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 故 박태준 명예회장을 기억하며…

2011-12-19     이범희 기자


첫 일관제철소 건설,  중공업입국 기틀 다져
포스코 주식 한 주도 갖지 않아, 청렴의 삶 실천


철강왕 ‘박태준’ 포스코 명예회장이 지난 13일 향년 84세 나이로 별세했다. 신촌 세브란스병원에 입원가료 중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했다. 박 명예회장은 철강불모의 대한민국에 사상 첫 일관제철소를 건설해 중화학공업 입국의 기틀을 다졌다. 대한민국 철강사의 살아있던 기록자이며, 포스코 주식 한 주도 가지고 있지 않던 청렴자였다. 국무총리를 역임했음에도 그의 재산은 무일푼에 가까웠다. 이 때문인지 그의 사후에도 각계각층의 조문행렬이 끊임없다. 고 박태준 명예회장의 삶을 재조명해본다.

 


박 명예회장의 치료를 맡았던 신촌 세브란스병원에 따르면 “10년 전 수술했던 흉막섬유종 후유증으로 흉막 전폐절제술을 받고 입원가료 중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했다”고 밝혔다.

박 명예회장은 1960년대 철강 볼모지인 이 땅에 최초의 일관제철소를 성공적으로 건설하고 세계 최고의 경쟁력을 갖춘 철강사로 성장시킨 한국 철강 산업의 큰 별이다.

타협하지 않는 신념 ‘의지의 사나이’

박 명예회장은 허허벌판이던 1970년 포항 바닷가 일대에 국내 최초의 일관제철소 건립을 시작했다. 그 누구도 미래를 장담하지 못했던 공사였다.

세계은행들도 앞 다퉈 한국경제의 문제점을 제기하며 종합제철소 건설을 반대했다. 국내 일부 전문가들조차도 연일 부정적인 보고서를 통해 일관제철소의 설립 추진을 막았다.

일부 건설사들은 공사마감 일정을 맞추지 못할 거 같다며 으름장을 놓기도 했다. 당시는 성공보다 설립자체에 의문을 제기하는 여론이 더 많았다. 하지만 박 명예회장의 고집을 꺾기엔 역부족이었다. 

박 명예회장은 포항 공사 현장에서 직원들에게 “실패하면 우리 모두 ‘우향우’해서 영일만 바다에 빠져 죽자”고 했다. 대일차관을 통해 짓게 된 일관제철소인 만큼 실패하면 조상 볼 낫이 없다는 이유를 들었다.

이 정신은 현재도 포스코의 ‘우향우 정신’으로 각인돼 있을 정도로 당시 큰 반향을 일으켰다. 죽기를 각오한 이 집념과 사명감이 합판, 스웨터, 가발 수출로 밥술을 뜨던 대한민국에 ‘산업의 쌀’이라는 철의 시대를 열었다.

착공한 지 3년여 만인 1973년 6월 8일. 용광로가 점화되고 제1 고로에서 처음 쇳물이 흘러나왔다. 박 명예회장도 이 날만큼은 눈물을 숨기지 않았다.

그의 측근들조차도 이날 일화는 두고두고 회자될 정도로 박 명예회장의 눈물은 고결했다.

이후 10년 만에 포항제철소의 연간 생산량이 550만 톤이 넘어서며 세계은행은 경제적 타당성을 인정했고, 일본에서는 기술평가단을 파견하기에 이르렀다.

박 명예회장은 이와 함께 일찍부터 연구개발의 중요성을 인식해 1986년 포항공과대학(현 포스텍)을, 1987년에는 포항산업과학연구원(RIST)을 설립함으로써 포스코-포스텍-포항산업과학연구원 등 3개의 축으로 하는 산학연 연구개발 체제를 구축했다.

이는 국내 최초의 산학연 연구개발 체제로, 산업계 전반에 걸쳐 새로운 기술개발 모델을 제시했다.

고집 센 박·태·준

박태준이라는 이름 석 자는 해외에서 더 유명해졌다.

1978년 중국의 최고 실력자 등소평은 일본의 기미츠제철소를 방문한 자리에서 이나야마 요시히로 회장에게 “중국에도 포항제철과 같은 제철소를 지어달라”고 했다가 “중국에는 박태준이 없지 않느냐”라는 대답을 들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또한 박 명예회장의 고집을 이야기할 때 자주 회자되는 일화가 또 있다. 박정희 전 대통령과의 부딪친 이야기다. 당시 군부체제에서 박 전 대통령에게 자신의 뜻을 끝까지 펼친 사람이 바로 박 명예회장이다.

종합제철을 어떤 형태의 회사로 설립할 것인가도 두고 논쟁이 벌어졌다. 박 전 대통령은 ‘특별법에 의한 국영기업체'로 하자고 주장했고, 박 명예회장은 ‘상법상 주식회사’로 하자고 주장했다.

박 명예회장은 대한중석을 경영하는 과정에서 관료주의와 정부의 간섭이 국영기업체에 끼치는 폐해를 체험했기에 민간 기업으로 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청와대에서 세 차례나 토론이 있었다. 줄담배를 태운 박 전 대통령이 마침내 말했다. “임자한테 졌어. 좋은 방법을 강구해봐”

박 전 대통령은 이후 박 명예회장에게 전권을 준다는 의미로 자신의 서명이 들어간 서류, 이른바 종이마패를 주기도 했다.

목욕론도 박 명예회장의 일면을 이해하는 재미있는 에피소드다.

박 명예회장은 “깨끗한 몸을 유지하는 사람은 정리, 정돈, 청소의 습성이 생겨 안전 예방의식이 높아지고 최고 제품을 생산할 수 있다”며 청결한 주변관리를 주문했다.

이 때문에 제철소 건설 초기부터 현장에 샤워시설을 완비했다.

또한 1983년 광양제철소 호안공사 시공 때에는 감사팀 직원들에게 스쿠버 장비를 갖춰 전문가 도움을 받아 바닷속에서 13.6km 호안의 돌을 일일이 확인해 불량시공을 점검하기도 했다.

그 결과 현재 포스코는 연산 3700만 톤 규모의 조강생산을 기록하는 세계 4위권의 철강사로 성장했다. 최근 철강경기 하락에도 불구하고 글로벌 철강사를 제치고 시가총액과 신용등급에서 모두 수위를 기록하고 있다.

동종업계의 한 관계자는 “국내 철강 산업의 선구자임은 틀림없다. 현재도 포스코는 해외 굴지기업과의 경쟁에서도 우위를 점치고 있다”며 “큰 별은 떠났지만 그의 업적이 그대로 남아 더욱 승승장구하길 기원한다”고 전했다.

<이범희 기자> skycros@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