軍, 비밀주의는 시대착오적이다

2010-11-30     박대로 기자
연평도 피격 이레째이자 서해 한·미 연합훈련 2일차인 29일 내외신 기자 200여명은 국방부의 철수 권고에도 불구하고 연평도 내에서 취재활동을 벌이고 있다.

국방부는 전날 "연평도에서 취재 중인 기자들의 안전을 위해 29일 중으로 취재기자 전원이 연평도에서 철수해 주길 바란다"고 요청한 데 이어 이날 브리핑을 통해 재차 철수를 종용했다.

군 관계자는 이날 "주민 20여명과 긴급복구를 위한 요원 100여명은 연평도 복구를 위한 필수요원"이라면서도 "기자들은 취재에 열중하다보니 위험한 걸 감수하고라도 취재하려 해 상당히 위험하다고 판단된다"고 말했다.

이어 이 관계자는 "그렇게 위험하다면 주민도 강제철수해야하는 것 아니냐"는 질문에 "주민은 일상생활 회복과 긴급복구를 위해서도 꼭 필요하다"고 답했다.

이같은 발언 뿐만 아니다. 연평도 피격 이후 군이 취재진을 불필요하며, 심지어 위협적인 존재라고 여기는 듯한 정황은 한두가지가 아니었다.

군의 이같은 태도에 대해 일부 기자들은 "취재진이 군의 미흡한 점을 들춰내니까 귀찮아서 내보내려는 것 아니냐"며 쓴소리를 하기도 했다.

연평도 피격 이후 군은 그동안 군 특유의 비밀주의에 의해 은폐돼 있던 병폐를 만천하에 드러내야 하는 처지에 놓였다.

군은 피격 직후 초동대응에 대한 문제점 뿐만 아니라, 이후 대책마련에서도 수차례 허점을 드러냈다.

지난 24일 민간인 희생자 시신 2구를 발견한 것은 군이 아닌 인천 해양경찰 특공대원들이었다.

연평도 곳곳을 강타한 포탄수조차 제대로 헤아리지 못했던 군은 국내 언론이 연이어 포탄 파편을 찾아내자 당혹스러워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심지어 지난 27일 연평도 마을 야산에서 숫자가 새겨진 북한 122밀리 포탄의 추진체 파편을 발견한 것은 외신기자였다.

녹물이 질질 흘러나오는 해안포를 수십년째 해안진지에서 방치하고 그동안 완벽태세를 갖췄다 자랑하던 군이었다.

유사시 군인들의 생명을 해칠 수도 있는 해안포 문제점을 지적한 것을 대단한 군사비밀이 유출된 것처럼 야단법석을 떠는 군당국이다.

이같은 문제점은 현지 언론을 통해 국민들에게 생생하게 타전됐다.

뒤늦게 '안전'을 이유로 취재진의 마을 외 지역 출입을 사실상 차단했지만 '뒷북'이라는 비난을 면치 못하고 있다.

이런 사정이다 보니 군 당국은 취재진의 안전을 핑계로 취재를 제한하는 데 급급한 상황이다.

천안함 사태를 전후한 각종 사고와 군수장비 도입을 둘러싼 각종 비리의 진원지가 군당국이라는 따가운 지적은 아랑곳 하지 않고 "언론이 자꾸 오버한다"며 불평하기에는 자신들의 현재 처지가 마냥 떳떳하지만은 않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국민들에게 취재진을 가리키며 "군의 사기를 떨어뜨린다"는 항변은 그들 자신의 잘못된 병폐를 호도하는 볼멘소리로 들리기까지 한다.

구태의연한 비밀주의는 더이상 군이 비빌 언덕이 아니다. 군이 진정으로 국민에게 믿음을 주기 위해서는 기자들을 몰아내기 전에 자신들의 위장막을 걷어내 투명성을 확보해야 한다.

이명박 대통령이 29일 대국민연설에서 강조한 '국방개혁'의 칼날을 군이 어떻게 받아들일지 궁금해지는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