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은 아는데 정치 쪽은 모른다"?

2011-11-23     고재구 회장

야권으로부터 통합신당에 참여해 달라는 요구를 받고 있는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이 지난주 초 자신이 보유하고 있는 ‘안철수 연구소’ 지분의 절반(약1500억 원)을 사회에 환원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는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수많은 문제의 핵심중 하나는 가치의 혼란과 자원의 편중된 배분이며, 그 근본에는 교육이 자리하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자신이 환원한 돈이 저소득층 자녀들의 교육을 위해 쓰였으면 하는 바람을 갖고 있다고 했다. 그는 또 “기업이 존재하는 것은 돈을 버는 것 이상의 숭고한 의미가 있다”며 “함께 살아가는 사회에 기여하는 존재가 돼야한다는 보다 큰 차원의 가치를 실현할 때가 왔다”고 했다.

안 원장과 가깝다는 한 정치권 인사는 “안 원장이 정치를 시작할 경우 회사에 끼칠 피해에 대해 고민해온 것으로 안다”고 밝혔다. 안 원장의 재산환원 발표는 본인이 의도했든 안 했든 간에 정치적 효과를 극대화 시키는 카드가 됐다. 이에 따라 안 원장의 향후 정치 행보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야권통합 대열에 합류하거나 제3신당을 창당할 것이라는 의견이 분분하다.

안 원장은 10·26 서울시장 보선이 끝나자마자 “학교 일만으로도 벅차다”며 언론의 주목권에서 일단 벗어나는 모양새를 취했다. ‘안철수 신당’ 창당 가능성이 연일 언론에 거론되고 야권의 러브콜이 잇달았지만 침묵으로 일관했던 그가 주식 환원 의사를 밝히는 메일을 통해 우리사회가 안고 있는 핵심적 문제를 지적했다.

어쨌든 분명한건 그의 기부행위가 신선한 바람을 탔다는 사실이다. 그렇다고 안 원장이 당장 정치의 링 위로 올라설 것 같지는 않다. 상황을 더 지켜 볼 것이다. 아직도 안철수 교수가 “인문학은 아는데 정치 쪽은 모른다”고 말 할지 모르겠다. 언어와 행동이 일치하는 것이 인문학적 과학적 통섭(統攝)이자 학문의 소통과 융합의 근원이다.

안철수라는 정치 초짜가 정치권 전체에 폭풍을 일으키는 것은 우리 정치판이 매번 물갈이 말은 나왔지만 판은 그대로 유지하고선 꼼수만 부려온 때문이다. 안철수가 박원순을 존경한다고 했을 때만 해도 나는 안 교수 자신이 만든 컴퓨터 바이러스 치료제인 V3를 사회에 기증했던 사회적 가치에 공감해 많은 이들이 존경의 대상으로 삼는다고 봤었다. 오늘 같은 상황은 안 교수 자신이 바라는바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동안 안 교수가 정치와는 거리를 두고 벤처기업가로, 교수로서의 가치관과 목적을 둔 것으로 알았다.

어쩌면 세상이 그에게 정치적 잣대를 들이대는 것을 그가 자신을 모욕한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는 판단을 했었다. 내가 멀리서 본 그의 모습이었다. 한나라당을 향해 내뱉은 그의 독설도 한나라당에 대한 강한 실망을 표출 하는 걸로 여겼다.

이제 안철수는 좌든 우든 대한민국의 이념적 이정표 앞에서 분명한 갈림길을 택해야 할 시점이다. 이 나라 정치노선은 정당으로 뿌리내린 정당정치에 의해서였다. 표플리즘 정당 가능성이 시사되는 현실은 이 나라 정체성의 위기를 뜻하는 것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