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키리크스 원문 확보 전쟁

“말 하나 잘못 새나가면 끝장이다”
의원 보좌관들 발등에 불똥

2010-12-14     전성무 기자

폭로전문 사이트 ‘위키리크스’ 파문으로 전 세계가 들썩이고 있다. 이 사이트의 설립자 줄리안 어샌지가 최근 영국 경찰에 성폭행 혐의로 체포되면서 추가 폭로가 예상되는 상황. 앞서 어샌지는 자신이 체포됐을 경우 전 세계에 배포된 전문파일의 암호를 공개해버릴 것이라 엄포를 놓은 바 있다. 국내 정치권에도 파장의 물결이 전해지고 있다. 정치인들의 비공개 발언록을 담은 내용이 위키리크스 외교 전문에도 포함됐을 경우 엄청난 후폭풍이 일어날 것으로 보인다. 자칫 정치 생명에 치명상을 입을 수 있기 때문이다. 위키리크스로 촉발된 정치권의 긴장감을 따라가 봤다.

위키리크스의 미국 외교 전문 공개로 인해 정치인들이 덜덜 떨고 있다. 이미 공개된 전문에 현직 외교 고위 당국자들이 발언한 내용이 하나의 가감도 없이 실명으로 거론되고 있기 때문이다.

앞서 위키리크스가 공개한 미 국무부 외교전문에는 천영우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이 지난 2월 캐슬린 스티븐스 주한 미 대사에게 “내가 만난 두 명의 중국 고위 당국자는 통일 한국이 중국에 적대적이지 않는 한 중국은 미국 편향적인 한국 주도의 한반도 통일이라도 개의치 않을 것”이라며 “중국 공산당의 젊은 리더들은 더 이상 북한을 유용하거나 신뢰할 만한 동맹으로 보지 않는다”고 말한 것으로 나와 있다. 또 한국이 통일을 위해 중국에 경제적 유인책을 고려하고 있다는 주한 미 대사관의 분석도 등장한다.

위키리크스는 또한 주한 미 대사관의 보고 전문을 공개하며 “현인택 통일부 장관이 ‘현재는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체제를 확고하게 장악하고 있지만 2015년 이후까지 수명을 유지하지는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고 전했다.

또 위키리크스가 공개한 미 국무부 외교 전문에는 올해 1월 유명환 외교통상부 장관이 “한국을 방문한 로버트 킹 미국 대북인권특사에게 해외에 근무하던 다수의 북한 고위 관리가 최근 한국으로 망명했다”고 밝혔다고 폭로했다.


‘정세 분석’ 보고서 상당부분 보고됐다

이 같은 내용이 위키리크스 홈페이지를 통해 공개되면서 국내 대북정세는 극도의 긴장감이 감돌고 있다. 어샌지의 체포로 인해 전 세계 6만 여명이 이미 다운로드한 추가 폭로파일의 256비트 암호가 공개된다면 국내 정치권에도 핵폭탄 급 위력을 발휘할 것으로 보인다.

국회는 국내는 물론, 해외 주요국가에서 파견된 사정기관 정보원들이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곳이다. 이 때문에 미국 대사관 관리들이 한국 정치인들과 만나 비공개적으로 수집한 정보가 추가 공개돼 그 발언 내용이 알려질 경우 추후 엄청난 후폭풍을 맞아야 할지 모르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각국 대사관 직원들이 주재국의 정권과 정치, 향후 대선 전망을 상세히 기록한 정세 분석 보고서를 본국에 제출하는 것은 암묵적으로 알려진 사실. 우리나라 외교당국도 이미 주한 미 대사관 측에서 국내 정치인들의 비공개 발언 등을 종합해 작성한 보고서가 상당한 것으로 보고 있다. 전문에는 대부분 발언자의 실명을 명기하고 있다.

발등에 불이 떨어지자 여야 정치인들은 보좌진들에게 위키리크스 원문 확보 지시를 내린 것으로 알려졌다. 미 정부나 대사관 직원을 만나 대외비 문건에 대한 내용을 언급했다거나 정보제공성 발언을 한 사실이 문건에 포함됐을 경우 처지가 난감해 지기 때문이다.

정치권은 또 위키리크스가 확보한 한국과 관련된 전문에 2007년 대선 주자들에대한 내용도 포함된 것으로 알려지면서 이 부분에도 주목하고 있다. 주한 미 대사관이 이명박, 박근혜, 손학규, 정동영 등 거물급 정치인들에 대한 평가가 공개되면 해당 정치인은 물론, 우호적 관계를 유지해온 미국 역시 관계가 껄끄러워질 수밖에 없다.

미국 정부가 한국의 유력 대선주자에 대한 평가가 2012년 대선에도 큰 영향을 줄 수 있어서다. 미국 정부로부터 호평을 받은 정치인은 추후 대선 선거 전략에 적극 활용할 것이라는 것은 불보듯 뻔하다.


BBK사건 의혹 풀리나?

이와 함께 2007년 대선 이슈였던 ‘BBK와 김경준의 비밀’도 풀릴 수 있다는 시각도 나와 주목된다. 미국 교도소에 수감 중이던 김씨의 귀국은 당시 한나라당의 주도하에 이뤄진 기획물이었다는 민주당의 주장을 미국 정부가 파악한 실상보고를 통해 진실이 드러날 수도 있다는 것이다.

BBK사건의 핵심인물 김경준씨가 2007년 대선 경선 전에 접촉한 인사가 거명된다면 현재의 여권 인사들에게 상당한 타격을 줄 수 있다. 정치권은 촉각을 곤두세우며 사태의 추이를 지켜보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한편 한·미 양국은 ‘위키리크스' 파문 직후부터 앞으로 공개 가능성이 있는 전문 내용과 그에 대한 대응책 마련에 나선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위키리크스가 확보한 주한 미 대사관의 전문은 모두 1980건으로, 대선이 있던 2007년 전문은 480건, 2008년 367건, 2009년 690건, 2010년 102건이 있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전성무 기자] lennon@dailypo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