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궁 테러 사건’ 실체적 진실은?… 뜨거운 갑론을박
사법부 겨눈 ‘부러진 화살’
극장가에 영화 ‘부러진 화살’이 흥행돌풍을 일으키면서 ‘석궁 테러 사건’에 대한 진실공방도 재점화됐다.
‘부러진 화살’은 교수 재임용에서 탈락한 김명호(55) 전 성균관대 조교수가 복직소송을 벌이다 패소하자 재판관에게 석궁을 쏜 사건을 모티브로 한 작품이다.
사법부는 부러진 화살 개봉 전부터 영화내용을 반박하는 보도 자료를 내며 파문 차단에 나섰지만 사법부에 대한 불신 분위기가 증폭될 모양새다.
개혁의 무풍지대였던 사법부를 향해 SNS 등을 중심으로 대중의 공분이 쏟아지고 있어 사법부에 시련을 예고하고 있다. 석궁 테러 사건을 둘러싼 논란을 짚어봤다.
3대 수수께끼, 석궁 발사 고의성 여부· 부러진 화살·와이셔츠 혈흔
‘부러진 화살’ 개봉 이후 사법 불신 확산…곤혹스러운 사법부
석궁 테러 사건은 성균관대 교수 재임용에서 탈락한 김 전 교수가 복직소송을 벌이다 2007년 1월 패소하자 당시 재판장이던 서울고법 박홍우 부장판사(현 의정부지법원장) 집을 찾아가 석궁을 쏜 혐의(살인미수)로 기소된 사건이다.
2007년 1월 12일 박 부장판사의 항소심 판결이 나온 뒤 사흘만인 같은 달 15일 석궁 테러 사건이 발생했다. 재판부에 따르면 김 전 교수는 2006년 11월 10일 석궁과 석궁화살을 40만 원에 구입한 뒤 박 부장판사의 집 근처에서 석궁 쏘는 법을 연습했다.
김 전 교수는 박 부장판사의 집 위치 등을 확인하는 등 범행 현장을 사전 답사하고 8만 원을 주고 구입한 회칼 1개도 석궁 가방에 넣어 다녔다. 김 전 교수는 2007년 1월 15일 저녁 6시 30분께, 석궁에 화살 한발을 장전한 채 박 부장판사에게 다가가 “항소 기각 이유가 뭐냐”고 물은 뒤 박 부장판사를 향해 석궁 한 발을 발사했다.
이 사건으로 김 전 교수는 징역 4년형을 선고받았으며 지난해 1월 출소했다. 현재 김 전 교수는 석궁 테러 사건에 관련한 사법부를 신랄하게 비판하는 내용의 서적을 집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재점화된 쟁점 셋
이 사건은 당시에도 사회적으로 큰 논란을 불러왔다. 재판관에 석궁을 쏘는 위해는 용납하기 어렵다는 주장과 사법부가 권위만 내세우며 실체적 진실을 외면했다는 주장이 팽팽히 맞섰다.
석궁 테러 사건의 주요 쟁점은 세 가지로 석궁 발사의 고의성 여부, 부러진 화살에 대한 증거 제출 여부, 박 부장판사의 와이셔츠 혈흔 여부다. 부러진 화살 영화 개봉으로 이들 쟁점에 대한 진실 공방이 다시 불붙고 있다.
김 전 교수는 “석궁은 위협을 하려고 가져 간 것으로 몸싸움 도중 우발적으로 발사됐다”고 주장했다. 상해를 입힐 고의가 없었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이에 대해 대법원 재판부는 김 교수가 1주일에 한 차례 60~70발씩 화살을 쏘는 연습을 한 점, 박 부장판사의 집 근처를 사전 답사한 점, 석궁 안전장치를 풀고 다가간 점, 박 부장판사가 석궁에 손을 댄 흔적이 없는 정황, 목격자들에게 제지당한 이후에도 ‘국민의 이름으로 판사를 처단하러 왔다’고 말한 점 등을 들어 의도를 가진 범행이라고 결론 내렸다.
범행에 쓰인 화살의 행방도 여전히 풀리지 않는 의혹이다. 김 전 교수는 박 부장판사의 아랫배에 박혔다는 ‘부러진 화살’이 증거로 제출되지 않은 점을 들어 재판이 불합리하게 진행됐다고 주장했다.
경찰의 수사보고서나 검찰 증거물에 부러진 화살이 없었던 점을 들어 일부로 증거물을 조작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한 것.
이에 대해 대법원 재판부는 부러진 화살은 사라졌지만 석궁과 남은 화살 등 증거들을 종합하면 유·무죄 여부를 판단할 수 있다는 입장을 내놨다.
이와 관련해 수원지법 정영진(54) 부장판사는 법원 내부게시판에 글을 올려 “살인사건에서 흉기가 발견되지 않으면 피해자의 시신과 의사 진단서, 목격자가 있는데 흉기가 증거물로 제시되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무죄를 선고해야하느냐”고 반문했다.
박 부장판사의 혈흔 없는 와이셔츠도 미스터리다. 사건 발생 당시 박 부장판사는 내복과 와이셔츠, 조끼를 입고 있었다. 이 중 박 부장판사의 와이셔츠에만 피가 묻어있지 않아 증거조작 의혹을 불러일으킨 결정적 쟁점으로 작용했다.
김 전 교수는 박 부장판사의 와이셔츠에 피가 묻지 않은 점을 들어 박 부장판사가 실제로 상처를 입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대법원 재판부는 처음 피해자를 목격한 경비원이 피고인을 격리시킨 다음 피해자를 옷을 들추니 시뻘겋게 피가 묻어 있었다고 진술하고 있는 점과 국립과학수사연구원 감정 결과에 따르면 당시 박 부장판사의 속옷과 내복, 와이셔츠, 조끼 모두에 동일한 남성의 혈흔 반응이 발견됐다는 점 등을 들어 김 전 교수의 혐의를 인정했다.
당시 박 부장판사를 진료한 의사는 박 부장판사의 복부 좌측 부근에 길이 2cm 정도의 창상이 발견됐다며 진단서를 제출했다.
곤혹스러운 사법부
이 같은 부러진 화살 흥행에 따른 불똥에 법원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사법부는 석궁 테러 사건 재판을 진행한 판사와 사법부를 정면으로 비판하고 있는 ‘부러진 화살’ 개봉 이후 사법 불신이 확산되고 있어 곤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판사들은 영화의 파급효과에 “사건의 실체적 진실이 왜곡돼 전달되고 있다”며 법원 내부게시판 등을 통해 의견을 개진하고 있다.
특히 김 전 교수 복직소송 항소심에서 주심을 맡았던 창원지법 이정렬(43) 부장판사가 법원 내부게시판에 당시 합의내용을 밝히는 등 적극적 해명에 나서 파문이 일었다.
이 부장판사는 “당초 합의결과는 재판장을 비롯한 판사 3명의 이견 없는 만장일치로 김 전 교수의 승소였지만 판결문 초고를 작성하던 중 청구 취지에 큰 문제를 발견하고 변론을 재개했고 이후 결론이 뒤집히게 됐다”고 밝혔다.
이 부장판사는 비공개를 원칙으로 하는 재판부의 합의과정 공개한 배경에 대해 짜맞추기식 엉터리 판결이라거나 외부 지시가 있었다는 비난에 대한 해명이 필요하다고 생각해 글을 올렸다고 설명했다.
한편 영화와 실제 사건과의 일치율에 관심이 고조되는 가운데 영화 제작진과 김 전 교수를 변론했던 박훈(46) 변호사는 “영화와 실제 재판이 90% 이상 일치한다”고 주장했다. 박 변호사는 영화 왜곡 논란에 대비해 공판 속기록을 자신의 인터넷 블로그에 올려놓기도 했다.
<최은서 기자> choies@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