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적 세탁 007 뺨치는 ‘무역사기범’ 세관에 덜미

외국인 여권 이용 국내외 오가며 수십 억 '꿀꺽'

2011-12-19     최은서 기자

관세를 포탈하고 위조 신용장과 선적서류를 위조해 은행돈을 해외로 빼돌린 지명수배범이 외국인 여권으로 국내외를 드나들다 세관에 덜미를 잡혔다.

관세청 서울본부세관은 지난 14일 세금을 빼돌린 지명수배범 무역업자 S모(48)씨를 세관 여행자정보 사전확인 시스템(APIS)을 이용해 인천공항 출국 비행기 내에서 검거했다고 밝혔다. S씨는 관세 수천만 원을 포탈한 혐의로 수배를 받자 호주 국적으로 국적을 세탁해 간 큰 사기행각을 이어온 것으로 드러났다.

완벽한 국적세탁…버젓이 3회 출입국에도 들통 안나

이륙 15분전 항공기 안에서 극적 체포…끝까지 오리발


호주에서 소고기를 수입했던 S씨는 이중으로 작성한 선적서류를 제출하는 수법으로 관세를 포탈했다. S씨는 관세 약 5000만 원을 포탈한 뒤 체포될 것을 우려해 2008년 7월 호주로 건너가 잠적했다.


지명 수배되자 국적 바꿔


호주에 숨어 있던 S씨는 2009년 12월 세관에서 관세법 위반 등의 혐의로 지명수배가 내려졌다는 사실을 알아챈 후 ‘꼼수’를 부렸다.

 

지난 7월 우리나라 국적을 버리고 호주국적을 취득한 것. 우리나라 국적을 포기할 경우 지명수배망을 손쉽게 빠져나갈 수 있을 것이라 판단했기 때문이다.


S씨는 지명수배망에 올랐지만 호주 변호사로부터 컨설팅까지 받는 등 치밀한 준비 끝에 국적세탁을 해 그의 행방은 묘연하기만 했다. S씨는 이름과 국적이 모두 바뀌어 교묘하게 수사망을 빠져나갈 수 있었다.


호주인으로 탈바꿈한 S씨는 외국인 여권으로 국내를 3회나 출입국하는 대담한 행각을 벌이기도 했다. 하지만 단 한 차례도 신분이 들통 나지 않았다. 세관 당국은 물론 출입국관리소에서도 적발되지 않았다.

 

이런 와중에도 S씨의 사기행각은 계속 이어졌다. S씨는 물품이 없는데도 호주에 위장회사를 설립했다. 그는 국내 은행 두 곳에 수입신용장을 개설하는 수법으로 11억 원 상당을 10여 차례에 걸쳐 불법대출했다.

 

S씨는 수입신용장 특성상, 실제로 물품이 없다고 하더라도 서류만 일치하면 은행에서 대금을 지급해야 하는 점을 악용한 것이다.


S씨는 호주로 잠적하기 직전에도 3~6개월 후에 대금결제를 하는 기한부신용장을 악용했다. 그는 기한부신용장 결제기한 도래 전에 해외로 도피해 은행 두 곳에 약 4억 원의 손실을 끼친 것으로 드러났다.


단 하나의 단서 ‘생년월일’


S씨는 검거망을 따돌리며 사기행각을 이어갔지만 세관이 S씨가 외국인여권으로 출입국한다는 정보를 입수하면서 꼬리가 밟혔다. 세관은 입국시 세관에 제출하는 입국신고서의 생년월일을 일일이 대조하는 ‘아날로그 방식’으로 조사를 벌였다.

 

국적과 이름이 바뀌더라도 생년월일은 바뀌지 않기 때문. 단서는 S씨의 생년월일 단 하나 뿐이었다. 세관직원이 수천 장의 입국신고서를 일일이 살핀 끝에 S씨가 입국한 사실을 발견해 수사는 급물살을 탔다.


세관은 추적을 벌이던 과정에서 S씨가 지난 10월 26일 오후 7시 5분 호주행 대한항공편을 예약한 사실을 파악하고 APIS를 이용해 출국비행기 내에서 S씨를 검거할 수 있었다.

 

APIS는 여행자에 대한 선별검사제도 중 하나다. 항공기 도착 전에 항공사로부터 여객명부를 입수한 뒤 분석해 우범여행자를 선별 검사하고 일반 여행자는 신속하게 통과시킨다.


S씨의 검거는 극적으로 이뤄졌다. 세관은 S씨의 인상착의를 구별하지 못해 비행기에 탑승할 때까지 행방을 알지 못했다. 이륙을 불과 15분 앞두고 세관 요원들이 항공기 안으로 들어가 항공기에 탑승한 S씨를 체포해 탑승구 밖으로 데리고 나왔다.

 

S씨는 체포 당시 “나는 호주인이다”라며 외국인 행세를 하는 등 강력 저항했으나 영어를 제대로 구사하지 못해 거짓말이 탄로났다. 세관은 관세포탈, 무역 사기, 외국환관리법 위반 등 혐의로 S씨를 검찰에 송치했다.


서울세관 관계자는 “유럽발 금융위기와 같은 국제금융 거래 혼란 속에서 서류만을 심사하는 은행제도를 악용한 국제무역사기는 대규모 국부 유출사태가 발생할 우려가 있다”며 “거래 상대방에 대한 신용조회 등 철저한 검증이 필요하다”고 당부했다. 


<최은서 기자> choies@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