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통제 시장에 지각변동 오나
잇단 악재에 두통 앓는 게보린 vs JYJ 덕에 날개 단 펜잘큐
종근당, 소비자 심리 파악한 빠른 대응으로 신뢰감 얻어
삼진제약, 악재 잇달아도 무대응 입장 고수로 비난 자초
[일요서울ㅣ강길홍 기자] 제약업계는 웬만해서 순위가 뒤바뀌지 않는 특성을 갖고 있다. 동아제약의 ‘박카스’는 지난 1963년 출시 이후 수십 년간 피로회복제 드링크 부문 1위 자리를 지켜왔다. 100년이 넘는 역사를 자랑하는 동화약품의 소화제 까스활명수와 동아제약의 액상감기약 판피린도 정상의 자리에서 좀처럼 내려오지 않고 있다. 의약품의 특성상 한번 각인된 제품의 효능을 소비자들이 쉽게 외면하지 않음을 보여주는 예다. 그런데 진통제 부문에서는 지각변동이 일어났다. 30여 년간 부동의 1위 자리를 지켜오던 삼진제약의 ‘게보린’이 존슨앤존슨의 타이레놀에 밀린 것이다. 특히 3위 제품인 종근당의 ‘펜잘큐’도 거침없이 게보린을 추격하고 있다. 이 같은 게보린의 추락에는 이성우 삼진제약 사장의 독단경영도 한몫했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게보린의 오만?
게보린은 잇단 악재로 연일 논란의 중심이 되면서 판매량이 감소하기 시작했다. 매년 150억 원 이상의 매출을 올리는 것으로 알려진 게보린은 지난해 3분기까지의 매출액이 86억 원 수준이었다. 게보린의 뒤를 쫓던 타이레놀은 같은 기간 105억 원의 매출을 올리며 전세를 뒤집었고, 펜잘큐도 36억 원의 매출을 올리며 게보린을 맹추격하고 있다.
게보린의 아성이 무너진 것은 이소프로필안티피린(IPA) 성분 논란에서부터다. IPA는 염증과 통증을 유발하는 물질의 합성을 막아 진통작용을 하는 성분인데, 지난 2008년 ‘건강사회를 위한 약사회’(이하 건약)가 유해성 문제를 제기한 것이다. 건약은 “IPA는 의식장애와 혼수 등의 부작용을 일으킨다”며 “미국과 캐나다 등에서 이들 성분이 시판되지 않는 만큼 국내에서도 위험성을 조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게보린은 성분에 대한 유해성이 입증되지 않았다면서 IPA 성분이 들어간 게보린을 현재까지 판매하고 있다. 이로 인해 유해성 여부를 떠나 소비자의 우려 자체를 외면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게보린의 악재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초등학생들 사이에서 조퇴를 하기 위해 게보린을 과다복용하는 방법이 쓰이고 있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이미지를 악화시켰다. 특히 지난해는 여학생들 사이에서 게보린을 과다복용하는 다이어트 방법이 퍼지고 있다는 보도까지 나오면서 삼진제약을 곤혹스럽게 만들었다. 이 와중에 삼진제약이 게보린의 광고모델에 여성 아이돌 그룹을 기용하면서 논란이 더욱 확산됐다. 그동안 게보린의 모델은 김승현, 정재환, 서경석 등 주로 중년 연예인들이 맡아왔다.
삼진제약 관계자는 “게보린을 다이어트에 이용하고 있다는 얘기는 전혀 모르는 상황이었다”며 “아이돌 모델과 다이어트 논란이 맞물리면서 어쩔 수 없이 제작한 광고를 보류했다”고 말했다.
결국 삼진제약은 지난해 12월 IPA 성분을 뺀 ‘게보린S’를 만들어 식약청의 허가를 받았고, 현재 발매시기를 조율 중이다. 하지만 기존 IPA 성분이 포함된 게보린도 계속 판매하겠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여간해서는 새로운 변화를 시도하지 않는 이성우 삼진제약 사장의 보수적인 경영 방침이 게보린에 비수가 되고 있다”는 업계 관계자의 의견도 흘러나온다.
삼진제약 관계자는 “40여 년간 똑같은 성분으로 약을 판매해 오면서 특별한 문제가 일어난 적이 없었는데, 만약 IPA에 문제가 있었다면 진작 문제가 나타나지 않았겠냐”며 “식약청의 조사가 끝나고 논란이 마무리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펜잘큐의 역습
진통제 시장의 후발 주자인 종근당의 펜잘큐는 여전히 게보린과 큰 격차를 보이고 있다. 하지만 게보린을 둘러싼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어 순위 변동도 가능하지 않겠냐는 관측이 조심스럽게 나오고 있다.
지난 2008년 건약이 IPA 성분 논란을 제기하자 종근당은 재빠르게 IPA 성분을 뺀 펜잘큐를 선보이면서 논란에서 비껴갔다. 특히 종근당은 IPA 성분이 함유된 펜잘에 대해 법적 의무가 없는 리콜을 자체적으로 실시하면서 소비자에게 신뢰감을 줬다는 평가를 받았다. 게보린과 달리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응하는 마케팅 전략을 펼친 것이다.
특히 지난해에는 인기 아이돌 그룹 JYJ를 광고모델로 기용하면서 뜨거운 반응을 얻었다. 종근당 측은 “첫 생리통을 시작하는 10대 소녀들을 장기적인 소비층으로 확보하기 위해 그들이 좋아하는 인기가수를 모델로 기용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이 같은 전략이 주효하면서 10~20대 여성들 사이에서 큰 인기를 얻고 있다. 특히 종근당의 전략대로 청소년기부터 펜잘큐를 이용한 소비자들은 의약품 선택 특성상 쉽게 제품을 바꿀 가능성이 크지 않아 장기적인 전망을 더 밝게 하고 있다.
삼진제약이 게보린을 15세 미만의 청소년이 복용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아이돌 그룹을 모델로 기용했다는 비판을 들을 때도 JYJ를 모델로 세운 펜잘큐는 복용 연령에 대한 제한이 없어 상대적으로 비판이 덜했다. 하지만 인기 가수를 모델로 사용하면서 약물 오남용을 부추길 수 있다는 비판은 피하지 못했다. 이에 종근당은 JYJ와 함께 ‘청소년 진통제 오남용 방지 캠페인’을 펼치면서 문제를 해결했고, 소비자와 소통하려는 자세를 보여줬다는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펜잘큐가 게보린과 여전히 큰 격차를 보이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이 때문에 종근당 내부에서도 섣부른 판단을 경계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JYJ를 모델로 사용하면서 얻어진 긍정적인 분위기에 대한 기대감은 감추지 않고 있다.
종근당 관계자는 “지난해까지는 게보린과 여전히 큰 격차를 보이고 있어 섣불리 추격하고 있다고 말하기는 힘들었다”면서 “JYJ를 모델로 사용한 효과도 올해 상반기가 지나봐야 서서히 실적으로 나타날 것 같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또 “후발주자로서 기존 고객을 빼앗아오는 것은 쉽지 않기 때문에 미래 고객인 젊은 층에서 인지도를 높이다 보면 장기적으로 좋은 결과가 나타나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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