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 M&A 후폭풍, ‘승자의 저주’되나
[심층분석] SKT-하이닉스 조합, 시너지는?
- M&A 통한 사업다각화 ‘약’인가 ‘독’인가
- 경기침체 장기화되면 현금흐름에 악영향
대형 M&A가 재계의 이슈가 되고 있다. 지난해 8월 현대중공업이 현대오일뱅크를 인수한 데 이어 같은 해 11월 포스코가 국내 최대 종합상사인 대우인터내셔널을 인수했다. 올해는 지난 4월 현대차그룹이 현대건설을 인수해 ‘명가 재건’의 토대를 마련했으며, 6월에는 대한통운이 CJ의 품에 안겼다. 또한 올해 M&A 시장을 뜨겁게 달궜던 하이닉스는 SK텔레콤이 지난 10일 인수의향서를 제출함으로써 일단락됐다. 일반적으로 사업다각화 및 신성장동력 확보 등을 위한 방안으로 M&A가 많이 활용된다. 그러나 대부분의 전문가들은 M&A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시너지효과가 반드시 있어야 하고, 이에 따른 재무적 부담을 최소화할 수 있어야 성공적인 딜이라고 평가한다.
SK텔레콤은 지난 14일 하이닉스 및 채권단과 지분 인수계약을 체결함으로써 하이닉스 인수 절차를 사실상 마무리했다.
따라서 재계에서는 SK텔레콤이 3조4000억 원에 달하는 인수자금을 어떻게 마련할지에 관심을 모으고 있다. SK텔레콤이 보유한 현금과 은행 차입으로 2~3조 원 정도를 충당할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SK텔레콤은 인수와 관련해 통신과 반도체의 시너지 효과를 통해 세계 시장에 진출할 것이라는 포부를 이미 밝혔다.
하지만 국제 신용평가사가 인수부담에 따른 재무상태 악화를 우려해 신용등급을 강등할 수도 있다며 으름장을 놓고 있는 가운데, 재계는 하이닉스 인수가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예의주시하고 있다.
증권가에서도 SK텔레콤과 하이닉스의 주가 전망을 두고 엇갈린 반응을 보여 논란이 되고 있다.
삼성전자에 이어 ‘작지만 강한 2위’ 목표
지난 16일 하성민 SK텔레콤 사장은 각계의 우려에 대해 “정보통신기술(ICT)의 관점에서 보면 중간에 제조업체가 빠져 있기는 하지만 반도체와 통신 서비스를 통해 ICT 전체를 아우르는 셈”이라고 설명했다.
하 사장은 ‘삼성전자에 이은 2위’가 되겠다는 목표가 반도체 업종에서의 2위가 아니라고 했다. 그는 “장기적인 목표가 필요하다”며 “우선 4~5년 후 비메모리 분야에 뛰어들 것이고 이는 다양한 전자기기에 쓰이는 센서(감지장치) 같은 분야까지 진출하겠다는 뜻”이라고 덧붙였다.
이는 SK텔레콤의 기업 성격을 바꿔 삼성전자처럼 반도체와 통신, 인터넷, 전자기기 제조 등을 모두 하는 종합 IT 업체로 변화시키겠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이러한 SK텔레콤의 하이닉스 인수 배경에는 최태원 SK그룹 회장의 강한 의지가 뒷받침됐다는 후문이다.
SK그룹 관계자는 “기업 경영 환경은 항상 위험 속에 노출돼 있고 어려울 때 과감하게 리스크를 취하지 않으면 생존하기 어렵다고 본다”며 “단독 입찰임에도 채권단이 산정한 최저매각 기준가보다 1354억 원을 더 써낸 배경에는 위기를 정면으로 돌파하겠다는 최 회장의 인수 의지가 그만큼 컸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대형 M&A 시너지 효과는?
한편 CJ그룹은 엔터테인먼트와 식품이 주력사업이다. 그러나 케이블TV가 중심인 엔터테인먼트 사업은 올해 12월부터 시작되는 종합편성채널의 등장으로 위협받고 있다. 또한 그룹의 근간인 식품사업 역시 경쟁 업체의 잇따른 도전으로 인해 독점적 지위가 흔들리고 있다.
새로운 돌파구를 찾기 위한 첫 걸음이 대한통운 인수였다. CJ는 올해 안에 대한통운 인수를 완료한 후 중남미 등 해외 물류시장을 개척하겠다는 목표다.
이훈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CJ E&M이 종편의 영향으로 광고 수주에 부정적인데 이어 대한통운 인수 예정가가 주당 20만 원 정도인데 현재 주가가 7만 원대 중반이라는 것이 장기적으로는 부담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고 평가했다.
이에 대해 CJ 관계자는 “대한통운을 더 키울 자신이 있기 때문에 인수한 것 아니겠냐”며 “(삼성생명 주식 매각은) 주식시장의 불투명성 때문에 계열사에서 판 것”이라고 말했다.
포스코 역시 대우인터내셔널을 포스코패밀리에 편입한지 1년이란 시간이 흘렀지만 당초 기대했던 시너지가 나타나지 않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인수된 지 1년여의 시간이 흐르고 있지만 뚜렷하고 가시적인 성과는 대단히 미흡한 수준”이라면서 “다만 조직과 인력의 재조정을 통한 시너지 창출 기회는 다가오고 있는 것 같다”고 지난 1년을 평가했다.
대우인터내셔널은 포스코에 인수 후 큰 폭의 외형성장을 했으나 영업이익률, 순이익률, 상각전 영업이익(EBITDA)마진 등 대부분의 지표는 오히려 저하된 것으로 나타났다.
익명을 요구한 증권가의 한 전문가는 “경기침체 우려가 현실화되는 것 같다. M&A 대상기업들은 경기변동 영향을 많이 받는 반도체, 건설, 물류, 무역 업종에 속한다”며 “만약 경기침체가 장기화돼 수익성이 악화된다면 현금흐름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분석했다.
과거 대우건설을 인수한 이후 ‘승자의 저주’ 논란에 휘말렸던 금호그룹의 악몽이 우려되는 대목이다.
<이진우 기자> voreolee@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