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지원 월권논란, 손학규 띄우기 위해 자폭?
손학규-박지원의 짜고 치는 고스톱
2011-02-15 전성무 기자
민주당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당 내 투톱으로 불렸던 손학규 대표와 박지원 원내대표 둘 사이에 균열 조짐을 보이고 있다. 이들의 엇박자는 여야의 영수회담 합의 과정이 계기가 됐다. 박 원내대표는 손 대표와 논의가 되지 않은 상태에서 단독으로 김무성 한나라당 원내대표와 회담을 추진시켰고, 손 대표는 즉각 반대 입장을 피력했다. 박 원내대표는 월권논란에 까지 휩싸이게 됐다. 그동안 긴밀한 관계를 유지해 왔던 민주당의 ‘투톱’이 금이 간 것을 두고 정치권에선 해석이 분분하다.
민주당 ‘투톱’에 비상이 걸린 것은 지난 2월 6일. 박 원내대표와 김 원내대표는 이날 회동을 갖고 2월 14일부터 2월 임시국회를 개최하기로 합의했다. 2월 국회 등원 문제도 사실상 합의점을 도출해 낸 것으로 보였다. 하지만 양당 원내대표의 합의는 금 새 산산조각이 나 버렸다. 손 대표가 즉각 “2월 국회와 영수회담은 별개”라면서 제동을 걸고 나선 것.
이날 여야 원내대표 기자회견 직후 이춘석 민주당 대변인은 기자들과 만나 “손 대표의 생각은 영수회담과 2월 국회가 연계돼서는 안 된다. 별개 문제라는 생각이 확고하다”고 전했다.
손 대표의 입장을 정리하면, 지난 해 12월 8일 한나라당의 예산안 강행처리에 대한 대통령의 사과 및 유감표명이 전제가 돼야만 임시국회를 개최한다는 것이다.
이와 함께 대통령실 정진석 정무수석비서관은 손 대표의 비서실장인 양승조 민주당 의원 사이의 전화통화에서 정 수석비서관은 ‘영수회담을 급하게 할 필요가 없다’는 입장을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민주당 내에서 박 원내대표의 입장이 난감해 진 것이다. 당 내부에서는 박 원내대표가 정국의 주도권을 잡기 위해 무리수를 둔 것 아니냐는 불만이 속출했다. 손 대표와의 관계에도 틈새가 벌어지는 모습이다.
박지원 협상정치 위기?
박 원내대표는 김대중 전 대통령 집권 시절 청와대 비서실장을 지내는 등 그동안 숙련된 정치력을 내세워 정국을 주도해 왔다. 하지만 이번 사건을 계기로 일각에서는 ‘박지원식 협상정치’가 한계에 달한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특히, 지난 2월 7일 열린 비공개 의원총회에서는 박 원내대표에 대한 불만이 이곳저곳에서 터져 나온 것으로 전해진다.
강봉균 의원은 이날 총회에서 “원숭이도 나무에서 떨어질 때가 있다고 하지만 이번 경우는 원숭이가 뛰어넘기 힘든 높은 나무를 넘으려고 한 것”이라며 박 원내대표의 영수회담 추진을 강하게 비판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용섭 의원 역시 “이번 원내대표 회담 합의는 문제가 있었다”며 “영수회담을 우리가 구걸하는 듯 한 모습이 됐다”는 입장을 전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장세환 의원은 “이 시점에 그대로 (국회를)정상화한다는 것은 청와대와 한나라당에 농락당한 것이고 굴욕적인 결과”라면서 박 원내대표의 합의 사항에 불만을 표시했고, 강기정 의원은 “최소한 국회폭력 문제 해결에 대한 합의는 있었어야 하는데 여야 원내대표가 형님-동생 식으로 너무 쉽게 등원 문제를 푼 것 아니냐”며 박 원내대표의 정치력의 한계점을 지적했다. 민주당 내 핵심들이 원내대표의 월권 문제를 강하게 비판한 것이다.
영수회담 추진은 보통 당 대표의 주도하에 이뤄진다는 점 때문에 손 대표의 신경은 날카로워질 수밖에 없다. 손 대표의 입장에서 보면 영수회담을 추진해야 할 당사자를 배제하고 원내대표가 합의를 도출해 놓고 그 결과를 받아들이라는 뜻으로 해석될 소지가 다분하다. 이 때문에 민주당 내부에서는 대표와 원내대표의 갈등설로 까지 번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섞인 목소리도 터져나왔다. 실제 지난 의총 자리에서 손 대표는 “당대표와 원내대표 갈등설 이야기가 있는데, 부부간이나 친구지간에 싸울 수도 있는 것”이라며 “언론에서 그런 싸움을 너무 가십성으로만 다루는 것 같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민주당 핵심 관계자의 말에 따르면 지난 2월 6일 열렸던 비공개 최고위원회의 직후 손 대표는 “원내대표가 명분 없이 합의를 해 준 것”이라며 “국회의장 사과나 받자고 거적때기 깔고 장외투쟁한 것이냐”고 발언하며 박 원내대표를 향해 칼날을 세운 것으로 전해진다.
손-박 사전 교감 있었나?
하지만 이 같은 손 대표와 박 원내대표의 불화설을 접하는 정치권의 ‘원로’들은 ‘짜고 치는 고스톱 아니냐’며 대수롭지 않다는 반응이다. 표면상 손 대표와 박 원내대표의 정국 주도권 힘겨루기로 비춰지지만 실제로는 둘 사이 영수회담 추진과 관련된 사전 교감이 있었다는 것이다. 정치권의 ‘선수’로 통하는 박 원내대표가 손 대표의 입지에 힘을 실어주기 위해 ‘자폭’을 했고, 추후 화해국면을 통해 현재의 불화설을 잠재우면 된다는 정치적 계산이 깔려있다는 해석이다.
그동안 공생관계를 긴밀히 유지해 왔던 민주당의 핵심 지도부가 쉽게 무너질 수 없다는 것. 실제 두 사람은 그동안 굵직한 원내외 현안을 분담하며 별다른 충돌 없이 지내왔다. 손 대표는 ‘12·8 예산안 날치기’ 등을 규탄하며 장외투쟁을 벌여왔고, 박 원내대표는 원내를 추스르며 아낌없는 지원을 했다. 손 대표는 지방일정으로 국회를 비울 때도 박 원내대표와 수시로 전화를 주고받으며 현안을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밖에도 두 사람은 과거 국민의 정부 시절에도 인연이 있었다.
손 대표가 한나라당 소속의 경기도지사 시절 효율적인 신도시 개발 등 건설교통정책을 총괄할 정무부지사를 발탁하는 과정에서 박 원내대표의 지원이 결정적으로 작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박 원내대표는 김대중 전 대통령 집권 당시 청와대 비서실장을 지냈는데, 이 때 손 대표가 한현규 전 정무부지사 영입 요청을 하자 고민 끝에 수용했다는 후문이다. 이때만 해도 집권 여당에서 야당 소속 광역단체장의 스카우트 제의를 받아들이는 것은 극히 이례적인 일로 받아들여졌다.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과거부터 현재까지 정치적 인연을 맺어온 두 사람이 영수회담 같은 문제를 두고 쉽게 갈라서지는 않을 것”이라면서 “박 원내대표가 손 대표를 배제하고 여당과 회담을 추진한다는 것은 말이 안 되기 때문에 손 대표도 회담 추진 사실을 사전에 인지하고 있었던 것으로 본다. 짜고 치는 고스톱 아니냐”고 말했다.
박 원내대표는 영수회담, 국회등원 문제로 손 대표와의 불화설이 터져 나오자 지난 8일 원내대책회의를 통해 “본래 대화의 창구는 원내대표이기 때문에 영수회담의 필요성에 공감했고, 대통령도 TV대화에서 영수회담을 하겠다고 했기 때문에 합의한 것”이라면서 “‘왜 원내대표가 영수회담에 대해 마치 주도권을 행사하나’라는 말이 나온 것은 약간의 오해가 있었다”고 해명했다.
[전성무 기자] lennon@dailypo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