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명숙 "9억 수수설은 정치탄압" 울먹

2010-12-07     박유영 기자
건설업체 H사 한모 대표로부터 불법 정치자금 9억여원을 수수한 혐의로 기소된 한명숙 전 총리가 첫 공판에서 혐의사실을 전면 부인했다.

6일 서울중앙지법 형사22부(부장판사 김우진) 심리로 열린 공판에서 한 전 총리는 모두진술을 통해 "검찰의 공소사실은 전혀 사실이 아니다. 불법 정치자금 생각을 품어본 적도 없다"고 말했다.

또 "왜 하지 않은 일을 하지 않았다고 주장해야 하는지 모르겠다. 지난번 무죄 판결에 대한 보복 재판이자 정치탄압"이라며 "두번이나 부당한 기소를 겪으니 김대중, 노무현 전 대통령이 얼마나 고통스러웠을지 알겠다"고 울먹이기도 했다.

이에 검찰은 "표적수사, 보복수사라고 하는데 적법한 절차에 따라 수사하고 있다"며 "실체적 진실을 따지자는 것이니 정치적 논쟁은 하지 말자"고 반박했고, 재판부도 "본안에 집중해 달라"고 당부했다.

본격적으로 시작된 증인신문에서는 한 대표가 돈을 마련할 당시 간접적으로 "한 전 총리에게 갈 돈"이라고 밝혔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이날 검찰 측 증인으로 나온 H사 경리부장 출신 A씨는 "한 대표가 세번에 걸쳐 3억원씩 마련하라고 지시할 당시 '의원님(한 전 총리)께 갈 돈'이라고 언급했고, 세 번 중 한 번은 장부에 '한'이라고 기재하기도 했다"고 진술했다.

검찰은 그 증거로 H사의 채권회수목록과 한 대표의 개인통장 및 차명계좌 입출금 내역을 기록한 비공식장부를 공개했다. 해당 채권회수목록의 내역, 금액, 비고란에는 각각 '의원', '5억원', '접대비' 라는 단어가 적혀 있었다. 이와 관련 A씨는 "한 대표가 아는 의원이 한 전 총리 밖에 없어 한 전 총리인가 보다라고 생각했다"고 덧붙였다.

A씨는 이어 "거액을 한꺼번에 출금하면 의심받을 것을 우려해 H사 법인계좌에서 직원들의 계좌로 분산 입금한 뒤 출금하는 방식으로 돈을 준비했다. 달러 역시 직원들 명의로 분산 환전했다"며 "마련한 현금과 미화는 직접 구입한 여행용 가방에 한 대표와 함께 나눠담았다"고 말했다.

이에 한 전 총리 변호사 측은 "H사의 자금흐름을 알기 위해 H사의 금융거래정보와 과세정보가 필수적인 자료"라며 "H사의 차명계좌 일부에서 한 전 총리의 정치자금으로 흘러들어갔다는 검사의 주장을 탄핵하기 위해서도 관련 정보들은 꼭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검찰은 "세세한 정보까지 넘겨줄 수 없다"며 반박했지만, 재판부는 해당 신청을 받아들여 다음 기일까지 H사 금융거래정보 등을 한 전 총리 측에 공개하라고 지시했다.

이밖에 한 전 총리를 대신해 금품 등을 받은 혐의로 함께 기소된 측근 김모씨는 "현금 2500만원과 H사 법인카드를 받은 점은 인정한다"면서도 "개인적으로 받은 것일 뿐 한 전 총리의 정치활동과는 무관하다"고 못박았다.

한편 이날 재판에는 손학규, 박지원, 유시민, 이해찬, 박주선, 김근태 민주당 의원들이 참관해 한 전 총리의 재판을 지켜봤다.

한 전 총리는 2007년 3월 한모 대표가 "대통령 후보 경선비용을 지원하겠다"는 제의를 하자 승낙한 뒤, 같은 해 9월까지 세 차례에 걸쳐 현금과 미화, 자기앞수표 등 총 9억원을 챙긴 혐의로 지난 7월 불구속 기소됐다.

김씨는 2007년 2월부터 같은해 11월까지 H사와 한 대표로부터 사무실 운영 및 대통령 후보 경선 비용 명목으로 9500만원을 수수하고 버스와 승용차, 신용카드 등도 무상제공받아 사용한 혐의를 받고 있다.

한 전 총리의 다음 공판기일은 20일 오후 2시 서울중앙지법 510호에서 열리며, 이날 공판에는 H사 한 대표와 A씨가 증인으로 출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