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호 출범]이명박 숙청, 分黨 초읽기

럭비공 비대위 “완장차자 칼춤 춘다” 진실

2012-01-02     조기성 기자

한나라당을 이끈 ‘박근혜號’가 비대위원 구성을 마치고 야심차게 출범했지만 시작부터 삐거덕거리고 있는 모양새다. 박근혜 비대위원장이 김종인 전 청와대 경제수석과 이상돈 중앙대 법대 교수 등 6인의 외부 인사를 비대위원으로 임명하면서 친이계 대규모 숙청설이 나돌고 있기 때문이다. 외부인사 비대위원들이 ‘쇄신’이라는 칼자루를 쥐고 집권여당의 구석구석을 휘두르면서 향후 일어날 정치적 파장들에 대해 우려하는 목소리가 터져 나오고 있다. 정치에 문외한인 외부 인사들이 비대위원으로 들어오면서 다시금 대규모 탈당 사태에 이은 분당(分黨)설까지 제기되고 있는 상황이다. 박근혜호가 순항이냐 표류냐의 중요한 기로에 놓여있는 것이다.

비대위 출범, MB와 본격 선긋기

한나라당 비대위원들의 면면을 보면 당의 위기상황에서 만들어진 비대위보단 ‘박근혜 자문단’, ‘박근혜 대선캠프’라는 지적이 나온다.
비대위원 상당수가 박근혜 위원장에게 우호적이거나 교수 출신이 많다는 점에서 박 위원장에게 쓴소리를 할 가능성이 높지 않다는 점에서 ‘박근혜식 독주’가 계속될 수 있다는 것이다. 
박 위원장은 쇄신파 의원들과의 정면충돌을 피하기 위해 ‘재창당 수준의 쇄신’이라는 기치를 내걸고 전면에 나섰지만, 이 같은 인선에 당외에선 비판이, 당내에선 의구심의 목소리가 나오는 상황이다.
한나라당 한 당직자는 [일요서울]과 만난 자리에서 “외부 인사 모두가 엘리트 집단인데다 대다수가 정치를 모르는 분들인데 이 분들에게 당 쇄신을 맡겨서 제대로 된 쇄신이 이뤄지겠느냐”면서 “당 쇄신을 위한 비대위원이 아니라 박 위원장의 자문위원단인 것 같다”고 비판했다.
보수인사인 인명진 갈릴리교회 목사는 지난달 28일 매일신문 정치아카데미 강연에서 “(비대위에) 왜 들어갔는지 이해하기 어려운 이들도 있다. 자문위원이면 모르겠지만 한나라당의 쇄신을 이끌어가기에는 너무 비정치적인 인사가 많다. 미래가 걱정스럽다”며 “한나라당의 분당은 불 보듯 뻔하다는 주장도 있다”고 비판했다.
김진표 민주통합당 원내대표도 같은날 당 최고위원회의에서 “한나라당 비대위를 보면 박근혜 비대위원장의 이미지를 보완하기 위한 자문기구 같은 느낌이 든다”고 꼬집었다.
박한명 폴리뷰 편집장 역시 “이런 비대위원들 중 박 위원장에게 과연 누가 쓴소리를 할 수 있을까”라고 반문하면서 “현 비대위는 박근혜 체제 강화의 의미일 뿐 국민이 원하는 쇄신과는 거리가 멀며 이런 쇄신은 결국 실패로 끝날 수밖에 없다”고 내다봤다.
한편 비대위 내에선 대기업 비판론자인 김종인 위원과 상대적으로 친시장적 견해를 보여 온 조동성 위원(서울대 경영학과 교수)이 절충점을 찾아 박 위원장을 보좌(?)할 것으로 보인다. 당내에서는 “김 위원의 독주를 견제하고자 조 위원을 참여시켜 균형을 맞춘 측면이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또한, 김 위원과 이상돈 위원(중앙대 법대 교수) 등이 이명박 대통령의 ‘747 공약’과 4대강 사업 등을 비판했던 점 등을 감안할 때, MB와의 선긋기에 적극적으로 나설 것으로 보인다.
특히 김 위원은 1987년 개헌 당시 재벌의 확장을 헌법적으로 규제하는 경제민주화 조항인 ‘119조 2항’을 신설했던 대표적 재벌개혁론자이기도 하며, 노무현 정권 출범 때에도 경제부총리로 내정됐다가 발표 전날 재계의 거센 로비로 무산되기도 했다. 박근혜 비대위에서 친재벌 위주의 ‘MB노믹스’와는 다른 경제정책이 나올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이 위원 역시 대표적인 ‘반MB 논객’으로 불린다. 개혁적 보수주의자인 이 위원은 ‘4대강 사업 반대 국민소송단 공동집행위원장’을 맡으며 이명박 정부와 각을 세워왔고, 이 대통령의 내곡동 사저 문제와 관련해 “MB 탄핵 사유에 해당한다”고 주장하는 등 이 대통령을 향해 쓴소리를 마다하지 않았다.
박근혜 위원장이 직접 나서기 껄끄러워하는 역할을 김, 이 위원 등 외부인사 비대위원들이 대신한다는 시나리오다.
최연소 비대위원으로 주목받고 있는 이준석 위원(클라세스튜디오 대표)이 “이명박 정권의 정책이 좋은 의도였어도 국민의 공감을 얻지 못했다. MB 정부와 같이 갈 수 없는 것은 사실”이라고 말한 것도 같은 맥락으로 해석된다.
이와 함께 조동성 위원은 ‘국가경영 전략분야’의 전문가로 MB정부와 차별화된 새로운 국가성장동력을 찾고 지속가능한 발전을 이루는 정책을 수립하는 데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 아동인권 전문가인 이양희 위원(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은 MB정부에서 취약했던 아동과 보육 취약계층의 인권·권익을 신장시키는 역할을 할 것으로 전망된다. ‘벤처1세대’인 조현정 위원(비트컴퓨터 대표)은 새 시대의 고용정책을 조언하는 역할을, 이준석 위원은 대학등록금과 저소득층 학생 주거문제 등 20대의 현안을 푸는 데 주요 역할을 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상돈 ‘용퇴론’, 결국 朴 의중인가

사실상 친박계 인사로 구성된 비대위가 출범되자, 당내 계파갈등도 수면 위로 급부상하고 있다.
이상돈 위원이 지난달 28일 언론 인터뷰에서 “현 정권의 공신이나 당 대표를 지낸 사람, 책임질 자리에 있는 사람들은 (당에서) 나가야 한다”며 “그 사람들을 그대로 놔두면 누가 쇄신이라고 보겠냐”고 발언한 것에 대해 파문이 커져가고 있는 상황이다.
이명박 대통령의 형 이상득 전 국회부의장과 이재오 전 특임장관 등 친이계 인사와 정몽준·안상수·홍준표 전 대표 등을 인적 쇄신 대상으로 지목한 것이다.
또 이 위원은 한나라당의 ‘텃밭’인 대구·경북(TK) 지역의 친박(친박근혜)계 고령 다선 의원들을 향해서도 “지역주의에 안주한 사람들”이라며 “이 기회에 스스로 용퇴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고 촉구하기도 했다.
비대위에서 정치개혁 과제 정리 및 공천제도 개혁을 위한 1분과 위원장을 맡고 있는 이 위원의 이 같은 발언은 내년 총선 공천에서 이들을 배제해야 한다는 의미로 해석돼 파장이 일었다. 실제 이 위원은 “욕을 먹더라도 의원 절반 이상을 바꾸는 물갈이 공천을 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이 위원 발언에 따른 당내 파장이 커지자, 박근혜 비대위원장은 지난달 29일 오전 기자들과 만나 “이 교수의 발언은 개인 생각”이라며 확대해석을 경계했지만, 당 안팎에선 “이 위원의 발언에 박 위원장의 의중이 담겼다”고 보는 시각이 많다.
실제 박 위원장은 이날 국회에서 열린 의원총회에서 “우리 모두 쇄신의 주체가 될 수도, 쇄신의 대상이 될 수도 있다. 우리에겐 머뭇거릴 시간이 없다”고 언급, 대대적인 인적 쇄신을 예고하기도 했다.
김종인 위원 역시 한 라디오 방송에 출연, “현재 한나라당의 문제 가운데 하나가 ‘머리 큰’ 사람들이 자기주장을 하면서 당에 부담을 많이 준데 있다”고 주장했다.
비대위와 친박계의 이 같은 기류에 대해 친이계 구주류와 구(舊)당권파 인사들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는 분위기다.
이재오 의원과 가까우면서 내년 총선 불출마를 선언한 장제원 의원은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일개 교수가 개혁 선봉장이나 된 것처럼 칼을 직직 긁어대는 게 공천이냐”며 “그런 막말이 개혁은 아니다”고 주장했다.
정몽준 의원과 가까운 전여옥 의원도 이날 국회 본회의 참석 뒤 기자들과 만나 “친이계는 오래 전에 없어졌다. (당에) 들어오라고 해도 시원찮을 판에 왜 나가라고 하는지 모르겠다”며 “비대위원들은 오해받을 수 있는 언행을 조심해야 한다. 국민은 박 위원장 혼자 남아서 당을 이끄는 모습을 원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렇듯 비대위 활동이 당내 갈등으로 번진다면 한나라당의 쇄신 실패는 물론 내년 총선과 대선을 앞두고 우파 분열로 이어질 확률이 높다고 경고의 메시지가 나오고 있다.
친박계 한 당직자는 [일요서울]과 만난 자리에서 “이재오 의원을 중심으로 친이계 의원들이 이달 중순경 탈당을 준비하고 있다는 이야기가 들린다”면서 “친이계 의원들의 탈당 이후 내달 중 당명 변경 등 대규모 쇄신작업이 본격화될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조갑제 조갑제닷컴 대표도 지난달 29일 ‘‘완장 차자 칼춤 춘다’는 박근혜 비대위의 ‘이명박 숙청론’은 우파분열로 가는 자살골’ 제목의 글에서 “좌파 진영으로부터는 호평을, 우파 진영으로부터는 반감을 받아온 김종인, 이상돈 위원의 과격한 발언은 이 대통령 세력을 감정적으로 자극, 이들을 反박근혜쪽으로 몰 가능성이 있다”면서 “박근혜 세력은 현직 대통령을 적으로 돌리거나 그를 희생시켜서라도 선거에서 이길 수 있을 만큼 강하지 못하다”고 경고했다.

보수 본능 박근혜

국회 기획재정위원회가 28일 소득세·법인세 최고 세율을 현행대로 두기로 의결했다. 소득세의 경우 민주통합당이 과표 1억 5천만 원 초과분에 대해 40% 세율을 적용하자고 주장했으나 정부와 한나라당의 반대로 무산됐다. 법인세에 대해서도 민주통합당이 과표 500억 원 초과 기업에 대해 25% 세율을 적용하자고 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홍준표 대표 시절엔 홍 대표와 쇄신파가 소득세 최고구간 신설을 강력히 추진했다는 점에서 한나라당이 입장선회를 한 배경엔 박 위원장이 자리 잡고 있다는 분석이다. 박 위원장은 최고구간 신설이 ‘누더기 세제’를 부를 수 있다며 반대했다. 쇄신파가 회심의 카드로 추진했던 부자증세가 박 위원장의 의중에 따라 무산된 것이다. 박 위원장이 ‘평생 맞춤형 복지’를 내세우면서 내년 총선과 대선을 앞두고 복지 재원 종합 대책을 내놓을 것으로 보이지만 기초 수준인 소득세 최고 구간 신설에조차 부정적인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는 지적이 나온다. ‘부자 정당’ 이미지를 벗어나기 위해 몸부림치고 있는 한나라당의 쇄신과 복지 확대에 대한 진정성도 의심받을 수 있다는 대목이다.
김정일 사망 이후 조문 정국에서도 박 위원장은 ‘보수’의 입장을 견지했다. 조의·조문에 부정적 입장을 밝혀 대북문제에서 유연성보다는 원칙적이고 단호한 태도를 보인 것이다. 안보 문제에 있어서는 MB와의 차별화 대신 보수층 결집, 즉 ‘집토끼’를 택한 것이다.

不通의 아이콘, 박근혜

한나라당 비대위가 비대위원 인선 발표에서부터 이후 당내 계파갈등 등 우왕좌왕하는 모습을 보이면서 당 안팎에서 “박근혜 비대위 체제가 순항하기가 생각보다 쉽지 않을 듯하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일각에서는 “당 개혁을 이끌 비대위원들에 대해 당내 의견 수렴과 인사 검증이 우선돼야 하는데 박 비대위원장이 ‘신뢰와 원칙’을 이유로 고집을 부리고 있다”며 ‘박근혜식 불통’을 거론하고 있다.
홍준표 전 대표는 지난달 30일 한 라디오인터뷰에서 “당의 최고 의사결정기구에 이렇게 국가관이 불투명하고(이상돈), 부패한 인물(김종인)이 들어온 것을 어떻게 당원들이 받아들일지 전직 대표로서 걱정하고 있다”며 “박근혜 비대위원장이 폐쇄적인 인선을 하는 바람에 이런 결과가 나왔다”고 비판했다.
또한, 여전히 당내에서는 박 위원장과 대화 창구가 없다는 점에 답답해하는 분위기다.
한 쇄신파 의원은 [일요서울]과 만난 자리에서 “박 위원장이 소통하지 않은 이유를 오해를 빚을까봐 하지 않았다고 했지만 당 전면에 나선 것 이상 바뀐 것이 없는 상황”이라며 “비대위원 인선부터 지금까지 운영하는 것을 보면 ‘불통의 아이콘’이 이명박 대통령에서 박근혜 위원장에게 넘어가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성식·정태근 의원이 한나라당을 탈당한 가장 큰 원인으로 꼽히는 게 박 위원장의 ‘불통 행보’였다는 점을 상기해야한다는 목소리가 커져가고 있는 시점이다.

<조기성 기자> kscho@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