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리그] 대한한공 점보 세터 한선수
“우리 선수가 달라졌어요” 한선수는 진화 중
2010-12-21 박주리 기자
대한항공 세터 한선수(25)가 달라졌다. 한선수는 NH농협 2010~2011 V리그를 맞아 한층 달라진 기량을 과시하며 팀의 우승에 힘을 보태고 있다. 2010 국제배구연맹 월드리그와 동매달을 목에 건 광저우 아시안게임 등 국제무대에서의 경험이 많은 도움이 됐다. 그런 한선수가 소속된 대한항공은 삼성화재와 현대캐피탈이 양분하던 남자배구 판도에 변화를 예고하고 있다. 대한항공 주전 세터 한선수에 대해 알아본다.
지난 15일 프로배구 V리그에서 대한항공이 우리캐피탈을 완파하고 개막 이후 거침없는 4연승을 달리며 단독 선두를 굳게 지켰다.
대한항공은 지난 시즌에도 1라운드 전승을 거둬 우승에 한 발 다가서는 듯 했지만 2라운드부터 좋은 성적을 거두지 못해 우승권에 들지 못하는 연속 불운의 길을 걸었다.
그렇지만 올해 리그에서 대한항공은 안정된 수비력과 상승된 조직력에 분위기는 물론 경기력도 다른 팀들을 압도하고 있다는 평이다. 수비력도 탄탄하다. 서브리시브 정확도도 LIG손해보험에 이어 2위다. 이런 안정감의 중심에 세터 한선수가 있다. 한선수의 토스 정확도가 살아나 공격수 김학민, 신영수의 공격력은 배가 되고 있다.
안정된 토스워크로 팀 선두에 한몫
한선수의 일취월장한 실력은 기록으로도 입증된다. 한선수는 최근 4경기에서 309개 세트를 시도해 179개를 성공시켰다. 세트당 12.79개로 이 부분 1위에 올라있다.
곱상한 외모를 지녔지만, 코트 위에서만큼은 매우 공격적인 성향을 지녔다. 이기는 경기를 만들어가기 위해 세터로서 갖춰야 할 공격성과 섬세함이 훌륭한 조화를 갖췄다.
좋은 세터는 감정 기복이 심해서는 안 된다. 긴장하면 토스워크가 불안했던 지난해의 모습과 달라졌다.
한선수는 “시합을 즐겁게 하려고 한다. 전승보다 한 경기, 한 경기 즐기면서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며 “그래도 볼을 올려줬을 때 공격수들이 점수를 내 득점이 나면 기분이 제일 좋다”며 심리적으로 여유로운 모습에서 감정을 컨트롤 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또 다른 변화는 넓어진 시야다. 대한항공 신영철 감독은 한선수에 대해 “볼 배급 능력이 좋아져 감독이 생각하는 타이밍에 확률 높은 쪽으로 정확하게 볼을 보내는 경우가 많아졌다”며 칭찬했다.
광저우아시안게임 등 국제대회 출전도 도움이 됐다. 한선수는 “비디오 분석을 많이 하면서 해외세터들의 행동을 공부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그는 팀 우승의 공을 동료들에게 돌렸다. 그는 “팀에 복귀해서 리시브하는 선수들 덕분에 경기가 살아나는 느낌이다”며 “수비 부분이 좋아지면서 팀도 달라졌다”고 말했다.
물론 단점도 있다. 리시브가 불안한 상황에서 어려운 볼을 처리해주는 컨트롤이 아직까진 약간 부족하다. 하지만 한선수는 강한 승부욕과 여유로운 경기 운영으로 자신의 단점을 극복해가고 있다.
‘꽃미남’세터도 한때는 ‘2인자’
한선수는 지난 2월에 열린 올스타전을 앞두고 실시된 팬 투표에서 당당히 1위에 올랐다.
국가대표 공격수 박철우(25·현대캐피탈)를 따돌리고 2009년에 이어 2년 연속 V리그 올스타전 남자부 인기 선수 자리에 오른 것이다.
배구는 유난히 출중한 외모의 선수들이 많아 유독 여성 팬들이 많다. 그런 배구코트에 한선수는 연예인급 ‘꽃미남’ 외모로 데뷔 때부터 ‘오빠부대’를 몰고 다닌다.
하지만 그런 그도 한양대 시절에는 크게 주목을 받지 못했다. 한양대는 강만수, 김호철, 하종화, 윤종일, 강성형, 김세진, 최태웅, 석진욱 등 한국 배구의 ‘전설’을 배출한 배구계의 명문 중의 명문교이다. 그런 명문대의 주전 세터가 한선수였다.
그렇지만 같은 학년에 인하대 출신 동갑내기 ‘천재 세터’ 유광우(25·삼성화재)가 버티고 있었다. 유광우는 김요한(25·LIG손해보험 그레이터스), 임시형(25·현대캐피탈) 등 쟁쟁한 공격수들과 함께 2006년 전국대회 5관왕, 2007년 4관왕으로 이끌어 당시 인하대가 배구계를 평정하게 만든 장본인이다. 유광우는 2007년 배구월드컵에서 국가대표 주전 세터로 활약하기도 했다.
막강한 세터 유광우는 2006년 11월에 있었던 신인 드래프트에서 김요한에 이어 전체 2순위로 삼성화재에 지명됐다. 그에 반면 한선수는 전체 6순위(2차 지명)로 대한항공에 발탁됐다.
프로가 됐지만 한선수에게 기회는 오지 않았다. 대한항공에는 ‘장신 세터’ 김영래와 김영석이 세터 자리를 양분하고 있었다. 겨우 상무전에서 한번 교체 선수로 초라하게 프로 데뷔전을 치렀다. 신인왕도 임시형에 밀려 놓쳤다. 주목받지 못한 2차지명 선수의 ‘운명’이었다.
선배 부상으로 자리를 꿰차다
드디어 한선수에게 뜻밖의 변수가 생기며 기회를 잡았다.
2008년 2월 현대캐피탈과의 경기에서 세터 김영석이 발목 인대가 끊어지는 큰 부상을 당한 것이다.
개성이 뚜렷한 김영래와 김영석을 번갈아 기용하면서 톡톡히 재미를 봤던 대한항공으로서는 치명적인 악재였다. 하지만 그동안 실력 발휘를 할 수 없었던 한선수에게는 하늘이 내린 기회였다.
문용관 당시 대한항공 감독은 한선수를 김영래와 번갈아 투입시키는 ‘실험’을 시작했다. 급기야 한선수는 LIG손해보험과의 경기에서 교체를 단 한 차례도 하지 않고 풀타임 주전으로 활약해 자신의 진가를 입증했다. 대한항공은 이날 한선수의 안정된 경기 운영에 힘입어 55.3%의 높은 공격 성공률을 기록하며 LIG를 3-0으로 완파했다.
세트당 12.3개의 토스를 성공시킨 한선수는 처음으로 이날 중계를 맡았던 KBS N스포츠가 선정한 ‘오늘의 수훈 선수’로 뽑히기도 했다.
한선수의 토스는 신인답지 않은 대담함이 돋보였다. 경험이 부족한 신인 세터는 믿음직스런 주공격수에게 의존하기 마련인데, 한선수는 LIG전에서 주공격수 보비와 왼쪽 공격수 신영수의 공격 점유율(28.24%)을 똑같이 분배했다.
더군다나 세터로는 뛰어난 블로킹 감각을 가지고 있다는 것도 한선수의 빼놓을 수 없는 장점이었다. 한선수는 23번의 세트에 출장해 세트 당 0.48개의 블로킹을 성공시켰다. 이는 당시 국가대표 세터였던 최태웅(삼성화재)의 0.38개와 현대캐피탈의 권영민의 0.32개를 능가하는 수치였다.
노련미 부족했던 2009 리그
한 선수는 NH농협 2008~2009 V리그에 주전 세터자리를 꿰찼지만 대한항공은 숙제를 하나 더 떠넘겨 앉은 느낌이었다. 주전이었지만 한선수는 경험이 부족해 토스워크 능력은 좋지 않았다.
진준택 당시 대한항공 감독은 “한선수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는다. 경험 부족이다. 20점까지 잘하다가 마지막에 가서 못 끝내주는 것 같다”며 “노련한 선수들은 그런 상황은 잘하는데 (한)선수는 급해서 미리 토스가 나온다”고 고민을 토로했었다.
세터 한선수, 김영석, 김영래 그 누구하나 진 감독의 기대를 채울 만큼 활약하지 못하고 있었다. 이에 진 감독은 특단의 조치를 내렸다. 현역 시절 ‘컴퓨터 세터’로 불렸던 신영철 전 LG화재 감독(현 대한항공 감독)을 인스트럭터로 영입했다.
진 감독은 “세터 한선수가 아직 어리다 보니 스코어 관리를 잘 못한다. 20점만 넘기면 불안해져 노련한 신 감독이 잡아줬으면 하는 마음에서 불렀다”고 말했다.
진 감독의 결정은 적중했다. 신 감독은 한선수를 ‘쪽집게 과외’로 잘 잡아줬다. 편안하게 공격수에게 가장 좋은 볼을 주라는 주문을 한 것. 단지 경험이 부족했던 것이었다. 신 감독의 지도 아래 한선수의 토스워크는 한층 정교해 졌다.
대한항공은 지난 1986년 팀 창단 후 한 번도 리그 우승을 차지 한 적이 없다. 대한항공의 23년 묵은 한을 아무도 주목하지 않았던 2차 지명 신인 한선수가 풀어 줄 것으로 기대해 본다.
[박주리 기자] park4721@dailypo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