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유나이티드를 포스트시즌으로… 김남일·설기현 이 악물고 뛰는구나

이름값 감당하기 여간 어려운 게 아니군

2012-04-03     이창환 기자

[일요서울|이창환] K리그 ‘인천 유나이티드’의 최고참이자 한·일 월드컵 스타인 김남일(35), 설기현(33)이 K-리그 초반레이스에서 뒤쳐지지 않기 위해 전심전력을 다하고 있다. 파격적인 연봉 제시 덕분에 국내 무대 복귀 장소로 인천 유나이티드를 택한 김남일과 강팀 ‘울산 현대 축구단’에서 이적한 설기현은 신인선수를 방불케 하는 독기로 팀 사기를 끌어올리고 있다. 이 같은 두 선수의 노력은 개막 이후 3연패의 불운마저도 첫 승으로 바꿔놓았다. 지난 24일 열린 ‘대전 시티즌’과의 홈경기에서 2-1로 승리를 거둔 것. 김남일 1도움, 설기현 2골 등 승리의 실질적인 주인공도 두 선수였다. 경기를 마친 후 김남일과 설기현은 “프로생활하면서 이런 적이 없었다. 1승 하기가 이렇게 힘든 줄 몰랐다”며 한숨을 돌렸다. 인천 유나이티드의 허정무 감독은 “김남일, 설기현의 컨디션이 서서히 올라오고 있다. 앞으고 기대해 보겠다”는 내용의 말로 의지를 불태웠다. 2012년도의 K리그에서 10년 전의 영웅을 보는 것은 쉽지가 않다. 안정환과 송종국은 각각 지난 1월 27일과 지난 3월 27일 은퇴를 선언했고, 안정환은 지난 2월 29일 은퇴식을 마쳤다. 황선홍과 이을용은 K리그 프로팀에서 지도자의 길을 걷고 있는 중이다. 과거의 패기를 여전히 간직한 채 현역에서 후배들을 이끌고 또 경쟁을 펼치고 있는 두 선수를 짚어봤다.

 
 
궂은 날씨와 지지부진한 경기흐름, ‘김남일·설기현 없었으면 암울하게 종료 됐을 경기’
 
인천 유나이티드의 지난달 24일 승리는 올 시즌 인천의 첫 승리이자 인천축구전용경기장 개장 첫 승이었다. 그리고 인천에 새롭게 합류한 김남일, 설기현의 건재함을 확인할 수 있는 자리이기도 했다.
24일 경기에서 김남일과 설기현은 베테랑 선수들이 그려낼 수 있는 이상적인 그림을 만들어냈다. 첫 번째 골은 설기현의 공격 패턴을 익히 알고 있는 김남일의 센스가 돋보이는 골이었다. 후반 8분 김남일은 오프사이드 트랩을 가동시키고 있는 대전 시티즌 수비진 뒤편으로 롱패스를 꽂았다. 그리고 설기현은 김남일이 깊숙이 찔러놓는 패스를 능숙하게 터치해 골문을 흔들었다.
설기현은 “남일 형은 나를 잘 알아 그런 패스를 넣어줄 준비가 되어있다”는 말로 평소에도 염두하고 있던 패턴임을 밝혔다. 설기현은 팀 분위기 상승으로 얻어낸 패널티킥 또한 자신이 직접 마무리해 대전의 추격을 저지했다.
경기 후 두 선수의 표정에는 그간 짊어졌던 부담감을 한결 덜어냈다는 홀가분함이 엿보였다.
승리 소감을 묻는 질문에 김남일은 “설기현이 골키퍼와 일대일 기회가 났는데 막힐까봐 불안했다. 그런데 골망이 흔들리는 걸 보고 ‘아 됐다’ 하는 안도감이 들었다”고 말했다. 이어 “기현이의 골은 팀을 구했을 뿐 아니라 나를 구한 골이다”는 말로 마음고생이 있었음을 고백했다.
 
“남일이 형이 10골 만들어 준다고 했다”
김남일은 “고사를 지낸 것이 효과가 있나보다”며 너스레를 떠는 와중에도 “선배에게 몰리는 부담과 압박은 당연하다. 심리적인 측면이나 경기력 면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을 하겠다”고 전하면서 구단과 팬들의 시선에 맞서겠다는 각오를 보였다.
설기현은 팀 3연패가 야기한 부끄러움을 언급하기도 했다. 설기현은 “선수들이 마음고생을 너무 많이 하고 있었다. 후배들 보기 창피했다. 많이 미안하고 부끄러웠다”고 말하면서 “남일 형과 후배들에게 많은 이야기를 해주고 있다. 이야기를 해준다고 바로 경기력으로 나오는 것은 아니겠지만, 많은 노력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두 선수가 몸소 실감하고 있는 만큼 인천이 두 선수에게 거는 기대는 상당했다.
올 시즌 도약을 목표로 삼은 인천과 허정무 감독은 팀 조직력 강화를 위해 설기현과 김남일을 예의주시했다. 월드컵과 A매치를 거친 경험, 많은 위기상황을 돌파한 노하우가 팀 전력에 도움이 될 것이라 판단해서다. 현재 K리그를 주름잡는 선수들 못지않은 대우로 두 선수 영입에 성공했다. 구단과 홈팬들은 김남일과 설기현의 가세를 기뻐하면서 팀 성적 상승과 흥행 모두를 꿰차길 기대했다.
 
“골키퍼 1:1 상황, 설기현 골 못 넣은 줄 알았다”
하지만 인천의 시작은 주춤했다. 구단 경영악화로 선수단 급여 지급이 늦어지는 초유의 사태가 터졌고, 유니폼 디자인부터 선수단 운영에 관련해서는 허정무 감독의 좁아진 입지가 드러나기도 했다. 설상가상으로 3연패를 기록하자 구단 안팎에서는 “대전과의 경기에서 결과가 나쁘면 허정무 감독이 위험할 수도 있다”는 소문이 돌기까지 했다.
팀 상황의 불안함 때문인지 컨디션 난조 때문인지 김남일과 설기현도 팀 내 에이스와는 다소 거리가 있는 경기력으로 팬들을 불안하게 했다. 설기현의 표면적인 이유는 동계훈련 도중 입은 부상 때문이었고, 김남일의 경우는 전 소속팀 ‘톰 톰스크’(러시아)에서 선발 출장을 자주 하지 못해 생긴 실전 감각 저하가 이유였다.
결국 인천에 쌓인 악재를 날려버린 것도 김남일과 설기현이었다. 갈구했던 첫 승으로 인천 선수들은 월드컵 16강 진출에 버금가는 기쁨이라는 듯 서로 얼싸안았고 허 감독 또한 전력 재정비를 보다 안정된 위치에서 할 수 있게 됐다. 허 감독은 두 선수에 대한 칭찬을 잊지 않으면서도 “보다 좋은 경기내용을 보여줄 수 있었다. 실점을 하고 나서 흔들리는 모습이 안 좋았다. 벤치 입장에서 교체카드를 잘못 사용했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는 냉정한 분석으로 두 번째 승리를 겨냥했다.
경기력이 올라올수록 김남일의 날카로운 패스력과 중원을 장악하는 묵직함, 설기현의 측면 돌파와 골 결정력은 더 강력해질 것이다. ‘왕년의 스타’들, 2012 K리그에서 끝자락 불꽃을 태울 준비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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