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길 먼 민주... 손학규-박지원 ‘정치적 결별’ 선언

정치적 셈법 다른 ‘대권’ 孫 vs ‘당권’ 朴

2011-12-12     정찬대 기자

[일요서울ㅣ정찬대 기자] 야권통합을 둘러싸고 민주당의 파열음이 커지고 있다.

지난 7일 손학규 대표와 박지원 전 원내대표는 여의도의 한 식당에서 오찬회동을 가졌으나 두 사람이 통합에 대한 합의점을 찾지 못한 채 끝내 결별을 선언했다. 이에 따라 모처럼만에 활기를 찾은 통합논의는 또 다시 안개 속으로 빨려들 것으로 관측된다.

손 대표와 박 전 원내대표는 ‘대권’과 ‘당권’을 사이에 두고 정치적 유대관계를 형성해왔다. 당내 반발과 갈등 속에서 두 사람은 협상력을 발휘하며 통합논의를 이끌어 왔지만, 박 전 원내대표가 손 대표에게 ‘밀실야합’을 하고 있다며 강도 높게 비판한데 이어 급기야 대선 지지선언까지 철회하면서 손학규-박지원간 정치적 유대관계는 더 이상 기대하기 힘들어졌다.

정치적 유대관계 깨진 손학규-박지원

손학규 대표가 대통령이 되면 그의 비서실장이 되겠다던 박지원 전 원내대표가 손 대표에 대한 대선 지지선언을 철회하겠다고 밝혔다.

두 사람은 ‘대권’과 ‘당권’을 목표로 상호 유대관계가 형성돼 왔지만, 정치적 신뢰에 금이 가면서 서로 등을 돌리는 등 양측이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넌 모습이다. 결국 당내 통합논의도 격랑 속으로 빠져들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

민주당은 ‘통합전대파’와 ‘단독전대파’가 맞서면서 통합논의가 지지부진한 모습을 보여 왔다. 이에 각 진영의 수장격인 손학규 대표와 박지원 전 원내대표가 지난달 27일 만남을 갖고 ‘선(先) 야권통합, 후(後) 지도부 선출’이라는 통합 중재안에 의견 일치를 보면서 속도감을 보였다.

특히 두 사람은 이날 회동에서 ▲전당대회는 박주선 안(통합안 표결처리)으로 한다 ▲전당대회에 관한 내용은 반드시 만장일치로 합의처리 한다 ▲어떠한 경우에도 손학규-박지원의 합의로 통합문제를 처리한다 등의 내용을 결의하면서 협상력을 보였지만, 이것도 잠시. 양측의 신뢰에 금이 가면서 두 사람은 동반자적 입장에서 한순간 적대적 관계로 바뀌었다.

박 전 원내대표는 그간 손 대표와 만나 성공적인 통합전대를 위해 노력했지만, 결과적으로 ‘합의와 약속’이 깨졌다며 지지철회 의사를 밝혔다. 그러면서 “손 대표가 민주당 대선후보로 괜찮은 재목이라 생각했는데, 그에 대한 믿음이 사라졌다”며 손 대표와 정치행보를 함께 할 뜻이 없음을 분명히 했다.

정치적 셈법 다른 ‘대권’ 손학규 vs ‘당권’ 박지원

사건의 발단은 지난 7일 이뤄진 민주당 통합협상위원회와 시민통합당의 통합협상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손 대표와 박 전 원내대표는 통합과 관련 사전 협의를 약속했지만, 이날 이러한 약속이 깨지면서 박 전 원내대표가 손 대표에 대한 지지를 철회한 것이다.

이에 앞서 지난 5일에는 문성근 ‘혁신과 통합’ 상임대표가 지도부 경선규칙 합의 내용을 언론을 통해 언급하면서 박 전 원내대표는 손 대표에게 이를 따져 물었고, 손 대표 등 지도부는 사실이 아니라며 ‘모르쇠’로 일관했다.

두 사람 간 기류는 지난 8일 개최된 김대중 전 대통령 노벨평화상 수상 11주년 기념행사에서도 엿볼 수 있었다. 두 사람은 같은 테이블에 앉아 있었지만 행사 내내 서로를 외면한 채 어떤 말도 하지 않았다.

또한 같은 날 진행된 민주당 지역위원장회의에서는 양측의 힘겨루기가 그대로 드러났고, 두 사람은 작심한 듯 서로를 겨냥했다.

손학규 대표는 “어떤 한 사람도 이의제기 하지 않고 야권통합의 대의에 나서야 한다. 통합은 민주당을 공중분해하는 게 아니라 더 큰 민주당으로 태어나기 위한 것”이라며 박지원 전 원내대표에게 일침을 가했다. 이에 대해 박 전 원내대표는 “혼자서라도 민주당의 정신을 지키겠다”며 손 대표와 확실한 선을 그었다.

곧바로 비공개로 전환된 이날 회의는 통합찬성파와 통합반대파가 맞서면서 설전이 오갔고, 급기야 주먹다툼까지 일어나는 등 거친 몸싸움이 벌어졌다.

두 사람이 이렇듯 갈등관계를 맺은 데는 내년 총선과 대선을 겨냥한 양측의 정치적 셈법이 다르기 때문이다.

대권주자를 꿈꾸는 손 대표는 통합을 주도해 내년 대선에서 입지를 확보하고 자신의 대권가도를 더욱 공고히 하겠다는 의지를 담고 있는 반면, 박 전 원내대표는 당 대표로 선출된 후 통합과정과 총선에서 주도권을 쥐고 이를 통해 공천권을 행사하겠다는 계산이 깔려있다. 결국 대선을 위해 총선 전부터 ‘혁통’과 함께 할 것인가, 아니면 총선에서 ‘혁통’을 배제한 채 민주당만의 입지를 꾀할 것인가가 서로 갈리는 것이다.

박지원 “버스 지나간 후에 손들어봤자...”

박지원 전 원내대표는 민주당과 시민통합당의 통합협상이 있던 다음날인 지난 8일 한 라디오인터뷰에서 “지난달 손 대표와의 회동에서 전당대회를 비롯해 통합에 대한 모든 내용을 합의처리하고 반드시 나와 협의하기로 했다”며 “그런데 손 대표가 이러한 약속을 저버리고 ‘혁신과 통합’ 측과 밀실야합을 했고, 이를 처리함으로써 일방적으로 우리의 약속을 깼다”고 주장했다.

그는 또, ‘손 대표가 외부세력과 먼저 합의한 후 이를 박 전 원내대표에게 전달하려 하지 않았겠냐’는 물음에 “외부세력과 합의한 후 저에게 얘기하는 것은 버스가 지나간 후에 손들어 주는 것과 같다”며 불편한 심기를 직접적으로 드러냈다.

그러면서 “절차든 뭐든 사람이 약속을 하면 지켜야 한다. 지난 5일 ‘혁신과 통합’과의 통합논의가 있을 때도 평소 저와의 관계를 생각한다면 한 번쯤 상의가 있었을 법도 했지만 어떤 얘기도 없이 이를 발표했다”고 비판했다.

박 전 원내대표는 “지금까지 손학규 대표와 참 좋은 정치적 유대관계를 유지해 왔으나, 이제부터는 이러한 관계를 가질 필요가 없을 것으로 보인다”며 “당원으로써의 할 일을 하겠다. 나의 갈 길을 가겠다”고 말했다. 즉, 민주당 사수를 위해 앞으로 통합에 반대하겠다는 뜻을 분명하게 밝힌 것이다.

아울러 “통합으로 인해 60년 전통의 민주당이 사리지는 것을 반대하는 다수의 대의원들과 원외지역위원장 그리고 국회의원들이 있다”며 민주당내 통합논의가 순탄치 않을 것임을 예고했다.

다급해진 손학규... ‘통합안’ 결의당부

상황이 이렇게 되자 손학규 대표는 다급해졌다.

지난 8일 진행된 민주당 지역위원장회의에서 손 대표는 “어떤 한사람도 이의제기를 하지 말고 야권통합의 대의에 함께 나서야 한다”며 ‘통합안’ 결의를 거듭 당부한 데 이어 지역시도당에 공문까지 보내 이들의 참여를 독려했다. 특히 지역위원장 당무수행 평가에 대의원 전당대회 참석률을 반영하겠다고 밝히면서 통합에 대한 의지를 재확인했다.

그러나 이와 관련해 수도권 지역의 한 원외위원장은 [일요서울]과 전화통화에서 “오세훈 전 서울시장의 급식찬반 투표 당시에도 참여하지 말라고 했었는데, 무슨 독재정치도 아니고 투표참여를 강제하고 협박하려 하느냐”며 반발했다. 그러면서 “평가를 하겠다는 것은 결국 내년 공천심사 때 이를 반영하겠다는 것인데, 안 갈 수도 없고 갈 수도 없다”며 현 상황을 토로했다.

한편, 손학규 대표는 지난 9일 최고위원회의에서도 야권통합을 거듭 강조했다. 손 대표는 “귀한 자식을 낳기 위해선 진통도 있는 법이다. 민주적 정당에선 중요한 과제를 놓고 격렬히 토론하고 경우에 따라 충돌할 수도 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대의를 좇고 명분을 중시하는 것이 우리의 전통”이라며 “결국 하나로 합치고 더욱 단단해져 책임 있는 자세를 갖추겠다. 국민의 기대에 부흥할 수 있도록 한 치의 어긋남이 없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시민통합당’ 창당... “민주, 통합하자”

지난 7일 ‘혁신당 통합’(혁통)이 주축이 된 시민통합당은 중앙당 창당대회를 갖고 민주당과의 통합을 결의했다. 또한 통합협상을 위한 상임운영위 구성을 마치는 등 이에 대한 모든 절차를 마무리했다.

이날 당대표로 선출된 이용선 ‘혁통’ 상임대표는 “오늘 손학규 대표와 정세균 최고위원을 만나 통합에 대한 원칙적인 합의를 봤다”며 “정치적 사생아가 되지 않고 수권을 담당할 통합정당을 만들겠다고 했는데, 시민통합당 출범으로 최소한의 필요조건은 충족됐다”고 설명했다.

문성근 ‘혁통’ 상임대표는 “1월 초에 통합정당 지도부를 선출한 후 곧바로 내년 총선출마 후보를 공천해야 한다”며 “시민참여경선의 비율이 극대화될 것이라는 점에서 시민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부탁한다”고 말했다.

한편, 통합정당의 당권출마를 고민 중인 것으로 알려진 김기식 ‘혁통’ 상임대표는 9일 [일요서울]과 전화통화에서 “개인적인 의사로 말하면 아직 특별하게 정해지지는 않았다”면서도 “다만, 주위에서 이러한 역할을 해달라는 요구가 많고, 나 또한 고민하고 있다”며 당권출마를 부정하지 않았다. 이어 “일단 통합을 마무리하고 그 이후에 역할이 필요하다면 적극적인 고민을 해보겠다”며 이에 대해 긍정적 신호를 보냈다.

김기식 상임대표는 ‘통합을 둘러싸고 민주당의 상황이 좋지 않다’는 질문에 “아직 지켜봐야 하겠지만 대의는 통합하자는 것 아니냐”며 “원외지역위원장이나 대의원 다수가 통합에 찬성하고 있고, 서로 많이 양보했다고 인정하고 있는 만큼 예정대로 진행되지 않겠느냐”고 내다봤다.

그러면서 “정당이라는 것이 소수의 입장도 들어야 하고, 이들이 강하게 반대할 때는 다양한 측면에서 고려하고 검토돼야 하는 부분도 있다”며 “현재 어려움은 있어 보이지만 대의는 통합하는 것”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민주당-시민통합당, ‘통합협상안’ 전격 합의

통합을 둘러싸고 당내 기류가 심상치 않은 가운데 민주당과 시민통합당은 긴급 회동을 갖고 통합 협상안을 전격 타결했다.

지난 7일 민주당 손학규 대표와 정세균 최고위원, ‘혁통’의 문재인 이해찬 문성근 이용선 상임대표는 국회 귀빈식당에서 만남을 갖고 민주당과 시민통합당의 당대당 통합에 필요한 합의를 도출하고 통합안에 최종 서명했다.

이날 서명한 통합안에 따르면 최대 쟁점이었던 지도부 선출방식은 ‘대의원 30%, 당원·시민 70%’로 선거인단을 구성하고, 대의원은 양당 동수(同數)로 결정했다. 또한 내년 총선공천에서 완전개방 시민경선으로 후보를 채택한다는 원칙에 양측이 합의했다.

최고위원회는 선출직 6명, 지명직 3명, 당연직 2명으로 하되 지명직에는 노동계 1명을 포함하고 여성·지역 등도 함께 고려하기로 했다. 또한 청년의 정치참여 확대를 위해 당연직 최고위원에 청년대표를 긍정적으로 검토하고, 비례대표 등에 배려키로 했다. 이밖에도 합당결의를 위한 양당의 수임기관은 각 당에 7명씩을 배정하고, 한국노총 2명을 포함해 모두 16명으로 구성하기로 결정했다.

민주당은 시민통합당이 반대해 온 ‘임시당원제도’를 채택하지 않기로 했으며, 시민통합당은 민주당 당원의 경우 별도의 절차 없이 선거인단에 참여할 수 있도록 민주당의 제안을 수용했다. 마지막으로 통합정당의 당명은 공모와 국민의견 수렴절차를 거쳐 최종 결정하기로 했으며, 단 ‘민주’라는 단어가 들어가도록 하고, 약칭은 ‘민주당’으로 쓰기로 했다.

<정찬대 기자> mincho@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