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도심 한복판 ‘잔혹 살인’…범행동기 논란 계속

‘창천동 살인사건’ 왜 일어났나

2012-05-08     최은서 기자

서울 서대문구 창천동 창천근린공원에서 한 20대 대학생이 칼로 40차례 이상 난자돼 숨진 채 발견됐다. 도심 한복판, 사람들이 많이 오고가는 공원에서 ‘잔혹 범죄’가 발생해 충격을 던져줬다. 경찰은 피해자와 피의자들이 혼령카페와 코스프레 카페, 스마트폰 메신저 등 가상공간에서 만난 사이로 ‘사이버 공간상 의견 충돌’이 범행의 주된 원인이라고 범행동기를 밝혔다. 하지만 ‘사령카페’, ‘악마 숭배’, ‘오컬트(Occult) 문화’, ‘카카오톡’ 등 무엇 하나 범행동기로서 명확히 규명되지 않아 ‘창천동 살인사건’의 범행동기를 둘러싼 의문은 여전하다. 가상공간의 갈등이 현실에서 잔혹한 살인사건으로 이어진 ‘창천동 살인사건’을 집중 추적해 봤다.

사이버 공간상 의견 충돌 VS 사령카페 심취
40여 차례나 흉기·둔기 휘두른 ‘잔혹’ 10대들

‘창천동 살인사건’의 피해자 20대 대학생 김모(20)씨. 그는 인터넷 게임과 그림 그리기 등을 좋아하는 평범한 20대 네티즌이었다. 그는 전 여자친구 A(21)씨도 1년 전 마비노기 온라인 게임을 하다 만나게 됐다.

채팅서 다투다 ‘앙심’

김씨는 피의자 이모(16)군과 홍모(15)양도 A씨의 소개로 포털사이트에 있는 사령카페, 코스프레 사이트 등에서 알게 됐다. A씨는 이군의 과외교사이기도 했다. 이들은 카페 활동을 하며 친분을 이어갔다. 인터넷 밴드를 만들기로 한 이들은 A씨가 만든 카카오 그룹 채팅방에서 자주 대화를 나눴다. 이 채팅방에는 10여 명이 있었는데 ‘분신사바’, ‘오컬트’ 등 사령카페에서 자주 거론되는 주제들이 언급되기도 했다.

카카오톡 채팅방 등을 통해 자주 대화를 나눴던 이들 사이가 금 가기 시작한 것은 김씨가 A씨와 헤어지면서부터였다. 김씨는 A씨와 3개월 남짓 사귀다 한 달 전 헤어진 것으로 알려졌다.

이군 등은 김씨와 카카오 그룹채팅방에서 대화를 나누면서 김씨의 독단적인 태도에 불만을 갖게 됐다. 또 A씨가 사령카페 활동에 심취한 것을 못마땅하게 생각한 김씨가 이군 등을 비난하면서 갈등이 불거졌다. 독실한 기독교인인 김씨는 채팅방에서 자주 거론됐던 분신사바 등 사령카페 관련 이야기에 거부감을 느꼈던 것으로 전해졌다.

결국 이군 등은 김씨가 개인 주장이 너무 강하다며 김씨를 빼고 새로운 카카오 그룹 채팅방을 만들었다. 경찰 관계자는 “이군 등은 김씨가 대화 도중에 끼어들고 함부로 판단해 이야기하는 부분이 마음에 들지 않아 김씨를 빼고 대화방을 따로 만들기로 했다고 진술했다”고 말했다. 새로운 카카오 그룹 채팅방을 만드는 과정에서 이들 사이에서는 폭언이 오갔다. 익명성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욕설이 섞인 거친 말들을 거침없이 내뱉었던 것.

김씨는 이군 등이 새로 만든 대화방을 ‘사령카페 소굴’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그는 홍양에게 ‘이군이 질이 안 좋으니 헤어져라’고 문자메시지를 보냈고, 이군의 신상과 사진을 인터넷에 올리겠다는 문자메시지를 보내기도 했다. 이 같은 문자메시지를 주고받으며 감정이 악화되자 이군은 인터넷 채팅방에서 알게 돼 오프라인에서 몇 번 만났던 윤모(18)군에게 ‘김씨가 너무 싫어 죽이고 싶다’는 내용의 문자 메시지를 자주 보냈다.

무차별 잔혹 살인

그러던 중 지난달 29일 김씨가 이군에게 먼저 연락해 “예전에 심하게 말했던 것을 사과하고 싶으니 만나자”며 말을 꺼냈다. 평소 교우관계에 어려움을 겪었던 김씨는 이군 등과 사이가 틀어지자 위기를 느끼고 관계를 원상복구 하려고 했던 것으로 보인다. 김씨는 블로그에도 ‘친구들은 나보고 혼자라고 하는데, 나는 혼자가 아니다’, ‘네티즌과 같이 그림도 만들고 선물도 주고받는다’, ‘친구는 인터넷에서도 만들 수 있다’는 등의 글을 올리며 인간관계에 대한 고민을 내비치기도 했다. 사건 당일 김씨는 이군이 평소 필요하다고 이야기했던 ‘그래픽 카드’를 화해의 선물로 준비하기까지 했다.

김씨와 만날 약속을 한 이군은 윤군에게 연락해 “김씨를 뒤에서 제압해주면 내가 흉기로 찌를 테니, 흉기를 준비해 달라”고 부탁했다. 윤군은 김씨와 일면식도 없는 사이였다.

사건 당일인 지난달 30일 칼 두 자루와 둔기를 준비한 이군 등은 신촌 먹자골목에서 만나 이군 집에 들른 후 돌아다니다 김씨를 신촌역 근처 공원으로 끌고 갔다. 김씨는 공원으로 가면서 친구에게 ‘점점 골목. 왠지 수상’이라고 카카오톡 메시지를 보내는 등 수상한 분위기를 감지했다.

A씨도 함께 만났지만 이군 집에서 나온 뒤 먼저 집으로 돌아갔다. 경찰 조사에서 A씨는 “이군 등이 흉기를 갖고 있다는 것은 전혀 몰랐고, 공원으로 같이 가지 않고 집으로 돌아갔다”며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고 생각했지만 살해할 줄은 몰랐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말없이 공원을 걸어가던 이군 등은 공원에 도착하자 돌변했다. 윤군이 미리 준비해간 전선으로 김씨의 목을 조르자 이군이 김씨의 허벅지, 복부, 목 부위 등을 10여 차례 찔렀다. 김씨가 다리를 버둥거리며 ‘살려달라’며 반항하자 무차별적으로 칼과 둔기를 휘둘렀다. 김씨는 온 몸을 모두 40여 차례나 찔려 숨졌다. 경찰 관계자는 “이군이 김씨가 숨을 거둘 때까지 칼로 찔렀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남은 ‘미스터리’

경찰은 이번 사건의 범행 동기를 ‘사이버 공간상 의견 충돌로 인한 것’이라며 선을 그었다. 하지만 평범한 중산층 가정에서 자란 10대 학생들이 저지른 범행이라고 믿기 힘들 정도로 잔혹하다는 점에서 경찰이 밝힌 범행 동기는 설득력을 잃고 있다.

김씨 측 지인이라고 밝힌 한 네티즌이 블로그에 올린 글에 따르면 이군 등의 범행수법은 ‘악령을 쫓는 방법 중 기를 담아 수차례 찍는 방법이 있다’고 되어 있다. 이군 등이 악령을 쫓는 방법을 보고 따라 한 것이라는 주장인 셈. 이에 대해 경찰관계자는 “김씨의 반항에 당황한 이군 등이 김씨를 제압하기 위해 마구잡이로 찌른 것”이라고 일축했다. 이어 “이군 등은 정상적이었다”며 “이들은 내성적이고 조용한 편으로 폭력적이었거나 폭력에 피해를 당한 사실이 없다”고 말했다.

또 김씨 측 지인의 주장에 따르면 A양이 자신의 블로그에 김씨를 향해 ‘네가 죽었으면 좋겠어’ 라는 글이 게시됐고 그 글에 이군 등이 ‘확인 완료’라고 적은 것으로 미뤄 ‘계획범죄’가 아니냐는 의혹도 나오고 있다.

특히 이군 등이 악령을 믿으면서 악령을 소환해 자신을 지키는 방법을 공유하는 사령카페 활동에 심취해 있었던 것으로 보여 경찰의 수사 발표에도 불구, 이들의 범행동기 등에 대한 논란은 계속될 전망이다.

choies@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