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나 없이 짜고 치는 ‘묻지마 보험사기단’

고의로 사고 내고 무조건 병원에 드러눕기

2011-12-14     최은서 기자

2005년부터 고의로 교통사고를 내고 병원에 허위 입원하는 ‘꼼수’로 수억 원을 챙긴 보험사기범들이 경찰에 붙잡혔다.

전·현직 택시기사와 불법게임장 종업원, 보도방 운영자, 대리운전사 등이 생활고를 이유로 보험사기에 가담했다. 이 사기단은 ‘브로커’를 중심으로 철저한 계획 하에 ‘보험사기 시나리오’를 짜 보험회사와 수사기관의 눈을 감쪽같이 속였다.

브로커는 탑승한 보험사기 가담자들이 중복되지 않도록 치밀하게 범행을 저질렀으나 단 한 번의 중복 사고이력으로 덜미를 잡혔다.

 

서울 방배경찰서는 지난 7일 생활이 어렵다는 이유로 고의로 교통사고를 내 보험금을 타 낸 혐의(사기)로 택시기사 김모(50)씨 등 총 109명을 불구속 입건했다.


생활고에 사기 가담


보험사기에 가담한 불법게임장 종업원 K(28)씨는 경찰 조사에서 “생활이 힘들어 가담하게 됐지만 날이 갈수록 보험사기 규모가 커지는 것 같아 불안했다”고 진술했다.

 

2009년 서울의 한 불법게임장 종업원으로 일한 그는 게임장 사장의 손에 이끌려 자신도 모르게 보험사기에 가담하게 됐다.

 

게임장 사장과 K씨가 함께 차를 타고 가다 신호대기로 정지하는 순간 택시가 뒤에서 추돌했다. 이 교통사고로 K씨는 한 달 월급과 맞먹는 보험금을 받게 됐다.


하지만 이는 잘 짜진 극본에 다름 아니었다. K씨가 보험금을 타자 게임장 사장은 “브로커에게 50만 원을 줘야한다”며 “사실 이번 사고는 보험을 타기 위해 고의로 낸 것”이라고 털어놓았다.

 

보험사기 공범이 된다는 생각이 K씨 머릿속을 스쳤지만 생활고가 K씨의 발목을 잡았다. 사고는 경미한 접촉사고에 불과해 부상 우려가 적었다는 점도 K씨가 보험사기에서 발 빼기 어렵게 만들었다.


알고 보니 보험사기 브로커는 게임장 사장의 친구인 택시기사 김씨였다. 김씨는 “택시 운전자들은 사납금 때문에 교통사고가 나면 손해율을 만회하기가 너무 어렵다”며 “손해율을 보상받기 위해 병원에 입원하고 보험금을 지급 받는 것이 관행”이라고 K씨의 보험사기 가담을 부추겼다.

 

결국 K씨는 이후에도 세 차례 보험사기에 가담해 한 번에 60~70만 원을 받아 챙겨 부족한 생활비를 충당했다.


K씨뿐 아니라 보험사기에 가담한 사람들의 범행동기 대부분은 ‘생활고’였다. 택시기사와 화물기사, 보도방 운영자, 택배기사, 퀵서비스 운전자, 대리운전사, 무직자 등이 가담자로 이들 대부분이 생활형편이 어려웠다.


김씨는 20여 년간 서울·경기 지역에서 택시운전을 하면서 알게 된 사람들에게 접근해 보험사기에 가담하게 했다.

 

특히 김씨는 불법 오락실 도박판을 자주 드나들며 알게 된 오락실 관계자뿐 아니라 폭력배들까지 보험사기에 끌어들였다. 보험사기 가담자 중에는 구로식구파 조직원 10명도 포함돼 있었다.


한 편의 첩보영화


이 사기단은 2005년부터 최근까지 서울과 경기도 일대에서 고의로 교통사고를 내고 병원에 허위 입원하는 수법으로 총 58차례에 걸쳐 5억 원을 받아 가로챈 혐의를 받고 있다.

 

이들은 보험회사와 수사기관에 고의로 낸 교통사고란 것을 발각되지 않기 위해 김씨를 중심으로 치밀하게 범행 계획을 짰다.


김씨는 생활이 어려운 사람들을 대상으로 가담자를 모집한 뒤 4~5명이 차량  두 대에 나눠 타게 했다. 가해차량은 김씨가 알려준 차 뒤를 따라가다 신호대기로 정지하면 고의로 앞차를 들이받아 교통사고로 위장했다.


사고가 난 뒤에는 가해차량 운전자가 보험 접수를 하고, 앞차에 탔던 탑승자들은 병원에 허위 입원했다. 탑승자들이 보험금을 지급받으면 김씨는 보험금의 50% 상당을 전달받고, 이중 20%는 가해차량 운전자 몫으로 건네줬다. 김씨는 이런 수법으로 총 1500여만 원을 수수료로 받았다.


이들의 사기행각은 마치 한 편의 첩보영화와도 같았다. 김씨는 탑승자들이 비밀리에 서로 다른 차량에 나눠 타게 했고, 탑승자들끼리도 서로 간 인적 사항을 알 수 없도록 하는 등 치밀함을 보였다.

 

이런 방식으로 김씨는 보험사기 가담자들이 중복되지 않도록 해 수년 간 보험회사와 수사기관의 눈을 피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들의 사기행각은 결국 탑승자와 가해차량 운전자가 과거에도 동일 수법으로 보험금을 수령했던 중복 사고 이력으로 들통이 났다.

 

지난 5월 보험회사가 사고조사 과정에서 경미한 사고에도 무조건 입원을 하고 탑승자 중 한 명이 대표로 나서 합의를 시도하는 점, 요구하는 보험금 금액이 비슷하다는 점에 의심을 품고 경찰에 수사를 의뢰해 이들의 행각이 덜미가 잡히게 됐다.

 

이 보험사 관계자는 “한 차에 4~5명씩 타 고의교통사고를 내면 한 두 번은 겹치기 마련인데 한 번의 중복 사고 이력 외에는 겹치는 건이 단 한 건도 없었다”며 “조직적이고 철저하게 보험사기가 이뤄졌다”고 혀를 내둘렀다. 


한편 경찰은 이 사기단이 진단서 등을 끊기 위해 자주 이용했던 서울 강서구·양천구 일대 병원들도 허위 환자들을 묵인하고 입원시키는 등 공모했을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보고 압수수색을 벌이는 등 수사를 확대하고 있다.


<최은서 기자> choies@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