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태추적 ‘걸레짝’ 된 쇼트트랙 비리 천태만상

女제자 건드린 ‘짐승’에 반칙기술은 필수

2010-04-27     이수영 기자

모럴헤저드(도덕불감증)라는 말이 무색할 지경이다. 상식 이하의 파벌 견제 끝에 승부조작을 일삼은 대한민국 쇼트트랙계가 마침내 ‘성추문’에까지 손을 뻗었다. 10대 초반의 어린 여제자를 수년간에 걸쳐 상습적으로 성추행, 성폭행 해온 국가대표 상비군 코치가 지난 19일 경찰에 구속된 것. 한때 대한민국을 ‘빙상강국’으로 올려놓았던 쇼트트랙이 ‘막장’으로 추락한 순간이었다. 문제는 이 같은 ‘범행을’ 미리 파악하고 해결했어야할 빙상연맹(이하 연맹)이 손을 놓은 채 수수방관하고 있다는 점이다. 최근 쇼트트랙 국가대표팀의 외압, 승부조작 사건이 도마에 올랐지만 연맹의 대응이 소극적인 것을 넘어 직무유기에 가깝다는 비난이 쏟아지고 있다. 심지어 이번 파문을 일부 선수와 지도자들의 ‘개인비리’로 떠넘겨 사태를 무마하려 한다는 의혹까지 불거지고 있다.

현역 쇼트트랙 국가대표 상비군 코치가 중학생 여제자를 성폭행한 혐의로 지난 4월 19일 경찰에 구속됐다. 이미 쇼트트랙 국가대표 선발전과 세계대회에서 순위담합 등 승부조작이 있었다는 사실이 드러난 가운데 현역 국가대표 코치의 성추문까지 불거지며 비난 여론은 극에 달했다.


성폭행 코치의 정체

경기지방경찰청은 여제자를 성폭행한 혐의(청소년 성보호에 관한 법률 위반)로 쇼트트랙 국가대표 상비군 코치 A(41)씨를 구속했다고 지난 19일 밝혔다. 경찰에 따르면 A씨는 2월초 경기 지역 한 실내 빙상장에서 개인지도를 하던 중학생 B(15)양을 옆 건물로 데려가 성폭행한 혐의다.

A씨는 또 B양이 초등학생 때부터 수년간 개인지도를 담당하면서 상습적으로 성추행한 혐의도 받고 있다. 그의 범행은 최근 이 같은 사실을 알게 된 B양의 부모가 경찰서를 찾아가 상담을 하면서 뒤늦게 드러났다.

쇼트트랙에 대한 팬들의 분노가 극에 달한 것일까. 보도가 나간 지 불과 수 시간 만에 A코치의 실명과 사진, 구체적인 프로필이 인터넷 포탈게시판을 중심으로 급속도로 퍼져나갔다. A코치는 경기도 안양시의 한 실내 빙상장에서 쇼트트랙 강사로 활동 중이며 1985년부터 1988년까지 4년 동안 쇼트트랙 국가대표를 지낸 것으로 알려졌다.

이 같은 기본적인 신상을 바탕으로 일명 ‘네티즌수사대’는 A코치 정체를 밝혀냈다. A코치는 현재 지역교육청에 소속돼 도내 초중고 쇼트트랙 선수들을 가르치고 있다.


“이정수, 피해자 아니다”

이 같은 누리꾼들의 자발적인 수사(?) 덕분에 쇼트트랙 성추문과 관련된 검색어를 포탈사이트에 입력하면 A코치의 실명이 연관검색어로 등장하고 있다.

한편 ‘불출마 외압’ 파문으로 촉발된 쇼트트랙 폭로전은 갈수록 꼬이고 있다. “동료들의 도움을 받는 이른바 ‘짬짜미 작전’에 가담한 적 없다”며 억울함을 호소했던 이정수(21·단국대)의 주장을 동료 선수인 곽윤기(21·연세대)와 성시백(23·용인시청)이 정면으로 반박한 것이다.

그간 쇼트트랙 내부의 비리를 고발한 ‘의인(義人)’으로 인식됐던 이정수는 동료들의 맞불 작전으로 그 역시 ‘짬짜미 작전’의 수혜자이며 우정을 저버린 이기주의자로 낙인찍힐 판이다.

전재목 코치는 지난 20일 서울 목동아이스링크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그는 “이정수가 찾아와 ‘도와달라’고 했지만 곽윤기가 대표선발전에서 종합 순위가 바뀌면 올림픽 개인전에 나가지 못할 수 있기 때문에 처음엔 부탁을 거절했다”며 “그런데 이정수가 ‘개인종목을 양보하겠다’고 해 도와달라는 이정수의 요청을 수락했다”고 밝혔다.

그런데 막상 밴쿠버 동계올림픽이 닥치자 이정수가 “선발전 때의 약속이 기억나지 않는다”고 말을 바꾸고 출전을 강행해 약속이 틀어졌다는 것이다.

기자회견에 동석한 곽윤기도 “정수가 그동안 ‘너 아니었으면 올림픽에 못 갔을 것이다. 고맙다’고 여러 번 말했다. 동료의 도움을 받지 않았다는 정수의 주장은 사실이 아니다”고 밝혔다.

여기에 대표팀 선배인 성시백까지 이정수가 곽윤기의 도움을 받는 듯한 경기 동영상을 미니홈피에 공개하며 곽윤기를 엄호하고 나서 파문을 키웠다. 성시백은 지난 4월 18일 자신의 미니 홈페이지에 ‘이정수는 과연 1000m 준결승에서 아무런 도움을 받지 않았나’라는 제목의 동영상을 올렸다.

그는 “한 쪽만 보지 마시고 이런 영상도 봐주셨으면 합니다. 빙상 문제가 빨리 해결됐으면 하는 선수 입장에서 올린 겁니다.마지막 바퀴에서 휘청하면서 넘어지려던 이정수를 받쳐주는 곽윤기의 손을 볼 수 있습니다. 만약 곽윤기가 이정수를 도와주려는 마음이 없었다면 절호의 기회에 치고 나가지 않을 리가 없습니다”라는 글을 남겼다.

선수와 코치, 동료들끼리의 난타전이 지속되는 가운데 팬들의 실망감과 비난 여론은 가라앉지 않고 있다. 처음 진상조사위원회의 조사 목적이었던 이정수에 대한 불출전 외압은 잊혀진 상태에서 선수들끼리의 폭로전으로 관심이 흘러간 배경에 빙상연맹의 여론 조작 시도가 있었을 가능성이 제기된 상황이다.


쏙 빠진 연맹 고위층

특히 이번 파문을 일으킨 배후에 연맹 고위 관계자가 직접적으로 연루돼 있는지 여부에 대한 조사는 전혀 이뤄지지 않고 있다. 단순히 개인과 개인의 비리, 복마전으로 사태가 마무리 될지 모른다는 불안감도 커지는 상황이다.

또 이번 사태에 대한 진상조사위원회의 활동 자체가 ‘반쪽짜리’ 결과물 밖에 낼 수 없는 태생적 한계를 지녔다는 점에서 뒷 말이 무성하다. 조사결과를 놓고 어느 한 쪽은 쇼트트랙계에서 완전히 매장될 만큼 치명상을 입을 것이 자명한 탓이다.

논란의 당사자가 직접 스스로를 조사하는 ‘넌센스’인 탓에 팬들은 이미 진상조사위원회에 대한 기대를 저버린 지 오래다. 빙상계 스스로 자신들의 치명적 비리를 밝힐 기회는 이번이 마지막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난 2007년에 이어 또 다시 미온적인 결과로 슬쩍 얼버무린다면 국회나 사정기관이 나서 관련자를 색출하는 비극이 벌어질 가능성도 충분하다. 특히 쇼트트랙이 올림픽이나 아시안게임 등 국가브랜드를 가리는 이벤트를 통해 관심을 얻어왔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앞으로는 그나마 관심이나 사랑도 기대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으니 말이다.

[이수영 기자] severo@dailypo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