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명, 이상득-신기옥-최시중-김백준 개입 진술
“BBK 가짜편지, MB 친형-동서-멘토-집사가 배후”
[일요서울 ㅣ 조기성 기자] ‘민간인 불법 사찰’ 문제로 곤혹을 겪고 있는 이명박 정부에 또 하나의 악재가 있다. ‘BBK 기획입국설’이 그것이다.
청와대는 최근 입국해 검찰조사를 받은 ‘BBK 가짜 편지’의 주인공 신명(51)씨가 배후로 정권 실세들 이름을 연일 거론하는데다 민주통합당이 이 사안을 민간인 불법사찰과 선관위 디도스 사이버테러 등과 함께 MB심판 3대 주력분야로 집중하면서 당혹케 하고 있다.
게다가 신 씨가 가짜 편지에 개입했다고 폭로한 정권 실세들은 이 대통령의 최측근으로 분류되는 인물들이어서 파장이 더욱 커질 전망이다.
신명 씨에 대한 검찰 수사는 표면상 고소ㆍ고발건에 대한 것이다. BBK 의혹 당사자인 김경준(46ㆍ수감 중) 씨는 지난해 12월 “가짜 편지를 공개해 명예를 훼손했다”며 신 씨와 그 형 신경화(54·수감 중) 씨를 공직선거법상 명예훼손 혐의로 검찰에 고소했다.
홍준표 전 새누리당 대표도 “가짜 편지 입수 경위를 밝히라”는 신 씨의 요구에 맞서 지난달 말 공직선거법상 허위사실공표 혐의로 그를 고발했다. 홍 전 대표는 당시 한나라당 클린정치위원장으로 ‘가짜 편지’를 공개한 당사자다.
결국 사실관계 확인 때문에라도 수사는 가짜 편지 작성 배경과 정황에 대한 수사로까지 확대될 전망이다. 2007년 대선을 앞두고 당시 정부여당이 이명박 한나라당(현 새누리당) 후보를 공격하기 위해 ‘BBK 의혹’의 핵심인물인 김 씨를 미국에서 불러들였다는 ‘기획입국설’ 자체를 되짚을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기 때문이다.
신명 검찰조사로 BBK 수사 재점화
신명씨의 형인 경화씨는 1998년 경부고속도로 상에서 차량 운전자를 쇠망치로 때려 1억2000만 원을 빼앗는 강도혐의로 수배된 뒤 미국으로 도피했는데, 미국 교도소에 함께 수감됐던 ‘감방 동료’가 김경준씨였다. 한나라당은 기획입국설을 제기하면서 신경화씨가 김 씨에게 보냈다는 편지를 물증으로 내놨다. 내용은 “자네(김경준)가 큰집(청와대)과 어떤 약속을 했건 우리만 이용당하는 것이니 신중하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검찰 수사결과 편지는 신경화씨 동생 신명씨가 쓴 것으로 드러났고, 신명씨는 검찰에서 이 사실을 자백했다.
신경화씨는 최근 “김씨에게 속아서 미국 교도소에서 1년을 복역했다”며 김경준씨를 고소했다. 신씨는 고소장에 “김씨가 한국으로 송환되지 않도록 힘써주겠다고 하는 바람에 귀국이 늦어져 결국 미국에서 1년 수감생활을 더 했다”고 썼다고 한다.
앞서 신명씨는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누가 시켰는지 말하지 않으면 수감 중인 형을 ‘원상복귀’ 시켜주겠다고 약속했다”며 “형을 살려보겠다고 나선 일이었는데 교묘히 이용만 당한 것 같다”고 말한 바 있다.
“교묘히 이용만 당한 것”
신명씨는 최근 언론 인터뷰를 통해 가짜 편지의 배후로 이 대통령의 형인 이상득 새누리당 의원과 멘토로 알려진 최시중 전 방송통신위원장, 이 대통령 손윗동서인 신기옥씨를 거듭 지목하고 있다.
신씨는 “배후로 알려진 사람을 순서대로 얘기하자면 양승덕 경희대 행정실장과 그 위에 김병진씨, 신기옥씨, 최시중씨, 이상득씨”라고 밝혔다.
신씨는 이들을 배후로 지목한 이유에 대해 “양씨로부터 이 사람들이 다 핸들링하고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며 “‘검찰에 가면 이렇게 이렇게 하라’는 내용이 빽빽하게 담긴 A4 5장짜리 양씨의 지시서도 갖고 있다”고 설명했다. 또 “(관련이 없다면) 왜 편지가 일면식도 없는 홍준표 전 대표의 손에 있었겠나”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또한, 신씨는 검찰에서 “이 사건에 김백준 전 청와대 총무기획관이 개입했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이중희 부장검사)는 지난 3일 검찰에 출석한 신씨로부터 “2007년 대선이 끝나고 검찰에서 조사를 받을 당시 가짜편지를 쓰라고 시킨 경희대 교직원 양승덕씨가 ‘김 전 기획관과 만났다’며 안심시켰다”는 진술을 확보했다.
신씨는 검찰에서 “편지를 가짜로 쓴 게 맞는지를 계속 추궁당해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였더니 양씨가 이렇게 말했다”고 설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사건에 김 전 기획관이 개입했다는 진술이 나온 것은 처음이다.
이명박 대통령과 40년 지기인 김 전 기획관은 이 대통령의 ‘영원한 집사’로 통한다. 과거 BBK 사건의 미국 소송 법률대리인을 맡는 등 이 대통령 관련 의혹에 자주 이름이 거론됐던 인물이다.
신씨는 또 “양씨가 이상득 새누리당 의원과 최시중 전 방통위원장이 이 사건의 배후라고 말했다”고 검찰에서 진술했다. 양씨가 이 대통령의 동서인 신기옥씨와 자주 만난 사실도 털어놨다.
“MB 연루된 것 아니겠느냐”
이렇듯 ‘가짜 편지’ 배후로 이 대통령의 친형과 동서, 멘토, 집사가 한꺼번에 지목되면서 이 대통령이 궁지에 몰리고 있는 형국이다. 민주당이 이들에 대한 연관 관계를 집중 파헤칠 것으로 보인다.
김현 민주당 선대위 대변인은 지난 6일 논평을 통해 “신명씨가 검찰에서 김백준 전 청와대 총무기획관의 개입 사실을 밝혀 2007년 대선의 한복판에서 BBK 주가조작사건의 진실을 밝힐 것으로 믿었던 김경준씨의 입국이 기획된 것이라던 한나라당의 주장이 공작의 결과로 드러났다”며 “진실은 절대 지울 수도 묻을 수 없다는 역사의 진리가 또 다시 증명된 것으로 이제 진실의 문을 활짝 열어 검은 의혹들을 끄집어내는 일만 남았다”고 주장했다.
김 대변인은 “이명박 대통령과 관련한 무수한 검은 의혹들이 하나둘씩 진실의 장막 밖으로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며 “이름이 거명된 홍준표 전 한나라당 대표, 만사형통 이상득 의원, 방통대군 최시중 위원장, 김백준 전 기획관에 대한 철저한 수사를 촉구한다”고 검찰을 압박했다.
결국 이 대통령은 ‘BBK와 무관하다’고 밝혀왔지만 최근 이 대통령이 BBK의 대표이사로 표시된 명함이 미국 법원에 소송 관련 증거로 제출된 사실이 뒤늦게 확인되는 등 BBK의 진실이 임기 말에 와서야 조금씩 실체를 드러내고 있는 모양새다.
여권의 한 관계자는 기자와 만난 자리에서 “BBK 사건은 검찰 수사와 특검까지 진행됐지만, 의혹의 실체가 말끔히 해소되지 않았다”면서 “특히 이번 신명씨가 배후세력으로 밝힌 인물들의 면면을 보면 결국 이 대통령이 연루됐다는 것 아니겠느냐”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이어 “박근혜 위원장이 이 대통령과 차별화를 꾀할 수밖에 없는 사안이 바로 ‘BBK’일 것”이라고 꼬집었다.
<조기성 기자> kscho@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