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국 대표팀 승선 ‘마지막 승부’

‘올드보이 귀환’ 4전5기 불운의 끝 자른다

2009-08-11     이수영 기자

꼬박 2년 만이다. 굳게 닫힌 ‘허心’(허정무 대표팀 감독)을 움직이기 위해 백의종군을 마다하지 않았던 서른 살 ‘사자왕’이 마침내 태극마크를 가슴에 품는데 성공했다. 부상과 음주파동, 해외진출 실패 등 갖은 악재를 몰고 다니며 국내 프로무대에 불시착(?)한 이동국(30·전북현대)이 마침내 국가대표팀 부름을 받고 A매치 경기에 모습을 드러낼 전망이다.

지난달 ‘이동국이 많은 골을 넣기는 했지만 스스로 만들 골은 손에 꼽을 정도’라며 힐난했던 허정무 감독은 파라과이와의 친선경기에 나설 대표팀 명단을 지난 3일 발표하며 이동국의 국가대표 승선을 공식적으로 확인했다. ‘이제 때가 됐다’는 한 마디와 함께였다.

올 시즌 정규리그와 컵대회 포함 모두 19경기에 출전해 무려 15골을 몰아넣은 이동국은 생애 마지막 전성기를 맞았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박주영과 이근호 등 막내동생뻘 후배들과 무한경쟁에 뛰어든 ‘올드보이’는 과연 골 가뭄에 허덕이는 허정무호의 구세주가 될 수 있을까. 이동국의 대표팀 승선이 가지는 의미를 다각도로 분석해봤다.

이동국에게 있어 지난 3년은 불운과 시련의 연속이었다. 2006년 K리그 포항스틸러스 소속으로 리그 경기를 치르다 무릎 십자인대가 파열돼 독일월드컵 출전이 무산된 것을 시작으로 수술과 재활 끝에 어렵게 잉글랜드 진출을 성사시켰지만 결과가 좋지 않았다.


“태극호 부름, 나조차 깜짝 놀랐다”

더구나 비슷한 시기에 대표팀 선배인 이운재, 김상식, 우성용 등과 함께 ‘대표팀 음주파문’ 사태에 휘말려 1년간 국가대표 자격을 상실하게까지 했다. 대표팀 음주파문은 지난 2007년 아시안컵 대회 당시 팀 주장이었던 이운재를 비롯해 대표팀 소속 선수 4명이 원정숙소를 이탈해 현지 룸살롱에서 술판을 벌여 문제가 된 사건이다.

해당 선수들은 즉각 기자회견을 열고 공식 사과 했고 추가취재를 통해 이들이 과음이나 부적절한 접대행각을 벌인 것은 아니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그러나 대표팀 성적이 곤두박질 친 당시 상황에서 악화된 여론을 반전시키는 것은 무리였다.

이동국이 대한축구협회(KFA)로부터 대표팀 자격 1년 정지라는 중징계를 받은 사실은 곧장 소속팀이었던 잉글랜드 미들즈브러 관계자에게까지 알려졌다. 이동국의 과거 비행이 그의 주전경쟁 탈락에 어떤 식으로든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는 후문도 있었다.

지난해 쫓겨나다시피 한국행을 택한 이동국의 나이는 어느 덧 서른. 이미 한 가정의 남편과 쌍둥이 딸의 아빠가 된 그의 어깨는 무거울 수밖에 없었다. 국내 팬들과 언론은 이동국을 ‘흘러간 스타’ ‘한물 간 스트라이커’ 취급했다. 어렵사리 성남일화에 새 둥지를 틀었지만 신태용 감독이 신임 사령탑으로 부임한 이듬해 다시 짐을 싸야했다.

마침내 이동국은 전북 최강희 감독 밑에서 마지막 부활의 불꽃을 태우기를 희망했다. 최근 2~3년 간 리그 하위권을 전전하던 전북은 이동국을 필두로 새판 짜기에 나섰고 결과는 대성공. 다시 K리그 최강 스트라이커로 우뚝 선 이동국은 올해 한·일 양국 올스타들이 총출동하는 조모컵에 당당히 이름을 올리며 건재함을 과시했다. 하지만 막상 이동국은 최근 치솟는 주가에 어안이 벙벙한 모습이다.

한국 올스타 선수들이 첫 소집 일정을 소화한 지난 5일 인천에서 만난 이동국은 “대표팀에 발탁됐다는 소식을 듣고 나도 깜짝 놀랐다”는 소감을 밝혔다.

그는 12일 예정된 파라과이와의 친선경기에 나설 23명의 대표팀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2007년 아시안컵 이후 2년 만에 단 태극마크다. 이동국은 이날 공개 석상에서는 처음으로 대표팀 복귀에 대한 소회를 토로했다.

이동국은 “무엇보다 골에 대한 조바심을 떨쳤다. 골대 앞에서 날카로운 움직임에도 신경을 많이 쓰고 있다”며 최근의 활약을 자평했다.


남들 쉴 때 ‘지옥의 3연전’

이동국의 상한가는 K리그 휴식기인 최근 보다 두드러진다. 간단히 말해 ‘남들 쉴 때 혼자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살인적인 일정을 소화하고 있는 것. 올 시즌 정규리그 14득점으로 외국 용병들을 제치고 득점 선두를 달고 있는 이동국은 이미 2003년 세운 자신의 한 시즌 최다 골인 11골 기록을 훌쩍 넘겼다.

당대의 스타이자 제3의 전성기를 맞은 이동국을 원하는 자리도 넘쳐난다. 지난 8일 인천에서 열린 한일 올스타전 ‘조모컵 2009’를 마치자마자 12일 서울에서 열리는 국가대표팀 평가전에 출전한다. 상대가 남미의 강호로 꼽히는 파라과이인 만큼 경험이 많은 이동국이 선발 출전 명단에 오를 가능성이 높다.

위기의 순간 자신에게 손을 내민 소속팀을 위해서도 할 일이 있다. 중국으로 전지훈련을 떠난 전북현대는 15일 중국 프로축구팀 루넝 태산과 친선경기를 가질 예정이다. 이동국은 팀의 주축 선수로 태산전에 출전해 개인기량을 맘껏 발휘해야할 의무가 있다. 2주 간의 리그 휴식기가 오히려 이동국에게는 실력 평가의 시간이 돼버린 것이다.

이 기간에 이동국은 주어진 과제를 반드시 해결해야 한다. 허정무 감독이 불과 한달 전 이동국의 단점으로 지적한 ‘부족한 움직임’과 ‘스스로 찬스를 만들어내는 감각’을 완벽하게 보완해야 한다는 얘기다.

공식 기록에 따르면 이동국은 뛰어난 득점력과는 반대로 도움(어시스트)을 단 한 개도 올리지 못했다. 이는 전북이 이동국을 ‘원톱 스트라이커’로 활용해 재미를 봤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누군가 이동국에게 결정적인 득점 찬스를 나눠준 결과라고 할 수 있다.

특히 4-4-2 포메이션을 구사하며 두 명의 공격수를 전방에 세우는 ‘투톱’ 전술을 주로 쓰는 대표팀에서 이동국의 원톱 능력은 그다지 도움이 안 될 수도 있다. 이번 평가전을 통해 이동국이 강한 인상을 심어주지 못한다면 허 감독이 그를 다시 불러들이지 않을 공산이 크다.

물론 갑작스럽게 경기 스타일을 바꾸는 것이 무리라는 목소리도 높다. 박문성 SBS 해설위원은 “이동국이 갑자기 자신의 경기 패턴을 바꾸는 것은 어렵다. 오히려 골문 앞에서 움직임과 결정력이 좋은 장점을 더 살리는 것이 대표팀 전력에 더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이동국의 ‘월드컵 잔혹사’ 이번만은 제발…

이동국은 총 71경기의 대표팀 경기에 출전해 22골을 넣었다. 3경기 마다 1골 씩은 꾸준히 넣었다는 계산이다. 주전 공격수로서 나쁘지 않은 활약이다. 그러나 월드컵에 있어서 유독 이동국은 ‘잔혹하다’ 할 만큼 비운의 스트라이커로 꼽힌다.

갓 스무 살이 되자마자 처음 성인 대표팀 무대를 밟은 이동국이 월드컵을 경험한 것은 10년 동안 단 한 번뿐이었다. 1998년 프랑스월드컵 때 19세 프로신인으로 처음 꿈의 무대에 진출한 그는 조별 예선 2차전에서 당시 히딩크 감독이 이끌던 네덜란드에 5:0의 대패를 당하는 상황에서도 통쾌한 중거리 슈팅을 작렬하며 강한 인상을 남겼다.

프랑스 월드컵 참패 이후 아시아 청소년 선수권 우승과 대회 MVP, 득점왕을 싹쓸이한 이동국은 다음해 아시안컵 대표로 출전해 또 다시 득점기계의 면모를 과시했다. 훤칠한 외모와 호쾌한 슈팅으로 ‘이동국 신드롬’을 일으킨 그는 2000년대 초반 안정환, 고종수 등과 ‘3대 트로이카’로 군림하며 슈퍼스타가 됐다.

그러나 이동국의 축구인생은 2001년부터 꼬이기 시작했다. 엄청난 기대 속에 독일 분데스리가 베르더 브레멘으로 임대됐지만 6개월 동안 그가 뛴 경기 수는 겨우 8경기에 불과했다. 지난 2년 간 쌓인 피로를 떨치지 못한 그는 최전방에서 걸어 다니는 모습이 잦아졌고 언론은 ‘게으른 천재’라고 그를 깎아내렸다.

결국 2002년 한일 월드컵을 1년 여 앞두고 한국으로 돌아온 이동국. 최악의 시련은 그때부터였다. 당시 한국 대표팀 사령탑이었던 히딩크 감독은 이동국의 유명세에는 관심이 없었다. 모두의 예상을 깨고 히딩크 감독은 이동국을 철저히 외면했다.

같은 해 부산 아시안게임 메달 획득에도 실패한 이동국은 군 입대를 택했다. 광주상무 복무를 통해 새롭게 무장한 이동국은 2004년 본프레레 감독 취임 뒤 다시 대표팀 멤버로 발탁됐다. 전성기 못잖은 활약을 보이며 그의 2006년 독일월드컵 출전은 당연한 듯 보였다.

그러나 이번엔 예기치 못한 부상이 그의 발목을 잡았다. 월드컵을 2개월 앞둔 2006년 4월 K리그 경기 도중 오른쪽 무릎 십자인대가 파열돼 수술대에 올랐다. 그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월드컵 본선 무대가 아닌 6개월의 고된 재활이었다.

잇단 고배를 마신 이동국에게 마지막 축배의 찬스가 왔다. 그가 성공한 ‘올드보이’로 박주영, 이근호 등 신예들을 뛰어넘는 노련함을 보여줄지 여부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이수영 기자] severo@dailysun.co.kr