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PGA, 한·대만·일 각축전 예상

한국 여제들의 독식 이제 끝인가

2011-02-28     박주리 기자

한국 여자골프선수들이 들끓었던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무대에 지각변동이 일어나고 있다. 아니카 소렌스탐(스웨덴)과 로레나 오초아(멕시코)가 은퇴한 뒤 LPGA투어를 평정할 유력한 후보로 떠올랐던 신지애(23·미래에셋) 뿐 아니라 지난해 LPGA 상금랭킹 1위 최나연(24·SK텔레콤)이 예상외의 복병을 만난 것. 지난해에는 미야자토 아이(26·일본)가 초반 상승세를 보이며 바람을 일으키더니 올 시즌은 청야니(22·대만)의 활약이 눈에 띄며 ‘태극 여전사’들의 독보 행진을 주춤하게 만들고 있다. 특히 신지애는 빼앗긴 세계랭킹 타이틀을 청야니에게서 다시 돌려받아야 된다. 이 두 선수의 라이벌전이 기대되는 이유이다. 국내외 골프전문가들은 올 시즌 관전 포인트로 한·대만·일본 ‘아시아 삼국’의 삼파전이 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삼국을 대표하는 선수들을 알아본다.

한국 여제들이 동계 훈련기간 동안 스윙자세를 업그레이드 하는 동안 대만의 청야니가 시즌 3승을 앞세워 고공행진을 하고 있다. 하지만 올 시즌은 이제 겨우 시작일 뿐이다. 올 LPGA투어는 지난 2월에 개최한 혼다LPGA 타일랜드와 HSBC위먼스 챔피언스를 시작으로 총 24개의 정규 대회가 열린다.

신지애와 최나연은 올시즌을 앞두고 스윙에 변화를 줬다. 지난해에도 세계랭킹 톱10에 오른 이들은 현상유지만 해도 부족함을 느끼지 못할 만큼 안정된 기량을 갖고 있는 선수들이다. 하지만 세계의 강자들과 대결해 이기려면 업그레이드해야 한다는 점을 절감한 것이다.


신지애, 드로… 최나연, 임팩트

국내에서 드로(draw·낮게 날아가다가 왼쪽으로 굽어지며 낙하 후에도 많이 구르는 샷) 구질을 구사했던 신지애는 정교함을 위해 페이드(fade·볼이 높이 떠 약간 오른쪽으로 굽어지면서 낙하 후 곧 멈추는 샷) 구질로 바꿨으나, 다시 드로 구질로 회귀했다. 청야니를 지도한 글렌 도허티 코치를 영입한 신지애는 자신 있게 드로샷을 구사하는데 역점을 두고 훈련해왔다. 페이드샷은 볼 컨트롤이나 정확도면에서는 유리하지만 드로샷에 비해 런이 적어 거리 손해가 난다. 장타자가 아닌 신지애로서는 거리손해를 보면 스코어를 줄이기가 쉽지 않다.

신지애는 비거리를 늘리는 게 급선무다. 신지애의 가장 큰 장점은 정교함이었다. 스윙 자체도 간결하게 딱 떨어지는 상체 위주의 스윙이었다. 지난해 신지애는 LPGA 투어에서 페어웨이 안착률 77.2%로 1위를 차지했다. 하지만 비거리가 딸렸다. 지난해 비거리부분에서 평균 237.6야드로 117위를 기록했다. 지난해 “신지애의 비거리가 20야드만 길었어도 역사는 바뀌었을지 모른다”는 얘기가 회자 될 정도였다.

지난해 상금왕과 최저타상을 받으며 최고의 성적을 거둔 ‘교과서 스윙’ 최나연도 스윙일부를 교정했다.

최나연은 “시즌을 겪다보면 체력이나 스윙이 몸에 적응돼 폼이 안 좋아지게 마련이다. 동계 훈련기간 동안 이를 원상 복구시켰다. 또 백스윙 때 손이 높고, 임팩트때 몸이 먼저 열리는 단점을 보완했다”고 밝혔다. 최나연은 항상 컴퓨터로 자신의 동작을 확인하며 분석하고 있다. 지금은 자신의 스윙에 만족하고 있다.

양선수 모두 대대적인 변화를 시도했다. 이 변화에 적응하려면 적어도 6개월 이상은 걸릴 것으로 전문가들을 내다보고 있다. 청야니의 독주를 막아야겠다는 조바심만 내지 않고 자신의 페이스대로만 간다면 시즌 중·후반기에 좋은 성적을 낼 것으로 기대된다.


청야니의 시대 도래

청야니의 상승세가 거침없다. 청야니는 지난 시즌까지만 해도 크라프트 나비스코 챔피언십, 리코 브리티시여자오픈, P&G 노스웨스트 아칸소 챔피언십 등 총 3승을 기록하며 미국골프기자협회가 뽑은 ‘올해의 선수상’을 수상한 전망이 밝은 유망주에 불과했다. 그러던 청야니가 세계랭킹 1위에 등극했다. 지난 2월 15일 발표된 롤렉스 여자골프 세계랭킹에 따르면 지난해 2위였던 청야니가 평점 10.34점을 받아 10.18점을 받은 신지애를 2위로 밀어내고 1위에 올랐다. 이로써 지난해 11월 첫째 주부터 여자골프 세계랭킹 1위에 올랐던 신지애는 15주 만에 왕좌에서 물러났다. 청야니는 지난 2월 호주에서 끝난 유럽여자프로골프투어(LET) 호주여자오픈과 ANZ호주마스터스에서 연속 우승하며 대만 선수로는 최초로 세계랭킹 1위에 등극하는 기쁨을 맛봤다.

청야니의 ‘독주’는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2011 LPGA 투어 개막전 혼다 LPGA타일랜드에서 1승을 거머쥐었다. 대회 마지막 날인 지난달 20일, 6타를 줄여 합계 15언더파 273타로 2위 미셸 위(22·나이키골프)를 5타차로 여유 있게 따돌리고 정상에 올랐다. 아직 이른 감은 있지만 국내외 전문가들은 청야니를 올 시즌 여자골프 판도를 좌지우지할 키플레이어가 될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다.


진화되고 정교해진 샷 감각

청야니의 부상은 예견된 것이었다. 그는 LPGA 프로로 데뷔한 2008년 ‘신인상’을 수상했다. 이후 매년 우승을 맛보는 등 통산 6승을 거뒀고, 메이저타이틀도 3개나 된다.

청야니의 대범하고 당당한 모습은 신드롬을 불러일으켰던 한참 때의 박세리를 연상하게 해 ‘대만의 박세리’라 불리기도 한다.

그의 연속 우승 행진에는 달라진 골프 스윙 감각이 한 몫을 하고 있다. 장타력과 공격적인 플레이는 돋보였지만 쇼트게임과 퍼트에서 기복을 보였던 이전과는 다른 모습이다. 힘만 넘쳤던 스윙은 훨씬 부드럽고 더욱 정교해졌다. 위기에서도 흔들림이 없다.

지난해 드라이버샷 정확도는 98위로 하위권에 머물렀다. 몸을 많이 쓰며 점프하듯 샷을 한 것이 문제였던 것. 최근 스윙코치를 게리 길크리스트로 바꾼 후 테이크백 동작이 간결해져 샷의 정확도가 높아졌다. 덕분에 페어웨이 안착률이 높아졌다.

남자처럼 임팩트에 파워가 넘치는 장타자이다 보니 퍼팅이 약했지만 2년 전부터 세계적인 퍼팅코치인 데이브 스탁턴으로부터 특별레슨을 받아 퍼팅도 상위권에 올랐다.

아니카 소렌스탐은 자신의 뒤를 이를 여제 후보로 청야니를 꼽기도 했다. 소렌스탐은 은퇴하기에 앞선 2008년 LPGA투어 맥도날드 LPGA챔피언십 최종라운드에서 당시 자신과 대등한 경기를 펼친 19세의 청야니를 지목하며 “장차 그의 시대가 열릴 것”이라고 말했다. 이후 청야니는 소렌스탐을 자신의 ‘정신적 지주’로 삼으며 2009년 가을 소렌스탐이 살던 플로리다 저택을 구입했다.


개막 2연승, 44년만의 진기록

지난해 상반기에만 4승을 휩쓴 미야자토 아이도 우승권을 넘보는 아시아 선수다.

일본의 대표주자 미야자토는 지난해 5승으로 최다승을 기록했지만 뒷심이 부족해 정작 타이틀과는 인연이 없었다. 미야자토는 막판까지 집중력을 유지해 올해를 자신의 해로 만들겠다는 투지를 불태우고 있다.

올 시즌 개막식 우승으로 첫 스타트를 끊은 청야니처럼 일본 간판스타 미야자토는 지난해 혼다 LPGA타일랜드와 HSBC우먼스챔피언십 2개 대회를 석권했다. 개막 2연승은 1966년 마릴린 스미스 이후 무려 44년 만의 진기록이다. 일본 골프계는 미야자토의 메이저 우승 가능성을 점치며 기대감에 들떠 있었다.

하지만 미야자토의 변수는 체력이다. 지난해 6월까지 트레이 마리아스 챔피언십과 숍라이트 LPGA 클래식에서 우승을 해 시즌 상반기에 무려 4연승을 기록해 세계 랭킹 1위에 올랐지만 체력이 떨어졌다. 세계 1위 왕좌는 앉은 지 일주일도 안돼 크리스티 커에게 넘겨줘야만 했다. 같은 해 8월 세이프웨이 클래식에서 우승하며 생해 최고의 성적을 기록, 시즌 5연승을 달성해 왕좌를 다시 넘겨받았지만 그 후 고전을 면치 못하면서 다시 자리를 내줘야만 했다.

미야자토는 키가 155cm로 작아 ‘일본땅콩’으로도 불린다. 그러나 최나연처럼 뛰어난 집중력과 퍼팅 능력을 갖췄다. 미국식 스윙을 익혀 드라이버샷 비거리가 평균 260야드가 된다.

미야자토는 “지난해 목표였던 LPGA투어 올해의 선수상을 놓쳤지만 올 시즌에는 올해의 선수상을 목표로 노력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올 시즌 LPGA투어는 마지막까지 엎치락뒤치락하며 손에 땀을 쥐게 하는 명승부를 예고하고 있다. 세계최강이라는 ‘코리안 시스터스’와 대만과 일본을 대표하는 선수들의 삼파전이 기대된다. 최후에 환하게 웃는 여전사는 누가 될지 궁금해진다.

[박주리 기자] park4721@dailypo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