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평도 포격에 여야 잠룡들 '움찔'
박근혜·손학규 희비 쌍곡선
2010-12-07 홍준철 기자
북한의 연평도 포격 후폭풍이 정치권으로 옮아가고 있다. 북한의 갑작스런 포격으로 남북 대치상황이 엄연한 현실이고 자칫 국지전이 일상화될 수 있다는 점에서 온 국민의 불안감이 높아지고 있다. 북풍이 차기 대권에 화두가 될 것으로 점쳐지면서 대권을 꿈꾸는 잠룡들도 안보와 국방의 필요성을 강조하면서 ‘안정적 지도자’로서 이미지 심기에 나서고 있다. 잠룡군중 부동의 1위를 달리고 있는 한나라당 박근혜 전 대표는 안보정국을 맞아 이례적으로 강경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반면 ‘청와대 대포폰 파동’과 관련 국정조사와 특검을 요구하며 ‘100일 투쟁’을 계획했던 민주당 손학규 대표는 연평도 포격으로 한풀 꺾인 모습이다. 반면 정동영 최고위원은 ‘햇볕정책’을 두고 손 대표와 갈등을 빚는 등 잠룡들 간 주도권을 잡기위해 치열한 ‘수싸움’이 전개되고 있다.
‘연평도 포격’에 가장 발 빠르게 대처한 것은 박근혜 전 대표였다. 박 전 대표는 연평도 포격이 일어난 바로 다음날인 11월 24일 당내 이공계 의원들과 오찬에 앞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모든 수단과 방법을 다 동원해 자위권 차원에서 대응해야 한다”면서 “도발에는 반드시 큰 댓가가가 따른다는 것을 분명하게 보여줘야 한다”고 단호한 입장을 밝혔다. 합동분향소를 찾은 다음날인 25일에는 “안보를 튼튼히 해 다시는 이런 일이 생기지 않도록 하겠다”고 재차 강조하기도 했다.
박 전 대표의 이례적인 강경 대응 주문에 친박 진영에선 2006년 10월 9일 북한의 핵실험 당시를 반면교사로 삼고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당시 이명박 전 서울시장과 경합을 벌이던 박 전 대표는 북핵실험 이후 지지율이 역전되고 급기야 10%P대로 격차가 벌어졌다. 대선이 있던 2007년 7월엔 아프가니스탄 피랍 사건까지 터지면서 급기야 대권을 이 전 시장에게 물려주게 됐다. 북핵실험으로 인해 국민들의 안보에 대한 위기의식이 팽배해지면서 ‘여성 후보’라는 점과 ‘군대도 안갔다 온 후보’라는 점이 위기국면에서 박 전 대표에게 불안 요소로 작용한 게 아니냐는 분석이 나왔다.
‘여성 리더십’ 불식 박근혜 대북 초강경
한길리서치 김창권 대표 역시 이런 지적이 여전히 유효하다고 내다봤다. 김 대표는 “안보가 강조될수록 여권 후보가 불리할 수밖에 없다”며 “박근혜, 김문수 등은 군대를 갔다오지 않은 점이 걸림돌로 작용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또한 김 대표는 “박 전 대표가 초기 강경 대응은 잘했다고 본다”면서도 “하지만 여성이라는 점과 군대를 경험하지 못한 후보라는 지적으로 인해 ‘여성 대통령 시기상조론’에 직면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분단된 한반도의 독특한 정치적 환경으로 인해 ‘군면제’와 ‘위기관리 능력’은 차기 총선뿐만 아니라 대선에서 핫이슈로 부각할 수밖에 없다는 분석이다.
반면 친박 의원실의 한 인사는 이런 주장에 대해 반박한다. 이 인사는 “2006년 북핵실험과 2007년 아프가니스탄 피랍사건으로 인해 위기관리능력에 대한 중요성이 고조될 당시 박 전 대표가 초기 대응을 적절하게 못한 것은 사실”이라며 “하지만 이번 연평도 포격이 발생하자마자 강경 기조로 나가면서 모든 언론이 박 전 대표의 입장을 따라왔다. 이제는 국민들이 여성 대통령이 시기상조라는 지적보다 박 전 대표의 확실한 국가관을 알게 되면서 지지율이 오히려 올라갈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는 과거 박정희 대통령 서거 사실을 전해들은 직후 박 전 대표가 “전방은 괜찮습니까?”라고 첫 마디를 던졌다는 점, 그리고 지난 2006년 지방선거에서 칼에 맞은 이후에 “대전은요”라는 한 마디로 선거 판세를 뒤집었다는 예를 들며 박 전 대표의 강인한 이미지가 점차적으로 대중들에게 각인되고 있다고 덧붙였다. 박 전 대표가 연평도 포격으로 인해 여타 잠룡들에 비해 득이 많다는 주장이다.
한편 김문수 경기도지사로선 연평도 사태가 결코 우호적이지 않은 상황으로 흘러가고 있다. 김 지사는 연평도 포격 직후인 11월 26일 연평도를 방문한 자리에서 “주민들이 모두 섬을 떠나는 것을 보고 이래서야 국가방위가 되겠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며 “어떤 국가든 주민이 있어야 지킬 수 있다”고 강조했다. 또한 트윗터를 통해 “대한민국의 주권을 짓밟고 국민의 생명을 앗아가는 침략행위에는 단호한 응징을 통해 재발을 막아야 한다”며 ‘단호한’ 모습을 강조했다.
손학규 잡는 것은 북한? 불운 연속
하지만 한길리서치의 김 대표는 “군 면제인 김 지사 역시 강경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지만 안보 의식이 높아질수록 ‘대북문제’, ‘병역 문제’가 화두로 되면서 대권 가도에 적신호로 작용할 수 있다”며 “특히 이명박 대통령이 군 면제로 국민들로부터 곱지 않은 시선을 받고 있는데 재차 군 면제자가 대통령이 될 수 있는 환경 조성은 어려울 것”이라고 내다봤다.
특히 한나라당 안상수 당 대표가 연평도를 방문해 포격받은 ‘보온병’을 포탄으로 오인해 연출 사진을 찍은 사건이 알려지면서 여권내 군면제자들의 입지를 더욱 좁게 만들었다. 병역면제자인 안 대표는 ‘보온병’과 ‘포탄’을 구별못하는 인사로 취급받았고 덩달아서 면제자인 이 대통령을 비롯해 김 지사 등이 유탄을 맞고 있기 때문이다. 반면 군대를 다녀온 이재오 특임장관이나 ROTC 출신으로 중위 제대한 오세훈 서울시장 등은 병역 문제에 대해선 다소 홀가분한 입장이다.
집권 여당 잠룡군들의 희비가 엇갈리는 사이 민주당 잠룡 중 1위를 달리고 있는 손학규 전 대표의 경우엔 제대로 한방 먹은 모습이다. 지난 11월 23일 연평도 포격이 시작되기 전 ‘100시간 장외투쟁’을 선언하고 대포폰 의혹과 관련 국정조사와 특검을 요구하고 나섰다. 하지만 서울광장에서 천막 농성이 시작된 지 하루만에 연평도 포격으로 국회로 회군해야 했다. 무엇보다 손 대표는 강경한 대여 투쟁으로 인해 지난 11월 22일 여론조사기관 ‘리얼미터’조사에서 4주간 하락했던 지지율이 소폭이나마 반등하면서 지지율에 탄력을 받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연평도 포격으로 인해 대여 강경투쟁을 지속하려던 계획마저 수포로 돌아갔다.
손 대표는 박 전 대표와 마찬가지로 북풍으로 이미 2006년 10월 9일 눈물을 삼켜야 했다. 경기도지사를 퇴임한 손 대표는 곧바로 ‘100일 민심대장정’을 떠났다. 정치권 및 국민의 관심은 뜨거웠다. 100일 민심 대장정을 마친 손 대표는 102일째인 지난 10월 9일 서울역 광장에서 대규모 행사를 통해 100일 대장정을 화려하게 마무리할 준비를 했다.
이명박, 박근혜 양강 구도를 깨고 대선주자로서 당내외 입지를 넓힐 수 있는 기회였다. 하지만 그날 북한이 핵실험을 하면서 100일간 민심대장정 노력이 무색해졌고 지지율 반등 역시 기대하기 힘들었다. 한나라당 한 관계자는 “손학규 대표를 잡는 것은 박근혜도 이명박도 아닌 북한”이라는 냉소적인 반응을 보일 정도였다. 급기야 북핵 실험으로 인해 손 대표는 이명박 박근혜 양강 구도를 깨지도 못하고 오히려 한나라당 탈당으로 이어지면서 향후 대권 가도에 가시밭길을 예고했다.
연평도 포격이 인위적으로 어찌할 수 없는 정치적 불운이라면 ‘햇볕정책’에 대한 정체성은 친노와 구 민주계로부터 비판을 받으면서 사면초가에 빠진 모습이다. 손 대표는 ‘연평도 포격’을 두고 여야간 ‘햇볕정책’ 공방이 오가는 와중에 한국방송기자클럽 초청 토론회에서 “햇볕정책이 만병통치약은 아니다”라고 비판적인 태도를 보였기 때문이다.
정동영 “햇볕정책은 가마솥”
손 대표의 이런 발언이 있은 직후 정동영 최고위원은 “햇볕정책은 ‘한반도 평화’라는 밥을 짓는 가마솥이다, 밥 없이 살 수 있느냐”며 “지도부가 확실하게 정리할 필요가 있다”고 포문을 열었다. 이어 정 최고위원은 “햇볕정책의 기본 철학은 민주당의 정체성으로 햇볕정책이 언제 안보를 소홀히 한 적이 있느냐”라며 “우리 정체성에 대한 확신을 갖고 좀 더 당차고 자신감 있게 국민 앞에 임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정 최고위원의 발언은 한나라당을 탈당한 전력을 갖고 있는 손 대표를 우회적으로 비판하고 있는 셈이다. 친노 성향의 이인영 최고위원과 구민주계 박주선 최고위원까지 ‘햇볕정책 옹호론’이 나오자 손 전 대표는 자신의 말을 바꿔야 했다. 자칫 ‘햇볕정책’을 두고 당내 정체성 논란에 적자 논란까지 더해질 경우 집토끼를 잃을 수 있기 때문이다. 손 대표로선 ‘연평도 포격’으로 대여 강경투쟁 노선이 헝클어지면서 대권 가도마저 순탄치 않게 흐르고 있는 셈이다.
반면 야권 후보중 1위를 달리고 있는 국민참여당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장관은 지난 11월 24일 북한의 연평도 포격에 대해 “정말 나쁜 짓”이라고 말했다. 유 전 장관은 이날 자신의 트위터에 올린 글에서 “우리 정부의 대북정책이 아무리 불합리한 것이라 할지라도 민간인들이 함께 사는 연평도의 군시설물과 민가에 폭탄을 퍼부은 북의 소행은 결코 정당화할 수 없을 것”이라며 이같이 밝혔다. 그는 “평화의 소중함을 다시금 느끼며, 더 이상의 군사행동이 없기를 바란다”고 강조했다. 육군병장으로 만기 제대한 유 전 장관입장에선 다소 원론적인 반응을 보인 셈이다.
여야 잠룡들 입장에선 북한의 국지전 성격인 연평도 포격이 ‘일회성’으로 끝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언제든지 북풍이 불 수 있다는 점에서 예의주시하고 있다. 무엇보다 천안함 사태에 이어 연평도 포격으로 남북 대치 상황이 현실로 인식되면서 국민들의 안보에 대한 인식이 바뀌고 있기 때문이다. 한길 리서치 김창권 대표는 “전쟁 경험이나 국지전 경험이 없는 20~30대뿐만 아니라 40~50대 연령대까지 폭넓게 안보 의식에 변화가 일고 있다”면서 “병역, 안보, 국가관 등 잠룡들의 확실한 가치관이 요구되고 발 빠른 대처를 해야 한다”며 새로운 리더십이 요구되고 있음을 강조했다.
[홍준철 기자] mariocap@dailypo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