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중취재 - 故 최고은과 장자연의 소리없는 아우성

“무명의 예술인,죽음의 사각지대에 있다”

2011-03-08     홍준철 기자
한국예술문화단체총연합회(이하 한예총, 회장 이성림)측에 따르면 대한민국에서 활동하는 예술인은 대략 40만 명이다. 유명 예술인이나 무명예술인을 다 합한 숫자다. 하지만 예술인들의 다수는 무명이다. 특히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뚜렷한 사회다. 그렇다보니 소위 잘 나가는 예술인들의 경우 웬만한 중견기업체 이상의 메머드급이다. 반면 고 최고은 작가처럼 하루하루 연명하다시피 생활하는 무명 예술인도 태반이다. 예술인의 한 관계자는 “3% 때문에 97%가 희생하는 곳이 예술인 사회”라고 혹평을 마다하지 않는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정치권에서 발벗고 나섰다. 여야가 3월 임시국회에서 ‘예술인복지법안’을 만장일치로 통과하기로 합의를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전히 갈 길은 멀다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무명 예술인들의 삶을 재조명했다.

예술인이라고 하면 통상 ‘예술활동, 곧 예술 작품을 창작하거나 표현하는 것을 직업으로 하여 국가를 정치적·경제적·사회적·문화적으로 풍요롭게 만드는 데 공헌하는 자’를 일컫는다. 상당히 광의의 개념이다. 크게 보면 방송, 영화, 음악, 연극, 문인, 미술, 음악, 무용, 사진, 건축 등으로 분류될 수 있다. 당장 방송/영화만 세분해 봐도 탤런트, 희극인, 성우, 작가, 스텝(조감독, 연출, 미술, 효과, 분장, 기술 등), 무술 등으로 나뉘어져 있다. 이중 방송사에 소속돼 4대 보험을 내는 정식 직원은 PD, 카메라맨, 기자 뿐이다. 다수는 4대 보험의 혜택을 받지 못하는 계약직이나 파견업체 직원, 프리랜서가 주를 이루고 있다.

실제로 무명 내지 중견 예술인들에 대한 열악한 처우나 인권침해 상황은 심각한 것으로 나타났다. 2010년 7월 탤런트, 성우, 희극인, 무술연기자 등 1만3천여 명이 가입돼 있는 한국방송예술인노동조합(위원장 한영수)이 제출한 탄원서를 보면 연간 3000만원이하 방송소득자는 예술인이 4.4%, 2000만원 미만 9.8%, 1000만원 미만이 29.6%, 비정기적으로 수입이 발생해 무소득자는 무려 42.4%를 차지했다.

지난 2월 11일 민주당 전병헌 의원이 발의한 ‘예술인복지법안’에서도 이를 반증하고 있다. 2009년도 문화예술인 실태조사에 의하면, 문화예술인들의 창작활동 관련 월평균 수입액은 없는 경우가 37.4%, 100만 원이하는 25.4%, 200만 원이하는 13.8%였으며, 201만 원이상은 불과 20.2%에 불과할 정도로 매우 열악한 상황이다.

아울러 2010년 6월 30일 기준으로 출연료 미지급 실태를 보면 SBS의 경우 ‘온에어’, ‘녹색마차’, ‘태양을 삼켜라’, ‘별을 따다줘’ 6억1000만 원, KBS ‘그들이 사는 세상’, ‘공주가 돌아왔다’, ‘국가가 부른다’ 10억6000만 원, MBC ‘대한민국 변호사’, ‘돌아온 일지매’, ‘2009 외인구단’, ‘히어로’, ‘인연 만들기’, ‘파스타’ 등 23억3000만 원이 미지급 돼 무려 40억 원 가량의 출연료가 지급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겉은 ‘예술창작’ 속은 ‘반백수’ 무명의 설움

이와 관련 한예조 관계자는 본지와 통화에서 “우리가 미지급 출연료 현황을 폭로한 이후 KBS, SBS, MBC와 ‘출연거부’라는 초강수를 둬 협상 끝에 미지급액을 어느 정도 받아냈다”며 “그러나 아직도 완전히 다 받지는 못하고 있다”고 실토했다. 출연료 미지급 상황은 최근까지 계속되고 있다. KBS ‘프레지던트’, ‘도망자’ MBC, ‘파스타’, ‘역전의 여왕’ 연장분 등 배우들이 출연료가 일부 체납돼 논란이 일었다. 이런 원인은 방송사가 직접 제작을 하지 않고 외주업체에 떠넘기는 ‘나 몰라라’식 풍토, 저가 덤핑 발주, 방영권만 구입해 방송하는 등 방송사들의 편법이 횡횡하는 현실 때문이다. 또 외주제작사들이 빚더미에 오르는 한 원인이기도 하다. 또한 해당 배우 및 스텝들을 대표할 단체 부재도 한몫하고 있다. 방송사와 출연 배우, 스텝간 ‘직불 체제’가 마련돼 있지 않기 때문이다.

특히 일부 유명 배우들을 제외하고 다수의 중견 배우, 단역 배우, 엑스트라, 계약직 스텝 등 무명 인사들의 차별이 커 상대적 박탈감이 높은 것으로 알려졌다. 설상가상으로 무명 예술인들의 인권 침해상황은 더 심각한 형편이다. 2010년 국가인권위원회 조사에 따르면 언어적 물리적 폭력 경험은 연기자 63.6%, 구타 폭행도 4.6%나 됐다. 외모관리에 있어서는 연기자의 경우 ‘다이어트 권유’ 54%, ‘성형수술 권유’ 55.6%지만 연기지망생의 경우 각각 72.3%, 58.7%로 더 높게 나타났다. 특히 작품에서 ‘원치 않는 노출 요구’ 연기자 48.1%가 경험한 것으로 드러났다.


성접대 거부후 불이익, ‘48.4%’ 경험

무엇보다 언어적 성희롱의 경우 연기자 60%이상이 ‘성적 농담’, ‘외모에 대한 평가’, ‘특정 부위 쳐다보는 행위’를 겪었다. 나아가 ‘원치 않는 술시중 요구’ 45.3%, ‘음주 강요’ 41.1%, 성추행으로 ‘몸의 일부를 만지는 행위’ 31.5%, ‘따로 둘이 만나자는 요구’ 51.4%, ‘성관계 요구’ 21.5%, ‘성폭행 및 강간 경험’도 6.5%나 있었다. 이는 유력인사와의 만남, 술자리 접대, 잠자리 접대, 여행 동행 제의 중 하나라도 받아본 경험이 있는 응답자의 백분율로 실상은 더 심각할 것이라는 게 종사자들의 판단이다.

특히 ‘성접대 거부 후 캐스팅 불이익 경험’을 묻는 질문에 ‘있다’가 연기자 48.4%, 연예인 지망생 14.3%로 그리고 ‘없다’에는 연기자 51.6%, 연예인 지망생 85.7%가 응답했다. 성 접대 요구를 받았다 거부한 연기자중 과반수가 캐스팅에 불이익을 염려해 원치 않는 ‘잠자리를 강요’ 받고 있는 셈이다.

결국 작년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든 고 장자연 자살 사건이나 최근 유명을 달리한 고 최고은 작가의 죽음이 계속되고 있는 현실이다. 사실 무명 인사들의 죽음은 그동안 꾸준히 있어왔다. 2010년 11월 탤런트 박혜상(29)의 자살, 레이싱모델 여성 3인조 그룹 SSEN 멤버 이혜린, 2009년 신인 탤런트 우승연, 트로트 가수 이창용, 영화배우 김석균, 2008년 트렌스젠터 연예인 장채원, 김지후, 남성그룹 엠스트리트의 리더 이서현 등 대표적인 무명 예술인들이 자살했다. 다수가 극과 극의 연예인 생활에 대한 설움, 생활고에 우울증까지 겹쳐 죽음에 이르렀다.

연이은 무명 예술인들의 죽음이 잇따르자 그동안 정치권에 묵혀 있던 예술인에 대한 복지 문제 해결을 위한 움직임이 가시화되고 있다. 민주당 전병헌 의원이 지난 달 18일 대표 발의한 법안을 보면 ▲ 예술인의 복지증진을 위한 예술인 공제회 법인설립 ▲ 국민건강보험법 적용 ▲ 고용 보험 및 산재 보험 가입 등을 골자로 하고 있다. 이미 여야 지도부는 ‘최고은법’으로 지칭하며 3월 임시국회 때 처리하기로 합의를 본 상황이다.


고 최고은 작가 예술계 ‘전태일 열사’로 승화 ‘계기’

그러나 노조 설립 문제에 대해서 언급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관련 종사자들은 아쉬움을 토로하고 있다. 한예조나 민주노총 산하 전국영화산업노조가 있지만 무명 예술인에 대한 적극적인 처우 개선엔 미흡하다는 시각이다. 40만명에 육박하는 예술인을 대변할 단체가 마땅치 않다는 점이다. 또한 방송사별, 분야별, 직종별 각종 협회로 나뉘어져 있는데다 일부 예술인들은 ‘자유업’으로 규정돼 단체 협약권 등 노동 3권을 법적으로 온전하게 보장받지 못하는 경우가 태반이다.

한예조측에선 외주 제작 드라마 전면 중단을 우선적으로 요구하고 있다. 2009년 한예조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SBS의 경우 드라마 전체가 외주 제작이고 KBS와 MBC도 70% 이상 외주로 제작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각종 협회로 분산된 예술인 협회가 단일화된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창구를 만들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한국시나리오작가 협회 문성룡 상임이사는 “최 작가가 세상을 달리했다고 언론매체에서는 난리지만 제2, 제3의 최고은 작가는 과거에도 있었고 미래에도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며 “과거 노동자 전태일씨의 분신 자살로 노동자들의 처우가 개선됐던 것처럼 예술계의 처우 개선의 계기 됐으면 좋겠다”고 기대했다.

[홍준철 기자] mariocap@dailypo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