고 법원 허가도 없이 구치소 직권으로 풀려난 후 심장수술을 받은 것으로 드러나 또다시 논란의 중심에 섰다. 최 전 위원장이 구치소에서 나와 입원한 사실을 판사나 검사 모두 까맣게 몰랐기 때문이다. 이를 두고 ‘MB멘토’로 불릴 정도로 권력실세였던 최 전 위원장이 구치소에 들어가서도 권력을 누린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권력형 게이트’가 ‘개인비리’로 축소” 비판
MB 최측근이자 MB 언론 정책 시행하는 중추
최 전 위원장은 MB 정권에서 큰 영향력을 행사해왔지만 자신의 최측근이자 ‘양아들’로 불리던 정용욱 전 방통위 정책보좌역이 수억대 뇌물수수혐의로 검찰수사 선상에 오르자 곤욕을 치룬 끝에 지난 1월 방통위원장 자리에서 내려왔다. 그리고 불과 3개월 뒤 파이시티 인허가 청탁 관련 금품수수 의혹이 터지면서 최 전 위원장은 구속기소됐다.
검찰은 파이시티 사건수사로 최 전 위원장, 박영준 전 차관의 금품수수사실을 밝혀내 두 핵심 실세의 몰락을 가져왔다. 하지만 이번 검찰수사가 사실상 최 전 위원장과 박 전 차관을 구속기소하는 선에서 마무리돼 ‘권력형 게이트’가 ‘개인비리’로 축소됐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이런 가운데 최 전 위원장이 법원이 구속집행정지 결정을 내리기 전에 구치소를 떠나 병원에서 수술을 받아 비난여론이 번지고 있다.
법원은 지난달 22일 최 전 위원장에게 법정 출석통보를 했다가 최씨가 입원한 사실을 뒤늦게 알고 23일 전문심리위원만 불러 최씨의 구속정지 여부를 심의했다. 재판부는 “황당하다”며 “구속집행 정지 결정이 나오기 전에 병원에 가는 것은 이례적”이라고 했다. 검사조차도 “송구스럽다”며 당황해했다. 또 최 전 위원장이 입원해 있는 VIP병동은 다양한 편의시설을 갖추고 있고 하루 병실비만 50~70만 원에 달해 눈총을 받고 있다.
이를 두고 최 전 위원장이 일반수용자였다면 외부진료시설에서 진료·치료 조치 결정이 쉽게 이뤄질 수 있었는지 의문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법원에서 적법절차를 받지 않고 외부병원에서 수술을 받은 것은 법 형평성을 잃은 것으로 사실상 ‘특혜’로 볼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는 것. 이재화 변호사는 트위터에 “교도소장이 단독으로 결정하였는지 의문이다. 구속집행정지결정을 기정사실화하기 위해 보이지 않는 손이 작용한 것으로 심하게 의심된다”고 의혹을 제기했다.
이 대통령의 그림자
그동안 최 전 위원장은 이명박 대통령의 그림자로 불릴 정도로 현 정부의 실세로 통했다. 그는 이상득 의원과 50년 지기이자 대학동기로 MB정권 창출의 핵심을 담당한 ‘6인회(이상득·박희태·이재오·김덕룡·최시중)’중 가운데 한 사람이다. 이 대통령과는 동향 출신으로 이른바 ‘영포라인’으로 불리는 포항인맥의 핵심이기도 하다.
최 전 위원장과 이 대통령의 관계는 이 의원을 통해 맺어졌다. 1970년대 중반, 이 의원이 “잘 나가는 동생이 있다”며 당시 현대건설 이사였던 이 대통령을 소개했던 것. 두 사람은 동향출신, 가난한 가정환경에서의 성장, 자수성가 등의 빼닮은 공통점으로 친밀해졌다. 이에 대해 최 전 위원장은 “이 대통령 형제와는 감각적으로 공유하는 것이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처음에는 이 의원을 자문했던 최 전 위원장은 이 대통령의 주요 정치적 갈림길마다 함께하며 ‘이명박 대통령 만들기’ 기획자로서의 역할을 톡톡히 했다.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과 결별하고 정치권에 입문한 것과 이 대통령이 서울시장을 거쳐 대권에 도전하게 된 것도 최 전 위원장의 조언이 크게 작용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최 전 위원장은 이 대통령이 정계 입문 때부터 대선 후보가 될 때까지 줄곧 이 대통령의 곁을 지켰다.
최 전 위원장은 2007년 대선정국에서 이명박 캠프에 참여해 이명박 대선준비 작업에 착수했다. 당시 한나라당 경선 직전인 2007년 5월까지 여론조사기관인 한국갤럽조사연구소 회장으로 있었다. 그는 경선 캠프에서 ‘고문’으로 지내며 여론조사 관련 대책회의를 주재했으며 대선캠프에서는 핵심 6인회 멤버 중 한명으로서 선거를 진두지휘했다. 그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내가 살아있는 동안 제대로 된 대통령을 만들어보고 싶었다”면서 “내가 정치를 안한 한풀이를 하고 싶었다”며 이 대통령을 택한 이유를 밝히기도 했다.
"방송독립 아닌 방송장악"
그는 현 정부의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에도 참여했으며 2008년 3월 초대 방통위원장에 임명됐다. 당시 이 대통령의 최측근으로 ‘코드 인사’라는 지적이 일자 그는 “언론을 장악할 수 있는 시대는 이미 지나갔다”며 “부당한 압력이 오면 대통령과 담판을 짓더라도 방송 독립을 지켜나가겠다”고 답했다.
하지만 이후 그는 MB정부의 언론 정책을 시행하는 중추로서의 역할을 담당하며 야당 등의 반대에도 종합편성 채널 허가를 내주는 등 일명 ‘방통대군’으로 불렸다.
그는 미디업법 처리, 종합편성채널 출범, 미디어렙(방송광고판매대행사) 논란 등 방송관련 법 개정을 강행했다. 그는 ‘신문-방송 겸영’을 과제로 강조하며 신문사의 방송 사업 겸영을 허가하는 미디어법 제정에도 앞줄에 섰다. 특히 그는 종편 광고를 몰아주기 위해 대기업을 압박하고 종편에 이른바 ‘황금채널’을 부여하기 위해 힘썼다는 비난에 직면했다.
또 KBS, MBC, YTN 등 사장과 임원을 현정권 사람들로 교체해 공영방송 성격을 크게 약화시켜 정권에 의한 언론장악 현상이 뚜렷해졌다. 이 같은 현상은 결국 주요방송사와 연합뉴스 등이 낙하산 사장 퇴진과 공정언론을 기치로 내걸고 장기간 연대파업을 벌이는 결과를 낳게 했다.
특히 최 전 위원장은 정연주 전 사장 해임을 통한 KBS 장악에 나섰다. 그는 2008년 정 전 사장 해임 당시 KBS 이사회를 통해 해임 과정에 깊숙이 개입했다. 최 위원장은 김금수 당시 KBS 이사장을 만나 정 전 사장의 조기 사퇴 문제를 거론한 것으로 알려져 논란이 일었다. 김 전 이사장이 사의를 표명한 뒤 유재천 한림대 언론정보학부 교수를 이사장직에 내정했고 이후 정 전 사장 사퇴 작업은 가속도가 붙어 결국 KBS 이사 중 6명이 현 정부 측 인사들로 채워졌다. 이후 감사원이 정 전 사장에 대한 해임을 의결하고 KBS 이사회는 정 전 사장의 해임을 가결시키는 등 정 전 사장 해임안은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MBC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MBC의 대주주인 방문진 이사의 여야 비율을 6:3으로 조정했고 비판적 성격의 시사프로그램 등에 직접 개입, 제작진 교체 등을 통해 대폭 약화시켰다. 방문진은 MBC의 최대주주로 지분률이 70%에 달한다. 김우룡 전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장이 김재철 MBC 사장 선임 과정과 관련해 “김재철 MBC 사장 선임은 청와대 입장에 맞춘 낙하산 인사였다”고 밝혀 파문이 일었다.
전국언론노동조합 조합원들은 “이명박 정권의 수족으로 투하된 낙하산 사장들이 공영방송과 언론을 침묵하게 만들었다”며 “MBC 김재철, KBS 김인규, YTN 배석규 사장이 최시중(전 방송통신위원장)을 접점으로 청와대와 연결되어있다는 국민적 확신이 이미 광범위하다”고 주장하고 있고 유례없는 언론노조의 연쇄파업이 넉달째 이어져 오고 있다.
현 정부 인사들을 사장으로 내려 보내 언론을 장악하려 한다는 비난에 직면하고서도 MB 정부는 “노사 갈등에 정부가 개입할 여지가 없다”며 뒷짐만 지고 있다.
이처럼 그동안 “물이 넘치면 (이 대통령의) 제방이 되고 바람이 불면 (이 대통령의)병풍이 되겠다”고 공언해 온 최 위원장이 MB정권의 최정점에 선 채 대형 비리 사건에 연루되면서 이 대통령의 아킬레스건이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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