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한 스포츠 스타’ 기부 스타일 대해부
100억 재단 최경주, 15억 쾌척 박찬호 ‘기부 대통령’
2009-10-20 이수영 기자
바야흐로 ‘착한 스타’ 전성시대다. 경제위기 여파로 팍팍한 살림살이에 한숨만 늘어난 와중에 유명인사들의 통 큰 기부행렬은 이슈이자 위안이 된다.
물론 일부 연예인을 비롯한 인사들의 ‘언론 플레이’용 선행은 꼴불견이지만 유독 스포츠 스타들의 기부행렬엔 소위 말하는 ‘악플’(악성댓글)이 드물다. 특히 발군의 실력으로 돋보인 스포츠 스타가 마음 씀씀이까지 천사 같을 때 해당 선수의 주가는 쑥 올라간다. 일반적으로 운동선수들은 개인적인 기부보다는 협회나 구단을 통한 단체 선행을 더 선호하는 편이다.
지난 90년대 IMF 구제금융 위기 당시 해외무대에서 대한민국의 자존심을 살린 1세대 코리안 특급 박찬호부터 2009년 ‘피겨여왕’ 김연아까지, 대한민국 스포츠 스타들의 선행 스타일을 분석했다.
지난 7월 이명박 대통령은 개인 재산 대부분을 사회에 환원하겠다는 뜻을 전격 발표했다. 대한민국 역사상 현직 대통령이 전 재산을 기부한 것은 전대미문의 사건이었다. 이 대통령의 개인재산은 부동산과 은행예금을 포함해 300억원 상당인 것으로 알려졌다.
최경주 ‘생활 밀착형’
이 대통령이 ‘전 재산 사회 환원’이라는 회심의 카드로 국가원수의 자존심을 세웠다면 ‘탱크’ 최경주(39)는 스포츠계에서 ‘선행 대통령’의 위상을 일찌감치 떨쳤다.
프로골프선수들에 있어 꿈의 무대인 미국프로골프(PGA) 투어에 도전하며 최경주는 ‘세 가지 소망’을 가슴에 품었었다. 세계랭킹 10위 이내 진입과 메이저대회 우승이 그 중 두 가지고 마지막 하나는 어려운 이들에게 도움의 손길을 건넬 수 있는 재단을 설립하는 것이었다. 최경주의 세 가지 소망은 지난 2년 전 이뤄졌다.
재단을 설립하기 전에도 PGA 투어 상금과 광고 수익 대부분을 기부해온 그는 시즌 통산 6승을 올리고 한국에 돌아온 지난 2007년 11월 재단 설립 소식을 깜짝 공표해 주위를 놀라게 했다. 최경주는 자신의 상금과 후원인단을 모아 총 100억원 규묘의 ‘최경주 재단’을 만들어 체계적인 사회봉사 활동을 벌이고 있다.
1997년 결손가정 어린이에게 장학금을 지원한 인연을 시작해 최경주는 현재까지 가장 활발한 기부활동을 펼치는 스포츠 스타로 꼽힌다. 그의 선행은 단순히 돈을 쥐어주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지난 2006년 1000만원을 들여 어려운 환경의 어린이들을 모아 비행기편으로 제주도 여행을 시켜주는 등 최경주의 기부는 그야말로 생활 밀착형이다. 12년째 자선단체 ‘부스러기 사랑 나눔회’ 홍보대사로 활동하고 있는 그는 연말연시 뿐 아니라 자연재해, 대형 인명사고 등 사회적 이슈가 있을 때마다 피해자들을 아낌없이 지원했다.
2002년 태풍 루사로 인한 수해가 발생했을 때 그는 6000만원을 털어 수재의연금을 냈고 2006년 인제, 평창에 대규모 물난리가 났을 때도 KPGA 신한동해오픈대회에서 받은 상금 전액을 수해 피해자들에게 기부했다. 2008년 경기도 이천 냉동 창고 화재 사고 당시 피해 가족에게 선뜻 3억원을 내놓아 훈훈한 감동을 주기도 했다.
12년 간 자선단체 ‘부스러기사랑나눔회’ 홍보대사로 활동하고 있는 최경주는 투어 일정으로 귀국이 어려울 땐 부인 김경미씨 이름을 빌려 매년 기부 활동을 멈추지 않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까마득한 후배 신지애(21)도 선배 못지않은 통 큰 선행으로 귀감이 되고 있다. 어린시절 어머니를 교통사고로 여의고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야 했던 시련을 겪은 신지애는 2006년 우승상금 가운데 1500만원을 장학금으로 기탁한 것을 시작으로 각 대회에서 받은 상금을 소외계층을 위해 아낌없이 내놓았다. 그는 자신의 성공스토리를 ‘기부’라는 방식으로 세상에 알리고 있다.
박찬호 ‘멀티플레이형’
최경주와 신지애가 골프계의 기부천사라면 야구계에서는 단연 박찬호(36·필라델피아)가 최고다. 한국인 메이저리거의 선구자인 박찬호는 2001년 자신의 이름을 딴 ‘박찬호 장학회’를 설립해 야구 꿈나무를 위한 장학금을 전달하고 있다.
박찬호의 선행은 한마디로 ‘멀티플레이형’ 기부다. 자신의 모교와 후배 야구선수들을 위해 사재를 터는 것은 기본, 난치병 환자와 국내 자연재해 피해자, 개발국 고아원까지 기부 대상도 다양하다.
여기에 직접 결식아동 배식 작업에 참가하는 등 봉사활동은 물론, 모교 후배들에게 지원금을 주고 팀이 1승을 할 때마다 일정액을 적립해 다시 환원하는 다양한 형태의 선행을 이어가고 있다.
그가 미국에 처음 진출한 1994년부터 15년 간 재단 활동을 포함해 기부한 금액은 20억원에 육박한다. 미국 진출 1년 만인 1995년 모교 한양대에 야구장학기금 1억원을 쾌척한 것을 시작해 1996년 도미니카 윈터리그에 참가했다 현지 어린이들의 열악한 생활환경에 충격을 받아 출국 직전 한 고아원에 현금 2000달러를 기부한 일화는 유명하다.
1997년 ‘박찬호 장학회’를 설립해 1억원을 기부한 그는 매년 미국 한인사회와 국내 불우이웃 돕기에 1억원 이상을 내놓았다. 2007년 루게릭병 등 중증환자들을 돕고 싶다며 1000만원을 기부한 그는 지난해 베이징올림픽을 마친 뒤 국가대표 동료들과 대한야구협회로부터 받은 격려금을 갹출해 투병 중인 임수혁 선수에게 건네기도 했다.
‘국민타자’ 이승엽(33·요미우리)도 야구계 숨은 기부천사다. 2003년 대구 지하철 참사 당시 현장을 직접 찾아가 1000만원을 맡긴 그는 2003년 세계 최연소 300홈런 달성 기록을 세우며 받은 격려금 1000만원을 대구시 장애위탁교육기관에 쾌척했다. 또 40호 홈럼부터 홈런 1개당 100만원씩 모은 1700만원도 청각장애선수들로 구성된 충주성심학교 야구부에 전액 기부했다.
국내 프로무대에서 활약하고 있는 야구선수들의 기부행렬도 눈부시다. 결손가정 출신의 후배 야구선수에게 고교 3년 동안 매년 200만원 상당의 야구장비를 지원한 이진영(29·LG), 수년째 한 소녀가장을 묵묵히 후원하고 있는 정민태(39·히어로즈) 투수 코치, 매년 정기적으로 고아원을 찾아 기부하는 양준혁(40·삼성) 등도 소문난 기부천사다.
홍명보 ‘동참 권유형’
최근 20세 이하 청소년대표팀을 이끌고 선전을 펼친 ‘영원한 리베로’ 홍명보(41) 감독은 ‘동참권유형’ 기부 스타일이 돋보인다. 개인적으로 거액을 쾌척하는 데 그치지 않고 동료들 혹은 뜻을 같이하는 인사들을 선행에 적극 동참시키는 것으로 유명한 까닭이다.
홍 감독은 본인의 이름을 딴 ‘홍명보 장학재단’을 설립했을 뿐 아니라 현재까지 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총 8억원을 기부, 고액 기부자 클럽인 ‘아너 소사이어티’ 회원이다.
2002년 전·현 국가대표선수들과 함께 ‘홍명보 소아암 어린이 돕기 자선축구대회’를 개최해 2억 2000만원을 기부한 것을 시작으로 매년 홍명보 장학재단 개최의 자선축구대회를 열어 경기 수익금 일체를 자선활동에 쏟아 붓고 있다.
2007년 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2억원을 기부하는 등 국내에서 활동하는 스포츠 스타 가운데 가장 많은 기부금을 낸 홍 감독의 자선릴레이는 올 연말에도 이어질 계획이다.
지난해 자선경기 현장에서 만난 홍명보 감독은 “선수들이 좋은 경기를 펼칠 수 있는 건 팬들의 열성적인 응원 덕분이다. 운동선수라면 경기장 안은 물론 밖에서도 모범적인 모습을 보여야 한다”고 밝힌 바 있다.
최근 스포츠계 기부천사 명단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은 ‘피겨여왕’ 김연아(19)다. 지난해 성탄절에 ‘엔젤스 온 아이스 2008’을 열어 모인 수익금 1억 4000여 만원을 희귀병으로 투병 중인 어린이 환자들에게 쾌척한 김연아는 지난 5월 어린이날을 맞아 직접 서울 풍납동 서울아산병원을 찾아 소아암 병동에서 어린 환자들과 뜻 깊은 시간을 보냈다.
지난 2007년 교복CF를 촬영한 뒤 광고 출연료와 수천만원 상당의 교복을 불우 학생들에게 기부한 김연아 역시 꾸준히 선행을 실천하고 있는 모범 선수로 손꼽힌다.
[이수영 기자] severo@dailysu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