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빚, 카드빚, 사채… ‘내집 마련’에 내몰리는 서민들
금융권 주택담보대출의 명암
- MB 정부 부동산·금리 정책 실패 눈먼 ‘하우스푸어’ 늘려
- 경고등 켜진 주택담보대출…부실채권에 대량 만기 집중돼
‘하우스푸어’의 시대다. 부동산 경기가 활황일 때 시세 차익을 노리고 혹은 “그래도 내집은 있어야…” 하며 대출 받아 사들인 집이 결국 서민들의 목을 옥죄고 있다.
일명 ‘집 가진 거지’인 하우스푸어는 지난 2006~2007년 서울 및 수도권의 집값이 가장 비쌌을 때 대량으로 양산돼 현재는 약 157만 가구(549만 명)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하우스푸어 문제는 개인의 인식 전환뿐 아니라 구조적 제도 개선이 병행돼야 하는데 오히려 정책이 쌓여갈수록 엉킨 실타래처럼 풀리지 않고 있다. 그 현황을 알아본다.
현대경제연구원(원장 김주현)에 따르면 ‘하우스푸어(House Poor)’는 보유주택이 1채이며 대출을 받아 구입했고 원리금 상환 부담으로 인해 지출을 줄일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다.
하우스푸어의 삶은 재테크 대상을 부동산에 집중시켜 무리한 대출을 끼고 주택을 구매하면서 시작된다.
지난 1988년 88올림픽 이후 지속된 부동산 호황기에는 부동산이 현명한 투자처였다. 집값은 계속해서 상승했고 금리는 낮았기 때문에 매매차익으로 대출금을 상환하고도 다른 자산에 재투자할 수 있었다.
하지만 지난 2008년 서브프라임모기지 사태로 대변되는 미국발 금융위기 이후 부동산은 침체기에 접어들었다. 이 시기에는 집값이 정체되거나 하락하고 수요와 공급의 불일치로 매매가 어려워 대출금은 물론 이자 납부조차도 곤란을 겪게 된다.
‘하우스푸어’ 시대의 도래
익명을 요구한 J씨는 지난 2007년 1억9000만 원에 모 지역의 소형 아파트를 구입하면서 지역 새마을금고에서 1억3000만 원의 대출을 받았다. J씨의 대출 조건은 3년 완납에 금리는 다소 높은 8.8% 가량으로 한 달에 이자만 96만 원을 납부해야 했다.
J씨는 아파트 가격이 상승할 것만을 기다리며 힘든 생활고를 견뎠지만 만기 즈음인 지난해 아파트 가격은 1억7000만 원으로 오히려 2000만 원 하락했다. 결국 J씨는 재정난을 극복하기 위해 아파트를 매물로 내놓았지만 침체기에 접어든 시장에서 매수자를 구하기는 더욱 어려웠다.
J씨가 울며 겨자 먹기로 대출을 연장하려고 하니 지역 새마을금고에서는 대출 연장 시 추가로 1000만 원을 내거나 대출 금리를 이전보다 상향해야 한다고 답변했다. J씨는 현재까지도 팔리지 않는 아파트를 끌어안고 힘겹게 본업과 아르바이트를 병행하며 대출 이자를 갚고 있다. J씨의 사례가 바로 전형적인 하우스푸어의 예다.
주택 관련 전문가들은 “국내 주택시장은 가격 안정을 위한 정부의 과도한 시장 개입과 단기간의 세제개편으로 인한 시장 충격이 컸다”면서 “그로 인해 주택거래가 일시적으로 위축됐다가 회복 국면을 맞지 못하고 장기 침체기에 접어들었으며 이는 곧 정책의 실패를 의미한다”고 주장한다.
장성수 주택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주택시장의 가격 안정은 실수요자가 쉽게 내집을 마련할 수 있도록 해주기 위한 수단”이라면서 “규제 강화를 통한 가격의 인위적 하락보다는 주택시장의 가격 안정 기조와 보조를 맞춰 금융 규제를 완화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금융규제가 완화되면 실수요자들은 내집 마련의 기회를 보장받고 주택거래가 일정한 수준으로 회복돼 장기적으로는 주택시장을 안정시키고 중산층의 내집 마련 지원이라는 정책 목표도 달성된다”고 설명했다.
늘어만 가는 가계금융부채 ‘적신호’
하지만 서민들은 이미 가진 주택담보대출 등 금융대출로 인해 생활고에 시달리고 있는 실정이다.
통계청·금융감독원·한국은행이 공동으로 실시한 ‘2011년 가계금융조사’ 결과에 따르면 지난 3월 말 가구당 평균 부채액은 전년 2월 말보다 12.7% 증가한 5205만 원이다. 이중 금융부채와 임대보증금은 3597만원과 1608만 원으로 전체 부채액의 각각 69.1%(0.9%p 증가), 30.9%(0.9%p 감소)를 차지했다.
특히 금융부채 중 담보대출은 12.3% 증가한 2850만 원, 신용대출은 21.9% 증가한 625만 원이었으며 가처분소득 대비 금융부채 비율 및 원리금상환액 비율은 부채 증가율이 더 커서 각각 109.6%(6.2%p 증가)와 18.3%(2.2%p 증가)를 기록했다.
원리금상환이 생계에 주는 부담 정도도 심각했다. 원리금상환에 대해 전체 가구 중 74.2%가 부담을 느끼고 있으며, 이 중 26.8%는 매우 부담을 느낀다고 응답했다. 또한 보증금이 있는 월세가구 중 부담스럽다고 응답한 가구는 80.8%로 전년대비 6.7%p 증가했다.
또한 주택담보대출의 부실채권 비율은 5년 만에 최고치에 근접했다. 금융감독원(원장 권혁세)에 따르면 지난 9월말 주택담보대출의 부실채권비율은 0.6%로 지난 6월 말에 비해 0.12%p 상승했고, 지난 2006년 9월 말 0.66% 이후 가장 높았다. 가계 전체 여신의 부실채권비율도 0.67%로 지난 3월 말보다 0.11%p 상승했다.
금감원 관계자는 “지난 5월과 6월 아파트 분양가를 둘러싼 다툼으로 분양자들이 받은 집단대출 연체가 상승했고 이 연체분이 석달 뒤 고정이하 여신으로 분류되면서 부실채권 비율이 크게 올랐다”고 밝혔다.
이와 관련해 금감원이 발표한 ‘2011년 9월 말 국내은행의 부실채권 현황’에 따르면 3분기 시중은행의 부실채권비율은 우리은행 2.25%, 국민은행 1.88%, 외환은행 1.29%, 신한은행 1.24%, 하나은행 1.15%, 한국씨티은행 1.12%, SC제일은행 0.89% 순으로 나타났다. 올해 말 국내은행의 부실채권 목표비율은 1.5%다.
게다가 비수도권 주택담보대출은 올해만 10조 원이 넘게 증가했다. 금융권에 따르면 지난달 기준 올해 비수도권의 주택대출 증가액은 10조3000억 원으로 집계됐으며 총액은 106조9000억 원에서 117조2000억 원으로 9.6% 상승했다. 비수도권의 집값이 상승함에 따라 해당 지역의 주택담보대출이 증가한 것이다.
KB국민은행(은행장 민병덕)에 따르면 올해 부산·대구·광주·대전·울산 등 5개 광역시의 집값 상승률은 14.6%에 달했다. 수도권 0.6%, 서울 0.4%에 비해 폭등한 것이다.
박원갑 KB국민은행 부동산수석팀장은 “지방의 경우 장기간 주택가격이 낮은 수준에 머물러 있어서 가격이 상승하고 있다”면서 “수요 측면에서도 서민주택의 신규 교체수요가 가격상승의 요인”이라고 분석했다.
[표 1] 부채보유가구의 원리금이 생계에 주는 부담 비율
제1금융권도 모자라 제2·3금융권까지
권택기 국회 정무위원회 의원(한나라당)이 지난 6일 금감원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국내 16개 은행의 만기일시상환 주택담보대출잔액은 지난 9월 말 기준 118조7000억 원이다.
이중 45%에 달하는 53조4000억 원은 내년에 만기가 도래하는 것으로 나타났으며 은행별 만기 도래액은 국민은행 9조8000억 원, 신한은행 9조5000억 원, 우리은행 8조7000억 원, 농협 6조4000억 원 등 이었다.
시중은행들이 금융당국의 대출 규제 때문에 기존 대출자들에게 분할상환이나 재연장을 해주지 않으면 결국 서민들은 제1금융권 대신 제2·3 금융권으로 내몰리게 된다.
권 의원은 “과거 집값이 급등할 때 은행들의 과도한 영업으로 인해 서민들의 빚 부담을 가중시킨 측면도 있다”면서 “금융당국은 가계부채 관리를 철저히 하되 만기가 돌아온 대출자들의 고통을 감안한 정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본지 [제903호 - <현장르포> 서민 울리는 가계대출 일시 중단 사태]에서 보도한 것과 같이 시중은행들이 정부의 권고 증가율에 맞추기 위해 가계대출을 일시 중단하는 사태가 반복될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예견한다.
서민들은 급전 마련을 위해 신용도가 높음에도 제1금융권인 시중은행에서 대출을 받지 못하고 보다 불리한 조건의 제2·3금융권에서 눈물을 머금고 대출을 받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 오는 것이다.
금융권 관계자는 “가계대출 일시 중단 사태는 시장에 경각심을 일깨워준다는 측면에서는 의미가 있지만 이것이 되풀이된다면 신용경색은 물론 사채 등 고금리로 인한 후폭풍이 예상된다”고 경고했다.
[표 2] 은행의 가계대출 현황
12·7 대책…주택담보대출만 그대로?
한편 12·7 대책으로 인해 부동산 시장이 또 한 차례 들썩여 가계대출 증감에 영향을 미칠지에 대해서도 세간의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국토해양부(장관 권도엽)는 다주택 보유자에 대한 양도소득세 중과제도 폐지, 재건축 초과이익 부과 2년 간 중지, 강남 3구 투기과열지구 해제 등을 담은 ‘12·7 부동산 대책’을 지난 7일 발표했다. 사실상 주택담보대출 완화를 제외한 모든 부분에서 규제를 완화시킨 것이다.
이처럼 주택담보대출비율(LTV)와 총부채상환비율(DTI) 규제만을 남겨둔 상황에서 향후 금융권의 주택담보대출의 귀추 역시 주목되고 있다.
심규선 한화증권 연구원은 “가계대출은 기업대출에 비해 규제의 영향을 지속적으로 받을 것”이라며 “내년 예상 대출 성장률은 6%로 다소 보수적으로 예상한다”고 밝혔다. 또한 “주택담보대출 증가율과 건전성은 주택가격에 민감하게 움직인다”며 “주택가격이 급격히 하락할 가능성은 크지 않다”고 예상했다.
이어 심 연구원은 “주택가격의 선행지표인 주택 거래량 지표 회복, 미분양 지속적 감소, 입주물량의 감소, 전세가격 상승으로 매매가와 전세가의 축소현상 심화 등이 주택가격 하락을 막는 데 긍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전망했다.
<김나영 기자> nykim@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