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층분석-월드컵 D-100 ‘징크스를 잡아라’
깨지지 않는 월드컵 징크스 진면목
2010-03-09 이수영 기자
남미 강호들 “남아공 우승컵 주인은 우리 차례!”
3개월 뒤 다시 한번 전국이 붉은 함성으로 뒤덮인다. 지난 3일 ‘축구제전’ 월드컵이 꼭 100일 앞으로 다가온 가운데 ‘사상 첫 원정 16강 진출’이라는 목표를 위해 허정무호가 마지막 출격 준비를 마쳤다. 지난 1930년 제1회 우루과이 대회를 시작으로 19회째인 월드컵이 아프리카 대륙에서 열리는 것은 처음이다. 오는 6월 11일 오후 11시 요하네스버그 사커시티 스타디움에서 남아공-멕시코의 개막전을 시작으로 한 달 간 벌어질 ‘축구전쟁’에서 대한민국은 만만치 않은 상대들과 숨 막히는 진검승부를 펼칠 전망이다. 승패가 명확한 스포츠인 만큼 패권의 향방은 팀의 실력과 사령탑의 지략으로 갈린다. 그러나 월드컵에서 승패를 가르는 또 하나의 변수가 있다. 바로 ‘징크스’다. 80년 월드컵 역사 속에서 참가팀들을 울리고 웃긴 징크스는 축구대전을 즐기는 또 하나의 관전 포인트다.
만만치 않은 상대들이다. 대한민국이 16강으로 가기 위해 넘어야할 세 번의 고비는 역대 어떤 월드컵보다도 험난할 전망이다. 통산 8회에 걸쳐 월드컵 본선 무대를 밟은 한국은 유로 2004의 주인공 그리스, 남미 전통의 강호 아르헨티나, 아프리카의 신흥 축구대국 나이지리아를 상대로 일전을 펼친다. 이들 가운데 16강 진출 티켓을 거머쥐는 것은 두 팀 뿐이다.
한국, ‘펠레’ 먼저 피해야
한국은 개막 다음 날인 6월 12일 오후 8시30분 포트엘리자베스의 넬슨만델라베이 스타디움에서 그리스와 B조 개막 경기를 치른다. 조 1위가 유력한 아르헨티나와 17일 오후 8시 30분 두 번째 일전을 펼칠 한국은 23일 오전 3시30분 더반의 모세스마비다 스타디움에서 ‘슈퍼이글스’ 나이지리아와 조별리그 마지막 대결을 벌일 예정이다.
한국이 목표 달성을 위해 잡아야할 징크스 첫 번째는 바로 ‘펠레의 저주’다. 브라질 축구영웅으로 현역 시절에는 치명적인 발놀림이 무기였지만 은퇴 이후에는 입이 흉기가 된 펠레.
월드컵에서 그가 우승후보로 꼽는 팀이나 칭찬하는 선수는 모두 부진을 면치 못하거나 번번이 미끄러져 일명 ‘펠레의 저주’라는 신조어까지 생겼다. 펠레는 1998년 프랑스 월드컵에서는 스페인, 2002년 한일 월드컵에서 프랑스를 우승 후보로 꼽았지만 두 팀 모두 조별리그에서 일찌감치 탈락했다.
반대로 지난 독일 월드컵에서 혹평을 했던 호나우두는 2경기에서 3골을 몰아쳐 게르트 뮐러(독일)의 최다골 기록을 깨뜨리는 등 승승장구했다. 펠레는 그를 두고 “행운의 여신이 외면했다”고 한 바 있다.
이번에도 펠레는 월드컵 전망을 멈추지 않았다. 현재 그의 입에 유력한 우승후보로 오르내린 국가는 브라질과 스페인. 여기에 잉글랜드, 이탈리아, 아르헨티나도 얕볼 수 없다는 단서가 붙었다. 아르헨티나가 우리와 16강 진출을 다툴 경쟁자라는 점에서 국내 팬들은 남다른 기대를 버리지 않고 있다.
특히 “아르헨티나가 본선에서 전력이 강화될 것”이라고 말했다는 점은 한국에게 있어 고무적이다.
유럽-남미 교차 우승 징크스
한국의 16강 진출 여부 뿐 아니라 전 세계 축구팬들의 이목을 집중시키는 것은 바로 우승컵의 향방이다. 특히 1996년 잉글랜드 대회 이후 40년 간 깨지지 않은 ‘남미-유럽 교차 우승 징크스’가 남아공에서도 실현될 지 귀추가 주목된다.
남미와 유럽은 1966년 잉글랜드 대회부터 한 번씩 번갈아가며 우승했다. 잉글랜드(1966년), 브라질(1970년), 서독(1974년), 아르헨티나(1978년), 이탈리아(1982년), 아르헨티나(1986년), 서독(1990년), 브라질(1994년), 프랑스(1998년), 브라질(2002년)이 차례로 우승했고 지난 대회인 2006년엔 이탈리아가 우승했다. 징크스대로라면 이번 대회의 가장 강력한 우승후보는 브라질과 아르헨티나 정도로 압축된다.
교차 우승 징크스만큼 긴 역사를 지닌 징크스가 또 있다. 바로 개최국 개막전 불패 징크스다. 2006년까지 18번의 월드컵이 치러지는 동안 개최국은 본선 첫 경기에서 14승 5무를 기록, 단 한 번도 패하지 않았다.
한국과 일본이 공동 개최한 2002 한일 월드컵의 경우 한국은 조별리그 1차전에서 폴란드를 2:0으로 대파했고 일본 역시 벨기에에 2:2로 비긴 바 있다. 또 개최국이 1라운드에서 탈락한 적이 한 번도 없다는 것 또한 깨지지 않은 징크스다.
지난 2006 독일월드컵에서 새롭게 등장한 징크스도 있다. 바로 ‘푸마의 저주’다. 이는 스포츠 브랜드인 푸마의 후원을 받은 팀들 가운데 절대 다수가 대회 초반 부진의 늪에 빠진 것을 말한다.
지난 대회에서 푸마 유니폼을 입은 팀은 모두 12개. 이 중 이탈리아와 체코를 제외하고 다른 10개 팀은 모두 조별리그 1차전에서 패하거나 무승부를 거뒀다. 저주의 첫 희생자는 폴란드로 조별 리그 첫 경기인 에콰도르와의 경기에서 0:2로 져 자존심을 구겼다.
이후 독일과의 조별 리그 2차(전)에서는 전·후반 90분간 접전을 펼친 폴란드는 막판 추가시간인 후반 47분 통한의 결승골을 헌납해 16강에서 탈락하고 말았다.
깨져버린 징크스
징크스는 깨지기 위해 존재하는 걸까? 전통적인 월드컵 징크스 가운데 보기 좋게 빗나간 예도 적지 않다. 대표적인 것이 이른바 ‘골대 징크스’와 ‘개막전 징크스’. 흔히 ‘골대를 맞추는 팀은 진다’는 속설이 있지만 이는 지난 2006 독일 월드컵에서 산산이 깨졌다.
지난 2006년 6월 15일 폴란드와의 조별 리그 경기에서 독일은 결정적인 슈팅이 2차례나 골대를 맞고 나오는 불운을 겪었지만 후반 추가시간 때 결승골을 터뜨렸다. 이탈리아도 가나와 경기에서 전반 두 차례나 슈팅이 골포스트와 크로스바를 맞고 나왔지만 2:0 완승을 거뒀다.
개막전 징크스도 독일 월드컵에서 깨졌다. 역대 대회 우승팀은 전통적으로 개막전에서 무기력하기 마련이었다. 1974년 서독 월드컵 때 브라질이 유고슬라비아와 0:0무승부를 기록한 것을 시작으로 2002년 프랑스가 세네갈에 0:1로 패하는 이변이 벌어지는 등 이전 대회 우승팀은 개막전에서 2승 3무 3패의 저조한 성적을 거뒀다.
그러나 2006 독일 월드컵은 달랐다. 2002년 대회의 준우승 국가이자 개최국인 독일은 개막전에서 코스타리카를 맞아 4:2 대승을 거두며 사실상 개막전 징크스를 깬 주인공이 됐다.
한편 지난 3일 아프리카 최강 코트디브아르를 2:0으로 대파한 우리나라는 다음달 말 께 월드컵 최종 엔트리 23명을 확정한다. 오는 6월 16일 아르헨티나를 대비해 에콰도르를 불러들여 A매치를 갖는 태극전사들은 같은 달 24일 숙적 일본과 맞대결을 펼친다.
한일전 직후 오스트리아 인스브루크로 넘어가 고지대 적응에 나서는 대표팀은 ‘무적함대’ 스페인(6월3일) 등 유럽 두 팀과 친선 경기를 가진 뒤 이튿날 남아공에 입성할 예정이다.
[이수영 기자] severo@dailypo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