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는 ‘귀’를 열어라”

2006-01-17     이금미 
문병호(47·인천 부평갑) 열린우리당 의원은 서울대 법대 재학 당시 ‘무림사건’에 연루돼 강제휴학 처분을 받았다. 오랜 갈등 끝에 내린 결론은 법학도로서 시대에 맞는 역할을 하자는 것. 사법고시(28회)에 합격한 그는 89년 노동·인권운동의 성지라 할 수 있는 부평, 그것도 법원 앞이 아닌 역앞에 변호사 사무실을 열었다. 이후 부평의 시국사범, 노동분쟁 등의 인권변론에 앞장섰다. 99년엔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의 추천으로 옷로비 사건 특별검사팀의 수석수사관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인천참여자치연대 공동대표, ‘개혁과희망의지방자치를위한인천시민의 힘’ 집행위원장 등 시민단체에서 중추적 역할을 해온 문 의원은 지난 17대 총선에 출마, 당선됐다.

1·2 개각 후폭풍이 거세게 몰아치고 있는 열린우리당. 노무현 대통령과 지도부 만찬회동을 앞두고 당·청간 갈등이 최고조로 치닫던 지난 11일 오전 여당내 초·재선 ‘서명파’ 모임에 참여하고 있는 문병호 의원을 만났다. 개각 후폭풍의 대미를 장식하고 있는 유시민 보건복지부 장관 내정자에 대한 개인적인 견해를 물었다. 보건복지위에서 활동했던 유 내정자는 지난해 4월 상임위를 옮기기 전까지 문 의원의 바로 옆자리 주인이었다. “함께 상임위 활동을 했기에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장관을 해도 잘 할 사람이다. ‘개각 반대’의 목적은 입각 대상자들에 대한 개인적인 ‘호불호’가 아닌, 대통령의 독주를 지적하려는 데 있다.”청와대를 향한 그의 성토는 계속됐다. “당과 국회를 가볍게 보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특히 당의장을 입각 대상자에 올리는 것은 상식에 어긋난다. 전당대회를 앞두고 있는 상황에서 다분히 ‘정치적인 의도’가 개입된 것이라는 결론밖에 내릴 수 없다. 청와대는 ‘귀’를 열고 의견수렴의 과정을 거쳐야 한다.”모임의 ‘서기’를 맡고 있는 탓에 ‘서명파’를 주도하고 있다는 인상이 짙게 배어나오는 문 의원. 그러나 그는 어떤 모임이 하나의 계파로 발전하는 것에 반대한다. 이번 개각 사태 역시 ‘당·청관계 재정립에 대한 공부’라고 진단했다. “국회의원 모임은 생산적인 부분보다 패거리 정치, 또는 비생산적으로 발전해가는 경우가 많다. 물론 이러한 움직임이 불필요한 것만은 아니다. 법안 발의에 있어서도 논리적 설명이 아닌, 의원들간 친분을 연결고리로 해 동의를 구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러나 이것이 의정활동의 ‘주’가 돼서는 안 된다. 정책과 이슈가 중심이 되는 모임, 이를 바탕으로 상호 건전한 경쟁으로 발전해야 한다.” 이는 그가 특정 정치인을 내세운 모임에 가입하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의 이러한 소신은 지금까지의 의정활동에 고스란히 녹아 있다. 변호사 출신인 그는 열린우리당 원내 법률부대표로서 당 정책과 관련된 법률에 직접 관여해 왔다. 언론중재및피해구제법, 과거사관련법, 군의문사관련법, 공소시효연장법 등이 그의 손을 거쳤다. 때문에 법사위에서 활동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그가 소속된 상임위는 보건복지위이며, 그동안 식품안전기본법, 저출산 고령화 및 실종아동에 관한 법률 등에 관심을 가져왔다. 이 부분에 대해서도 할 말이 많다. “국민의 삶과 직결되는 민생이나 보건복지 정책은 얘기해도 들어주지 않는다.

또 점잖게 말하면 있는지 없는지 조차 모르는 게 우리나라 언론과 정치의 현실이다. 감정적인 언사, 튀는 행동, 권력다툼, 권력의 뒷얘기에만 귀를 기울인다. 이는 국민에 대한 이율배반이다.” 문 의원은 ‘국회의 권한과 역할이 부실하다’는 데서 근본적인 이유를 찾고 있다. 겉으로 드러나는 것보다 실속이 없다는 얘기다. “국정운영이란 결국 돈과 사람을 다루는 문제다. 그러나 국회가 할 수 있는 일은 극히 부분적이다. 정책입안은 정부와 국회가 공동으로 하지만 실제 예산편성은 정부에 주도권이 있다. 집행도 정부가 주도하고 있으며 평가에만 국회가 일부 관여하고 있을 뿐이다. 집행하는 사람이 평가를 하는 시스템이다.”이러한 이유로 ‘개헌’에 대한 기대도 크다. 문 의원은 국회의 권한을 강화하는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감사원의 독립과 국회내 소위원회를 늘리는 게 골자다. 국회가 국정의 중심에 서야 한다는 것이다. 다소 부정적으로 비치기도 하지만, 그나마 국회는 선거를 통한 자정능력을 갖춘 곳이기 때문이다. 이번 개각 사태 역시 이와 무관치 않다는 문 의원. “개각 때마다 국회의원들이 장관하려고 청와대에서 전화오기만을 기다리는 현상은 다시 생각해볼 문제다. 특히 중진급 의원들의 장관 직행은 국회의 정부 견제 기능을 약화시키는 주된 요인이다.” 그는 국회의 자정능력을 높이기 위한 이색 법안도 생각해본 적이 있다. 국회의원 3선제와 지역구 의원들의 지역 방문 횟수를 줄이는 법안이 그것이다. 문 의원은 최근 국회 출입기자들이 뽑은 ‘약속을 잘 지키는 국회의원’에 뽑히기도 했다. 일하는 국회의 참모습을 정립하겠다는 초선의원의 열정이 실현될 수 있을 것인지 기다려진다.


# 이명박은 무슨…사학법 장외투쟁이 문제

한나라당의 ‘사학법’ 결말은 어떻게 될까. 이재오 신임 원내대표가 선출되면서 한나라당 사학법 장외투쟁 결말에 대한 정객들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한나라당이 장외에서 투쟁을 하는 동안 여당은 새해 예산안을 처리했다. 자칫 입각 인사들에 대한 인사청문회도 제1야당을 배제하고 진행될 조짐이다. 그럼에도 박근혜 대표는 사학법 원천무효 주장을 철회할 뜻이 없는 듯하다.

한편 한나라당의 원내대표 경선이 애초 ‘김무성 대세론’에서 자칭 ‘비주류’인 이재오 대표로 선회한 배경엔 사학법 대응에 대한 구성원들의 불만이 누적된 데 따른 결과라는 게 대체적인 시각이다. 이 때문인지 이재오 대표는 사학법 재개정안을 마련, 오는 24일 여당의 새 원내대표와 협상에 나서겠다는 전략이다. 가뜩이나 이번 원내대표 경선 결과를 두고 박근혜계와 이명박계의 세싸움에서 이명박 서울시장의 손을 들어줬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는 터에, 과연 24일 전 박 대표가 ‘원천무효’를 관철시키겠다는 의지를 굽힐 수 있을 것인지 정가는 숨죽이고 있다.
<정치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