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發 MB 내각개편 초읽기

‘미래권력’에서 ‘현재권력’으로 급부상한 朴

2012-04-17     전수영 기자


[일요서울 | 전수영 기자] 박근혜 發 이명박 정부 임기 내 내각개편이 초읽기에 들어갔다.
이명박 대통령은 임기 마지막까지 현재 내각의 개편 없이 함께 하겠다고 공언해 왔지만 공염불이 될 가능성이 커졌다.

총선 전 ‘미래권력’에서 총선 후 ‘현재권력’으로 급부상한 박근혜 선대위원장으로서는 대통령의 실정 부분을 과감히 쳐냄과 동시에 자신이 가지고 있는 국정철학을 보여줌으로써 국민들로부터 신뢰를 얻어야 한다는 필요성을 절실히 느끼기 때문으로 보인다.

박 위원장은 19대 국회 개원 후에도 야당의 공세가 계속될 한미 FTA 문제, 4대강사업, 고물가 저임금으로 인한 민생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해야 하며 그동안 자신이 강조했던 생애주기별 복지 등에 대한 비전을 제시함으로써 ‘준비된 권력’이란 이미지를 확실히 심어줘야 한다.

결국 이를 위해 국민으로부터 개혁 대상으로 지적 받고 있는 내각을 자신의 의지대로 개편함으로써 대선을 대비한 준비를 차근차근 해 나갈 필요성이 자의반 타의반으로 불거질 전망이다.

총선 이후 박근혜 위원장의 위상이 빠르게 변하고 있다.

‘미래권력’에서 총선 후 ‘현재권력’으로 급부상한 박 위원장도 건너야 할 산은 많다. 특히 ‘새로운 대한민국’을 선언한 박 위원장에게 정부와의 관계는 새롭게 설정해야 할 부분이다.

지금까지 당·정·청 논의가 청와대를 중심으로 이뤄졌다면 총선 이후 무게추는 당으로 이동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박 위원장이 청와대와의 선긋기를 지속한다고 하더라도 정부와의 관계는 지금보다 더욱 공고히 해야 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현재 친이 인사가 수장으로 앉아있는 정부 부처와 관계를 원만히 가져간다는 것은 쉽지 않아 이번 총선 과정에서 잡음이 일었던 일부 부처의 수장을 친박계는 아니더라도 최소한 중도성향을 띤 인물로 교체해 주도권을 이어갈 가능성도 슬그머니 고개를 들고 있다.

이른바 ‘박근혜 發 정개개편’의 가능성이 대두되고 있는 이유다.

복지공약에 딴죽 건 기재부의 운명은

총선을 일주일 앞둔 지난 4일 기획재정부는 ‘복지공약 재정 소요 및 재원조달 방안에 대한 복지 테스크포스 회의’를 열고 “새누리당과 민주통합당이 내놓은 복지공약을 모두 집행하려면 기존 복지 예산 92조6000억 원 외에도 5년간 최소 268조 원이 더 필요하다”고 발표했다.

선관위는 즉각 기재부의 발표를 선거에 영향을 미칠 수 있어 선거법 제9조 ‘공무원의 선거 중립의무’를 위반했다고 경고했다.

새누리당과 민주통합당 모두 기재부의 발표에 발끈했다. 새누리당 조윤선 대변인은 “새누리당은 연 12만 원의 보험료 인상이 있고 혜택은 거의 늘어나지 않는다고 했지만 사실이 아니다”고 곧바로 기재부 발표를 반박했다.

민주통합당 또한 “대통령의 지시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라며 청와대를 직접 겨냥했다.

기재부가 당별로 나누어서 발표하지는 않았지만 대부분은 민주통합당에 불리할 것으로 해석했다.
하지만 청와대와 선긋기에 나선 박 위원장에게도 기재부의 발표가 결코 유쾌한 일만은 아니었을 것으로 보인다. 자칫 청와대가 직접적으로 선거에 개입했다는 이미지가 심어질 경우 총선 결과에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총선 결과가 새누리당의 승리로 끝나서 한숨을 돌릴 수는 있지만 박 위원장이 이를 그대로 묵과하기 어려울 것으로 예상된다. 그동안 복지정책과 개혁정책을 강조했던 박 위원장의 입장에서 총선 과정에서 딴죽을 건 기재부의 모습을 그로서는 쉽게 넘어갈 수 있는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물가 안정, 서민금융 등 이른바 ‘민생문제’ 해결을 역설했던 박 위원장이 정책에 국민적 신뢰도를 높이고 드라이브를 걸기 위해서는 뒤를 든든히 받쳐 줄 기재부의 역할이 클 수밖에 없다.

때마침 야당 또한 선거개입으로 박재완 기재부 장관의 사퇴를 강력하게 요구했기 때문에 박 위원장도 이를 적극적으로 수용해 박 장관의 사퇴를 청와대에 건의할 가능성도 전혀 배제할 수 없다. 복지부 또한 내각개편의 대상에서 제외될 수 없는 상황이다.

불법사찰 의혹 연루 법무부장관 개편 대상

박 위원장은 12일 “빠른 시간 내에 불법사찰 방지법 제정을 비롯 선거 과정에서 제기됐던 문제들에 대해 철저히 바로잡고 다시는 국민의 삶과 관계없는 일로 시간을 낭비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또한 그는 “여기서 또다시 과거의 구태로 돌아간다면 역사의 죄인이 될 것이란 각오로 새롭게 다시 시작하겠다”고 강조했다.

19대 국회가 개원하기 전부터 박 위원장이 현 정권과의 차별화를 구체화하며 발 빠른 행보를 보인 것이다.

지난 12일 현충원을 참배하며 “새로운 대한민국을 만들겠습니다”고 서명한 박 위원장은 권 장관의 퇴진과 함께 수사의 속도를 제대로 못 내고 있다는 평을 듣고 있는 검찰에까지 화살을 겨눌 수 있다.
실제로 새누리당에서는 총선 이전부터 불거진 민간인 불법사찰 의혹과 관련해 권재진 법무부장관의 퇴진과 아울러 특검을 주장했다.

아직까지 불씨가 꺼지지 않은 민간인 불법사찰 의혹은 새누리당과 박 위원장이 반드시 해결해야 할 과제로 만약 이를 확실히 해결하지 못할 경우 과반수 넘게 의석을 차지했다고 하더라도 정국 주도권은 야당이 쥘 수밖에 없다.

특히 보고라인에 있었다는 의혹에 휩싸인 권 장관을 그대로 두고는 민간인 불법사찰 의혹을 해결하기 어렵기 때문에 권 장관의 거취문제는 조만간 해결이 될 가망성이 높을 것으로 전망되며 이 경우 민간인 불법사찰 의혹은 조만간 새로운 국면을 맞을 수도 있을 것으로 보인다. 청와대 또한 새누리당이 권 장관과 한상대 검찰총장의 교체를 요구한다면 이를 거부하기 어려운 입장이다.

장관 여럿도 위기 맞을 수 있어

당장 박재완 기재부장관과 권재진 법무부장관이 교체 대상이 될 수 있겠지만 이 외에도 여러 명의 장관이 바뀔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채필 고용노동부장관도 그 대상에 포함될 수 있다.

이 장관은 지난 2월 28일 총선을 앞두고 근로복지공단·산업인력관리공단 등 열 개 산하기관에 ‘총선 전후 공직기강 확립을 교육하라’는 내용의 지침을 보냈다. 공무원이라면 당연히 정치적 중립을 지켜야 하지만 10개 산하기관에 종사하는 이들은 공무원 신분이 아니기 때문에 정치적 중립 의무를 지킬 의무가 없다.

한국노총 산하 공공연맹은 곧바로 “공무원만 정당가입 등의 행위를 못하는데, 공직자도 아닌 공공기관에 공문을 내린 것은 법률로 보장받은 노동자 참정권을 부정하는 것”이라며 강하게 반발하며 이 장관을 고발하겠다고 나섰다.

정부가 비정규직 차별 해소를 위해 공공부문 비정규직 노동자를 2015년까지 전면 폐지한다고 밝힌 이상 노동계와 척을 질 필요는 전혀 없다. 따라서 노동계가 반발하는 이채필 장관도 자리를 보존하는 것이 쉽지만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김관진 국방부장관 또한 자리가 위태위태하다.

지난 2월 감사원은 항공전문기업인 (주)블루니어가 2006년부터 2010년까지 5년간 200억 원대의 부당이익을 취했다고 밝혔다. 이 회사는 전역한 공군 정비사들이 상당수 포함되어 있으며 박종헌 공군참모총장의 아들이 이 회사에 근무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공군과 유착관계가 있는 것이 아니냐는 의혹에 휩싸였다.
김 장관은 결국 지난 3일 박 총장의 교체를 통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국방부에서는 의혹과 관련된 인사는 아니며 정기 인사에 맞춰 교체를 할 경우 임기가 2년을 넘기 때문에 미리 한 것이라고 해명하고 있지만 쉽게 납득이 가지 않는 부분이다.

특히 이런 비리 의혹이 지난해 봄부터 공군 내부에서 있었다는 얘기가 돌면서 군 내부 감찰기능에 문제가 있는 것 아니냐는 비판마저 일고 있어 군의 수장인 김 장관도 이런 비판에 자유로울 수 없다.

특히 국방과 안보에 큰 비중을 두고 있는 새누리당과 박 위원장으로서는 군의 내부 문제가 불거질 경우 안보 문제와 직결될 수 있다고 판단해 조기에 불씨를 차단하기 위한 노력을 보일 가능성이 있다. 대통령도 국방개혁을 제대로 이끌기 위해서 의혹과 연루된 인물을 자리에 둘 수 없다는 주장을 물리치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따라서 임기가 올해 말까지인 김 장관의 임기도 결코 안전하다고 볼 수 없다.

장관은 아니지만 ‘수원 살인사건’으로 사의를 표명한 조현오 경찰청장의 후임에도 이목이 쏠리고 있다.
현재 조 청장 후임자 후보로는 이강덕 서울경찰청장, 김기용 경찰청 차장, 강경량 경찰대학장, 모강인 해양경찰청장 등이 거론되고 있으나 이 중 이강덕 서울경찰청장이 유력시 되고 있다.

하지만 이 서울청장의 경우 이른바 ‘영포(영일·포항 출신)라인’으로 꼽히고 있어 청와대 일부와 새누리당조차도 부담스럽게 생각하고 있어 대통령이 쉽사리 이 청장을 인선하기 어렵다고 볼 수 있다.

대통령 탈당, 거국중립내각 탄생하나

이번 총선에서 예상을 뒤엎고 새누리당이 과반수 넘는 의석을 차지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야당이 주장했던 정권심판론을 무시할 수만은 없을 것으로 보인다.

분석가들은 박 위원장의 경우 그동안 ‘이명박근혜’라는 비아냥을 들을 정도로 대통령과 동일시 됐기 때문에 이런 프레임을 깨기 위해서라도 박 위원장만의 새로운 카드를 꺼내야만 한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총선 결과 박 위원장은 수도권에서 약한 모습을 보였다. 이는 수도권에서 정권심판론이 먹혀들며 박 위원장의 민생 문제 해결을 위한 노력이 통하지 않았다고 분석할 수 있다.

정치컨설팅 업체 GO기획의 김재열 수석컨설턴트는 “MB정권 심판론이 민의 수준이 높은 수도권에서 반영된 것으로 볼 수 있다”며 “수도권 지지가 약한 박 위원장으로서는 MB와 차별화를 가속화 해야만 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안정적인 정권 재창출을 위해서는 대통령의 도움이 필요하지만 차별화도 해야 하기 때문에 박 위원장의 처신이 곤란해졌다고 볼 수 있다”고 덧붙였다.

결국 한편으로는 도움을 받아야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대통령과의 명확한 차별화를 위한 투트랙 전략이 필요하다는 의미로 볼 수 있다.

현재 정국 상황에서 박 위원장에게 가장 좋은 상황은 바로 대통령이 새누리당을 탈당하고 이와 함께 거국내각을 구성하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새누리당은 여당인 아닌 ‘다수당’으로 남으면서 정책 제안에 폭이 넓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중립내각 얘기는 지난해부터 계속해서 흘러나왔지만 대통령은 아직까지 결정을 못 내리고 있다. 이번 총선에서 친이계가 많이 살아남았다면 대통령도 버틸 수 있는 동력이 있었겠지만 친이계가 몰락하면서 대통령의 지켜줄 보호막이 없는 상황이 된 지금 대통령 또한 중립내각 구성을 배제해 놓을 수만은 없게 됐다.

GO기획 김재열 수석컨설턴트는 “만약 중립내각을 구성하게 된다면 거국중립내각이 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며 “만약 거국중립내각이 구성된다면 총리에게 인사에 대한 힘을 실어주고 대통령은 외교·안보 등에 힘을 쓰는 모습을 보일 것”이라고 예상했다.

일각에서는 거국중립내각이 구성된다고 하더라도 중립적인 인사 외에 친이보다는 친박 성향의 인물들이 다수 포진하면서 박 위원장의 입김과 정책이 반영될 가능성이 높다고 점치고 있다.

이미 정부의 정보관련 조직이 대통령과는 별도로 박 위원장에게도 다양한 정보보고를 하고 있다는 소문까지 돌고 있다. 또한 일부 부처 인사들의 줄서기가 심화되며 주이야박(晝李夜朴)을 하고 있다는 얘기도 들리는 상황이다. 따라서 박근혜 發 내각개편은 더더욱 힘을 얻을 전망이다.

하지만 이런 과정에도 불구하고 박 위원장이 남은 대선까지 국민들의 뇌리에서 대통령과 오버랩 되는 인상을 지우지 못한다면 ‘미래권력’으로만 남을 가망성도 전혀 배제할 수 없다.

jun6182@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