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나코 왕실 ‘신의 한 수’ 박주영 병역 의무 10년 연기
3백만 유로 AS모나코 웃고, 아스널 울고
2012-03-26 이광영 기자
병역을 피하는 방법=‘합법적’인 이민?
[일요서울 | 이광영] 대한민국 대표공격수 박주영(27·아스날)이 병역 의무를 10년 연기했다. 병무청 관계자는 16일 “영주권 제도가 없는 모나코에서 10년 장기 체류 자격을 얻은 박주영이 입영 연기를 요청 해왔다. 병역법상 문제가 없고 요건이 됐기 때문에 2022년 12월 31일까지 연기를 허가해줬다”고 밝혔다. 이로써 박주영은 병역면제혜택이 주어지는 올림픽 메달에 목을 맬 필요가 없어졌다. 또 병역 의무의 압박에서 잠시 벗어나 안정적인 해외활동이 가능해졌다.
하지만 한국남자에게 군대 문제는 굉장히 민감한 사안이다. 팬들의 반응은 엇갈리고 있고 동료선수들과 국가대표팀 감독까지 이에 대해 언급하며 연일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정치권에서도 언급할 정도다. 천정배 민주통합당 의원은 17일 자신의 트위터에 “솔직히 무슨 법이 이리 돼있는지 납득이 안 된다. 이런 합법적 구멍을 막을 입법이 있어야 할 것 같다”는 글을 올렸다. 이처럼 박주영의 ‘합법적’인 결정이 불러온 파장과 논란이 되는 이유를 살펴봤다.
박주영이 병역 의무를 10년 연기하면서 희비가 엇갈린 두 구단이 있다. 웃는 구단은 AS모나코, 우는 구단은 아스널이다. 프랑스 <레퀴프>는 20일 “AS모나코가 아스널로부터 박주영의 이적료 300만 유로(약 45억 원)를 추가로 더 받게 됐다”고 보도했다. 박주영은 이미 지난 여름 350만 유로(약 52억 원)의 이적료로 아스널로 이적했다. 하지만 계약서에는 2년 내에 병역을 해결할 경우 추가로 300만 유로를 더 지불해야 한다는 조항이 있었다. 결국 박주영과 모나코의 윈-윈 전략에 아스널만 독박을 쓰게 된 상황이다.
‘300만 유로’에 발목 잡힌 벵거
이적을 선택한 벵거 감독의 입장이 난처해졌다. 지난해 8월 이적 이후 박주영이 현재까지 출전한 경기는 칼링컵 3경기(1골), 챔피언스리그 2경기, 22라운드 맨유와 리그경기 10분여를 뛴 것이 전부다. 게다가 얼마 전 벵거는 박주영을 2군으로 강등시키기도 했다. 사실상 전력 외 자원으로 판단한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아스널이 박주영 때문에 모나코에 추가 이적료 300만 유로를 지불해야 한다는 점은 팬들과 아스널 운영진에게 비난 받을 수밖에 없는 부분이다. 게다가 아스널은 다음시즌 포돌스키(쾰른), 얀 음빌라(렌)와 루이스 홀트비(샬케04) 등 선수들의 영입을 위해 막대한 자금이 필요한 상태다.
박주영은 올 시즌 종료 후 임대 또는 이적할 가능성이 컸다. 벵거 감독도 임대에 긍정적인 반응이었다. 하지만 상황이 예전과 달라졌다. 박주영을 타 팀으로 이적시킬 경우 아스널은 이전 발생한 손실액을 모두 채워 넣으려 할 것이고, 10년간 병역이 연기된 박주영의 몸값이 올라갈 확률이 높다. 이렇게 되면 박주영을 쉽게 타 팀으로 보내기가 힘들어진다. 여러모로 진퇴양난에 빠진 벵거 감독이다.
이영표 ‘옹호’ 발언…최강희 감독 ‘소신’ 발언
대표팀 전 선배와 동료들은 입을 모아 박주영의 편을 들었다. 박주영의 대선배 이영표(35·밴쿠버)는 18일 최근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박주영의 입장을 옹호하는 의견을 피력하기도 했다. 이영표는 “주영이가 병역을 기피한 건 아니지 않느냐”며 반문한 뒤 “이는 옳거나 그름의 문제가 아니다. 주영이가 지금 당장 군대에 가서 나라를 위해 할 수 있는 건 없다. 주영이는 축구를 했을 때 나라를 위해 할 수 있는 게 가장 많은 친구”라고 주장했다. 이어 “비난하는 사람들은 생각을 분명히 해야한다. 만약 자신의 동생이 같은 결정을 내렸을 때, 이를 비난할 수 있다면 주영이를 비난해도 괜찮지만 아니라면 주영이를 욕해서는 곤란하다”고 단호히 말했다.
경찰청에서 군 복무 중인 김두현(30)과 염기훈(29)도 18일 박주영에 대한 솔직한 마음을 털어놨다. 김두현은 “주영이 입장에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다. 병역을 미뤘으니 국위를 선양할 기회가 늘었다”며 “책임감을 더 많이 느낄 것이다. 팬들도 따뜻한 마음으로 응원해줬으면 좋겠다”는 견해를 밝혔다. 또한 염기훈은 “솔직히 부럽다. 그래도 주영이 개인적으로는 잘 된 일이다”라고 언급했다.
최강희(53) 축구 대표팀 감독은 옹호보다는 소신있는 발언으로 주목받았다. 최 감독은 18일 향후 박주영의 대표팀 발탁 여부에 “그 얘기는 하지 말자. 머릿속이 복잡하다”며 “우리나라에서 군대는 대통령도 떨어질 만큼 민감한 문제다. 내가 어떻게 얘기해도 논란이 된다”며 신중한 모습을 보였다. 이어 “일반인이 이런 방법으로 병역을 연기했다면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박주영은 공인이기 때문에 파급력이 크다”며 “당연히 박주영의 병역 연기가 대표팀 선발에 참고가 될 수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병역회피 ‘꼼수’VS합법이다…네티즌 공방
축구 팬들의 의견은 극과 극으로 갈리고 있다. 반기는 쪽은 먼저 박주영의 발목을 번번이 잡아왔던 군 문제를 해결한 부분에 대해 기쁨을 나타냈다. 네티즌 A는 “박주영과 한국 축구 모두에게 축하할 일이라 생각한다. 모나코로서는 신의 한 수 인 듯”이라고 했고, 네티즌 B는 “박주영이 불법을 저지르는 것도, 병역을 회피하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며 “병역 부담을 털고 멋진 모습을 보여줄 것이라 기대한다”는 반응을 나타냈다.
반대 여론도 만만치 않다. 악용될 소지가 있고, 군 문제에 민감한 국민 정서상 인정할 수 없다는 주장이다. 네티즌 C는 “불법은 아니지만 편법에 가깝다고 본다. 이와 같은 사례가 합법적 병역 면제를 위한 도구로 악용되지 않을까 우려된다”고 말했다. 또 네티즌 D는 “법망을 교묘하게 빠져나갔다. 그동안 줄곧 현역으로 가겠다고 약속해놓고 거짓말을 했다. 괘씸하다”며 못마땅해 했다.
‘병역 기피’ 논란 확산…‘합법’이면 문제없나?
박주영의 병역 연기를 놓고 논란이 되는 부분은 5가지다. 먼저 박주영은 10년 장기체류 자격을 얻어 병역연기를 확정 받았다. 그러나 해외장기체류는 주로 ‘이민을 준비하기 위함’에 해당한다. 박주영의 경우 전혀 다른 취지의 법을 이용한 꼼수라는 논란을 피하지 못한다는 뜻이다. 또한 박주영은 학업을 통해 병역연기를 해왔고, 장기체류 자격을 통한 연기 신청을 나중에 했다는 부분에 대해서도 논란을 일으킨다. 박주영은 “2011년 7월 병역법을 검토하는 과정에서 장기체류자 자격으로 병역을 연기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는 해명을 했지만 현역 면제를 노린 연기신청 기간 조정이었을 수도 있다는 석연찮은 부분이 있다.
이 같은 사실을 왜 지금이 돼서야 언론에 공개했냐는 의문도 있다. 박주영 측은 “아스널과 AS모나코 사이의 계약이 끝날 때까지 이 사실을 비공개하기로 해 언론에 알리지 않았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이로 인해 박주영은 그동안 자신이 병역연기 상태였음에도 국민들 앞에서는 병역을 위해 한국에 들어올 것이라는 마음에 없는 ‘거짓말’을 한 셈이 됐다. 박주영은 이미 지난해 8월 병역 연기 허가를 받았다. 하지만 10월 영국의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입대는 피할 수 없다. 현재 다른 방법이 없기 때문에 2년 안에 입대해야 하고 군복무 문제는 내가 아스널을 선택한 이유다”라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박주영이 “병역 면제를 받을 생각이 없으며 분명 훗날 병역을 이행할 것”이라고 입장을 밝힌 부분이다. 일부 국민들은 이를 과연 믿을 수 있냐는 부정적 의견을 드러내고 있다. 박주영이 10년 병역연기를 받은 상태에서 병역 이행에 대한 선택권이 일방적으로 자신에게 달린 이상 누군가가 강요할 수도 없는 상황이라는 것이다.
박주영의 전례를 들어 악용할 소지도 다분하다. 이제 박주영처럼 병역을 미루려면 영주권 제도가 없는 나라에서 장기 체류권을 받으면 된다. 이런 사항에 해당하는 나라는 모나코뿐만이 아니다. 유럽에서는 벨기에가 영주권 제도가 없는 국가다. 벨기에 리그에서 뛰는 선수에게는 4년 동안 1년 단기 체류권을 준다.
그러나 4년 이상 뛰면 무기한 체류권을 받을 수 있다. 유럽 빅리그 진출을 원하는 유망주의 경우 벨기에를 거치면 유럽 축구에 적응하는 동시에 병역까지 해결하는 길을 찾을 수 있다.
유럽 이외 국가 중에서는 모로코, 리비아, 알제리 등 북아프리카 국가와 아시아의 이란, 오세아니아의 솔로몬제도도 영주권 제도가 없다. 아프리카의 에티오피아는 일정 금액 이상을 투자하는 사업가에게 체류권을 주기도 한다.
박주영이 이 같은 논란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우선 자신의 정확한 병역 이행시기를 밝혀야할 것으로 보인다. 이미 ‘병역면제는 없을 것’이라고 확실히 의견을 밝혔기 때문에 더는 시간을 끌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또 그동안 병역연기 상태 중이었음에도 마치 자신은 아스널과의 계약 종료 후 입대할 것처럼 얘기해 국민을 속일 수밖에 없었던 부분에 대해서도 직접적인 사과를 해야한다. 합법이라는 테두리안에서 병역 기피자로 낙인 찍힐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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