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당 합당편 ⑤ - 황금 분할이 남긴 것 2탄

“전두환 5공 청문회 출석 막후 공개”

2011-03-08     장경우 전 국회의원 
요즘 우리 국민들이 자랑스럽다고 말한다. 대한민국에 태어난 것, 국적이 대한민국인 것이 모두 자랑스럽다. 그러나 10여 년 전만 해도 달랐다. 흔히들 불행하다고도 하고 불행했던 시절을 회고하기도 한다. 전직 대통령들이 하나같이 비명에 가거나 구속되거나 퇴임후에도 구설수 속에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이 생기질 않나 불행한 일들의 연속이 많았기 때문이다.

군사정권에 시달리고 부도덕한 정권에 소스라쳤던 우리 국민들은 최초의 문민정부 탄생과 개혁의 칼날을 휘두르던 김영삼 정부의 출범에 커다란 기대와 박수를 보냈다. 그러나 이러한 국민적 기대와는 달리 무소불위의 힘으로 정치권에 큰 영향을 끼쳤던 아들 ‘현철이 사건’이 터져 기대는 곧 실망감이 됐다. 경제적 파탄속의 경제난과 책임소재 그 책임의 양상이 어떠했던 간에 퇴임 후의 초라한 전직 대통령을 지켜보아야 하는 우리의 불행은 한동안 이어지고 있으니 아직도 우리의 역사적 불행은 끝나지 않은 모양이다.

그러나 이러한 과정을 바라보면서 모든 정치인들이 한결같이 뼈저리게 느끼는 사실은 바로 ‘권력의 무상함’일 것이다. 나 역시 마찬가지다. 도대체 권력이란 얼마나 무상하고 허무한 것이란 말인가. 특히 백담사 청문회를 성사시키는 과정에서 내가 경험했던 씁쓸함과 참담함은 말로 형언하기가 어려운 것이었다.

당시 이한동 총무와 나는 백담사측에서 제안한 장소로 나갔다. 그곳에는 이양우씨(전 국회의원겸, 백담사측 변호인) 안현태씨(전 경호실장), 허문도씨 등이 나와 있었다.

“아니, 청문회라니 그게 지금 말이 됩니까? 그건 절대 안됩니다.”

첫마디부터 예사롭지가 않았다. 아예 가능성 자체를 잘라 버리는 단호함이었다. 워낙 강경하게 나오자, 막상 이한동 총무도 말문이 막혀 버리는 듯 했다.

“우리도 어떻게든지 전통(전두환 대통령의 약칭)의 청문회 출석만은 막아보려 최선을 다했지만, 정말 어쩔수가 없었습니다.”

“아무튼 절대 안됩니다. 죽어도 그건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정말 바늘 하나 비집고 들어갈 만한 틈도 없었다.

결국 첫 만남은 그렇게 끝이났다.

그러나 당에서나, 청와대에서는 자꾸만 “다시 한 번, 계속”을 요구해 왔다. 참 진퇴양난이었다. 이한동 총무는 다시 몇 차례 백담사측을 만났다. 그러나 몇 일 후 이한동 총무의 지시로 나는 다시 이양우 변호사의 사무실을 찾았다. 그곳에는 안현태 전 경호실장도 있었다. 그리고 앉자마자 터져 나오는 소리.

“우리 의견은 충분히 전했지 않소! 그 말이라면 그만 둡시다.”

“정말 이대로 가다가는 더 큰일이 날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보다 더 큰일이 뭐가 난다 말이오? 아무튼 안됩니다.”

말문이 막혀 버렸다. 그러나 그대로 물러 날 수는 없었다.

“아니 그럼 생각해봅시다. 언제까지 백담사에만 계실겁니까? 그럴 수는 없잖아요. 어떤 식으로든지 이걸 정리해야만이 백담사에서 나올 수 있을 것이고, 그 정리가 바로 청문회인데….사실 전향적으로 생각해 보면 오히려 기회가 될 수 있는 것 아닙니까?”

순간 백담사측은 동요되는 듯 했다. 나는 마지막으로 못을 한 번 더 박았다.

“지금 나오지 않으면 영원히 못 나올 수도 있습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드디어 백담사측이 입을 열었다.

“좋소. 그럼 조건이 있소.”

“조건요? 좋아요 그 조건이 무엇입니까?”

“서면 질의에 서면 답변하겠소.”

청문회에서 서면 질의에 서면 답변이라니! 한고비 넘겼다 싶었는데, 또 다른 고비였다.

“그래도 명색이 청문회인데 어떻게 서면 질의를 합니까? 그렇게 할 바엔 굳이 청문회에 나올 필요도 없잖아요. 설령 그렇게 한다해도 그것으로 국민들의 민심이 잦아들 것 같습니까? 이왕 하시는거…”

“아무튼 그 이상은 안됩니다.”

다시 결렬됐다. 그쪽(백담사측)의 입장은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야당과 청와대 백담사 사이에 낀 이한동 총무와 나로서는 정말 답답할 노릇이었다. 계속 설득하는 수밖에 없었다. 설득과정이 반복되면서 하나씩 하나씩 산을 넘어가는데….

“좋소! 그럼 일괄 질문에 일괄 답변하겠소!.”

일괄 질문에 일괄 답변이라. 일단 청문회에 서겠다는 것 까지는 합의가 된 것이다. 큰 산 하나를 넘은 셈이었다.

“좋소! 그것까지는 우리도 노력해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우리만 좋다고 해서 될 문제도 아니고, 야당하고 절충해야 하니까… 아무튼 그것까지는 노력해 보겠습니다.”

이제 야당을 설득하는 일이 남았다. 그러나 야당 의원들이 쉽게 합의해 줄 리가 없었다. 청문회라하면 일문일답에 보충질의까지 해도 밝혀질까 말까 하는데 일괄 질문에 일괄 답변으로 도대체 뭘 밝힐 수 있겠느냐는 것이었다.

나는 백방으로 뛰어 다니며 야당의원들을 설득해 나갔다. 그 한 번의 청문회로 밝히면 뭘 얼마나 밝히겠느냐 일단 청문회에 전 대통령을 세운다는 것만으로도 엄청난 상징성이 있다는 논리로 나설 수밖에 없었다. 또 사실이 그러했다. 역사상 대통령을 증인으로 국회에 세운다는 것은 생각도 못했던 일이 아니었던가. 이러한 과정에서 어느 정도 분위기가 무르익어 갔다.

“좋다. 그럼 한 번 해보자.”

약간은 미묘한 여운을 남기는 정도였지만 그래도 그게 어딘가. 그런데로 잘 풀려 나가기 시작한 것이다.

그런데 갑자기 백담사측에서 연락이 왔다.

“우리 다시 안나가는 것으로 결정이 났소. 그러니 그렇게 아시오.”

[다음호에 계속]

[장경우 전 국회의원] kwa815@naver.com


#프로필

●1942년 4월 12일생
●경기중·고/고려대 경영 졸
●대한축구협회부회장
●대한수영연맹 명예회장
●제 11·13·14대 국회의원
●한국캠핑캐라바닝연맹 총재(현)
●세계캠핑캐라바닝연맹 아·태 지역위원회 의장(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