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 임수혁은 갔지만 ‘부끄러운 유산’ 남았다

2010-02-16     이수영 기자
2루에서 멈춘 ‘거인’은 끝내 홈을 밟지 못했다.

투병 10년 만에 지난 7일 세상을 떠난 임수혁은 후배들과 한국 프로야구계에 적잖은 숙제를 남겼다. 지난 2000년 2루 주자로 서 있다 변을 당할 당시 그의 운명을 가른 것은 찰나의 시간이었다.

당시 잠실구장엔 응급 처치를 할 수 있는 의료진도, 빠르게 병원으로 옮길 수 있는 구급차도 없었다. 야구장 내 응급 치료에 대한 논의가 시작된 것은 임수혁의 희생을 대가로 한 사후약방문에 불과했다.

비용 운운하는 일부의 목소리는 임수혁의 죽음으로 설득력을 잃었다. 선수 안전에 대한 개념이 전무했던 당시는 그의 영면으로 잊혀진 과거가 돼야 한다. 임수혁 사건 이후 각 구장에는 응급치료를 할 수 있는 요원과 구급차가 의무적으로 배치됐다. 문제는 여전히 갈 길은 멀다.

구급차의 경우 주차 문제 등으로 신속한 구장 진입이 불가능한 경우도 적지 않다. 또 운동장 환경이 낙후된 것도 개선돼야 할 사항이다. 지난해 김정민(LG) 박경완(SK) 이용규(KIA) 등은 낙후된 운동장 사정 탓에 더 큰 부상을 당한 바 있다.

특히 인조잔디는 부상위험이 높아 더 꼼꼼한 관리가 필요하다. 오래된 베이스도 부상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지만 일부 지방구단은 이를 외면하고 있다. 관중석 교체와 부대시설 보수 등 눈에 보이는 변화는 괄목할 만하지만 안전 펜스 등 선수들의 안전을 위한 대책은 여전히 부실하다.

한스러운 10년을 보낸 ‘영원한 거인’ 임수혁은 이제 세상에 없다. 하지만 그가 남긴 부끄러운 유산과 숙제는 여전히 야구계를 압박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