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헌, 누구를 위해 종을 울리나
한국정치를 말한다 김상진 (시사평론가)
2010-11-22 정치부 기자
먼저 개헌은 일반적으로 발안, 공고, 국회의결, 국민투표, 공포 등의 절차를 갖게 된다. 이 기간을 합산하면 대략 3~4개월의 시간이 소요되며, 국민의견 수렴과 합의과정을 거치기 위해서는 훨씬 더 많은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다. 그런데 정치권은 당내 대선 경선을 1년여 앞둔 내년 봄이면 대권레이스에 돌입하게 된다. 개헌을 논의하게 되면 권력구조 문제는 가장 중요한 어젠다가 될 것은 뻔한 일이다. 따라서 대권레이스에 돌입하는 시기에 개헌을 논의하는 것은 결코 가능하지도 바람직하지도 않다.
다음으로, 개헌을 하기 위해서는 국회 재적의원 3분의 2 이상의 찬성이 있어야 하며, 국민투표에서 국회의원 선거권자의 과반수 투표와 투표자의 과반수 찬성을 얻어야 한다. 따라서 여야의 합의가 전제되어야 하며 국민적인 공감을 얻어야 가능하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한나라당 내에서도 친이계 중심의 주장에 불과하며 친박근혜계는 박근혜 의원을 견제하기 위한 꼼수가 아닌가하는 의구심의 눈길을 보내는 사람들이 더욱 많다. 야당도 손학규 민주당 대표는 ‘개헌은 정치놀음’이라고 규정하여 민주당내의 개헌 흐름을 차단해버렸으며, 선진당을 제외한 국민참여당, 민주노동당 등도 반대하고 있다. 정치권의 합의를 이끌어내기는 이미 지나간 버스에 손을 드는 격이 된 것이다.
그런데 왜 이재오 장관을 비롯한 친이계는 개헌을 화두로 던지는 것일까? 그것은 개헌은 반드시 실현시켜야할 중요한 어젠다가 아니라 밑져야 본전인 ‘꽃놀이패’로 보기 때문이다.
첫째, 개헌은 이명박 대통령의 레임덕을 지연시키기 위한 노림수이다. 정치권이 대권레이스에 돌입하면 한나라당은 박근혜 의원 중심으로 급격한 쏠림현상이 불가피하다. 따라서 개헌이라는 화두를 통해 친이계 집안단속을 하며 한편으로는 친박계를 견제하고자 하는 의도가 숨어 있다.
둘째, 개헌은 야당의 분열을 촉진시켜 국정운영에 유리한 구도를 가져가기 위한 노림수이다. 민주당 의원도 호남 출신 의원 중심으로 많은 의원들이 개헌에 심정적으로 동조하고 있으며, 이회창 총재를 비롯한 선진당은 즉시 개헌특위를 구성해 개헌을 논의하자고 하고 있다. 따라서 개헌은 4대강사업 반대 등으로 연대를 하고 있는 야당의 공세를 적절히 분산시킬 수 있는 좋은 화두이다.
사실 정치권에 개헌논의가 본격화 된 것은 2007년 4월 고 노무현 전대통령이 개헌발의를 하지 않는 조건으로 각 정당이 18대 국회에서 개헌을 한다는 당론을 추진할 것을 약속하면서이다. 따라서 한나라당과 민주당은 약속한 당론을 실행해야할 의무가 있으며, 개헌을 추진해야할 당위성도 있다. 그런데 현재의 한나라당 친이계의 개헌추진은 진정성이 없다. 정략적인 제기에 불과한 노림수를 이제 국민들도 뻔히 파악하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 취임 초인 2008년 봄 쇠고기 파동으로 대통령제의 폐해가 제기되어 권력구조 개편 논쟁이 일었다. 개헌을 하고자 했으면 임기 초기인 그 때 했어야 했다. 그런데 그 당시는 조기에 레임덕에 빠지는 것을 경계해 개헌논의 불가를 주장하고, 지금은 레임덕 지연을 위해 개헌을 말한다면 누가 진정성 있게 받아 주겠는가. 더구나 이명박 대통령은 ‘개헌을 주도적으로 할 생각이 없고 국회가 중심이 되어야 한다’고 하였다. 대통령이 주도하지 않고 어떻게 개헌이 가능하겠는가. 국회의원 절대다수의 동의를 얻어야하며 국민을 설득해 과반수의 동의를 구해야하는데 대통령이 뒤에 빠지는 개헌이 가능하겠는가. 한나라당과 친이계는 개헌논의가 진정으로 누구를 위한 문제제기인지 되돌아보아야 한다. 국민은 계파의 정략을 위해 이용되는 개헌논의를 유쾌하게 바라보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