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추적 ‘이택근 트레이드 파문’ 막전막후
히어로즈, 150억 뭉칫돈 쌓아 두고 현금장사?
2009-12-29 이수영 기자
‘제2의 장원삼 파문’으로 야구계가 시끄럽다. 프로야구 8번째 구단 히어로즈가 간판 타자 이택근을 25억원을 받고 LG트윈스에 넘기는 이른바 ‘현금 트레이드’를 추진한 까닭이다. 지난 18일 LG는 현금 25억원과 2군 선수 두 명을 히어로즈에 내주고 이택근을 영입하는 트레이드를 성사시켰다. 그러나 한국야구위원회(KBO)에서 히어로즈의 가입금 미납 등 절차상의 문제를 이유삼아 ‘유보’ 결정을 내리면서 상황은 복잡해졌다. 지난 시즌 간판투수 장원삼을 두고 삼성라이온즈와 KBO 사이에서 한바탕 신경전을 벌였던 히어로즈가 1년 만에 똑같은 상황을 재현하며 야구계의 원성을 사고 있는 것이다. 이택근 트레이드를 둘러싼 히어로즈와 KBO의 속사정을 들여다봤다.
프로 7년 차로 접어든 이택근은 히어로즈 내에서 단연 톱타자로 꼽힌다. 지난 시즌 개인 통산 성적은 3할1푼 타율에 55홈런, 285타점, 79도루. 올 해 야구붐을 불러일으킨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출전이후 123경기에 출전해 타율 3할1푼1리, 15홈런, 66타점, 43도루의 좋은 성적을 기록했다. 지난 11일 열린 골든글러브 시상식에서 이택근은 김현수(두산), 박용택(LG)과 함께 외야 부문 수상자에 이름을 올리며 이름값을 했다.
히어로즈 ‘운영난’의 진실
히어로즈에 있어 이택근의 부재는 곧바로 ‘타선약화’로 이어진다. 그럼에도 그를 2군 선수 두 명과 25억원이라는 헐값(?)으로 LG에 넘긴 것은 그만큼 절박한 사정을 드러낸 것일 수 있다. 지난 장원삼 파문에도 불구하고 히어로즈가 또 다시 트레이드를 결심한데는 극심한 자금난 때문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지난 2008년 메인 스폰서였던 우리 담배와 결별한 히어로즈는 현재까지 메인 스폰서를 구하지 못한 처지다. 다양한 마케팅과 몇몇 서브 스폰서의 도움을 받긴 했지만 한 해 150억원 이상이 드는 프로야구단을 지탱하는 것에는 한계가 있었다.
현재까지 히어로즈에 관심을 보이는 기업은 있지만 100억원 이상의 운영비를 대고 ‘스폰서’이름을 따느니 차라리 팀을 인수하는 것이 낫다는 계산이 나오는 상황이다. 우선 이택근을 넘긴 덕에 히어로즈는 24억원의 현금을 확보했다. 당장 ‘급한 불’을 끌 만큼의 자금력은 확보한 셈이다.
하지만 당장 새로운 시즌을 버틸 여력이 히어로즈에게 있느냐는 질문에 대해서는 비관적인 견해가 더 많다. 메인 스폰서가 나타나지 않는 이상 ‘기둥뿌리’까지 팔아넘긴 히어로즈에 더 이상 희망이 없다는 의견이 대부분인 것.
그러나 정작 히어로즈의 반응은 여유롭다. 구단 관계자는 “내년 시즌 운영비 조달엔 문제가 없을 것”이라며 “지금의 ‘급한 불’도 밖에서 보는 것처럼 심각한 사안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스포츠 전문 매거진 <스포츠 춘추> 보도에 따르면 히어로즈 프런트의 연봉은 전년도보다 30% 인상된 것으로 알려졌다. 선수단 연봉총액도 다른 구단과 비교해 큰 차이가 없으며 그간 밀린 갖가지 대금도 상당 부분 해결했다.
보도에 따르면 일본에 있는 모 스포츠용품사는 시즌 말미 밀린 대금을 모두 결제 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이는 히어로즈의 재정 상황이 생각만큼 심각하지 않다는 반증으로 비춰진다.
또 지난 시즌 중반 안산 돔구장 건설과 관계가 깊은 모 건설사가 비밀리에 히어로즈 관계자와 접촉해 “안산 돔구장을 홈구장으로 사용해줄 것”을 요청했지만 히어로즈가 이를 거절했다는 점 역시 구단 운영에 문제가 없다는 뜻이라는 게 이 매체의 설명이다.
히어로즈는 해당 건설사가 연고지 이전에 따른 갖가지 혜택을 제시하자 상식 이상의 보상안을 요구하며 협상을 결렬시켰다. 이 같은 정황으로 볼 때 히어로즈는 단순히 현금 확보 차원이 아닌 또 다른 이유 때문에 이택근을 내보냈을 가능성이 높다.
‘꽃범호’ 꼴 날까 서둘러 처분?
그렇다면 히어로즈가 제 손으로 기둥뿌리를 흔든 내막은 뭘까. 야구계에서는 이택근과 히어로즈의 결별은 예정된 수순이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2년 뒤 자유계약(FA) 선수로 풀리는 이택근이 수십억원의 몸값을 요구하면 히어로즈로서는 그를 잡을 여력이 사실상 없다는 얘기다.
이는 최근 이적을 선언한 이범호의 경우와 유사하다. 이범호는 FA로 풀린 직후 몸값이 50억~60억원 수준으로 뛰어올랐고 이와 상응하는 몸값을 지불한 팀을 찾아 해외로 떠났다. 히어로즈 내부에서는 2011 시즌이 끝난 뒤 이택근 역시 같은 전철을 밟을 가능성이 크다는 점을 인지하고 있었다는 얘기다.
결국 히어로즈로서는 이택근의 해외진출 가능성까지 염두에 두고 ‘차라리 지금 정리하는 편이 낫다’는 결론을 내렸다는 것이다. 선수가 국내 팀이 아닌 해외로 이적할 경우 히어로즈는 간판선수를 내주는 것은 물론 한 푼의 보상금도 받지 못한다.
타 구단 사이에서도 이번 히어로즈의 선택은 제법 현명했다는 평이다. FA를 1년 앞둔 선수보다는 2년 정도 여유가 있는 선수가 ‘매물’로서는 더 가치가 높다는 이유다.
문제는 이택근 트레이드 이후 야구계에 제2, 제3의 연쇄 트레이드 사태가 벌어질 것이란 예측이다. 일각에서는 LG가 이택근을 영입한 뒤 그를 또 다른 팀에 트레이드 할 것이라는 일명 ‘삼각 트레이드’를 벌일 것이라는 소문이 파다하다. LG가 투수 영입을 위해 그를 또 다른 트레이드 카드로 삼을 것이란 추측이다.
가장 가능성이 큰 것은 최근 선수협 활동으로 팀 내 입지가 약해진 롯데 손민한과 맞바꾸는 것이다. 그러나 LG 역시 선수협 활동에 가장 부정적인 팀인 까닭에 이 같은 선택이 금방 현실이 될 가능성은 높지 않다.
사실상 손민한 이외에 투수 트레이드가 어려운 상황에서 LG가 굳이 이택근을 내보낼 이유도 없다. LG는 이택근을 이용해 팀 내 주전 경쟁에 불을 붙이면서 외국인 투수 영입에 전력을 기울일 가능성도 크다. 삼각 트레이드 외에 떠도는 시나리오는 히어로즈 내 ‘연쇄 트레이드’ 사태다.
<스포츠 춘추>에 따르면 이택근의 LG행은 연쇄 트레이드의 신호탄이다. 이미 지난 시즌 삼성행이 유력했던 장원삼과 이현승의 두산행이 점쳐지고 있다. 이장석 히어로즈 사장은 과거 “황재균, 강정호, 강윤구 등 8명을 빼고 모두 트레이드 대상”이라는 발언을 한 바 있다. 때문에 일각에서는 히어로즈가 팀 내 주요 선수를 상당수 팔 것이라는 예상도 나온다.
히어로즈 측은 팀 내 트레이드가 3명 내외에서 조정될 것이라 밝혔지만 야구계에서는 선수단 현금장사가 자칫 도를 넘지 않을까 바짝 긴장하고 있다.
“5개 구단이 돈다발 제시”
이런 가운데 히어로즈의 현금장사를 곱지않은 시선으로 바라보던 타 구단이 뒤로는 히어로즈에게 돈다발을 제시한 사실이 드러나 빈축을 사고 있다. 지난 23일 <스포츠동아>에 따르면 KIA와 SK를 제외한 나머지 5개 구단이 히어로즈를 상대로 모두 현금이 포함된 트레이드를 제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신문에 따르면 왼손투수 이현승은 거의 모든 팀에서, 내야수 강정호, 황재균과 좌완투수 장원삼도 여러 구단의 구매 목록에 이름을 올렸다. 특히 황재균과 이현승에 대해서는 이택근 보다 많은 25억 원 이상이 제시된 것으로 전해졌다. 이택근의 트레이드가 발표된 직후 5개 구단이 이 자체를 문제 삼지 않은 것도 이 때문이었다.
이들 구단의 목적은 가장 쉽고 빠르게 전력보강을 하는 것. 거액의 계약금과 보상금이 걸린 FA 영입보다 현금거래가 훨씬 수지가 맞는다는 계산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이수영 기자] severo@dailysu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