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폭행보 벌이는 박원순 서울시장

박원순 시장의 ‘깜짝쇼’ 에 시민들 ‘화들짝’

2011-11-23     전수영 기자

시민들의 애로사항 청취 위해 소통 강화는 긍정적
일부는 ‘너무 서두르다가 시정 그르칠 수 있다’ 지적도

10월 26일 서울시장 재보궐선거로 당선된 박원순 시장의 광폭행보가 시민들에게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오고 있다.

첫 출근일에 들른 곳은 다름 아닌 노량진수산시장이었다. 시민들의 애로사항을 듣기 위해 방문한 이곳에서 한 상인은 “서민 살려주는 시장이 되려면 뭐 하나라도 팔아줘야 한다”며 박 시장을 붙들었다. 박 시장은 이 말에 곧바로 꽃게 1㎏을 사고 2만 원을 지불했다.

여기까지는 의례히 하는 행동으로 볼 수 있지만 국립묘지를 거쳐 시청으로 출근하는 길은 관용차가 아닌 지하철을 이용했다. 붐비는 지하철 안에서도 박 시장은 시민들과 인사를 나누며 서울시에 할 말이 있으면 언제든지 해달라는 당부를 잊지 않았다.

이제 보름이 조금 지난 박 시장의 행보 때문에 담당 공무원과 출입기자들은 항상 바짝 긴장할 수밖에 없다. 사무실을 지키기보다는 시민들을 만나기 위해 밖으로 나가는 박 시장의 모습을 따라가 본다.

지난 2일 새벽 박원순 시장의 복장은 정장이 아닌 환경미화원복이었다. 형광색 유니폼에 흰색 헬멧을 쓴 박 시장은 환경미화원과 다름이 없었다.

박 시장은 빗자루질을 하면서 가끔 힘에 부친 듯 가쁜 숨을 몰아쉬면서도 쉬지 않고 이곳저곳을 쓸었다. 쓰레기봉투를 쓰레기차에 던져 넣는 일을 할 때에는 “능숙하다”는 칭찬을 받자 “시장 끝나면 응모할까봐요”라는 너스레를 떨기도 했다.

청소를 마친 박 시장은 관악구 신림본동의 환경미화원 휴게실을 찾았다. 그래도 시장이라는 위치를 생각해 다세대주택 2층에 올라가 유니폼을 벗고 양복으로 갈아입었다.

박 시장은 선거 유세 때 들리기는 했지만 청소를 돕지 못해 죄책감이 들어 다시 왔노라고 이유를 설명했다.

여기까지도 사람들이 생각하는 이른바 ‘쇼’로 보일 수 있는 대목이다.

집회장소로 변한
서울시 서소문별관

박 시장은 환경미화원으로 변신하기 전인 지난달 31일 서울방재종합센터를 방문해 지난해 여름 호우로 인해 발생한 우면산 산사태에 대해 “천재지변이라고만 보고 넘어가서는 안된다”고 말했다. 이는 기존 서울시 입장을 뒤집는 발언이다.

박 시장의 발언이 있자 우면산 산사태 비상대책위원회는 8일 시청 서소문별관 앞에서 집회를 열고 산사태에 대한 전면 재조사를 촉구했다.

이뿐만 아니라 서울시의 뉴타운 재개발 사업에 반대하며 서소문별관 로비를 점거하고 박 시장과의 면담을 요청했던 주민들은 박 시장이 직접 “소규모로 대표를 구성해 약속을 잡고 오면 언제든지 만나겠다”는 약속을 받고 농성을 풀었다.

이런 민원성 농성만 있는 것은 아니다.

8일 오후 서소문별관 앞에서는 30개 시민단체들의 대표들이 몰려와 박 시장이 아름다운재단 총괄상임이사로 재직 당시 기업들에게 기부금을 받았으나 이중 일부를 횡령•착복했다고 주장하는 기자회견이 열렸다.

이런 장면들은 오세훈 전 시장 재직 당시에도 없지는 않았다. 하지만 하루가 멀다 않고 벌어지는 이런 농성을 보며 주변의 시민들은 ‘박 시장이 시민들의 목소리를 잘 들어주니까 이렇게 몰려와 얘기하는 것 아니겠느냐’는 의견과 함께 ‘혹시 뭔가 잘못이 있었던 것이 아닌가’라는 의견으로 나뉘지만 지금까지는 대체로 전자의 경우가 더 많다.

박 시장이 열린 행정을 펼침에 따라 이런 집회와 농성은 앞으로도 계속해서 이어질 전망이다. 이로 인해 인근 지역의 직장인들은 점심시간 때 통행에 피해를 보고 있다는 하소연도 조금씩 불거지고 있어 이 문제를 어떻게 풀 것인지에 대한 박 시장만의 묘수가 기대되는 대목이다.

시청공무원들도 아직까지는 긍정적인 반응

박 시장은 오세훈 전 시장 재직 시절 한강사업본부장이었던 류경기 본부장을 대변인으로 임명했다. 오 전 시장의 사업 중 가장 반대의견이 많았던 한강르네상스 사업을 주관했던 류 본부장을 대변인으로 임명한 것은 깜짝 놀랄만한 일이었다.

오 전 시장의 한강르네상스 사업에 대해 문제가 없다고 주장했던 인물을, 그 사업을 반대하던 시장이 대변인으로 임명하는 것은 모험 중의 모험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시민단체에서는 대변인 임명을 취소하라는 주장이 일었지만 박 시장은 그대로 강행했다.
이런 박 시장의 모습에 시청의 한 간부는 “시장님이 오면서 변화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은 했지만 이 정도일지는 몰랐다. 한강사업본부장을 대변인으로 임명한 것은 놀랄만한 일이지만 그래도 끌어안고 가겠다는 의지를 밝힌 것이라 대단하게 생각한다”며 박 시장의 깜짝 퍼포먼스에 수긍했다.

이어 그는 “박 시장님께서 너무 많은 일을 하시려 함에도 불구하고 진정성을 느낄 수 있어 시청공무원 대부분도 박 시장님을 짧은 시간 내에 좋아하는게 된 것 같다”고 말했다.

박 시장의 하루 일정이 너무나 빠듯하다 보니 시청공무원들도 일이 많아진 것도 사실이지만 출입기자들 또한 긴장감을 늦출 수 없다.

한 방송기자는 “박 시장이 하도 많이 움직여서 기사를 따라가기만 하는 것도 벅찰 정도다. 오히려 더 힘들어졌다”며 푸념 아닌 푸념을 늘어놓았다.

깜짝 퍼포먼스에 그칠 경우
실망은 더욱 커

문제는 이런 박 시장의 광폭행보에 대해 긍정적인 반응만 있는 것은 아니다.
한 시청공무원은 “시장님께서 말씀하고 행동하시는 것을 보면 분명 박수를 보내고 싶다. 하지만 언제까지 이렇게 바쁘게만 살 수는 없다. 만약 시간이 조금 지난 후에 시장님의 행보가 더뎌진다면 실망도 커질 수 있을 것 같다”며 박 시장의 행보에 속도조절이 필요함을 조언했다.

실제로 박 시장이 서울시립대의 내년도 등록금을 올해의 반으로 하겠다고 선언해 서울시립대학생들과 학부모들에게 큰 호응을 받기는 했지만 문제는 예산을 어떻게 확보할 것이냐를 두고 우려 섞인 목소리가 흘러나오고 있다.

또한 부실 위험이 높은 SH공사의 부채 문제와 함께 재개발 사업, 한강르네상스 사업 등 많은 예산이 투입되는 사업들이 산적한 가운데 일부분의 성과만으로 박 시장을 평가하기에는 아직 이르다는 경계론도 분명 존재한다.

박 시장도 이런 우려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는 듯하지만 아직까지 해법을 내놓기에는 시간이 얼마 흐르지 않았기 때문에 조만간 해법을 찾을 것이라 보고 있다.

서울시민들은 박 시장에게 진행하는 사업이 과유불급(過猶不及)이 되지 않기를 바라고 있다.
<전수영 기자> jun6182@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