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증 연대기
통증에 대한 모든 은유, “인류 역사는 통증의 역사”
이 책은 통증에 대한 문화사적, 의학적 연대기와 저자 멜러니 선스트럼의 자전적 연대기를 함께 섞었다. 자전적 연대기라는 형식은 통증이라는 감각 경험의 독특성 때문에 의미를 갖는다.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했듯 ‘통증은 사람의 본성을 뒤흔들고 파괴하’(237쪽)면서도, 또 한 가지 저주스런 것이 있다. 통증이 없는 사람에게는 통증이 거짓말처럼 들린다는 것이다. 알퐁소 도데의 말은 백번 옳다. “통증은 내게는 언제나 새롭지만 지인들에게는 금세 지겹고 뻔한 일이 된다.”(54쪽) 통증은 너무나 주관적이어서 타인들에게 전달할 수도, 증명할 수도 없는 개인적 경험이다. 통증은 그런 점에서 아주 특별한 감각이고 경험이다. 때문에 저자 자신이 만성 통증에 시달렸고, 치유의 길을 찾는 여정을 자전적으로 쓴 부분은 각별한 의미를 가진다. ‘만성 통증 환자의 언어로 풀어낸 최초의 책’이라는 <타임>의 평처럼, 통증 환자인 저자 자신의 목소리는 그 어떤 목소리보다 생생하고, 간절하다.
수전 손택은 ‘질병’을 정확하게 판단하려면, ‘은유를 없애야 하며 은유적으로 생각하지 말아야 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아픈 자들의 세상에 사는 사람은 곳곳에 스민 섬뜩한 은유에 초연할 도리가 없다.’ ‘왜 내가?’라는 질문을 던지는 인간은 수많은 은유를 창조해왔다.
저자 멜러니 선스트럼은 고대부터 19세기 마취법의 발견, 통증의 메커니즘이 생리학적으로 규명되는 현대에 이르기까지 인류가 통증을 이해하고 해석한 방식을 연대기적으로 살피고 통증의 계보를 파헤쳤다.
‘통증에 인간이 부여한 은유’를 바로보기 위함이다.
고대 종교나 인류학적 문헌을 보면 사람들은 통증을 ‘귀신이 씌었기’ 때문이거나 ‘죄’가 있기 때문으로 본다. ‘치통을 앓는 바빌로니아인은 최초의 벌레이자 귀신이 이빨을 갉아 먹어서 치통이 생긴다’고 생각하고, 고대 인도인들은 ‘사로잡는 자’라는 뜻의 귀신 그라히가 발작을 일으켜 병이나 통증이 생긴다고 믿은 것처럼 말이다.
통증은 단순히 육체적인 아픔을 넘어서 신과 악마의 투쟁, 눈에 보이지 않는 거대한 우주적 투쟁으로 연장된다. 이런 이유로 통증은 삶과 고통의 의미라는 철학적이고 종교적인 의미에서부터 구원, 순교 그리고 신성재판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방식으로 해석된다.
이런 고대적 통증관이 무너져 내린 계기는 무엇이었을까. 저자가 주목하는 것은 바로 수술에서 ‘마취법’의 발견이다.
마취법의 발견으로
통증관 혁명적으로 바꾸다
1820년대 에든버러 의과대학을 다니던 찰스 다윈은 강당에서 ‘외과수술을 참관하다’ 질겁하며 뛰쳐나온 것으로 유명하다.
당시 수술이 얼마나 끔찍한 통증과 공포를 불러일으켰는지는 여러 문헌을 통해 알 수 있다. 수술대는 “도살장처럼 피범벅이 되었고 불운한 희생자는 메스 아래서 덜덜 떨며 비명을 질러댔다.”
16세기 프랑스의 유명한 외과의사 앙브루아즈 파레는 수술을 집도하는 의사가 ‘굳고 무정한’ 심성을 지녀야 한다는 것으로 당시 수술의 비인간성을 표현하기도 했다.
이런 통증의 공포를 해방한 것이 바로 마취법이었다. 마취법은 통증에 대한 은유를 걷고, 통증을 과학으로 바라보게 된 결정적 계기였다.
“과학이 성자와 죄인의 고통을 두루 몰아내자 통증은 고대의 의미를 잃었다. 신의 손을 떠난 통증은 포이나도, 고난도, 시험도 아닌, 인간이 통제할 수 있는 생물학적 현상으로 전락했다” 하지만, 과학으로 통증이라는 질병을 파악한다고 해서, 통증과 관련된 수많은 은유들이 사라지는 것일까.
통증이라는 수수께끼에
대한 전방위적 탐사
통증을 생물학적 현상으로 이해하고, 하나의 질병으로 인식하며, 마약성 진통제, 이를테면 아편의 생리학적 기전이 밝혀지고, 뇌영상 등 최첨단 기법으로 통증을 해석하는 현대에도 통증의 은유는 사라지지 않는다.
통증은 의식을 가진 인간이 어쩌면 지구상에 존재할 때부터 짊어진 숙제, 혹은 풀 수 없는 하나의 커다란 미스터리인 듯하다.
블라디미르 나보코프의 말마따나 ‘인류 역사는 통증의 역사’일지도.
저자 자신이 고대의 치유법, 환각, 마취법, 에테르 기체의 발명, 아스피린, 아편의 발명 그리고 일종의 최면요법으로 마취법이 등장하기 이전에 유럽을 휩쓸었던 메스머리즘, 플라시보 효과, 마약성 진통제, 최첨단 뇌영상 기법 등을 다루는 이유는 인간이라면 피할 수 없는 통증과 이를 줄이려는 인간의 노력이 인류 역사에서 중요한 테마였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다.
최신 뇌과학은 통증을 어떻게 이해할까.
과학자들은 통증에서 하나의 거대한 우주를 본다. 아픔은 뇌에서 가능한 무수한 상태와 연관된, 거대하고 풍부하고 다양한 인간 경험이며, 우리는 이 우주의 거대한 크기에 압도당한다는 것. 인간에게 아직 통증은 모두 탐사되지 않은 거대한 우주로 남아 있다.
저자가 은유로서의 통증을 살피고, 인류 역사에서 통증의 이해방식을 탐구하는 것은 과학이 아니라 ‘은유’가 통증의 이해와 해석에 아직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기 때문이다.
때로 과학적 치료법만큼이나 기도나 플라시보와 같은 은유적인 방식이 통증에 유효한 이유이기도 하다.
<김선영 기자> ahae@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