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시대]김정일 직접 최측근 숙청, 후계 닦아
친위대 전진배치 피의 숙청 폭풍전야
장성택․리영호 친위대 급부상…軍 온건파 지고 강경파 대거 포진
오극렬 서열 후퇴, 舊 권력핵심 인사 줄줄이 사망․처형-해임-실종
<일요서울>은 김정일 사망 이후 정부 고위 소식통으로부터 북한이 현재 대내외적으로 김정은 후계체제로 신속하게 권력구도를 재편하기 위해 2~3년 전부터 구(舊) 핵심 권력층을 솎아내는 식으로 대대적인 물갈이 숙청을 진행 중이라는 사실을 전해 들었다.
숙청의 대상은 대부분 김정일의 측근들로서 김정은 후계체제를 가로 막을 가능성이 높은 장애세력 또는 앞로 내부 권력투쟁을 야기할 수 있는 혁명 1.2세대를 중심으로 한 구(舊) 권력수뇌부를 타깃으로 하고 있다는 것이다.
주목해야 할 대목은 김정은 후계체제는 단기 속성으로 권력을 장악하는 것이 관건이다보니 김정일 위원장이 수십 년간 수차례에 걸쳐 벌였던 피의 숙청을 짧은 기간 내에 몰아치기 식으로 전개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미 당과 내각, 군부의 핵심 요인들이 교통사고와 심장마비, 총살 처형, 해임의 성격으로 축출됐다. 그러나 이는 김정은 시대에 불어 닥칠 피바람의 서막에 불과하다. 숙청의 배후는 김정은 등장 이후 국방위와 중앙당군사위에 핵심 요직을 차지하며 전면에 부상한 김경희 남편 장성택이고, 그 뒤에 김정일이 있었다.
김정일 사후 백두산 줄기 김정은을 위한 후계체제 완성은 이제 장성택의 몫으로 주어졌다. 새롭게 떠오른 신(新) 파워엘리트들은 대부분 김정은 직계로 편입된 장성택의 측근들로 채워졌다. ‘김정일 유훈통치’를 선언한 북한은 김정은의 배후에서 장성택과 신 파워엘리트들이 주도할 피의 숙청을 앞두고 있다.
<일요서울> 취재진과 만난 대북 소식통은 권력 핵심부의 1차 숙청이 김정일이 사망 직전까지 직접 지시한 것이고, 아직 제거되지 못한 군부 핵심 인사들과 중앙당과 지방 하부조직은 김정일 사망 애도기간이 끝난 뒤 김정은과 장성택에 의해 2차 숙청 단계로 접어들 것이라고 전망했다.
‘새술은 새부대에 담는다’는 말처럼 김정은 후계체제는 불과 2~3년 사이에 노동당 파워엘리트와 군부 핵심 요직 구석구석을 장악했고, 이젠 완료 시점에 이른 것으로 보인다. 김정은은 1년 전인 2010년 9월28일 당대표자회에서 당 중앙군사위원회 부위원장으로 처음 공식 등장했다.
이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뒷받침 아래 그 이전부터 후계 작업을 치밀하게 준비해온 결과였다. 북한정권의 통치 논리는 조선로동당은 ‘수령과 수령의 후계자의 사상과 영도를 실현하기 위한 정치적 무기이며 혁명의 참모부’라고 간주하고 있는 것처럼 세습 체제를 위한 도구에 지나지 않는다.
그래서 노동당과 군부, 주민들은 김정일을 대를 이은 김정은의 유일적 지배체제를 실현하기 위해 존재할 뿐이다. 만약 이를 거부하고 반기를 드는 세력이 있다면 김정일 후계 과정 때처럼 그랬듯 어느 누구도 피의 숙청을 피해갈 수 없다.
김정은 애도기간 이후 물갈이 피바람 예고
1997년 한국에 망명한 황장엽 전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비서는 생전에 “김정일이 1973년 9월 당 간부들과 당원들의 조직생활 및 인사를 관장하는 당중앙위원회 조직비서직에 선출되면서 권력승계가 이때 사실상 끝났다”고 말한 적이 있다.
이를 방증하듯 그 이듬해인 1974년 2월 김정일은 ‘당의 최고지도기관’인 당중앙위원회의 전원회의에서 후계자로 확정됐다. 이 시점을 기준으로 ‘김일성-김정일 공동정권’이 출범했고 이후 김정일 시대의 개막과 함께 수차례에 걸쳐 아버지 김일성을 떠받들었던 권력 수뇌부 물갈이를 위한 숙청의 피바람이 불었다.
김정은이 후계자로 급부상한 것은 2008년 8월 김정일이 뇌졸중으로 쓰러지면서부터다. 당과 군부의 핵심 파워엘리트들은 후계 구도를 구축해놓지 못한 상황에서 김정일 사망이라는 고비를 넘긴 뒤 가파른 3대 세습 절차에 돌입했다.
김정일의 지시에 따라 북한의 통치논리로 세워져 있는 ‘수령의 후계자’는 삼남 김정은으로 결정됐고, 전면 등장은 2009년 1월 8일 중앙당 조직지도부에 통보되면서 이뤄졌다. 그해 하반기부터 김정은의 정책 관여는 뚜렷해졌다. 2010년 들어 당과 군부의 주요 정책에 김정일의 일거수일투족을 따라 동행하며 깊숙이 관여했다.
이와 관련 세종연구소 정성장 교수는 “2009년 말 북한 권력을 김정일이 60%, 김정은이 30%, 장성택, 김영춘, 오극렬, 리제강 등 김정일의 최측근들이 나머지 10%를 나눠 가지고 있다는 평가가 북한 내부에서 나올 정도로 김정은은 단기간에 중대한 영향력을 가지게 됐다”며 “2010년 중반들어 김정은 외교부문을 제외하고는 김정일과 비슷한 정도의 영향력을 행사하고 고위급 간부에서 하위급 간부들까지 김정일과의 김정은을 동급으로 여기는 경향이 나타났다”고 설명했다.
김정은 후계체제가 가속화되면서 당과 군부의 핵심 권력 전반에 걸쳐 물갈이와 숙청의 행렬도 이어졌다. 특히 장성택의 라이벌이었던 리제강 조직지도부 제1부부장은 지난해 5월말 교통사고로 죽었다. 장성택이 국방위 부위원장에 임명되기 며칠 전의 일이었다.
리제강의 사망은 김정은을 사이에 두고 장성택과 후견인 자리를 두고 벌인 권력투쟁이 일단락됐음을 의미한다. 리제강이 죽기 한 달 앞서 리용철 조직지도부 제1부부장은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역시 리제강의 사람이었다.
이 시기를 전후로 당과 군부 핵심 요직에 있던 인사들이 줄줄이 처형되거나 사라졌다. 박남기 당 계획재정부장과 문일봉 재정상은 화폐개혁 실패 책임을 물어 같은 해 4월과 6월에 총살됐다.
김용삼 철도상은 2004년 김정일 전용열차를 노린 평안북도 용산역 폭발사고에 연루된 혐의를 씌워 역시 비슷한 시기에 처형됐다. 박남기 후임이었던 홍석형 계획재정부장은 지난 6월 해임된 뒤로 모습을 찾아볼 수 없다. 숙청의 피바람은 당과 내각에 이어 군부로 넓혀갔다.
북한 내외 정보과 검열을 담당하는 공안기구의 수장인 류경 국가안전보위부장(국정원장 격)은 올해 초 총살당했고, 치안 기구인 주상성 인민보안부장(경찰청장 격)은 지난 3월 중국 접경지역 경비 실책을 들어 전격 해임돼 지방으로 쫓겨났다. 북한 최고인민회의는 곧바로 한 달 뒤인 4월 7일 주상성의 후임으로 장성택의 측근인 리명수 국방위 행정국장을 임명했다.
이보다 앞서 한 때 해군사령관을 거쳐 승승장구했던 군부 핵심 실세였던 김일철 인민군 차수는 지난해 5월 인민무력부 제1부부장과 국방위원에서 해임되고, 넉 달 뒤인 당중앙군사위원직에서 박탈된 뒤로 사라졌다.
인민군 포병사령관을 지내고 당중앙위원으로 지난해 11월 조명록 국가장의위원회 의원이었던 정호균 인민군 대장도 올해 들어 당과 군부 핵심 조직에서 종적을 감춘 지 오래다. 정호균과 마찬가지로 해임된 것으로 확인이 안되고 있지만 역시 당과 군부 핵심 요직에서 모습을 감춘 인사 중에는 평양시 위수사령관을 지내고 당중앙위원이었던 전진수 인민군 상장과 당중앙위원 강동윤 상장이 있다.
강동윤은 지난해 9월 당표자회의 서기부로 임명됐으나 당중앙위원 명단에서 제외됐고 지난 19일 김정일 장의위원회 명단에도 오르지 않았다. 이들 대부분은 지난해 9월 또는 11일까지 권력 핵심 엘리트로 통일부 인명록에 실렸으나 지금은 생사 여부를 파악할 수 없는 상태다.
이러한 북한 핵심 권력층에서 잇따른 의문의 죽음과 총살, 처형, 숙청과 관련해 <일요서울>과 만난 정부 고위 소식통은 “김정일 위원장이 사망 전부터 김정은 후계체제를 구축하기 위해 자신의 살을 도려내듯 총애했던 측근 핵심인사들을 축출한 것”이라며 “군부 4명을 밀어냈고, 당에서 6명을 교통사고와 심장마비로 위장하는 방식으로 숙청했다”고 전했다.
이 소식통은 “이는 김정은에 도전할 혁명열사 세력을 김정일의 손으로 직접 처리한 것으로 이는 모두 군부를 장악하지 못한 김정은을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최근까지도 북한은 장성택의 주도로 김정은 후계체제 길닦이를 위한 걸림돌이 될 장애 세력을 정리하는 과정이 진행되고 있다”며 “김정일 애도 기간이 끝나면 중앙 간부에 이어 지방 간부까지 수차례에 걸친 피바람이 불 것”이라고 덧붙였다.
新파워엘리트 권력핵심 전면 부상
국내외의 대부분의 전문가들은 포스트 김정일 시대에 국가기구인 국방위원회가 권력의 중심이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하지만 2010년 9월 개최된 제3차 당대표자회에서 김정은은 노동당 최고군사지도기관인 당중앙군사위원회 부위원장직을 맡았다. 전 세계가 베일에 가려져 있던 김정일의 후계자 김정은을 주목했다.
그러나 김정은은 2011년 4월에 최고인민회의 제12기 제4차 회의에서 아버지 김정일이 통치기구로 삼았던 국방위원회에 이름을 올리지 않았다. 그런데도 김정은은 당중앙군사위원회 부위원장 직책만으로도 김정일의 제2인자로서 북한을 공동통치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정성장 교수는 “이는 북한 권력을 지탱하는 ‘국가기구’로 분류되는 국방위원회,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내각에 대한 외부세계의 과대평가와는 다르게 북한에서 국가기구는 ‘당과 대중을 연결하는 가장 포괄적인 인전대’로서 당의 영도 하에 놓여 있음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며 “김정은이 처음부터 국가기구인 국방위원회의 요직을 맡을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던 것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풀이했다.
김정일은 37년 집권 후반기 아버지 김일성의 직책인 ‘주석’에 오르지 않고 ‘국방위원장’자격으로 통치했다. 김정일은 김일성 주석 사망한 이후 유훈통치를 마친 1998년 북한 헌법을 개정해 주석제를 폐지했다. 김정일 자체가 당과 내각을 아우르는 국가 그 자체이고 군부 최고사령관인 권력의 최상층부였기에 굳이 ‘주석’이라는 자격을 부여할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더군다나 헌법까지 바꿔 주석제를 폐지한 것은 김일성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는 판단도 깔려 있었다. 이처럼 김정은 역시 김정일 사후 당 중앙군사위부위원장 직책으로도 북한이 22일 노동신문 사설을 통해 ‘혁명위업의 계승자·인민의 영도자’로 지칭했다.
李처럼 북한을 통치할 ‘수령의 후계자’는 현재 직책과 위치가 무엇이고 어느 조직에 있든 간에 최고 권력이라는 사실을 재확인한 것이다. 이는 김정일 시대는 국방위원회가 북한 권력의 핵심부였다면 김정은 시대는 당 중앙군사위원회로 권력의 축이 이동했음을 의미한다.
유명무실했던 당 중앙군사위의 위상은 이미 지난해 9월 당 대표자회에서 공식적인 국가 주권을 행사할 상설 최고군사기관으로 격상시켰다. 또 당 규약 22조를 개정해 ‘당 총비서는 당 중앙군사위원장으로 된다’는 조항을 삽입해 김정일 유고시 제도적으로 김정은 후계체제의 발판을 닦아놓았다. 당 중앙군사위는 명실상부 당권과 군권이 집결되는 국가기구로 북한 권력을 모두 장악하는 김정은이 휘두를 통치 기구이자 수단으로 떠오른 것이다.
이제 당 중앙군사위원장인 김정일 사망했고, 김정은이 위원장 대리 직무를 수행하고 있다. 그렇기에 당 중앙군사위에 소속된 당과 군부의 신 파워엘리트들은 김정은 시대를 보좌할 최측근들이자 새로운 권력 핵심의 수뇌부들인 셈이다.
그 면면들을 살펴보면 리영호(부위원장.인민군총참모장), 김영춘(차수.인민무력부장), 김정각(대장.군총정치국 제1부국장), 김명국(대장.군총참모부 작전국장), 김경옥(대장.조직지도부 제1부부장), 김원홍(대장.군총정치국 조직담당 부국장), 정명도(대장.해군사령관), 이병철(대장.공군사령관), 최부일(대장.인민군부총참모장), 김영철(상장.정찰총국장), 윤정린(대장.호위사령관), 주규창(기계공업부장), 최상려(상장.미사일지도국장), 최경성(상장.11군단장), 우동측(대장.국가안전보위부 제1부부장), 최용해(대장.당중앙위 비서), 장성택(당중앙 행정부장.국방위 부위원장) 등이다. 이들 모두 김정일 장의위원회 명단에도 이름을 올렸다.
김일성 시대 김정일의 군부 장악과정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수행했던 당 중앙군사위원회는 김정일 시대 김정은의 군부 장악을 위해 또다시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다. 지난 2009년 여름 북한군 내부에서 배포된 문건 이른바 ‘김정은 교양 자료’로 불리는 ‘존경하는 김정은 대장 동지의 위대성 교양 자료’에는 ‘당 중앙군사위원회’가 김정은의 ‘영군체계’ 수립을 강조하고 있다.
김정은의 최측근으로 편입된 신군부 세력의 핵은 리영호이다. 장성택의 측근으로 알려졌던 리영호는 김정은이 2009년 1월 ‘수령의 후계자’로 전면에 등장한지 1개월 만에 김정일의 지시로 평양방어사령관에서 인민군총참모장에 임명됐다.
이어 김영춘 국방위원회 부위원장은 인민무력부장으로 재편되면서 군부 최고 상층부의 물갈이가 단행됐다. 중앙당 정치국과 국가안전보위부, 미사일부대, 특수부대 군단장에 이르기까지 전격 승진되고 새롭게 발탁됐다. 이 또한 김정은이 군권을 틀어쥐게 하기 위한 명령지휘체계 확립을 위한 조치였다.
현 군부 강경파 장악 온건파 몰락
김정은이 아직 군권을 장악하지 못했을 것이라는 시각과 달리 군부 핵심 요직은 그의 최측근들로 이미 자리이동을 끝낸 것으로 보인다. 김정은의 측근 군부 엘리트 그룹은 전례를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단기간 내에 초고속 승진한데다 강경파들로 구성돼 있다.
이들은 당 중앙군사위를 중심으로 군사 부문과 국방사업 전반을 총괄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반면, 김정은의 후계체계 구축에 소극적이거나 적극적인 역할을 하지 못했던 군부 수뇌부들은 조기에 퇴진하거나 그 위상이 하락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조기 퇴진을 강요당한 대표적인 경우가 바로 김일철을 들 수 있다. 그는 2009년 2월 인민무력부장에서 인민무력부 제1부부장으로 강등돼 2010년 5월 모든 직책에서 해임됐다.
오극렬 국방위원회 부위원장도 3차 당대표자회에서 당중앙위 정치국과 당중앙군사위에 진입하지 못하는 ‘굴욕’를 겪어야 했다. 김정은의 친위대 중에는 군단장 신분으로는 유일하게 최경성 상장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최 상장은 북한 인민군 사이에서 ‘폭풍군단’으로 통하는 11군단을 이끌고 있다. 이 군단은 1969년 창설된 특수 8군단이 모체다. 주요 임무는 유사시 남한 후방 요인 암살, 주요시설 파괴와 같은 특수부대 중의 최정예 부대로 4~8만 명의 부대원을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군단의 성격상 최경성은 북한 군부 내 강경파 중에서 강성으로 꼽힌다.
또 하나 복수의 대북소식통을 통해 김정일 장의위원회 명단에서 사라졌던 김격식 전 4군단장이 김정은의 군사보좌관으로 승진한 것으로 확인됐다. 지난해 연평도를 도발했던 서북도서와 황해도 인근을 관할했던 김격식이 지난 9월께 김정일 위원장의 지시에 따라 4군단장에서 김정은의 군사전략을 수립하는 최측근으로 옮겨갔다는 것이다.
이러한 군부 강경파의 전면 부상과 전진 배치는 단순한 물갈이를 넘어 북한이 선포하려는 2012년 ‘강성국가’가 어떻게 귀결될 것인지 에둘러 엿볼 수 있다는 점에서 김정은 시대를 보다 면밀하게 예의주시할 이유로 다가온다.
<고동석 기자>kds@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