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법사찰 MB 보고 권재진 장관, 사표·특검 수사·구속 수순 밟나

권재진 법무부장관 사퇴 압력에 ‘사면초가’

2012-04-10     전수영 기자

[일요서울 | 전수영 기자] 민간인 불법사찰 파문이 날로 커지고 있는 상황인 가운데 당시 보고라인에 있었던  권재진 법무부장관의 퇴진 요구가 거세지고 있다. 또한 총선 이후 특검조사를 받거나 심지어 청문회에 선 후 결과에 따라 구속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게 됐다.
하지만 여야 모두 총선과 상관없이 현재 검찰이 진행하고 있는 민간인 불법사찰 재수사에 방해가 될 수 있다며 자리에서 물러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시민사회 인사와 단체 대표자 308명은 지난 3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민간인 불법사찰과 관련해 시국선언을 발표했다. 이들은 민간인 사찰내역 공개와 이명박 대통령의 사과, 임태희 전 대통령 구속수사와 권재진 법무부장관 등에 대한 철저한 수사를 촉구했다.
현재 민간인 불법사찰과 관련해 자신이 몸통이라고 주장했던 이용호 전 청와대 비서관과 최종석 전 행정관이 구속되면서 윗선에 대한 수사가 본격화되고 있지만 의혹의 중심에 있는 권 장관이 자리를 지키는 한 철저한 수사는 어렵지 않겠느냐는 회의적인 시각도 계속해서 일고 있다.
하지만 이에 대해 권 장관은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

민간인 불법사찰과 관련해 지목되고 있는 곳 중 한 곳이 바로 청와대 민정수석실이다. 민정수석실은 국민의 안녕 유지와 행복 증진을 위해 노력하는 곳임에도 불구하고 이번에 제기된 민간인 불법사찰의 보고 선상에 있어 국민의 분노는 더욱 커지고 있다.

전국언론노동조합은 지난 4일 정정길·임태희 전 청와대 대통령실장과 정동기·권재진 전 청와대 민정수석 등 18명을 서울중앙지검에 고소했다.

이들은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검찰이 조직의 명운을 걸고 언론장악·불법사찰·증거인멸의 실체를 낱낱이 드러내주길 바란다. 그렇지 않다면 이미 무너진 이 정권과 함께 헤아릴 수 없는 국민적 저항에 직면하게 될 것임을 검찰은 명심해야 할 것”이라며 검찰의 엄정한 수사를 촉구했다.
박영선 민주통합당 MB-새누리 국민심판위원회 위원장 또한 4일 오전 MBC라디오 <손석희의 시선집중>에 출연해 “법무부장관이 검찰수사에 영향력을 미칠 수 있고 또 수사 지휘를 할 수 있도록 돼 있는데 지금 검찰이 현재의 수사 인력 가지고는 민간인 불법사찰과 관련된 방대한 양의 수사를 빠른 속도로 진행하기엔 수사인력이 모자란다”며 “확대하지 않고 있는데 그것도 권재진 법무부장관 때문에 그런 것 아닌가 하는 법조계의 지적이 있다”며 권 장관을 지목했다.

MB 품속에서 편안한 권 장관?

이명박 대통령은 지난 3일 청와대 주재 국무회의에서 “올해가 선거철이라 상당히 혼란스러운 상황이지만 공직자들도 중심을 잡고 민생문제와 관련한 중요한 국정 과제가 추호도 흔들림 없이 지속적으로 추진될 수 있도록 해달라”고 주문했다.

민간인 불법사찰 의혹이 커지고 있는 상황이었지만 이 대통령은 이에 대해 한마디도 언급하지 않았다. 대통령도 한마디 꺼내지 않은 상황에서 권 장관 본인이 먼저 얘기할 수는 없는 노릇.

이 때문인지 권 장관은 이번 의혹에 대해 애써 외면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실제로 권 장관은 출근길에 민간인 불법사찰 의혹에 대한 기자들의 질문에 “지금은 말을 아껴야 할 때”라며 어떤 내용도 말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민간인 불법사찰 보고라인에 있었던 것으로 밝혀진 권 장관이기에 대통령이 자신을 보호해주는 이상 굳이 그 품을 벗어날 필요는 없다고 판단한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청와대가 말하지 않는 것 또한 검찰에 압력”

민주통합당 MB-새누리 국민심판위원회 이재화 변호사는 [일요서울]과의 통화에서 “청와대가 민간인 불법사찰과 관련해 아무 말도 하고 있지 않은 것 또한 검찰에게는 무언의 압력으로 비춰질 수 있다”고 말했다.

이는 청와대가 아무런 얘기를 하고 있지 않고 있는데 검찰이 ‘살아 있는 권력’의 심기를 거스를 수 있겠느냐는 것으로 풀이된다.

이 변호사는 “검찰에 증거를 제출하면서 느낀 건데 일선 수사 검사들은 의혹 해결의 의지가 있는 것으로 보였다”며 “하지만 위에서 압력이 있다면 (수사가) 쉽지 않을 수도 있다”고 말해 실낱같은 희망과 함께 우려를 동시에 표명했다.

결국 민간인 불법사찰 수사가 일선 검사의 의지와는 다르게 돌아갈 수 있다는 말로 볼 수 있다.

법무부장관은 직접적으로 개별 수사에 개입하지 않고 검찰총장을 통해 보고를 받는다. 그렇다고 해서 검찰이 독립적으로 움직인다고도 볼 수 없다. 실제로 지난해 2월 이귀남 전 법무부장관이 검찰총장을 거치지 않고 개별 사건에 직접 관여했다는 의혹이 불거지면서 한동안 여론의 도마 위에 오른 바 있다.

따라서 이번 민간인 불법사찰과 관련해 야권과 시민사회는 혹시나 발생할 수 있는 개입을 예의주시하며 검찰 수사를 주목하고 있다.

지난해에 이어 수장의 이름이 불미스런 일에 관여됐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법무부 내부 분위기는 모두가 쉬쉬하며 눈치만 보고 있는 상황이다.

법무부의 한 관계자는 “현재 검찰 수사가 진행되고 있는 상황이라 뭐라 얘기할 수 없다. 소수의 사람들이 모여 얘기할 때도 이 문제는 입에 담지 않는다”며 “어떤 결과가 나오든 상관없이 불미스런 일에 법무부 수장의 이름이 거론되는 것 자체가 부담”이라고 말했다.

공개된 문건은 빙산의 일각

KBS 새노조가 2600여 건의 사찰문건을 공개했지만 이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주장이 계속 제기되고 있다.
이석현 민주통합당 의원은 지난 3일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검찰이 입수하지 못한 사찰보고서가 서류뭉치 형태로 두 군데에 대량으로 존재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주장하며 “국무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에 근무했던 이기영 경감의 사찰보고서는 박스 6개로 이 경감의 친형 이승기씨 집에 은폐되어 있다는 제보를 받았다”고 밝혔다.

이와 함께 진경락 전 총리실 기획총괄과장이 차 트렁크에 민간인 불법사찰 문건을 싣고 다녔다고 주장했다.

이 의원의 주장대로라면 KBS 노조가 공개한 민간인 불법사찰 문건은 전체의 일부에 지나지 않게 돼 검찰이 이 의원의 주장에 따라 수사를 진행할 것인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양성윤 민주노총 부위원장도 기자와 만난 자리에서 “이번에 공개된 문건을 보지 못해 확정할 수는 없지만 노동계 인사들에 대한 사찰 자료는 많이 빠진 것 같다”며 “그동안 정부와 대립각을 세웠던 김영훈 전 위원장과 각 산별노조위원장들도 없는 것을 보면 전체 자료는 아닌 듯싶다”며 추가 문건이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양 부위원장은 “내가 얼마 전에 이사를 했는데 어느 날 경비아저씨가 나에게 ‘경찰에서 나와 나에 대해 언제 들어오는지, 뭘 하는지 등에 대해 묻더라’ 하더라. 이런 거야 그동안에도 있었던 동향관찰이라 별로 신경 쓰지 않지만 나도 이런데 다른 분들은 어떻겠느냐”고 반문했다.

일각에서는 현재 공개된 민간인 불법사찰 문건도 중요하지만 장진수 전 국무총리실 공직윤리지원실 주무관이 기록물 연구소에 넘겼다는 사찰자료가 더욱 중요하다며 이를 찾아내 진실을 밝혀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특히 장 주무관이 “노무현 정부 사찰자료 폐기는 이명박 정부가 한 것”이라고 말해 청와대가 주장한 전 정권 폐기설을 정면으로 반박했다. 하지만 노무현 정부 때 작성됐다는 사찰자료에는 어떤 내용이 담겨 있는지도 국민의 관심을 받고 있다.

결국 전·현 정권 때 이뤄진 사찰자료 모두가 의혹 대상이 된 셈이다.

특검·청문회는 검찰이 역할 제대로 못했기 때문

정치권에서는 민간인 불법사찰 의혹을 풀기 위해 청문회를 진행할 것인지 아니면 특검을 통해 진실을 밝힐 것인지를 놓고 논쟁을 벌이고 있다.

새누리당 측에서는 전·현 정권의 불법사찰 의혹을 특검을 통해 밝히자고 주장하고 있다. 현재 검찰 수사가 국민의 기대에 미치지 못할 수 있기 때문에 특검이 좋은 방법이라는 것이다.

이에 반해 민주통합당은 특검을 진행할 경우 준비에만 2개월가량 걸리고 또한 대통령이 임명하는 특검은 오히려 축소 수사할 가망성이 있기 때문에 이를 수용할 수 없다며 새누리당의 특검 주장을 반박하고 있다.

다만, 청문회의 경우 민주통합당의 주장을 새누리당이 받아들여도 증인들이 청문회에 출석하지 않을 경우 이를 강제하기 어렵다는 게 걸림돌이 될 수 있다. 민주통합당의 경우 박근혜 새누리당 선대위원장과 함께 이명박 대통령까지도 청문회에 출석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이는 사실상 불가능해 과연 진실을 제대로 밝힐 수 있을지가 의문시되고 있다.

하지만 특검 또는 청문회가 진행되면 권재진 장관에 대한 수사는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법무부 수장으로서 굴욕을 맛보는 것이다. 아직까지 권 장관의 움직임이 포착되고 있지는 않지만 총선 결과에 따라 진퇴를 결정할 것으로 예상된다.

민간인 불법사찰은 19대 국회 개원 후 여야 간의 뜨거운 감자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대다수 국민들은 여야가 특검이나 청문회를 주장하는 것은 결국 검찰이 그동안 일었던 많은 의혹에 대한 진실을 제대로 규명하지 못했기 때문이라며 진정한 검찰의 정치적 독립과 아울러 권력의 품에서 벗어날 것을 검찰 스스로 해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jun6182@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