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인 과세’ 발언, 무엇을 노렸나

판도라의 상자 연 박재완 장관

2012-04-04     최은서 기자

[일요서울|최은서 기자] 박재완 기획재정부장관이 종교인에게도 세금을 부과하는 문제를 검토하겠다고 밝혀 ‘종교인 과세’ 문제에 불을 지폈다.

앞서 종교인 과세 문제는 2006년에도 쟁점의 대상이 됐다. 국세청이 종교인에게 과세하지 않는 것은 직무유기라는 일부 종교개혁단체의 비판에 직면하자 국세청이 이 문제를 기재부에 공식 질의한 것. 하지만 기재부는 아직도 명확한 유권해석을 내놓지 않고 있다.

국회 국정감사장에서도 종교인 과세 문제가 자주 도마 위에 올랐지만 답변은 늘 ‘신중히 검토 후 결정하겠다’는 식의 제자리걸음으로 결론을 내리지 못한 채 유야무야 끝났다. 이는 자칫 ‘종교 탄압’이란 반발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런 가운데 박 장관이 총선을 앞둔 시기에 내부 협의도 거치지 않고 정치적 민감 이슈인 종교인 과세를 언급한 배경을 두고 여러 말들이 나오고 있다.

6년 묵은 뜨거운 감자 ‘종교인 과세’ 매듭짓나
종교계 입김 적지 않은 상황에다 총선 앞두고 왜?

박 장관은 한 케이블 방송에 출연해 종교인 과세 문제에 대한 질문에 “국민개세주의(國民皆稅主義) 관점에서 특별한 예외를 인정하기 어렵다”고 답했다. 종교인 과세 방안을 내년도 세제 개편안에 반영할지 여부에 대해서도 “검토 중”이라며 “미뤄놓는 것은 맞지 않는다고 본다”고 밝혔다. 조세 당국이 종교적 과세 문제를 공개적으로 제기한 것은 2006년 이후 처음이라는 점에서 종교계의 대응이 주목됐다.

고개 드는 종교인 과세 여론

기재부는 정치적으로 민감한 이슈인 종교인 과세를 박 장관이 언급한 것에 대해 발 빠른 해명을 내놓으며 확대해석을 경계했다. 기재부는 박 장관 발언 직후 “박 장관의 종교인 과세 발언은 원론적인 입장을 언급한 것”이라며 “적용방법과 시기 등은 구체적으로 논의된 바 없다”고 파장을 조기에 차단했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총선이 코앞에 닥친 상황에서 종교계의 반발을 사봤자 이득이 될 것이 없다는 판단 때문일 것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하지만 이 논란의 불씨를 지폈던 박 장관이 또다시 지난달 28일 기자간담회에서 종교인 과세 관련 질문에 “종교인 과세에 이미 멍석은 깔아져 있지 않나. 공론을 거쳐 의견을 모으는 것이 중요하다”며 “결혼하자마자 신혼부부에게 아들이냐 딸이냐 묻는 것은 좀 성급하지 않나”라고 답했다. 박 장관은 또 여론수렴 과정 절차를 거치고 있다고 언급해 사실상 과세절차에 착수했음을 시사했다. 이에 따라 올 세재개편안에 종교인 과세방안이 포함될 가능성이 높아져 종교인 과세문제는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다.

종교인 과세는 여론의 호응이 만만치 않아 이전에도 이 문제가 제기 될 때마다 쟁점으로 부각된 바 있다. 최근 종교자유정책연구원이 설문조사한 결과 종교인 과세에 찬성하는 비율은 64.6%로 반대는 20%도 넘지 않는 것으로 집계됐고 2008년 여론조사전문기관 리얼미터미터의 조사에서도 찬성 비율은 71.5%로 나타났다. 이처럼 종교인 내부를 비롯한 여론은 종교인 납세의 필요성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음을 반증했다. 박 장관의 발언을 계기로 종교인 과세 여론도 부쩍 고개를 들고 있다.

박 장관의 발언을 둘러싸고도 여러 이야기가 나왔다. 정치 사회적으로 민감한 이슈를 언급해 논란에 불을 지핀 ‘계산된 발언’이라는 비난부터 한번 짚고 넘어갈 사안으로 ‘용기있는 발언을 했다’는 긍정적 반응도 나왔다. 또 일각에서는 박 장관이 지난해 무산됐던 ‘수쿠크법’ 관철을 위해 기독교계와의 협상용 카드로 빼내든 것이라는 분석도 제기됐다.

박 장관 발언 둘러싸고 해석 분분

박 장관의 발언을 반기는 측에서는 “해묵은 문제인 종교인 과세 문제를 이번 기회에 매듭지어야 할 것”이라는 입장을 내놓고 있다. 종교계의 입김이 적지 않은 상황인데다 총선을 앞둔 상황에서 논란이 일 것을 알면서도 용기 있는 발언을 한 것이라는 평가가 나오는 것. 또 종교인 과세를 통해 세수를 확대하고 종교단체의 불투명한 회계 관행을 바로잡는 효과를 거둘 수 있을 것이란 분석도 나왔다.

최근 한국기독교협의회가 목사들의 자발적 납세를 공론화하는 등 자발적으로 조세 문제를 해결하자는 분위기가 인 것도 박 장관의 발언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교회개혁실천연대 집행위원인 최호윤 회계사는 목회자 세금납부가 ‘이중과세’라는 주장에 대해 “소득의 귀속 주체가 다르다”라고 반박했다. 한 기독계 관계자는 “종교인이 세금을 납부하는 것은 사회에 참여하는 한 부분으로, 종교인이 세금 부분에 있어 투명성을 확보해야한다”며 “종교인 과세는 교회 신뢰회복에도 효과가 있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박 장관의 발언을 ‘정치적 카드’로 보는 시각도 적지 않다.
이명박 정부의 중요 지지기반인 기독교계가 가장 타격을 입을 것으로 보이는 종교인 과세를 추진하는 것은 정부나 여당에 도움 대신 타격을 입힐 공산이 크다. 더구나 정권교체기 시기에 현 정부가 6년 동안이나 묵혀뒀던 이 사안을 처리하는 것도 어려울 것으로 전망되기 때문이다.
 
때문에 총선과 대선을 앞둔 시기에 거대 표밭인 종교계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어 정치권의 반대로 종교인 과세문제는 무산되거나 유보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한 종교계 관계자는 “종교인 과세를 추진하게 되면 종교계 중에서도 기독교계 표가 분산될 공산이 크다”며 “이 정책이 추진된다면 기독교계 일부는 여당에 등을 돌려 야당이 이득을 얻을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그렇다면 이에도 불구하고 박 장관이 종교인 과세를 거듭 거론한 것은 왜일까.

MB정부가 공정사회를 강조하고 나섰고, 여론의 과반 이상이 종교인 과세를 반기는 상황에서 ‘종교인 과세’카드를 꺼내드는 것만으로도 과세의 형평성과 공정성을 다잡겠다는 의지를 피력할 수 있고 사회적 공감대를 얻는 등 명분을 확보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또 종교인 과세를 언급함으로써 여론의 공감을 얻는 등 비종교인의 잠재적 지지를 기대한 것 아니냐는 이야기도 나온다.

한 기독교계 관계자는 “정치적으로 총선이나 대선 같은 중요 이슈를 앞두고 종교인 과세 문제가 주기적으로 부각됐는데 정치적 노림수가 있는 것”이라며 “기독교 내 보수층은 종교인 과세에 부정적인 반면 기독교계 진보층과 대중 여론은 종교인 과세에 긍정적이라 장관의 발언으로 이 문제가 다시 공론화 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또 정치권의 증세 주장에 맞서 낮은 세율 넓은 과세 범위에 부합하는 종교인 과세 방침을 언급한 것이란 해석도 나온다. 증세에 앞서 ‘국민개세주의 관점에서 특별한 예외를 인정하기 어렵다’며 종교인 비과세의 불합리성부터 시정해야한다는 것이다.

끝으로 박장관이 이슬람 채권법, 일명 수쿠크법 관철을 위한 기독교계와의 협상 카드로 종교인 과세를 꺼내들었다는 분석도 있다. 정부가 입법을 추진했던 수쿠크법은 기독교계의 강력 반발로 무산된 바 있다.

choies@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