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취재] 김미파이브 최다승 이룬 김성희 선수를 만나다

“운동의 시작과 끝은 언제나 유도더군요”

2010-11-15     박주리 기자

국내 이종격투기 최다전적을 자랑하는 네오파이트 소속 김성희 선수는 6년 전인 2004년 10월 12일 일본 격투기대회 판크라스에 첫 데뷔전을 가졌다. 상대편 선수는 판크라스 상위 랭커 시부야 오사미 선수였다. 시부야 오사미는 김성희 선수와 싸운 경험이 있는 와타나베 선수와 비슷한 파이팅 스타일로 김 선수가 해볼 만한 상대로 여겼다. 하지만 결과는 참패였다.

김성희 선수는 경기 시작 1분 31초 만에 TKO패 했다. 어안이 벙벙했다. 시부야 선수는 자신이 보지도 듣지도 못한 기술을 걸어 시합의 승자가 됐다. ‘이건 뭐지?’ 궁금했다. 일본 선수에게 물어보니 ‘주짓수’라는 난생 처음 들어본 무술의 기술이란다. 그리고 김 선수는 주짓수를 통해 유도의 모태를 찾았다. 지난 1일 [일요서울]이 김성희 선수를 만나봤다.

본래 김성희 선수는 유도를 20년 넘게 한 공인 4단의 소유자다. 그는 대학도 유도학과를 나온 전도유망한 선수였다. 운동신경은 뛰어났지만 유도만큼이나 좋아하는 운동이 없었다. 더욱이 키 173cm, 몸무게 80kg의 다부진 체격은 유도 선수로써도 이상적이었다.


이종격투기에 도전하다

유도국가대표 상비군 출신이었던 양진호 선수가 2003년 네오파이트 우승을 차지한 이후로 많은 유도인들이 이종격투기대회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동시에 격투기 대회에 대한 참여도도 높아졌다.

김성희 선수도 그런 선수 중 한명이었다. 그는 [일요서울]과 한 인터뷰에서 “유도의 강함을 알리고 싶었다”며 이종격투기대회인 네오파이트에 참가한 이유를 말했다.

이종격투기에서 신사적이라는 평을 받는 K1보다 비신사적인 UFC가 더 인기가 높다. UFC에서는 그라운드(바닥)에서도 누르기 등이 가능하기 때문에 그라운드에서 행해지는 기술들이 많다. 그라운드에서 요하는 기술이 많은 유도가 주력기술인 그에겐 UFC스타일의 경기는 안성맞춤이었다.


무대 위 승승가도를 달리다

그의 경기를 기억하는 한 격투기 팬은 그에 대해 이렇게 회고한다. “작은 체구에 묵묵한 표정으로 격투기 무대에서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 참으로 인상적었다.”

이종격투기에 대해 김 선수는 “이종격투기는 강한 자에게 박수를 보내고 패자에게 격려를 보내는 스포츠”라며 “때리고 치면 감정이 격해질 수 있는데 경기가 끝나고 나면 정작 아무런 문제없이 서로 껴안고 이야기하는 친구가 된다”고 말했다.

김성희 선수는 이종격투기 대회에서 성공가도를 달렸다. 대중적으로 많이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이종격투기에 관심 있는 마니아급 사람이라면 그의 경기를 한번쯤은 보았을 만큼 국내 이종격투기가 보급됨과 동시에 격투기 링에 뛰어들어 화려한 전적을 자랑했다.

특히 식당을 겸한 이종격투기 경기장 ‘김미파이브’에서 최다승인 22승을 기록해 유명세를 떨친바 있다. 당시 김미파이브 경기는 MBC-ESPN(현 MBC-Sports+)에서 중계방송을 할 만큼 인기가 높았다.

김 선수의 경기장면을 본 시청자들이 길거리에 지나가는 그를 알아볼 정도로 방송의 위력은 대단했다.

수입도 꽤 좋았다. 한 경기를 이길 때마다 대전료 40만 원을 받았다. 패했을 때도 10만 원을 벌었다. 더욱이 타 이종격투기경기와는 다르게 김미파이브는 대회를 주 6일, 하루 2~3경기를 진행해 마음만 먹으면 매일 링에 오를 수 있었다.

하지만 김미파이브 시절도 오래 가지 못했다. 2005년 5월 고 이연석 선수가 경기 후 심근경색으로 사망하는 사고가 일어났다. 이 사고로 이종격투기대회의 열약한 환경과 선수들의 안전 소홀이 언론에 보도되며 김미파이브는 폐업 수순을 밟았다.


주짓수 통해 유도 다시 깨우치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김성희 선수는 일본에서 주짓수를 접했다. 주짓수는 일본과 미주지역에서 1990년도부터 인기를 얻으며 알려진 유도가 모태가 된 무술이다. 우리나라에는 이종격투기의 인기가 높았던 2003년 즈음부터 알려지기 시작했다. 주짓수는 원래 실전 속에서 익힌 격투 기술에 유도 기법들을 섞어 살생용으로 탄생된 무술이었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살생과 부상을 배제한 일반적인 스포츠가 됐다. 그렇다고 ‘쇼’같이 보여주는 무술은 아니다. 오히려 실전용에 가깝다. 호신술로도 유용해 서양에서는 여성들에게 인기가 높다.

주짓수에는 1000가지 기술이 있다. 유도의 600개 보다 많다. 그리고 한 가지 동작을 만 번 이상 연습해야 한다. 유도와 마찬가지로 주짓수도 반복에서 힘을 얻는 무술이다. 그래서 공인자격을 따기가 어렵다. 정식 주짓수 협회가 국내에 아직 없기 때문에 지도자가 실력을 인정해 줘야 단증을 받을 수 있다. 유도는 단을 높이는데 기본 4~5년이 걸리는데 주짓수는 그 두배인 10년이 걸린다. 예로 태권도 1단과 주짓수 1단의 차이는 어마어마하다.

주짓수의 국내 환경은 아직 열약하다. 지원해주는 기관도 거의 미비해서 배우고자 하는 사람들은 자비로 해외유학을 갔다 온 뒤 지도자 생활을 하며 주짓수 전파에 힘쓰고 있다.

김성희 선수는 주짓수와 유도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주짓수와 유도는 모태가 같아 비슷하면서도 많이 달라요. 주짓수는 보통 싸움 기술이 많아요. 거기에 비해 유도는 말 그대로 ‘도’예요. 정신수량, 심신수련입니다. 몸을 단련함과 동시에 마음을 단련하죠. 주짓수와 유도의 같은 점이라면 적은 힘으로 큰 힘을 제압하는 것입니다. 딱 ‘부드러움으로 강함을 누른다’는 표현이죠.”

유도 경기가 지겹게 시간을 오래 끈다는 잘못된 인식이 사람들에게 자리 잡고 있다. 하지만 정작 유도를 하게 되면 그것이 오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유도는 매치기 위주로 빨리 승부를 본다. 오히려 태권도보다 경기 진행 속도가 빠르다.


지도자로 후배양성에 힘을 쏟다

김성희 선수는 현재 이종격투기 체육관의 관장으로 있다. 물론 주 무술은 ‘유도’다.

그가 왕성했던 이종격투기 선수로써 화려한 명성을 뒤로 한 채 지도자로 변신 한 모습에 과거의 그를 기억 하는 사람들은 의외라는 표현을 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에게도 아픔이 있다. 그는 이종격투기대회에서 태국 무에타이 선수의 니킥 기술에 당해 큰 부상을 입었다. 9개월 동안 병원을 오가며 치료를 해야만 했다. 그동안 경제적인 활동을 할 수 없었다는 뜻이었다. 아이는 어리고, 김미파이브 사건이후로 이종격투기에 대한 인식 또한 좋지 않아져 설수 있는 무대마저 좁아졌다. 더욱이 부인이 심한 부상을 안고 해야 하는 격투기를 싫어했다. 다행히 이종격투기를 했을 당시 배워뒀던 복싱과 태권도, 그리고 주짓수가 원생들에게 인기가 높다. 유도만 배울 수 있는 것이 아닌 다양한 ‘도’를 접할 수 있기 때문이다.

김성희 선수, 아니 관장님은 이렇게 말한다.

“제가 선수 생활을 하면서 몸으로 마음으로 느꼈던 ‘도’를 원생들이 느끼게 해주고 싶어요. 유도는 힘만을 사용하는 무식한 운동이 아닙니다. 유도를 통해 심신을 수련한다는 마음을 가졌으면 합니다.”

하지만 김성희 선수는 “기회가 되면 한 번 더 무대 위를 밟고 싶다”며 격투기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한 듯하다.

[박주리 기자] park4721@dailypo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