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야구, 600만 관중 유치 자축하자마자 ‘석면’ 대망신
지구촌 최악의 산업재해 물질이 국내 야구장에 있다
2011-10-04 이창환 기자
‘환경보건시민센터’와 ‘한국석면추방네트워크’는 지난달 26일 기자회견을 통해 “석면함유광물질이 전국 주요 야구장에 사용된 사실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환경보건시민센터는 지난달 초 서울대 보건대학원 직업환경건강연구원과 잠실, 사직, 문학, 수원, 구리 야구장의 토양 성분을 조사한 바 있다. 조사 결과 석면 성분이 검출됐고 2009년부터 전면 금지된 백석면도 최고 1%의 농도(사용금지기준 10배)까지 나타났다.
잠실구장의 경우 석면 함유 토양이 최소 5년 동안 사용된 것으로 확인됐다.
환경보건시민센터 측은 “8개 구단의 선수, 심판 등을 비롯해 500여만 명의 관중들이 석면에 노출됐다”며 “경기장을 폐쇄하고 신속하게 석면토양을 제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환경보건시민센터는 이번 결과를 각 야구장과 구단, 한국야구위원회(KBO), 문화체육관광부, 환경부에 통보했다.
석면 사태가 불거지자 일각에서는 환경부의 무관심이 아니었다면 토양을 미리 교체할 수 있었다는 의견이 제기되고 있다. 야구장, 운동장, 제철소에 석면이 함유된 광물이 공급되고 있다는 내용이 지난해 보고서에 실렸기 때문이다.
지난달 28일 환경부에 따르면 중부대 연구팀은 지난해 12월 12종의 광물 가운데 사문석, 감람석 등 4종류 광물에서 최대 30%의 석면이 함유돼 있다는 연구를 환경부에 제출했다. 사문석과 감람석은 대형 제철소와 학교 운동장, 프로야구 경기장에 꾸준히 공급된 광물이다. 잠실구장 등에서는 감람석을 갈아서 만든 파쇄토를 사용한다. 파쇄토는 선수들이 슬라이딩하는 베이스 근처와 주루에 사용되고 있다.
여태껏 마신 발암물질은 누구 책임
‘석면 운동장 방치’와 같은 비난이 삽시간에 커지자 환경부는 지난달 27일 교육과학기술부, 고용노동부, 지식경제부, 문광부, KBO, 자치단체, 광산업체 등이 참여하는 긴급 관계기관대책회의를 열었다. 그러나 회의는 석면의 위험요소를 충분히 자각하지 못한 채 흘러갔다.
이에 한국석면추방네트워크는 다음날인 28일, 환경부 주재 회의를 비난하고 나섰다.
한국석면추방네트워크는 ‘경기를 예정대로 진행시키되 수시로 물을 뿌리자’는 대책회의 결정을 두고 “물을 뿌리면 석면 먼지를 줄일 수는 있지만 완전히 막을 수 없다”며 “야구장 특성상 석면 먼지의 흩어짐을 감수해야한다. 어처구니없는 결정이 나왔다”고 말했다.
한국석면추방네트워크는 이어 “석면의 노출을 막고 국민의 안전을 책임지는 환경부가 프로야구 구단들과 광산업자들의 들러리를 선 꼴”이라며 “석면 때문에 매년 10만 명이 사망한다고 밝힌 국제노동기구(ILO)의 경고를 ‘물을 뿌리면 괜찮다’ 식으로 안이하게 대처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수원시, 가장 먼저 경기장 토양 교체 발표
이에 대해 대다수 야구 관계자들은 “경기장 사용을 중지해야 한다는 입장을 가졌던 환경부가 KBO 등의 압박에 결정을 바꾼 것으로 보인다”는 시선을 보내고 있다.
반면 물을 뿌리는 것을 어느 정도 옹호하는 의견도 있다. 일부 전문가들은 “물을 뿌리는 것이 석면 먼지를 막는 데 효과적일 것”이라면서 “야구 경기를 계속해야 된다면 물을 뿌리는 게 유일한 대책”이라고 말하고 있다.
지난 27일 환경부 주재 회의에 참석한 지질 전문가 역시 “야구장 내야에는 배수를 쉽게 하기 위해 알갱이가 큰 흙을 깔았기 때문에 석면이 흙과 흙 사이의 빈 공간 아래로 가라앉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석면이 유발시키는 질환 중 종피종은 미량의 석면 흡입으로도 발병할 수 있는 질병이다. 이는 물을 뿌리는 대책의 한계를 설명해주고 있다.
이번 발표를 접한 환경부는 석면 검출과 관련된 조사를 자체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환경부는 국립환경과학원, 서울·부산 보건환경연구원과 정밀 분석을 진행 중이다. 석면이 위험농도 이상 함유됐다는 결과가 나올 때는 토양을 모두 걷어내고 새로 깔 것을 통보할 예정이다. 물론 해당 구단과 시청은 빠르면 올 가을안으로 토양 교체를 추진하고 있다.
석면은 야구장 외에 초등학교에도 검출됐다. 전국 8개 초등학교 운동장에서 석면이 검출됐다는 조사 결과가 지난달 발표되자 해당 학교에서는 운동장을 2중으로 덮고 출입을 통제했다.
[이창환 기자] hojj@dailypo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