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수근 미스터리 “허위신고로 밝혀지다”
KBO 사실관계 확인없이 징계 ‘비난’
2009-09-08 이수영 기자
지난해 음주폭행 파문으로 KBO로부터 무기한 실격 처분을 받은 정수근을 복귀시키기 위해 갖은 비난을 감수했던 롯데자이언츠(감독 제리 로이스터)였지만 두 번의 아량은 없었다. 최근 음주추태 논란에 휘말린 프로야구선수 정수근(32)이 지난 1일 소속팀 롯데에서 ‘영구퇴출’당했다. 정수근이 선수 생활을 하는 동안은 절대 롯데 유니폼을 입을 수 없게 된 것이다.더구나 한국야구위원회(KBO)가 사건과 관련해 롯데의 경위서를 검토한 뒤 별도의 징계위원회를 열 계획이다. KBO는 지난 3일 상벌위원회를 열어 정수근에게 무기한 실격처분을 내렸다. 물론 정수근이 실제 ‘행패’를 부렸는지 여부는 확인되지 않았다. 본인은 ‘절대 그런 적 없다’며 억울해 했다. 신고한 종업원 역시 ‘팬으로서 경기를 앞둔 선수가 술집에 있는 게 얄미워 허위로 신고했다’고 털어놓았다. 그런 상황에서 서둘러 퇴출시킨 롯데나 징계에 나선 KBO에 대한 비난이 쏟아지고 있다.
사건은 지난달 31일 밤 부산 해운대구 재송동 모 호프집에 정수근이 모습을 드러내면서 시작됐다. 이날 밤 11시 50분 경 ‘정수근이 술에 취해 옷을 벗고 종업원에게 행패를 부린다’는 112 신고가 접수된 게 발단이다.
의문투성이 11시간 “진실은?”
당시 출동 경찰은 ‘상황이 진정됐다’는 종업원과 가게주인 말을 듣고 철수했다. 그러나 이 같은 내용이 언론에 보도되면서 정수근은 궁지에 몰렸다.
물론 정수근이 실제 ‘행패’를 부렸는지 여부는 확인되지 않았다. 본인은 ‘절대 그런 적 없다’며 억울해하고 있고 신고한 종업원 역시 ‘팬으로서 경기를 앞둔 선수가 술집에 있는 게 얄미워 허위로 신고했다’고 털어놓았다.
그러나 당시 상황과 관련된 몇 가지 의문점은 여전히 풀리지 않고 있다. 일부에서는 구단이 사태를 무마하기 위해 서둘러 자체징계를 한 게 아니냐는 음모론까지 불거졌다. ‘정수근 사태’를 둘러싼 오해와 진실을 집중 추적했다.
정수근에 대한 112 신고가 들어간 시각으로부터 불과 19시간 만에 그의 야구인생은 철저히 꼬였다. 신고가 접수된 것은 정확히 지난 8월 31일 밤 11시 49분 47초. 객관적인 사실은 이게 전부다.
이후 사건을 둘러싼 상황 설명은 정수근과 최초 신고자인 호프집 직원, 구단 측이 모두 제각각이다. 정수근은 “지인들과 맥주 2잔을 마셨을 뿐 난동을 부린 적이 없다. 억울한 음해”라며 양심을 걸고 결백을 주장했다.
반면 해당 직원은 “난동을 부렸다는 것은 거짓말이었다”면서도 정수근이 웃통을 벗었다는 등의 내용은 부정하지 않았다.
최초 신고자가 언론 노출을 극도로 꺼리는 상황에서 결국 믿을 것은 정수근을 내친 롯데의 자체 조사 내용 뿐이다. 그러나 여기에도 몇 가지 의문이 남는다.
먼저 출동한 경찰이 어째서 정수근을 만나지 않고 현장을 떠났느냐는 것이다. 112신고를 받고 현장에 출동한 경찰은 ‘상황이 진정됐다’는 호프집 주인의 말만 듣고 곧바로 철수했다.
정수근은 “불미스러운 일은 절대 없었다. 경찰에 신고한 사실조차 몰랐다”며 “종업원이 ‘롯데가 4강을 가느냐 마느냐하는 마당에 술 마시러 온 꼴이 보기 싫어 허위신고를 한 것 같다”고 주장했다.
만약 경찰이 현장에 도착해 업소 안으로 들어가 정수근의 상태만 확인했더라면 이 같은 논란은 단순한 소동으로 끝날 수 있었다. 하지만 어떤 이유에선지 경찰은 곧바로 현장을 떴고 남은 것은 진실공방으로 치닫고 있는 당사자들의 주장뿐이다.
“그때그때 달라요” 신고자 진술
경찰을 둘러싼 의문은 하나 더 있다. 바로 출동시간이다. 신고가 접수돼 출동한 것은 해운대 재송지구대. 문제의 술집에서 불과 3분 거리다. 그러나 무슨 이유인지 경찰은 신고접수 15분이 지나서야 현장에 나타났다. 그나마 술집에 도착해서는 상황 파악도 하지 않고 철수해버렸다.
수시로 바뀌는 최초 신고자의 말도 의심스럽다. 우선 최초 신고자의 신분조차 경찰과 정수근, 구단의 말이 엇갈린다. 누가 처음 신고했느냐는 질문에 경찰은 주점실장, 정수근은 서빙 종업원, 롯데는 주방장이라고 답했다.
또 구단 측에 따르면 이 직원은 구단 자체조사가 시작되자 처음엔 ‘난동을 부렸다’고 말했다가 나중엔 ‘웃통을 벗고 잠들어 집에 일찍 보내려 했던 것’이라고 말을 바꿨다. 마지막엔 아예 ‘허위신고를 했다’며 수차례 진술을 번복했다. 그는 특히 언론 취재에 극도로 민감한 반응을 보여 의혹을 증폭시키고 있다.
정수근은 당초 “허위신고를 한 종업원을 명예훼손으로 고소하겠다”며 분을 감추지 못했다. 하지만 그는 “롯데 팬인 종업원이 ‘얄미워서 그랬다. 잘못했다’고 해서 ‘사실 그대로 얘기하라’고 해줬다”며 한결 누그러진 모습을 보였다. 정수근이 롯데에서 영구 퇴출되고 KBO로부터 징계를 당하는 등 사건이 일파만파로 번지게 되자 최초 신고자가 직접 나서 ‘허위신고’라고 해명하고 나섰다.
그의 직접적인 ‘허위신고’시인으로 정수근의 결백은 밝혀졌다. 하지만 허위신고에 따른 정수근이 받은 상처는 크다.
정수근이 또 다시 구설수에 휘말리자 롯데는 소속구단이 포스트시즌 진출을 위해 모든 역량을 쏟아 붓는 상황에서 음주를 한 것 자체가 문제라며 정수근을 퇴출시켰다. 한국야구위원회(KBO) 역시 “프로야구의 품위를 훼손했다”며 무기한 실격처분을 내렸다.
정수근은 실제로 당시 술에 취한 상태로 난동을 부렸는지 진위가 가려지기도 전에 ‘사형선고’를 받게 됐다.
이 같은 상황에서 당시 정수근을 신고했던 최초 신고자가 언론을 통해 “정수근 선수는 그날 조용히 술만 마시고 갔다. 일이 이렇게 될 줄 몰랐다. 정수근 선수에게 너무 미안하다”고 고백했다.
그는 당시 경찰에 허위사실을 신고한 이유에 대해 “주방에서 일하고 있는데 정수근이 술 마시러 왔다는 이야기를 듣고 롯데 팬으로 4강 싸움을 하는 와중에 밤늦게 술 마시는 것이 미워서 집에 가라고 경찰에 신고를 했다”고 말했다.
야구계의 한 관계자는 “롯데가 정수근을 ‘영구퇴출’이라는 징계를 내린 점은 쉽게 수긍가지 않는다”면서 “정수근은 자신이 결백을 주장하고, 당시 음주 난동을 증명할 수 있을 만한 증거도 없는 상황에서 무기한 실격 처리를 한 KBO의 징계절차는 너무 했다”고 말했다.
KBO 상벌위원회에서 사법부의 판단을 통해 정수근의 결백을 주장하라고 계속 요구할 경우 신고자를 고소하는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다. 신고자가 진정성 있는 사과와 해명을 해 온 터라 정수근은 법적으로 까진 가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그러나 자산의 명예회복을 위해 KBO를 상대로 법적 대응 가능성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수영 기자] severo23@dailysu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