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트트랙의 황제 안현수, 러시아서 제2의 인생 개척
러시아에서는 소속팀 해체도, 파벌싸움도 없을거야…
2011-04-26 이창환 기자
4월 16~17일 서울 양천구 목동아이스링크장에서는 2011~2012시즌 국가 대표 선발전 겸 제26회 전국종합선수권대회가 열렸다. 이날 경기에서는 스포츠팬들 뿐 아니라 안현수의 마지막 고별경기를 보기위한 팬들도 많이 몰렸다. 팬들은 ‘쇼트트랙의 유일한 히어로 안현수’, ‘빙판의 전설 안현수’ 등의 현수막과 플랜카드로 안현수를 응원했다.
안현수 역시 경기 전부터 “유종의 미를 거두고 싶다. 오늘 내 최고의 모습을 보여 주겠다.”며 비장한 각오를 다졌다. 안현수와 경쟁을 펼치는 선수들은 2010 벤쿠버 올림픽 메달리스트 이정수, 이호석, 곽윤기 등이었다.
하지만 안현수는 오랜만의 출전 때문인지 다소 긴장돼 보였고 1500m 준결승 경기에 탈락하면서 주춤한 모습을 보였다. 이에 일부 팬들은 눈시울을 적시기도 했고 “불길한 예감이 든다”며 밖으로 나가기도 했다.
이후에도 안현수는 1000m 준준결승 탈락, 3000m 슈퍼파이널 4위로 국가대표 발탁에 점점 멀어졌다. 오랜 부상과 소속팀 성남시청의 해체로 제대로 된 훈련을 하지 못했던 영향이 경기에 드러난 것이다. 성남시청은 올해 재정난을 이유로 해체됐다.
비록 500m 경기에서 1위를 차지하며 스피드는 아직 건재하다는 평을 받기도 했지만 체력보완은 우선적으로 끌어올려야 할 과제로 떠올랐다.
양일간 치뤄졌던 선발전서 남자 대표팀은 곽윤기, 이정수, 신다운, 이호석이 뽑혔다. 안현수는 4위를 차지했다. 이정수와 종합 점수 42점으로 동률을 이루긴 했지만 슈퍼 파이널 경기에서 밀려 간발의 차로 탈락한 것이다.
안현수의 한 팬은 “마지막 순간을 보기 위해 6시간 동안 차를 타고 올라왔다”며 “러시아에서도 안현수를 응원할 것이다. 힘든 기억 다 잊고 행복한 생활을 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안현수는 두 손으로 얼굴을 쓰다듬고 고개를 떨구며 아쉬움을 표현하긴 했지만 인터뷰에서는 홀가분하고 덤덤한 말투를 이어갔다.
안현수는 “힘든 시기를 거치며 부담을 많이 느꼈지만 이번 대회서 전보다 몸이 좋아졌다는 것을 느꼈다”면서 “아쉬운 결과지만 부족한지 느끼게 된 것도 성과”라고 경기의 소감을 말했다.
안현수의 러시아행은 지난 1월 본격적으로 진행됐고 2월에 확정됐다. 하지만 러시아 진출에 대한 논의는 오래전부터 있었다. 부상여파에 따른 기량저하 때문에 국내 활동의 입지가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빙상연맹에 무릎 꿇느니 떠나겠다
안현수는 2008년 1월 태릉선수촌에서 훈련을 하다 펜스에 부딪혀 무릎 부상을 입었다. 4차례나 수술대에 올라야 했던 중상이었다. 부상은 2010년 밴쿠버 올림픽 선발전 때까지 완치되지 못했고 안현수는 대표팀 엔트리에서 탈락했다.
하지만 안현수의 러시아행을 결정짓는 가장 큰 요인은 빙상연맹 과 대표팀 코치와의 불화 때문이었다.
안현수의 아버지인 안기원씨는 “빙상연맹과의 불화 이외의 요소들은 러시아행 이유의 일부일 뿐이다”라고 말했다.
이어 안씨는 “연맹 집행부가 개혁되지 않는 한 돌아올 생각이 없다. 이대로는 한국에서 설 자리가 없기 때문이다”라고 러시아 행의 당위성을 분명히 했다.
안현수 역시 파벌싸움이 불거졌던 2006년 “아무리 참고 견뎌보려고 해도 관두고 싶은 생각 뿐이다”, “지금까지 열심히 달려왔는데 이렇게 후회하긴 처음이다”라며 파벌 싸움으로 인한 선수들의 고통과 갈등을 털어 논 적이 있다.
팬들이 떠나는 안현수를 안타까워하면서도 잡지 못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빙상연맹의 파벌싸움 선수들에게 주는 피해는 쇼트트랙 에서만 국한된 문제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안현수는 “스케이트를 그만두면 외국에서 공부하겠다는 생각을 했는데, 운동과 공부를 병행할 기회라 생각했다”며 “러시아는 제반 시설과 훈련 분위기가 좋다고 들었다”는 말로 앞으로의 목표를 드러냈다. 안현수는 러시아 국가대표팀으로의 승선 여부에 대해서도 “현재 고려하고 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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