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층분석-곽정환 한국프로축구연맹 회장 ‘등 떠밀기’ 내막
폭발한 15구단 “곽 회장 무능함 안 참는다”
2010-03-30 이수영 기자
대한민국 축구의 핵심 축, K리그가 요동치고 있다. 월드컵을 불과 석 달 앞두고 국내 프로축구리그가 집안싸움에 빠진 셈이다. 15개 구단들은 한국프로축구연맹(이하 프로연맹)과 곽정환 프로연맹회장을 향해 일제히 불만을 폭발했다. 지난 3월 26일 각 구단 단장들은 프로연맹의 행정력을 질타하며 긴급 이사회를 소집했다. 겉으로는 연맹의 행정력 등 총체적 부실을 탓하고 있지만 그 속내는 곽 회장에 대한 ‘불신임 청문회’나 다름없다는 후문이다. 지난해 재신임을 받은 곽 회장의 남은 임기는 2011년 12월 말까지다. 그러나 일부 구단장들은 이번 기회에 곽 회장을 밀어내고 연맹을 쇄신해야 한다는 초강경론까지 펼치는 상황이다. 지상 최대의 축구 빅매치 월드컵을 목전에 두고 ‘내전’에 빠진 프로연맹 파문의 전모를 들여다봤다.
연맹 정관에 따르면 이사회는 연 4회 이상 회장이 소집한다. 하지만 재적 이사 과반수가 목적 사항을 명시해 소집을 요구할 경우 회장은 15일 내에 이사회를 열어야 한다. 이번 이사회 요구에는 전체 2/3 이상의 이사가 서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사들의 요구로 이사회가 열리는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
지난 3월 26일 서울 신문로 축구회관에서 열린 긴급 이사회의 안건은 안팎으로 다양했다. 표면적으로는 K리그 타이틀 스폰서 결정 과정에서의 안일한 행정처리, 난항에 빠진 중계권 협상 등 시급한 현안이 대부분이었다.
먼저 전북 현대와 타이틀 스폰서 계약을 체결했다고 발표했지만 각 구단은 아직 정확한 내용을 연맹으로부터 전달받지 못했다는 것이다. 또 TV 중계권 협상에 대해서도 상식이하의 상황이 벌어져 불만이 쌓인 상태다. 일례로 K리그 개막 빅매치였던 서울과 전북의 경기는 생중계가 아닌 스포츠 전문채널의 녹화중계로 전파를 탔다. 이렇듯 연맹이 제 구실도 못하면서 곽 회장의 ‘전횡’이 이뤄지고 있다는 얘기다.
재신임 곽 회장 왜 성토하나
무엇보다 일련의 현안들이 모두 곽정환 회장의 ‘무능함’을 질타하고 있다는 점이 포인트다. 특히 최소 과반수이상의 요청이 있어야 가능한 긴급 이사회가 성사됐다는 것은 프로연맹에 대한 단장들의 불만이 상당하다는 반증이다. 일부 구단장들이 곽 회장의 ‘용퇴’를 공공연히 입에 올리는 것 역시 같은 맥락이다.
현재까지 대부분 구단은 ‘따질 것은 따지되 회장의 임기는 보장하고 힘을 실어주자’는 온건한 입장이지만 일부 강경파들은 날선 주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대표적인 인물은 김광식 대전시티즌 사장과 안종복 인천 유나이티드 사장, 한웅수 FC서울 단장 등이다.
김 사장은 타이틀 스폰서 미확보 문제를 지적했다. 그는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곽 회장이 2005년 취임 당시 ‘타이틀 스폰서는 걱정말라’던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며 “프로야구는 100억 원의 중계권료를 받는데 K-리그는 경제 위기라는 얘기만 반복한다. K-리그 수장답게 책임져 달라. 떠나는 사람의 뒷모습은 아름다웠으면 좋겠다”며 직격탄을 날렸다.
안 사장은 곽 회장의 리더십 부재를 가장 심각한 문제로 꼽았다. 그는 “현재 K-리그는 리더십 부재를 겪고 있다”며 “구단 단장들이 단체 움직임을 보이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회장 진퇴 문제에 앞서 연맹의 성실한 답변을 기대한다”고 말했다.
감투 벗은 곽 회장에 더 불만?
한 단장은 곽 회장과 프로연맹의 일방적 운영을 문제 삼았다. 그는 “스폰서와 중계권 협상 등은 리그의 사활이 걸린 문제인데 정작 구단들은 어떻게 돌아가는지 당췌 알 수가 없다”며 “프로연맹이 회원사인 구단들을 무시한 채 일방통행식 운영을 거듭해왔다. 가볍게 다뤄서는 안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연맹은 지난해 계약이 만료된 중계권 협상을 아직 타결하지 못했고 정규리그는 현대자동차를 타이틀 스폰서로 구했지만 리그컵, 올스타전 등은 아직 물주를 구하지 못했다.지난해에는 리그컵만 곽 회장이 위원장을 겸임했던 피스컵조직위원회가 후원했지만 정규리그는 타이틀 스폰서 없이 치러졌다.
일련의 현안을 풀어 나가는 데 있어 곽 회장의 ‘파워’가 시원찮다는 사실이 구단들의 불만을 부채질하고 있다. ‘곽정환 회장 체제로는 위기 타개가 어렵다’는 주장이 나오는 배경이기도 하다. 모 구단장은 다른 종목의 수장들을 거론하며 “힘 있는 수장들이 문제를 해결하는 모습을 보면 프로축구가 더욱 안타깝다”는 속내를 토로하기도 했다.
더욱이 곽 회장이 겸임하고 있던 ‘감투’를 줄줄이 벗으면서 이 같은 여론에 더욱 힘이 실리는 모양새다. 그는 최근 피스컵조직위원장직에서 물러났는가 하면 성남일화 구단주에서도 사퇴한 것으로 알려졌다.
곽 회장이 K리그 구단 중 ‘큰 형님뻘’인 성남의 구단주 자격으로 프로연맹 수장에 오른 만큼, 해당 직책에서 물러났다면 일종의 ‘자격미달’ 논란이 불거질 수도 있다는 게 일각의 주장이다.
반면 곽 회장은 피스컵조직위원장과 성남 구단주에서 물러난 뒤 프로연맹 수장직에 전념하겠다는 의지를 보인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연맹 내에 ‘K리그 비전위원회’를 신설해 곽 회장이 직접 위원장을 맡을 계획으로 전해져 일부 강경파들과의 마찰은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한편 연맹 정관에 따르면 회장 등 임원의 해임은 총회의 의결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따라서 이번 이사회에서 곽 회장의 불신임안이 정식 안건으로 다뤄질 수는 없다. 하지만 대다수 이사들이 연맹의 행정력을 비판하면서 곽 회장의 대외협상력에 공개적으로 의문을 표시한 상황에서 곽 회장의 정치적 타격은 상당할 것으로 보인다.
[이수영 기자] severo@dailypo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